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플레져 > 사막의 꽃 선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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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 선인장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사사키 아츠코 그림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선인장은 열대 지방에 분포하는 식물이다. 선인장에는 가시가 있다. 그 가시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로, 수분이 부족한 사막에서 잎의 크기를 줄여 생존하기 위한 수단으로 생겨났다고 한다. 자기가 놓여있는 자리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한다는 건 이미 자연에서 배울 수 있는 진리다. 인간이든 식물이든 살아있는 동안 자신의 환경에 맞춰 살 수 밖에 없는가보다.
모자, 숫자2, 오이. 어떤 연관성도 없어보이는 개체들이 의인화 되어 일상의 이야기들을 쉽게 풀어낸다. 과연 그들의 어떤 속성을 궤뚫어봐야 할까. 주위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이웃들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모자는 누구의 머리에 혹은 어떤 형태로든 '씌워지기 위해' 만들어진 소품이다. 한시적으로 쓸 수 밖에 없는 단발성을 갖고 있어 그런지 모자는 방랑자적 기질이 다분하다. 숫자2는 탄생 부터 참 재밌다. 아버지 14, 어머니 7이 만나 나누기를 하여 탄생했다. 그들이 만약 곱하거나 빼거나 더했다면 다른 숫자로 태어났을게 뻔하고, 지금과 다른 성격을 가졌을 것 역시 분명한 일이다. 숫자2는 다분히 인간의 운명, 숙명적인 성격을 갖고 있다. 그의 속성대로 핵가족일 수 밖에 없는, (숫자2의 단촐함!) 핵가족의 핵가족화에 관한 동시대의 이야기에서는 깊은 울림이 배어난다.
숫자2에 비해 대가족을 이루고 있는 오이. 가지에 주렁주렁 열리는 오이의 속성 그대로 오이에게는 고향집과 가족이 있다. 해변가에 위치한 오이의 집에 모자와 숫자2가 함께 들렀다 떠나오는 길에 숫자2가 선물한 각양각색의 스카프를 쓰고 있는 오이의 가족들. 그들의 모습은 코끝이 찡할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함께 호텔선인장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아파트 각층 끝방에 살고있다. 숫자2의 천장 위에는 오이가 살고, 오이의 천장 위에는 모자가 살고 있다. 서로 의견 다툼도 있고 함께 고독한 도시의 한 켠을 나누기도 하고 한 여자를 흠모하기도 한다. 그들의 사소한 일상들은 너무도 사소한 나머지 특별할 것도 없다. 평범함 속에 묻어나는 그들의 감탄사가, 툭 내뱉는 말들이 가슴에 내려앉았다.
이 책의 멋스러움은 소설과 함께 어우러져 있는 삽화들이다. 삽화는 복도, 창가, 계단, 열려있는 욕실등을 담고 있다. 그림속에는 사람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공간들 만이 존재하고, 정작 그 속에는 사람의 모습이 없다. 유화의 따뜻한 색상과 촉감이 없었다면 삭막하게 보일 수 밖에 없는 풍경들이다. 계단과 계단이 이어져 있는 그림이 유독 많은데, 아마도 어딘가로 끊임없이 오르고 내리는 인간의 관계, 의사소통에 관한 은유가 아닐까 싶다.
동시대를 살아간다는 것. 동시대를 살며 함께 아파하고 나눈다는 것. 잊혀지고 잊어버릴지라도 함께 했었다는 추억으로 인간의 성장은 멈추지 않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선인장이 생존 방식을 체득한 사막. 사막의 꽃이 된 선인장은 사막에서 만큼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제일 이쁜 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