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좋에 술을 드신 아버지로부터 언제나 만화책 빌려오라는 주문을 받았다는 한 아이는, 늦은 저녁 닫힌 만화방 문을 두드렸다 한다. 반쯤 잠이 든 주인이 "또 너냐?"는 졸리운 눈빛을 보내면 그저 만화를 볼 수 있다는 기쁜 마음으로 만화책을 뒤적이다, 끝내 만화책을 빌려오라는 아버지의 주문 따위는 잊어버리고 만화책에 몰두하곤 했단다. 그렇게 만화책에 묻혀 행복한 유년 시절을 보낸 소년이 쓴 이야기 , <만화당 인생> 만화책이라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났다는 내가 이 책을 왜 이렇게 늦게 접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도 만화책이라 하면 헤벌레하고 입을 벌리고 손가락에 침 발라가며, 꽤나 넘겨봤었다. 내가 만화책을 보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입학하면서부터인데 이상하게도 엄마는 내가 만화책 빌려보는 것에 아무런 딴지도 걸지 않으셨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어려운 것은 "엄마, 나 만화방에 가게 돈 좀 줘!"하면 아무런 말씀도 하지 않으시고 돈을 주셨다는데 있다. 물론 덕분에 나는 어린 나이에 새로운 세계에 접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인생의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엄마에게 감사드려야겠지??

그 옛날 내가 만화방에서 주로 보았던 만화책은 이미나의 순정만화였다. <인어 공주를 위하여> 와 <점프 트리 A+>로 이어지던 일련의 순정만화들을 좋아했었다. 주인공의 긴머리가 바람에 흩날리면 내 짧막한 단발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나도 얼른 머리를 길러야지.."했었고, 이슬비와 푸르매가 만나는 장면에서는 부러움과 함께 나도 몰래 낮은 탄식을 내뱉기도 했다. 지금 다시 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그 만화들이 그 시절에는 나의 유일한 기쁨이고 슬픔이었떤 때가 있었다.

그 뒤로 고등학교때는 조금 뜸했지만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다시 만화를 보기 시작했다. 다 큰 게 무슨 만화냐 하겠지만 대학교때 본격적으로 일본만화를 접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나는 다시 만화 삼매경에 빠져들게 되었다. <바람의 검심>으로 시작하여 <무사시>에 이르는 무협 만화들도 좋았고 <마스터 키튼>이나 <몬스터>등의 우라사와 나오키 만화에 미쳤었고 <미스테리 극장 에지>나 <소년 탐정 김전일> 때문에 학교 앞의 만화방을 밥먹듯이 드나들었었다. 그리고 야오이 물을 유난히 좋아하던 친구 덕분에 일본에서 나온 야사시한 학원물이나(이름만 학원물이지 그건 정말 변태만화였다) 빨간 책도 많이 봤었다. 그리고 후에는 천계영이나 박소희, 김나경 등을 알게 되면서 우리나라 만화(특히 코믹스)도 즐겨 봤었다.

그러던 내가 요즘은 만화와 동떨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고백하자면 지난 일년간 나는 만화책이라고는 <20세기 소년> 만 찾아서 보고 있다. 생활에 바쁜 탓도 있겠지만 이제는 만화가 내게 색다른 재미를 안겨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순정만화를 보면서 가슴 설레어하기엔 나는 너무 자라버렸고, 재미있는 일본 만화를 찾아보기에는 내가 너무 귀차니즘에 빠진 탓도 있겠다. 하지만 <만화당 인생>을 읽으면서 나는 다시 만화를 보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를 느끼게 되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작가가 쓴 책에 나오는 대부분의 만화를 보지 못했다. 이우일의 만화와 <기생수> <마스터 키튼>이나 겨우 보았을까. 그래서 이 책은 나에게 재미있기도 했지만, 솔직히 조금 어렵기도 했다. 작가가 읽은 만화에 대한 평론만 보아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앞으로 작가가 침 묻혀가며 보았다는 그 만화책들을 꼭 찾아읽겠다고 다짐했다. 만화책을 읽는데 무슨 '다짐'까지야 하겠지만, 요즘 만화와 멀어진 생활을 너무 오래한 탓에 다짐이 필요하다.

다시 만화책 때문에 울고 웃던 지난 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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