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찮아'를 연발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 대학교 때부터였을 것이다. 고등학교 다닐때까지는 나도 나름대로 '부지런하다'라는 소리를 아주 가~~끔씩은 듣고 살았으나 그것은 순전히 부지런함에 있어 초절정 고수인 우리 엄마 때문이었다. 엄마가 새벽 다섯시만 되면 일어나서 나를 깨우니 나 역시 '그 엄마에 그 딸이야'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내면에 깊숙히 잔재해 있던 귀차니즘이 폭발하기 시작한 것은 엄마 품을 떠나 대학교에 다니면서부터이다. 귀찮아서 밥을 굶고 귀찮아서 수업 들으러 안가고 만사 귀찮아서 잠을 잤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가 나의 황금기였다!) 오죽 했으면 멀리 떨어져있는 리모컨 잡기가 귀찮아서 방바닥을 구르다가 어깨 다쳐서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겠는가!

그런데 여기 나보다 더 귀차니즘에 빠진 남자가 한 명 있다. 호어스트 에버스~ 그는 정말 귀차니즘 세계에서는 초절정 고수이다. 그는 아마 - 엄마가 내게 가끔 하는 말처럼 - 그냥 자동적으로 숨이 쉬어지는 것 외의 모든 것을 귀찮아할 인물이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그는 할랑하게 살아간다. 그저 내가 살아있으니 살 뿐이지요~ 를 몸소 실천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삶을 위한 그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으며 그가 생각하는 것이라고는 어떻게하면 더 할랑하게 살 수 있을까 뿐이다. 그런 사람이 멋지게 살 수 있는 독일이라는 나라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독일에 가면 멋지게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말도 안되는 생각을 조금 해보았다.

이 책이 재밌었냐고 물어보면, 별 할 말이 없다. 재밌기도 하고 재미없기도 했으니까. 읽으면서 즐거웠던 건 나보다 더 한 귀차니즘의 고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사실이었고, 재미없었던 건 호어스트의 일상이 수요일쯤 되어서는 전혀 유쾌하지 않은채 반복되었다는데 있다. 어제 삶이 귀찮아서 게으름 피웠던 내가 오늘 똑같은 게으름을 반복한다면 뭐 별다른 재미가 있겠는가. 귀차니즘의 초절정 고수 호어스트를 보며 오늘 더욱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나는, 너무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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