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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리학 콘서트 -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는 논리 이야기
사와다 노부시게 지음, 고재운 옮김 / 바다출판사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논리학', 내지는 '논리'란 말은 (다른 여타의 단어들이 그러하듯)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철학'이란 학문이 일상적인 용법에서 자신의 가치관이나 이념, 혹은 한 사회/집단의 문화나 질서, 심지어는 특정 분야에서의 무형적인 기술을 의미하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처럼, 흔히 철학의 한 분과로 이해되는 논리학의 경우도 지식의 명증성을 검증하려는 까다로운 인식론적 이해에서부터 담론의 (언어적)구조, 사회 현상의 작동 방식, 심지어는 화술이나 설득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생활 속에서는 이렇게 다양한 용법으로 사용되고 있는 논리학이지만 엄밀히 논리학이라고 한다면 인간의 지식, 내지는 판단, 혹은 지식 활동들을 원리적으로 분석하고 검증하고 체계화하는 학문이다. 이 논리학의 역사는 상당히 오래 되어서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삼단논법으로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체계화된 고전 논리학은 논리학의 뼈대를 이루고 굉장히 오랜 시간 동안 큰 변화 없이 지속되었다. 그러나 헤겔 이후 논리학에서는 다양한 분화와 변화가 일어나고, 특히 영미미 분석철학에서는 복잡한 수학과 최신의 과학 이론들과 결합하여 굉장히 복잡하고 까다로운 학문으로 발전했다. 과거엔 논리학은 다른 지식 생산의 토대로서 그 자체로 타당한 학문으로 여겨지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논리학 자체가 학문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까다롭고 복잡한 학문이 최근 한국사회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그건 논리학이란 학문 그 자체에 대한 관심이 아니라 아마도 논술에 대한 관심 때문일 것이다. 어린 학생을 대상으로 쉽게 풀어 쓰여진 책들은 대부분 교양도서가 아니라 수험서 코너에서 팔린다. 그러다보니 수시로 변화하는 입시 제도에 따라 수익성 있는 책을 팔기 위해 충분한 준비 없이 성수기를 놓치지 않으려고 급하게 만들어진 책들이 태반이다. 간혹 아주 잘 만들어진 책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수험서일 뿐 그 자체로 독자들이 논리학이란 학문에 이해를 높일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그러나 지금 소개하는 <<논리학 콘서트>>은 일본에서 출간된지 50년이 넘은 책으로 분석철학을 전공한 전문가이다. 이 책이 지금 이제야 한국에 번역 출간된 이유가 지금의 논술 붐에 편승하고자 하기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책의 본문 자체에선 그런 흔적을 찾을 수 없다. 오히려 논리학에 대한 애정을 갖고 독자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논리학을 친숙하게 소개하려고 애쓰는 젊은 학자의 모습이 있을 뿐이다.
이 책은 철저한 논리학 입문서이다. 논리학이란 학문 안에는 굉장히 복잡하고 어렵지만 동시에 굉장히 흥미로운 미지의 영역이 드넓게 펼쳐져 있다는 것을 수 차례 강조하면서도 저자는 철저하게 한계를 지킨다. 이 책에서 다루어야 할 논리학의 기초적인 내용은 딱 여기까지라고. 그러다 보니 내용은 평이하다. 논리학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고 있는 사람은 이 책을 읽기보다는 좀 더 어려운 책을 읽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논리학을 전혀 몰랐던 사람, 혹은 어린 학생들에게는 입문서로서 안성맞춤이다.
이 책에는 이해를 돕는 쉽고 재미있는 예시(예문)들이 많이 등장한다. 이 책의 추천사와 몇몇 평에서는 이 책의 장점으로 꼽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사실 이 점은 논리학 입문서의 미덕조차 되지 못한다. 웬만한 논리학 서적은 굉장히 풍부한 예시(예문)들을 담고 있고, 그 예문들을 통해서 그 사고의 타당성을 좀 더 보기 쉽게 다듬어서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은 영미 철학의 공공연한 전통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용된 그런 예시와 예문들은 아마도 이 당시 이미 널리 사용되는 유형의 것들이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 책에 풍부한 예시와 예문들이 있어서 읽기 쉽다는 것이 아니다. 논리학이란 학문이 어떤 의미가 있냐는 것이다. 저자가 본문에서도 밝히듯이 논리학을 몰라도 일상 생활에서 적절한, 혹은 옳은 판단을 할 수 있으며, 논리학을 공부했다고 옳은 판단을 항상 내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학문으로서의 논리학 그 자체만 보면 이것은 일상 생활에서 분리된 지식의 세계를 다루는 것 같으며, 우리 일상생활에 유용성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아마 그것이 지난 수십년간 한국 사회에서 논리학이 등한시된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논리학은 우리에게 더 유용한 판단(즉 이익이 되는 판단)이 아니라 타당한 판단에 대해 질문하며, 우리가 보고, 듣고, 내리는 모든 판단들에 대해 비판적 기능을 수행한다. 이것이 중요한 것이다. 논리학이 지식과 판단(명제)에 대한 학문이라고 하였을 때, 그것은 우리에게 더 큰 이익을 주는 목적에 따라 움직이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에게 올바름과 타당함에 따라 움직이도록 간섭한다. 이것은 모든 학문의 기본이 된다. 우리가 논리학을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더라도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이다.
책을 읽든, 기사를 보든, 뉴스를 보든, 정치인의 연설을 듣던, 선생님의 설교를 듣던, 혹은 어떤 과학자의 연구결과를 읽던, 우리는 스스로 그것을 검증하고 판단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도구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그건 바로 우리 안에 있는 논리적 능력이다. 우리가 접하는 정보들에 대한 학술적이고 비판적인 독해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바로 논리학이다. 이 순간 우리가 공부한 논리학은 기존의 순수한 학문으로서의 의미에서 변형되어 우리의 사고 능력을 가르키는 말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영어를 공부할 때 문법뿐 아니라 회화도 공부하듯이 논리학을 통해 지속적으로 주변 사물을 해석하고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