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험생 황금 식단 - 300만 청소년에게 극찬 받은 김민지 영양사의 급식 레시피
김민지.김미향 지음 / 나무수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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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밥이나 도시락이  옛날 못살던 시대의 상징물로 되서  급식이나 외식이 흔해진 시대가 되었네요.어릴 적 엄마가 싸주던 도시락을 점심으로  먹으면서 고3시절 졸던 기억을 찾게 되었어요..

수험생이라..엄마솜씨에  이리도 다양하게 메뉴가  나올지 몰랐네요.간단한 제철재료로도 푸짐하게 한상 차릴수 있고 때깔도 곱네요.

구시대처럼 영양실조는 없지만  요즘은 열량은 높아도 애들 식단에 영양이 모자란다는데 다양한 메뉴에  신기할 정도로 값도 싸네요.애들한테 균형잡힌 영양이 아쉬웠는데 저자가 그점을 많이 보완했군요.학교급식이 일반화되어 엤날처럼  엄마가  도시락을  안싼다고해도 집에서 주부들 제일 큰  일은 가족들 밥해먹이는겁니다.

요즘 애들  운동부족에  고지방 고칼로리로 비만에 장운동소화불량까지 종종 오는데 엄마라면 한번즘 애들 성적보다 식단에 신경 좀 써야겠군요.왜 세경고 세경고하나했더니...

다양한 밑반찬만 있어도 애들이  밥을 잘 먹는군요.김치에 피클이라..요새 애들  김치보다 피클을 좋아하는 거보면 입맛이 다르긴하네요.때때로 고단백질 육류요리로 애들 기력도 보충하고 엄마솜씨도 내고...특제 요리까지!베트남이나 동남아 식단까지도!!!

미원을 싫어하는  애들인데 조미료는 절대 안들어가고 야채와 다시마물과 육수를 활용해 달걀 찜을..

정말 정성입니다.

 디저트까지 저칼로리로 애들 밤공부할대때   간식주기로 좋겠군요...

이책으로 주부들이 가족들 메뉴에 관심을 가지고  좀더 아이들과 친숙하게 되었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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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중국어 첫걸음 - 발음부터 미션까지
차오팡.오현주 지음 / 시사중국어사(시사에듀케이션)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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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어가 분명 우리나라 국어의 한문어휘와 닮은 점이 있습니다.어원이 한자인만큼 상당수 단어들이 매우 유사하네요.하지만 고립어인만큼 문법은 다른 점도 존재합니다.

성조를  이해할 수없어 매번 포기했는데 책을 보니 중국애들은 발음을 이렇게 하는구나,수사를 요렇게 쓰느구나.복수와 인칭을 저렇게 쓰느구나 상당히 자세히 설명해서 요약이 됩니다.

쉽다고 덤볐다가 어렵게 느낄수도 있고 요령있게 국어와 비교하며 배우면 중국어를 배우다보면 한국말과 유사점과 다른점이 확연히 드러납니다.한문을  잘하는 분들은 중국어도 잘 할수 있는 가능성이 있네요.단  성조를  잘 뗀다면요.

중국어는 세계에서 드물게  시제가 없고 어휘로 표시하는 것도 특이합니다.

아무리 얄미워도 중국이 우리보다 인구며 소비시장이 큰만큼 배울 점이 있고 취직이나 장래를 위해서도 영어외에도 외국어하나쯤 배워두는 게 필수인 것같습니다.쉽게 설명하고 접근을 유도하니  상당히 좋은 교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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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 민음사 오늘의 작가 총서 7
윤흥길 지음 / 민음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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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동란을 겪으면서 가족들은 격변하는 소용돌이에서 살기위해 몸부림친다.그리고 곧 답이 나온다.각자 자기 이념을 따르는  것이다.심지어 어머니들까지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가족이 나눠진다..

 이 책의 줄거리를 보면 우리나라 6.25의 과정을 상당부분 담고 있다.

민초들은 아무리 세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가난과 무식에서 벗어나기 힘들다.그속에서 생존을 위해 갈등이 존재하고  고생이 시작된다.작자는 그 시대 서민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작자가  소설에 등장시켜 가족이라는 주인공들을 통해 드러내는 것은  6.25비극과 분단등의 사건을 통해  아마 우리 한민족의 역사일 것같다.

 주목하는 것은 자식에 대한 깊은 헌신과 가족애를  드러내면서도   갈등하고 혼란된 자아와 독단적인 유교적 전근대적 요소가 잔재한 사회에서 아들이 각기 희생되는 어머니들의  인간상들이다 .아들이 빨치산이든 국군이든 어머니들에게는 하늘같은 존재이다.그런데 서로 사돈끼리 원수가 되었다.

이 소설은 아이란 2자를 통해  전쟁의 가정적비극을 형상화했다.빨치산삼촌과 전사한 외삼촌의  대립으로 두 할머니들이 적이 되고 가정내 불화가 생기자 아이의 처신까지 힘들게 되었다.이래서 전쟁이 비극이란 것이다.

몰래 나갔다가 아이를  꼬셔 빨치산의 행방을 캐내려한 어른의 이용심리나 아버지까지 고문당해 돌아온 남한정부의 처신도 잘한 건 없다.

아이의 눈에 비친 6.25 의 전쟁의  비극을 보여주는 소설로, 한국전쟁의 와중에서 한 가족이 국군과 빨치산으로 나뉘어 이념에 따라 미워하게 되는가운데 사돈간에 불화가 일어나는 파탄과 인간성이 무참히 파괴되는 과정을 비극적이지만 담담하게 묘사한다.결국은 뱀을 보고 환생한 아들의 영혼으로 착각한 덕에 가족은 사돈끼리 화해한다.민족상의 비극이라지만 결과는 어쩌면 좀 유치한 건지 단순한 건지...

결과가 참 단순소박하다.장마가 그치며 비극이 마무리된다.우리 한국현대소설의 대부분과 닮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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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만인을 기다리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
J. M.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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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은 노벨수상자의 작품답게 다소 무거운 내용이지만 우리사회가 외면하기쉬운 주제를 섬세하게 다루었다.

 약자에 대한 노예화와 억압은  툭하면 지구상에서  아침의 뉴스를 장식하는 흔한 주제다.빈곤과 가난 생존이 절박한 이들에게   아직까지 유엔이나 자유주의가 그들을  수호하기위해 당연히 공식적으로는 비난하고 돕고자한다는 이념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 소설은 말하고 있다.

 비록 소설이지만 현재도 isis같은 인간들이 공존하는 지구상의 현실에서 지금도 일어나는 일이기도하다.지금도 인종차별과 폭력의 사슬은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미처럼 남아프리카공화국같이 인종차별문제는  백인 우월주의자들과 토착민들간의  뿌리깊은 차별역사에 힘입어 문제되고  있다. 작자가 노벨상을 수상한만큼 오래된 이념의 논쟁에서 이 주제는 심심하면 매스컴의  논란의 와중에 있다.  수백년전 노예로 자신들의 국토에서조차 흑인들은  생존하기힘든 지경에 내몰렸지만 우리나라도 일제의 만행에서 식민지국민들은 인권이나 인간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아무리 세대가 변하고 사회가 바뀌어도 가난과 경멸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이 소설은 유사한 배경을 무대로 그속에서 생존을 위해 갈등이 존재하고 열등자로 취급받기 쉬운 경직된 사회의 상태에서 식민지인들의 삶을 깊숙이 파고들어 그들의 삶을 조명한 소설이라고 생각된다.

소설의 무대는 물론 허구이다.그러나 남아프리카의 사회상이나 어쩌면 지나간 역사의 제국주의가 광란했던 19세기의 식민지상태를 보는 것같다.

주인공은 제국의 판사로 엘리트계층이었이나 피지배층의 여인과 엵이는  바람에 모든 것을 한순간에 잃는다.

 등장하는 주인공과  토착여인의 비극을 통해  주목하는 것은 인종차별을 드러내면서도    혼란된 자아와 독단적인 국가권력과 사회엘리트들의 배타성과  국가안전을  위한  폭력에 희생되는 인간상들이다 .

 제국의 엘리트로  태어난 주인공은 타고난 환경덕분에 출세가도를 달리며  부러울 것없는 상류층으로 살지만  제국을 위해 치안판사로 일하며 본의아니게 식민지피지배층을 억압하게 된다.처음엔 관심없다가 한 여인때문에 불평등에 눈을 뜨게된다.그전까지 주인공은 아집과 자부심에 찬  자존심강한 판사였다.피지배층의 고통을 외면하며 제국에 충성하며 자신의 성취욕을 위해 살지만 그전에는 몰랐던 것을 깨닫는다.지금껏 같은 인간이 다른 정의를 표방하는 삶의 방식이  두가지 종족과 두 다른 세계의 이질감이 존재했다. 서서히  주인공은 폭력과 억압의 이중의 탈을 쓴 제국의 위선을 깨닫는다.처음엔 잔잔한  충격이 양심이 가책이 되었을까?아니면 톨스토이의 부활에서처럼 자신의 자아가 정의를 호소하는 걸 깨닫고 본래의 선량한 자신으로 돌아가길 원했던걸까?그때문에 소설의  내용은 정의로  포장된 재판사건에서   두 종족사이에서 갈등하며  여인이  당한 부당함에 화자의  분노를 표출시켜  말한다.
 주인공은 문제점이 자신이 내면이 어떤 상태인지부터 몰랐던  것같다.드디어 주인공은 자신이 감옥까지 가게되자 제국주의에 기반한  사회에대한  분노를 깨닫기 시작한다. 
 주인공의 자각은  그냥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고문으로 눈이 먼 여인에 대한 동정과 호기심에서 시작되어 육체적 정을 느끼기까지 작자는 그런 비극이나 불합리를  강조하기보다 자신의 자의식이 발달하는 데에 무게를 두는 것같다.

 감옥에 가서야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자유를 철저히 유린당했다는걸 깨닫는다.

-그러나 나는 지금 자유라는 게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지 이해하기 시작한다. 나에게 어떤 자유가 남았는가? 먹거나 배고플 자유, 침묵을 지키거나 혼자 지껄일 자유, 혹은 문을 두드리거나 비명을 지를 자유이리라. 그들이 나를 여기에 감금했을 때 내가 불의, 경미한 불의의 대상이었다면, 지금의 나는 피와 뼈와 고기가 뭉쳐진 불행한 덩어리에 지나지 않는다.-그가 느꼈을 절망과 분노가 상상이 가는가?

  차별과 사회적통념때문에 사회약자에 대한 보호해야하는 책임을 사회와 도덕은 해내는가?당연히 사회는 외면한다.식민지인들이 제국의 엘리트인들보다 여건이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지배층들이  자신들만의 벽을 쌓고 타인종을 받아들이지않는 기존의 통념에 적응되었기 때문이기도하다.물론 미국이나 세계의 여러나라들도 선진국일수록 기존 상위계급이 자신들만의 벽을 높이 쌓고 타인들을 받아들이는 데 배타성이 있는 건 사실이다.그러나  최소한인간은 법앞에서 평등해야한다.아마 일제시대  조선인 엘리트인들중에서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해야하는 이들이  상당수 있었을 것이다.눈만 한쪽 감으면 자신의 출세가 보장되는 데도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은  역사와 민족앞에 반역자가 되지말라는  호소로 방황하는 이들이 있었다. 경성제대 법학과를 나와 조선총독부에 입사했다가 한달만에 그만두고 자연주의 문학으로 전향한 이효석처럼 상당수 그시대의 문인들이나 작가들이 그런  배경을 지녔다.

 주인공은 인권이 박탈된 채 감옥에서 고문과 학대받는 경험을  통해 자유와 평등을  표방하며 제국주의의 만행과 사회의 이중성을 드러내며 관용과 사회정의를 호소하고 있다.

  제국의 최고위층처럼 사고하길 원했던 주인공은 식민주의를 시행하는 제국의 위선에 약자들의 고통과 갈등에 눈을 뜨고 인종차별의 야만성과 부당성에 다시  생각하게된다.

결국 주인공은  생을 마무리하며 아주 소박한  행복을 원하게 된다.

---이제 내가 원하는 건 낯익은 곳에서 편안하게 살다가 내 침대에서 죽어, 옛친구들의 조문을 받으며 무덤으로 가는 것뿐이리라.---

 이 책을 읽으며 평등과 자유민주주의가 저절로 이루어져 실행되는 게 아니란 생각이 든다 .자신이 어려움이나 치욕을 당해봐야 남의 고통을 공감하는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가보다.제국주의의 원조는 자신들의 민족이 남의 민족보다 잘나고 월등하다는 데 있었다.그때문에 잘난 자신들이 타종족이나 다른 나라의 지배가 합리화 될 수있었다.월등한 우리가 너희를 지배하는 건 진리라고..

 읽는 내내 조지오웰의 '1984년'같은 줄거리와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현재도 공산주의나 전제주의같은 나라에서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중국의 공안통치나  아프리카의 짐바브웨,북한의 신권에 가까운 독재정치도 무시할 수없다.독재자하나때문에 그의 권력을 유지하기위해 인권이 박탈되고 온 국민이 노예상태로 사는 건 역사에도 비일비재하다.그런데 현대에도 그런 상황이 되풀이 된다는 건 정말 아이러니이다.

  결국 제국주의가 식민통치와 폭력,개인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의 말살로 귀결된다란 건 정해진 수순이다.현재도 외세는 모두 제국주의라고 식민통치철폐를 외치며 정작 자신들은 일부 집단과 개인을 위해 독재를 하는 국가들이 있다.당장 북한만 보아도 그렇다.그들의 체제는 정말 모순적인  정치집단이다.인종차별과 투쟁이 심했던 남아프리카의 사회를 모델로  작자는 무엇을 호소하는가?타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의 자유를 포용하지않는다면 그러나  약자의 보호와 함께  정의를 실현하지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장래가  원만하지 못할  것이란 걸  그리고 인류의 미래도 어둡다는 걸 작자는 암시하고 있는 것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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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이삼촌 현기영 중단편전집 1
현기영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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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이 터지면 피해가 3대가 간다는데 전쟁이 왜 비참한지 소설에 잘 묘사하네요.

어쩌면 동양서양모두가 평범한 민초들인  평민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혹독한  인습아래 생존을 위해 몸부림쳤는지 어렴풋이 생각이 드네요
  이념이라는 공산당과 우파정부사이에서 권력이  피지배층인 농민들과 일반 국민을   어떻게 다루었는지 그와중에 가진자와 배운자의 차별과 민초에 대한 억압이  소설에는 은근히 암시하게 쓰고 있지만 실제로는 눈물납니다.사회의 억압과 착취아래 억울하게 인생을 망친 민초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억지로 인민군이든 국군이든 종군할 수밖에 없었던 주인공들도 사실은 어쩌면 생존의 방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남한에서  출세하지만  출세하지않은 이들처럼  많은 이들이 사회에 이질감을 느낍니다.때문에 허세를 떨지않으면서도 순응하는 듯한 사회이에서 북괴를 공동의 적으로 설정하는 포지션이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이  전쟁이 끝나가도  그리고 끝내 돌아와도 사회나 공동체와 격리되어  아무런 보상도 받지못한 힘없는 민초들의 고통을 암시하는지 모르겠네요...

  순이삼촌이라는 주인공의 사회에대한  괴리감과 갈등의 삶을  은근히 묘사한 소설이네요.

 그와중에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자존심과 생명에 대한 사랑을 버리지못하고 가족을 돌보는 주인공..

전쟁의 참혹함을  학살과 위험을 통해 깨달으면서 점차 고난과 역경을 딛고 성장해 가는 과정이 고통스럽기도 하지만요.

 배운 바없는 민초들은 이념이 뭔지도 모른채 강자의 노리개가 되기에 사회의 정의도 기존의 가치관도 없어졌습니다.그때문에 갖가지 일들이 일어납니다.

소설중간에 전쟁의 참혹함이  꽤 자세히 묘사되네요.6.25 동란에대한 지식이 늘어납니다.

  전쟁은 그 시대에  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이자 방법이라고 착각한 권력자들 사이에서 평범한 민초들이라는 이질적인 계층이 서로 대화와 소통을 원한다는 느낌도 드네요. 계층간 소통이 안되는 일은 지금도 흔하니까요..

 전쟁의 와중에  섬세한 감정의 묘사가 아름답지만 민초들이 희생된 서글픈 상황에서 우리는 인습의  굴레아래 힘겹게 살아가는 민초들의 삶이 지금도 반복되는 일이 아닌가 생각해봐야합니다.

어쩌면  주인공이 그런 심리를 대변하는 건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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