전출처 : 플레져 > 모두 사라지고 말
1973년의 핀볼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윤성원 옮김 / 문학사상사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아주 쓸쓸한 버스 한 대가 시간을 항해한다. 회색 스웨터, 재즈가 흐르는 LP, 커피, 맥주, 담배, 고양이가 버스 주위를 맴돈다. 버스는 그것들을 취하다가 언젠가는 자신도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뿐이다. 그뿐이라고 말할 수 밖에 없는 버스는 지나온 날의 흔적에 입구와 출구는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덫에 걸리면 끝장이다.

청춘의 한 때를 기억하는 일이 달콤하지 않으리란 건 이미 자취를 남긴 사람들에 의해 알고 있다. 무료함, 무기력, 쓸데없는, 분위기만 잡는, 허황된 것들과 그것들의 원천인 것 같은 허무가 배어 있는 것, 청춘. 누구나 그 시기를 레떼의 강을 건너듯 건너야 하고, 건넜으면 떠나야 한다. 발길 닿는 곳에서 또 반복될지도 모르는 내 짙은 허무. 그것을 떨쳐버리고 살 수 있을까. 끈질긴 세포처럼 달라붙고야 마는 허무의 잔상을...

내가 처음으로 쓴 386컴퓨터에 핀볼 게임이 깔려 있었다. 공을 스타트 지점에 놓아두고, 스페이바를 힘줬다 놓으면  초록색 공이 튕겨 나간다. 현란한 음악소리와 함께 공이 구르는 효과음이 어수선하게 들리는 동안 공은 제 갈길을 찾아간다. 같은 힘을 주었다고 생각하지만, 점수는 늘 달랐다. 더 잘해보려고 하면 점수는 형편없었고, 기대없이 손을 움직이면 점수가 높았다. 가끔 그 아이러니를 인생에 대입해 볼 때가 있다.  기대없이 살자, 라고.

핀볼 판이 붉은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었던 어렴풋한 기억만 남았다. 한밤중에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먹기도 귀찮을 때, 뭔가를 해야 하는데 어떤 무력감이 점점 염세주의자의 시선처럼 변할 때 말이다. 점수를 따는 것도 목적이 아니었다. 그저 그 시간을 보낼 방법이란 그것 뿐이었다. 어쩌다 완벽한 게임을 치뤘을 때 핀볼 게임의 나레이터는 열광했다. 퍼펙트와 엑셀런트를 외친다고 해서 나는 웃지 않았다. 웃음이란 아무때나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건 상대 없이 나 혼자 치루는 시간 죽이기 게임이었으니까.

명절날 놀러온 어린 조카에게 그 게임을 가르쳐 주었다. 조카는 그 게임 때문에 집에 가지 않겠다고 까지 했다. 눈에 불을 켜고 핀볼 게임에 달려든 조카. 겨우 조카를 보내고 난 후 핀볼 게임을 마치 재발견 한 것 처럼 해보았지만, 역시 내가 하는 핀볼 게임은 재미없었다. 내게 핀볼에 대한 기억은 그렇다.

내 청춘이 무던히 재미없던 만화책 인 줄 알았지만, 불현듯 떠오르는 기억들 중에는 배를 잡고 웃을 만한,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을 기억들도 들어있다. 그러나 왜 그 거리를 지날 때, 그 시간을 항해할 때 나는 왜 늘 불편해했던 것일까. 늘 지금과 달라야 한다고 나를 재촉했던 것일까. 청춘에 흐르는 그 특별한 기류는 아직도 남아있는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나는 내 삶이 불편하고 나를 변화시키려고만 한다.

30년전에 씌여진 이 소설은 내게도 비슷한 느낌과 체온의 공감대가 있다. 나 만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겪는 알러지 같은 어느날들.  가을이 싫다고 했던 소설속의 나를 닮을 것만 같다. 가을은 푸르렀던 한 때를 접어두고 초원으로 변해갈 길목에 우뚝 서있다. 잔인한 봄 보다 더 잔혹할 가을. 어느 곳으로 나아가든 지나치지 못하는 길이 있다. 우리의 생에서는 그것이 청춘이고, 계절중에는 가을일 것이다.

정말로 일어난 일이다. 다만 사라졌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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