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가족이 읽는 우리는 모두 페미니스트가 되어야 합니다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 지음, 레이레 살라베리아 그림, 김명남 옮김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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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6학년 딸이 이책을 읽고나서 내게 한 말이다.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한 마음으로 기다리던 내게는 좀 맥 빠지는 감상이었다. 하긴 숙제가 아니고서야 책을 읽지 않는 아이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한 까닭이다.

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는데 라고 묻는 내게 딸은 심드렁하게 그냥 우리랑 안맞는 거 같아. 저거 외국얘기고 우리랑 같은 인종도 아니고... 그냥 뭔가 안 와닿아.

그래? 근데 엄마도 어릴 때 여자반장 안된다고 그랬어~ 파킹해주시는 아저씨가 차열쇠 가져와서 차주는 엄만데 아빠에게 열쇠를 주고, 아래집에 물이 새서 공사때문에 사람들이 찾아왔을 때 집에 남자는 없냐고 그랬고 계약서 같은 걸 써야할 때도 남자를 찾았어~ 요새도 그런 경험 종종하는데? 집에 아저씨 안계시냐며 남자를 찾을 때 생각보다 많다.

딸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며 정말? 하고 큰소리로 물었다.
응, 직장에서도 임신과 출산을 한다는 이유로 채용이나 승진의 기회를 뺏기기도 해. 그리고 너희들 키우면서 학교에서 학부모가 해결해야 할 큰일이 있었을 때도 아빠를 찾는 일이 있었어. 엄마가 있는데도.

왜? 왜그러는 건데?
글쎄 남자가 더 힘이 있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사소하고도 부당한 일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나고 당연시 되고있어. 아직까지도.
남의 나라 일이 아니야.

딸은 곰곰히 생각하다가 학교에서 남자애들이 여자가 왜그러느냐 여자 주제에 까분다 이런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헐! 담 번엔 그냥두지 않겠어라고 씩씩 거렸다.

나는 딸에게 똑똑히 다시 한 번 얘기해 주었다.
우리사회는 성별이 아니라 능력과 관심사에 집중해야해. 세상의 태도와 생각은 중요한 거야. 남자가 남자답지 못하다는 말 여자가 여자답지 못하다는 말은 정말 잘못된 생각이고 태도야. 남자와 여자는 생물학적으로 다를 뿐 똑똑하고, 창의적이고, 지혜롭고, 혁신적인 거와는 아무 상관이 없어. 누구든 그럴 수 있다는 거야. 그 권리를 누군가 빼앗는다면 그리고 그것을 당연시 여긴다면 안된다는 거지. 필요할 땐 성을 내고 공격적으로 어쩌면 더 거칠게 말할 수도 있어야 해.

남들이 좋아할 만한 사람이 되거나 칭찬받는 사람이 되는 거 보다 네가 너의 진정한 본 모습을 지키고 사랑할 수 있다는 게 중요해. 여자로서 말이야.

내내 이 책이 불편하다고, 요새 여자애들이 얼마나 무서운줄 아냐며 세상 잘난척은 지네들이 다 한다던 중2아들이 쓰윽 곁을 지나치며 한마디 한다.

"뭐, 책에 틀린 소린 없네."

ㅋㅋㅋ 중2라는 걸 가만했을 때 이 정도면 성공적인 독후 논의였던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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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네갈의 눈 Dear 그림책
아르투르 스크리아빈 지음, 요안나 콘세이요 그림, 최혜진 옮김 / 사계절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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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Love 라고 시작되는 첫 장면은 반짝이는 키스가 그려져 있다.
연필로 그려진 섬세한 묘사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그런데 빚바랜듯한 종이의 분위기는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고 아득하다.

눈이 내리지 않는 나라에서 펑펑 쏟아지는 눈 그리고 그 풍경을 바라보며 노래하는 엄마 그리고 눈물.

따뜻한 나라 세네갈에 내리는 눈은 어쩌면 아이 앞에서는 좀처럼 울것 같지 않을 엄마의 눈물같은 것이었을까.

아이의 시선과 목소리를 따라가며 이어지는 이야기는 하얗고 푸르다.
구멍난 반바지와 티셔츠뿐인 아이의 마음. 서늘하고 슬픔이 차오르는.

장미에 둘러싸인 키스로 시작된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무표정해지고 멀어진다.

무한한 눈의 빛깔,
그 빛 한가운데서 노래를 부르며
울고있는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이의 마음을 누가 상상할 수 있을까.

다시는 눈을 볼 수 없을 것처럼
엄마의 노래도 들을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생각들.

엄마는 따스한 바람과 키 큰 풀 숲과 어둡고 반짝이는 잎사귀를 가로지르며 그림자의 입으로 노래한다. 팔월의 빛, 눈 아래 밀림을 이룬 열매들, 수많은 불가능함을 지나 기적같은 현실이 된다.

멀리 보이는 엄마의 뒷모습,
그러나 나는 들었다 아니 듣고있다.
사랑과 차가움으로 떨리고
하늘의 가장자리를 흔드는
엄마의 노래소리를.

아이는 손톱만큼 작아진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엄마의 슬픔과 공허를 알고있기에 떠나는 엄마를 잡는 대신 엄마의 노래를 들었다고 아니 지금도 듣고있다고 간곡히 말하고 있다.

용감했어라고 한 건 떠나는 엄마에게 한 말일까 아니면 사라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엄마를 보내주는 나 자신에게 한 말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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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 - 알고 보면 가깝고, 가까울수록 즐거운 그림 속 철학 이야기
이진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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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서는 어른이 되면 엄청 재밌게 잘 놀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른이 되면 마음대로 아무데나 갈 수 있고 아무 때나 친구를 만나고 뭐든 신나게 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래서 그 지루한 어린 시절이 하루라도 빨리 지나가 버리길 원했었다.
웃긴 건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마음대로 어디든 가고 무엇이든 먹고 놀 수 있지도 않을뿐더러 특별한 취미생활이 없는 한 별달리 하고 놀 게 없다는 거였다. 분명히 자유로운데 하나도 자유롭지도 않고 인생에 커다란 구멍이 생기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학창시절 좋아하던 심리학과 철학 서적을 다시 읽고 미술작품을 보러 다니기 시작했다. 철학과 미술은 내가 꾸준히 좋아해온 분야였다. 그런데 ‘다정한 철학자의 미술관 이용법’이라는 이 책의 제목을 보니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우리 모두가 예술가로 태어났다는 말은 여기저기서 자주 읽었지만 우리는 어떤 의미에서 모두가 철학자라니 이 말은 무척 매혹적으로 들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모두 철학자이자 예술가인 샘이니까.
작가는 캔버스 곳곳에서 철학자 할머니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온다고 했습니다. 난해한 철학적 개념을 스위치 같은 예술작품을 골라서 눈으로 보면서 생각해 보는 놀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그건 미술에 철학을 올려놓고 싸 먹는 쌈이 될 거라고 한다.

책은 철학 서적이기도 하면서 예술 서적이고 에세이 같았다가 옆집 언니랑 수다를 떠는 거 같기도 한 정말 커다란 쌈을 입안에 넣고 이 맛 저 맛을 한참 씹어 먹는 느끼이다.
천지 창조 이야기가 나오다가 니체가 등장하고 선과 불교, 김연자 언니의 아모르 파티까지 갔다가 다시 인간 이성과 “신은 죽었다.”라는 명제로 돌아온다. 그런데 이게 롤러 코스터를 타듯이 멈출 수 없어서 눈 깜짝할 사이에 후루룩 지나온다. 어색한 구석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다.
두 개의 사과그림을 가지고 홉스와 로크의 자연 상태와 리바이어던까지 연결시켜 비교 설명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자코모 발라의 가로등과 줄에 매인 개의 움직임이라는 미래주의 작품과 파시즘 이야기도 흥미롭다. 미래주의와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동양 철학의 자연주의를 가지고 하는 혜시와 장자의 배틀 에피소드도 매우 흥미 진진 하다. 대낮 같이 밝은 발라의 가로등과 대비되는 여유로움의 상징으로 달을 소재로 한 어몽룡의 월매도가 오만 원권 지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평소에 클림트의 그림을 좋아하기도 했지만 클림트의 그림과 정의에 관한 파트가 가장 인상 깊었다.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천정화를 그리게 된 클림트는 교수들에게 많은 비난과 조롱을 당한 것으로 느껴진다. 하지만 결국 빈 대학으로부터 다시 요청되어서 클림트의 그림이 걸렸다.
여기서 등장하는 주디스 슈클라는 하버드 정치학과 최초의 여성교수로서 거침없이 핵심을 찌르는 똑 부러지는 성격이다. 슈클라의 주장은 정의라는 모호한 개념을 쌓기 위해 형이상학의 세계에서 허송세월하지 말고 당장 눈앞에 보이는 학살, 야만 같은 현실적인 공포부터 제거하자고. 모호한 ‘선’ 보다는 ‘악’을 제거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는 것이다.
이것은 클림트의 천정화에 나타난 이념과 일맥상통한다.
‘자유를 위해서는 공포에 시선을 두어야 하듯 철학은 모호함을 통해, 의학은 죽음을 통해, 법과 정의는 죄와 불의를 통해 그 본질이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다.’
그 뒤로도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파울 클레와 뭉크-의 작품을 비롯한 많은 미술작품이 동서양 사상과 맞물려 전개된다. 황지우 시인의 시와 드라마 스카이 캐슬 그리고 유아인 까지 우리에게 친숙한 소재들도 여기저기서 불쑥 불쑥 튀어나와 장단을 맞춘다.
마지막 장에서는 처음에 시작했던 니체로 다시 돌아온다. 이부분에 등장하는 그림은 펠릭스 발로통의 ‘공’ 이라는 작품인데 처음 본 이 작품에 오랜 여운이 남는다. 이 그림을 ‘차라투스투라는 이렇게 말했다’ 에 나오는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 위버멘쉬에 비유해서 해석하는데 읽으면 읽을수록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 부분을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아이는 바람처럼 가벼워 보인다. 짐을 내던진 사자처럼 홀가분하고 가벼워 보일 뿐 아니라 공을 쫒아 경쾌하게 뒤고 있다. 순진무구함, 망각, 새로운 출발, 놀이, 성스러운 긍정. 이것은 니체의 낙타와 사자 그리고 어린아이를 떠올린다."

한겨레 출판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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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라이호라이 사계절 그림책
서현 지음 / 사계절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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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라이.
밥 위에만 있고 싶지 않아.
나는 왜 하얗고 노란 걸까?
왜 톡 터질 거 처럼 약한 걸까?
왜 매끈매끈 둥근 걸까?

호라이는 호라이인데 왜 호라이냐고 물으신다면...
호라이의 파란만장 스펙타클 자아탐구 여행 스토리.

다소 철학적이고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즐겁고 깊이있게 생각해 볼 수 있게하는 친근하지만 조금은 짠한 깨발랄 주인공 호라이.

왜 왜 왜 난 밥에만 빵에만 식탁에만 있어야 하는데! 왜 포크에 찔리고 누군가의 입속으로 들어가야하냐고!
그림 속 호라이들은 한 마음이 되어
세상이 씌워준 틀을 박차고 자신이 개척하는 새로운 세계로 나선다.

온세상을 여행하는 호라이들. 결국 우주까지 쭉쭉 뻗어나가고 미지의 존재까지 만나 지구를 호라이(프라이)하기 까지 이른다.

호라이의 자아 탐구 여행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밥 위에 얹어진 호라이가 아니라 떡하고 밥상 앞에 마주 앉은 호라이에게 당신은 뭐라고 말해줄 건가요?

이제 호라이는 더이상 식탁 위에 있지 않습니다. 당신의 손톱 위에, 가방 안에, 발자국에, 교실에, 아빠 위에, 토크쇼에, 장례식장에... 어디에도 있는 호라이지요. 그 모든 곳을 지나온 호라이는 이제 꿀떡하고 삼켜진다해도 그저 밥 위에 얹어진 이전의 존재는 아니에요.

세상이 사회가 타인이 만들어 놓은 단단한 껍질을 깨고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알고자 하는 호라이의 용기와 다채로운 도전이 내 마음도 들썩이게 합니다.

자, 어서! 네가 누군지 알고 싶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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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 청소년에게 말을 건네다 - 청소년과 함께 즐기는 그림책 감상
김미경 외 지음 / 생애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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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청소년들이 책과 멀어져 있고 텍스트 읽는데 흥미를 잃었습니다. 그림책이라고 하면 코웃음치고 말죠. 이 책은 현장에서 선생님들이나 상담사분들에게 좋을 거 같아요. 일단 그림책의 맛을 들이게 하려면 그림책을 들이미는 것 보다 누군가가 읽어주는 것을 들어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이 되요. 진로 코칭에서든 휴식과 치유 프로그램이든 어떤 이름을 달고라도 학생들이 그림책을 접할 수 있는 현장에서 이책의 쓰임새가 빛을 발하리라 생각합니다. 책소개에 워낙 잘 나와있지만 다시 한 번 말하자면 그림책 활동 이외에 연관 소설이나 발문도 풍부해서 아이들을 끌고 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림책 만으로도 충분하리라 생각이 들지만요. 자료가 많다는건 언제나 든든하죠. 기대고 싶고 갈등하는 청소년들의 답을 칮아 헤매는 불안한 마음을 조금은 상쇄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어른이라는 이름의 사람들을 거부하면서도 또 그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받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에게 가까이 갈수 있는 가장 다정한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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