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경만경
요시다 슈이치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04년 9월
평점 :
품절


요시다 슈이치는 문학성과 대중성을 고루 겸비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일본작가로서 최고의 영예라고 할 수 있는 순수문학을 대표하는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했으면서도 대중문학을 대표하는 야마모토슈고로상을 수상했을 정도니 문학성과 대중성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작가의 능력은 충분히 증명된 셈이다.

그런 작가가 ‘연애소설’을 썼다면 어떨까? 눈길 끌기에 급급한 러브스토리가 아니라 인간의 존재를 알아가면서 사랑을 이루어간다는 내용으로 꾸며진 요시다 슈이치의 <동경만경>은 작가의 특별한 능력 때문에 더욱 주목을 받는 작품이다.

<동경만경>은 연애소설 아닌 연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사랑이 존재하지만 번쩍하는 황홀한 사랑도 아니고 화려한 사랑도 아니다. 주인공들의 삶이 건조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의문이 들 정도다. 충분히 더 눈길을 끌고 아름답게 쓸 수 있었을 텐데 왜 이렇게 쓴 것일까?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요시다 슈이치의 의중은 여주인공 미오의 말에서 추측해 볼 수 있다. “세간에 평판이 자자한 연애소설을 읽어도 끝까지 다 읽어낼 수가 없었다. 결국 사랑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게 아닌가 하고 늘 혼자서 분개하곤 했다.”고 고백하는 미오의 말에서 요시다 슈이치가 만들어낸 연애소설의 바탕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요시다 슈이치는 ‘타인’과 ‘나’의 관계에 대해서 끊임없는 탐구를 하는 작가다. 이미 <퍼레이드>에서 증명됐을 정도로 현대 사회에서 타인과 언제나 관계를 맺지만 관계의 수준에서 고민하는 ‘나’를 탐구하는 것이 작가의 관심사인데 <동경만경>도 마찬가지의 맥락이라 볼 수 있다. 타인과 나의 관계를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미친 짓’이라는 ‘사랑’으로 탐구해보려는 것이다. 물론 ‘소설’적인 사랑이 아니라 건조하지만 ‘있을 수 있는’ 사랑으로 말이다.

<동경만경>은 도쿄만을 사이에 두고 일하는 료스케와 미오의 사랑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이들은 아주 가볍게 여겨지는 만남의 상징인 ‘미팅 사이트’에서 만난 인연으로 서로의 육체를 탐닉해나간다. 미래에 대한 생각을 아주 가끔씩 하지만 이들의 관심사는 ‘몸’이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미팅사이트에 만나서 몸을 탐닉해나가는 것이다.

작가는 이들의 존재와 관계는 현대 젊은이들의 전형성에 맞추고 있다. 가볍게 만남을 시작하는 존재, 타인으로 인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사랑을 하지 못하는 존재, 미칠 정도로 빠져들고 싶지만 겨우 몸만 탐닉하는 정도로 관계를 멈춰서는 존재로 주인공들의 심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묘사된 주인공들의 모습은 특별한 모습이 아니라 평범한 젊은이들의 삶을 보여주고 있다.

이들의 고민과 갈등은 인간 존재의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생명이 유한적인 것이든 감정 또한 유한적인 것인데 그 감정을 믿고 타인과 관계를 맺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하는 주인공들의 심리는 인간의 ‘한계’와 ‘가능성’에서 번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동경만경>은 연애소설답게 사랑을 이야기하는 주인공들이 나오지만 한편으로는 연애소설답지 않게 자신의 한계를 타파해나가려는 인간의 존재를 묘사하고 있다. 그렇기에 <동경만경>을 연애소설 아닌 연애소설이라 표현할 수 있다.

다른 인간으로 인해 삶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주인공들의 사랑이야기를 다룬 <동경만경>은 작가의 명성에 걸맞게 자연스럽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사랑에 대한 섣부른 정의, 작위적인 결말 없이 아주 담백하게 그려진 작품이면서도 타인과의 소통을 꿈꾸는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으로 묘사되는 수작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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