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끔찍한 소설이었다. 더 이상 인간 심리에 대해 잔혹하게 묘사할 수는 없으리라 싶을 정도로. 그러면서도 책에서 손을 떼지 못한 것은 나 역시 그러한 인간들 중 하나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이야기는 전혀 실현가능성이 없어 보인다. 어느날 갑자기 한 남자에게 찾아든 백색실명과 그와 접촉한 모든 사람들에게 빠른 속도로 감염되어가는 실명, 이유도 원인도 치유법도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저 사람들은 넋놓고 당할 뿐이다. 그것이 누구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험과 불행이므로 어느 누구도 대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 그 와중에 단 한 명만이 시력을 잃지 않는다. 혼자 눈이 멀지 않았으므로 참으로 다행이고 행운이다 싶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모두들 눈먼 세상에서 혼자만 눈이 멀쩡하다는 것은 크나큰 불행이다.
대학교 다닐 때 특수교육 시간에 이런 일을 한 적이 있었다. 모두들 손수건으로 눈을 막고 강의동 1층부터 4층까지 오르내리는 것이다. 물론 눈이 보이는 역할을 하는 안내자는 한 명 뿐이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모른다. 앞이 보이지 않으므로 인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질 위험, 벽에 부딪힐 위험, 옆 사람과 충돌할 위험, 평상시에는 아무런 생각없이 다니던 길도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게다가 안내자가 한 명 뿐이라 내 손만 잡아줄 수 없었으므로 나의 두려움은 극에 달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의 암흑이 그렇게도 크게 느껴졌는데 도시 사람 전체가 눈이 먼다는 이 세상은 어떻게 될 것인지 생각만해도 끔찍하다. 책을 읽는 내내 '설마.. 아닐꺼야, 그래도 사람인데.."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그 상황이 닥치면 나 역시도 인간답게 살거라고 장담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가 지금 이렇게 그나마 사람다운 삶을 유지하는 것도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기 때문이지 어느 하나라도 삐끗거리며 나를 짓이겨오면 나 역시도 생존에 매달려 사람다운 삶을 포기하게 될 것만 같다.
아.. 앞으로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돈을 벌고 생활에 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