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울을 보는게 무서울 때가 있다. 나 자신의 모습을 오롯이 들여다본다는 것은, 숨기고 싶은 내면의 악한 나를 발견하는 것과 맞닿아있기 때문이다. 한참 사람들의 이야기에 동참하여 웃고 즐기다가도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나의 옆모습을 비추는 거울이 있으면, 내 표정은 열에 다섯은 전혀 즐겁지 않은 표정이기 때문이다. 그 숨어있는 악한 표정은, 사람들 이야기에 동의하지 못해서이기도 하고  타인과 어울리기 위한 억지 웃음일때도 있다. 그럴때 내 얼굴은 참 밉다. 그래서 나는 기분이 좋을 때나 화장할 때 외에는 거울을 잘 보지 않는다. 내면의 나와 맞닥뜨린다는 것은, 썩 유쾌한 일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 이 책은 너무도 날카로운 칼로 내면의 나를 끄집어내는 느낌을 주는 책이었다. "이것봐, 너는 착한척하면서 살고 있지만 착각하지마. 너도 니가 욕하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어. 너도 잔인하고 냉담한 한 명의 인간일 뿐이야. 너를 똑바로 봐"라고 누군가 속삭이고 있는듯한 느낌. 너무나 잔인하고 잔혹하지만 예리한 지적.

그래서 만화책임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전혀 만화스럽지 않다. 10여년 전의 명랑만화였던 둘리는 결코 명랑하지 않은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손가락이 잘린 노동자의 모습으로 돌아온 둘리의 주변에는 그 옛날 즐거웠던 친구들의 모습도 모두 자취를 감추었다. 둘리의 아픔을 함께 안아줄 친구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나 둘리를 사랑했던 우리 사회는 냉담하게 변하여 둘리를 쓰다듬어줄 수가 없어졌다. 최규이 둘리에게 바치는 슬픈 존경은, 너무나 냉혹한 현실이었던 것이다.

언제나 가벼운 만화책을 읽고 깔깔거리며 시간을 때우던 나였지만 가끔은 이런 골치아픈 만화를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단지 '가끔'일 뿐이다. 역시 만화는 깔깔거리며 볼 수 있는 유쾌한 것이 좋다. 이렇게 심오한 주제를 가진 만화는 전혀 만화스럽지 않을 뿐더러 왠만한 책보다 더 어렵기 때문에, 자주 볼래야 볼 수 조차 없다. 그리고 내 기억 속의 둘리는 여전히 '호이호이' 귀여운 웃음을 짓고 있는 명랑만화 속의 둘리였으면 좋겠다. 둘리의 슬픈 현실은 이번 한 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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