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성시경 리메이크 앨범 - 푸른밤의 꿈
성시경 노래 / Kakao Entertainment / 2004년 5월
평점 :
절판
습관처럼 인터넷 서점 사이트를 오가며 새로 나온 책들을 검색하던 며칠 전, 초기화면을 떡하니 장식하고 있는 시경 군(성시경이 니 친구냐..-_-;;) 모습에 ‘아니, 이 사람이 얼마 전에 3집 낸거 아니었나? 근데 앨범을 또 냈단 말인가?’ 라는 생각을 하며 클릭을 했다. 리메이크. 한 때 가수들 사이에서 유행처럼 번져나갔던 리메이크 앨범을 그도 한 장 냈단다. 이런 게 다 상술이려니 생각을 하면서 14곡의 제목을 읽던 나는 나도 모르게 ‘장바구니에 담기’를 클릭하고 있었다. 이런 걸 두고 중독이라 하는것일지도 모르겠다. 성시경의 음악에 중독된 것인지, 인터넷 쇼핑에 중독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무래도 후자 쪽이 더 옳은 표현인 것 같다), 아무튼 나는 결코 고칠 수 없을 것 같은 병에 중독되었고, 그 병 때문에 성시경 리메이크 앨범을 구입하고 말았다.
세상이 어둑어둑 해질 무렵, 살포시 CD 를 얹고 PLAY 버튼을 누르는 손은 떨렸다. 한 일도 없으면서 지쳐버린 나의 몸을 의자에 기대 뒤로 제낀 체, 흐르는 음악을 아무 생각없이 들어본다.
가수에겐 욕일지도 모르겠지만, 그의 목소리는 무념무상 속에서 들었을 때 가장 부드럽고 감미롭게 나에게 다가온다. 지난 앨범들에 비해 다소 힘을 뺀 듯, 어떻게 들으면 성의 없이 불러 제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거 같은, 하지만 부담 없이 듣긴 딱 좋은 - 헥헥. 서술어 한 번 길다 - 목소리가 스피커를 타고 흘러 내린다.
항상 가사집과는 사이가 안 좋다 보니 노래 제목에는 익숙찮던 나였기에, 제목을 봐서는 무슨 곡인지 전혀 감을 잡을 수 없는 곡들도 꽤 되었었다. 하지만 듣는 순간, ‘아! 이 곡!!’ 이라는 생각을 하고야 마는 것이다. 크게 튀는 곡이 없으면서도 언젠가 한 번 흘려 듣고는 못내 못 잊어 했던 곡들이 막상 스피커를 통해 쏟아져나오니, 나로서는 당혹스럽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것이다. 선곡 한 번 잘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설레이는 것 같으면서도 쓸쓸한 것도 같은, 표현하기 힘든 기분이 음악 아래서 연출된다. 언젠가 한 번 듣고는 반했던 노래 ‘여우야’가 성시경의 목소리로 요리되어 내 앞에 놓인다. ‘후-‘ 하고 불면 날아갈 거 같은 목소리가 ‘소녀’에 이르러서는 왠지 모를 강렬함으로, ‘어떤 그리움’에서는 쓸쓸함으로, 마치 바닷가 저 멀리서 밀려오는 파도 마냥 다가오는 것이다. (근데 이상하게도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은 ‘그대 내맘에 들어오면은’ 이라나..? -_-)
그러고 보니 CD 가 들어있던 케이스가 작은 책이었는데,… 어디다 두었더라? 부시럭 부시럭… 쓰레기장 비슷무리한 상태를 사시사철 유지하고 있는 나의 책상 어딘가에 던져 놓은 케이스를 찾아서는 음악을 들으면서 한 장씩 넘겨 본다.
모든 연예인들이 그렇지만, 성시경, 그 역시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마음 한 켠에서는 자신감인지(그가 잘난 것은 사실이다…)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모를 그 무언가가 끊임없이 요동치고 있는, 그러면서 동시에 잘나야만 한다는 식의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듯한(이 점은 나와 비슷한 거 같기도 한..) 그의 글에서는 그런 느낌이 묻어난다. 털털한 듯 하지만 소박하진 않은 거 같고, 자유로운 듯 하지만 무언가에 속박된듯한 그 느낌…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게 힘들다는 건 잘 알고 있지만, 아무튼 그는, 이해하기 쉬운 사람은 아니다.
‘남의 일기장을 훔쳐보는 기분이 이런 것인가 보다’ 라며,… 이미 3번이나 갔던 곳이건만 한 번 더 제주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러고 보면 그는 나 보다 행복한 사람이다. 비록 앨범 자켓 촬영이긴 하지만, 누군가 사진 찍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 자신의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이 있고,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과연 나에겐… 내겐 글을 쓸 수 있는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주어질까? 하지만, 그렇게 글을 쓰더라도, 아무도 안 읽어주겠지? … 나는 그가 부러울 뿐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냥 부럽다.
유난히도 부담 없이 들리던 음악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끝나 있었다. 처음 음악을 들었던 그날 이후, 난 이 앨범을 잠잘 때마다 틀어놓곤 한다. 자장가 마냥, 아무도 터치할 수 없는 나만의 시간, 요즘 나의 잠자리를 매만지는 것은 오로지 그의 음악 뿐이다…
P.S 그런데 말이지, 무슨 방법을 사용했길래 그토록 넘쳐 흐르던 버터끼를 갑자기 확- 제거할 수 있었던 걸까? 버터왕자의 목소리가 이렇게 담백하게 들리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