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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동아시아사 - 역사 선생님과 떠나는 시간 나들이
박중현 지음 / 해냄에듀(단행본) / 2019년 3월
평점 :
동아시아의 역사는 흔히 서양사에 밀려 오랫동안 주목받지못해왔다.그러나 근세까지 동양은 분명 서양을 압도하고 있었다.동양의 이데올로기가 엄연히 유교이며 불교에 젖은 사회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수백년 역사속에 이 두가지 이데올로기는 한몸같이 융화되어 생각하고 동아시아사회을 변화내지 융화시킨 공이 있었다.
신석기혁명이래로 왕조의 성립은 청동기의 발달과 필수불가분적이였다. 중국이 율령과 한자 등을 정비하여 유교의 공자맹자와 인도의 불교에서 아시아의 공통적 보편가치로 사상적기반을 변화시킨 일이나 토지제도에 기반하여 인구를 파악하고 행정을 관료화한 데서 옛 인물들도 사회의 현실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았다.
중국이 동아시아에 끼친 영향은 지대하다.아무리 미워도 중국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문화때문이다.한족의 농경문화에 기반한 한 송 명나라등은 국수주의성격이 짙은 반면 당나라시대는 국제적인 문화로 실크로드를 따라 서양의 문화와 결합하는 현상을 보인다. 몽골은 실크로드의 완성과 역참의 정비로 동서의 문화교류에 의외의 교류를 했다.우리의 고려양도 유행했으니 공녀들의 공이 크다.
그러던 다국적 문화가 명시대 고래의 국수주의로 회귀하려한 걸보면서 중국이 국력이 약해짐이 서술된다.
그럼 신라와 고려 조선은 뭘하고 있었을까?
조공이란 형태로 무역과 문화교류를 해오고 있었다.흔히 조공이 나쁜 것으로만 인식돼는데 그것만은 아니다.이것도 엄연히 국제거래의 일환이었다.그리고 여진과 거란 말갈들도 동아시아 질서에 끼어든다.
한국은 삼국시대를 거쳐 고려의 귀족문화를 꽃피웠다.그러나 문약에 빠지기쉬운 함정으로 중국과 조선모두 외침을 겪고 여진족의 청나라로 국운이 기운다.
나름 17세기까지 동아시아는 중국위주의 질서속에 자신들의 문화를 향유하고 있었다.그중에 두드러지는 것은 일본이 조선과 청의 쇄국에 기반한 해금정책과 대비되게16세기이래 서양과 교역을 해오며 문물을 받아들였다는 것이다.중국이 나름 비단과 도자기를 수출하며 서양과 왕래를 한 데비해 조선은 유감스럽게 쇄국이었다.결국 우물안 개구리가 되어 근대화에 낙오했다.
일본이나 조선이나 초기 개화사상가들은 다분히 혁명가였다.조선의 개화는 의지는 있었으나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는 그들에게 운을 주지않았으니 일제 제국주의의 압도적 무력으로 식민지가 되며 대부분 개화파인사들이 친일로 몰려 제거되고 만다.양반세가의 멸시를 받은 민초들이 개화된 나라를 꿈꾼 건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군주란 권력의 양분을 허용하지 않는 성격이 있나보다.서양의 발달돤 문물만 이용하려던 왕조적 생각은 중국도 조선도 한계에 부딪쳐 제대로 이용도 한번 못하고 반식민지로 전락했다. 그들의 관념자체가 바뀌지 않아 열강의 압박을 이길 수 없었다.그리고 조선은 강점되어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했다.만일 조선의 위정자들이 개혁에 성공했다면...?만일 개화사상가들이 주장한 입헌정치 시민정치가 실현되었다면 조선이 군주독재가 아닌 다른 정치체제를 가질 수 있었을까?
조선과 중국에서는 갑오개혁이나 양무운동등 근대화의 물결중에도 황제 혹은 왕과 귀족들 혹은 양반 관료들은 지배층의 최고정점에서 끝까지 자신들의 특권을 법제화하려든 반면 일본은 메이지유신으로 국가자체를 근대화한 것은 분명히 대비되는 일이다.
백성만을 위한 것은 아니었지만 일본의 근대화는 국가를 쇄신하고 제국주의 열강에서 살아남도록 했다.반면 조선과 중국은 서구문물이 유입되어도 빛을 보지 못했다.제도가 아무리 좋아도 잘 운영하는 건 사람의 몫이다.그들은 근대화를 이해하지못했다.사회가 일신하려면 사람의 사고가 바뀌어져야한다는 것을...
평민들은 조선조에서 착취와 동시에 양반사대부들의 괄시의 대상이었다.결국 100년에 걸쳐 제국주의와의 긴 항쟁이 시작된다.현재도 동북아시아에서는 중국 일본 한국이 패권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
현재까지는 중국이 부상하고 있지만 한국보다는 일본이 동아시아의 주역처럼 서방에는 어필하고 있다.정신대 할머니들의 외침은 국제사회에서 별 주목을 받지못했다.중국과 북한이 개혁과 개방을 한다해도 약소국은 마름대로의 생존전략을 대비해야한다. 평화만으로 국제경쟁에서 살아남을 수없고 경쟁만으로도 성과가 있다고 할수는 없다.다만 조선말 개화선각자들과 일반서민들의 바람이 어느정도라도 수렴되고 실천되었더라면 우리는 다른 사회를 살고 있지 않았을까..하는 아쉬움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