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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지나가다
함정임 지음 / 민음사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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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것 같지 않은 장면, 내 인생에 온전히 달라붙어도, 떨려나가지도 못한 채 예기치 않게 불쑥 떠오르다 마는 장면들.

먼지가 묻어났다. 행간 사이에서, 풍경 속에서. 버스는 지나간다. 그냥 지나간다. 버스가 잠시 멈춘 사이에 이야기가 피어난다. 그들은 각자의 기억만을 간직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늘 동시에 어떤 일이 생긴다. 내 방을 갖던 날, 아버지가 숨을 멈춘다. 왕고모가 계단에서 구르던 날, 아버지는 권고 사직을 당한다. 동시에, 공교롭게도 벌어지는 일들. 그 모두가 내것 같지 않은 장면이다. 상실의 시대는 내 주위를 맴돈다.

건조하고, 건조하다. 습기가 배는가 싶다가도 금세 아버지에게 존대말을 해야 하는 나의 규칙처럼 다시 건조해진다. 마침표와 마침표 사이에 있던 소품들은 금세 마른다. 그녀는 이전에 너무 많이 울었거나 너무 많이 울어야할 일을 앞두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함정임, 그녀는.

카나리아가 목소리를 잃은 것처럼 목소리를 잃은 여자는 페인트공과 관계한다. 페인트공은 여자에게 묻지만 보라색 반팔 니트를 입은 여자는 아무 말도 않는다. 그 일은 여자에게도 페인트공에게도 "내 생의 한 켠을 채울" 장면이었다. "꿈이 생겼다는 것이 얼마나 큰 희망인가를" 깨닫지 못한다면 바보.

소풍. 내가 늘 머무는 곳이 아닌 곳에서 잠시 머무는 것. 그곳에서  내가 품고 있던 욕망을 꺼내볼 수 있다면 그걸로 된거지... 

단편영화를 편집해놓은 것처럼 상징과 암시, 묘사로 채색된 문장들. 고요하게 나와 나와 관계된 그들을 바라보고 있는 시선들. 버스가 잠시 머물렀다 지나가는 것처럼 함정임의 소설이 지금 내 앞에 멈췄다. 내것 같지 않은 장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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