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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
디샤 필리야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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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유를 갈망하고 온전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교회와 부모를 거스르고 올바른 삶이라는 세상의 틀을 부수는 일이 아니다. 숨막히게 옥죄는 여성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얻었던 타락이라는 이름. 우리는 위험에 처하지도 위험한 존재도 아니다. 당신은 우리를 우리의 이름으로부터 구해줄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이름도, 사회의 규율도, 도덕이나 천국이라는 이름의 어떤 것도 우리에겐 진실이 아니었다. 순종적이며 사랑 받기를 원하는 딸, 아내 그리고 마치 그것이 숙명이며 하나님의 자녀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믿게 만들어 넘어설 수 없는 이름 안에 가두는 어머니들과 할머니까지. 그들은 우리를 행복하고 진정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삶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같은 굴레 안에서 더 사랑받도록 더 순종하도록 그 외에 다른 살아가는 방법은 없음을 가르친다. 그 외의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비참한지에 대해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문의 시대도 종교의 시대도 국가의 시대도 갔다. 목사인 척 아버지의 탈을 쓰고 어머니와 이모들과 할머니를 조종하고 권위와 권력으로 이름으로서의 삶에 종속시키는 시대는 갔다. 우리는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몸과 정신으로 삶을 살아내고 진정한 자유 아래 나의 고유한 이름을 사랑하는 자로서 나만의 방법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어떤 자매든 어떤 형제든 그 누구도 혐오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빼았지 않은 자유와 행복을 함께 누려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더 이상 뒷짐지고 서서 알아서 잘해보든가, 거봐라 너희가 다 망쳤다는 식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노하우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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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씨의 나들이
박리리 지음 / 사소한기록소 협동조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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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옆에 사진관이 있고 그 건너 편엔 시장 국밥이 연기를 피워 올린다. 사소해서 더 소중한 일상. 오늘도 옥희씨는 씩씩하게 밭일을 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 마당 평상에서 함께하는 밥상은 바둑이도 냥이도 늘 같지만 왠지 더 속이 뜨끈해지는 느낌이다.
내일도 이렇게 강냉이 밭을 나가야지, 모레도 우리 똥강아지랑 똥냥이랑 밥을 먹어야지 생각하면 이제 다 예전같지 않지라고 서글플 새도 없다고 내 등을 토닥인다.
그래서 더 서늘해진 마당 평상이, 비어있는 밥그릇이 애잔하다.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구수한 트롯 한가락, 정갈히 정리된 앉은뱅이 식탁에 가슴이 덜컥 고장나 버린다.
막상 오랜 세월 속 옥희씨들은 저렇게 등 쫙 펴고 환하게 웃고있는데 말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살아가야지 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옥희씨는 내년에도 강냉이 밭에 보라색 모자를 쓰고 나와 무심히 할 일을 해낼테고 똥강아지와 똥냥이랑 맛있게 한 상 차려 밥을 먹을거라고 그리고 머리도 하고 동네 마실도 가고 사진도 찍을 거라고. 내 마음에 꾹꾹 눌러 말해본다.

#옥희씨의나들이
#사소한기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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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원 - 시리 허스트베트 에세이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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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너무 많이 쳐서 공부책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챕터들이 있다. 그녀의 사고가 너무 깊고 방대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에세이 같다가 비평글 같다가 논평 같다가 희곡이나 고전문학 연구 같다가 어느 순간 신랄한 기사 같기도 한 책. 과연 이 책을 에세이라고 해도 될까 싶은데... 작가와 밀착한 이야기로 연결되고 풀어내는 과정을 보면 또 에세이가 아니면 어떻게 묶일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의 조금 더 상세한 소개는 차차 이어서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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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원
장선환 지음 / 만만한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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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로를 달린다.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뜨거운 여름에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도 쿵쿵 탕탕 선로를 지었기 때문이다. 흙을 단단히 다지고 땅 위에 침목을 놓는다. 나란히나란히 긴 레일을 얹는다.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은 모두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닦은 길. 손이 터지고 굳은살이 백이고 끊임없이 갚은 숨을 몰아쉬며 지은 이 선로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들이 지은 혼이 담긴 길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로 선로 위에 서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때 아버지가 남긴 말들을, 아버지의 숨결을 생각하며 다시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다시 내 뒤에 따라올 발자국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우리는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역사를 이룬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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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적 광기란 무엇인가
이병욱 지음 / 학지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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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차 세계대전의 집단적 광기를 직접 목격했던 프로이트는 인간의 초자아 기능에 심각한 결함이 생긴 도덕적 광기(moral insanity) 상태에 새로이 주목함으로써 인간 정신병리 이해의 폭을 더욱 크게 넓혔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도덕적 광기에는 적절한 약도 없고 정신치료도 별다른 효과가 없다는 사실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도덕적 광기의 문제는 앞으로도 가장 큰 사회적 관심의 대상이 될 뿐만 아니라 사회적 안정이라는 차원에서도 매우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도덕적 광기의 소유자가 지닌 특징 가운데 하나는 일반 정신병 환자와는 달리 겉으로는 매우 멀쩡해 보인다는 점이다. 오히려 남달리 뛰어난 카리스마를 발휘하기도 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절대 권력의 자리에 오르거나 강력한 리더십으로 자신의 추종세력을 광적인 집단으로 유도함으로써 이성을 마비시키는 탁월한 재능도 지니고 있다. 그들의 존재는 정치적 이념의 영역뿐 아니라 종교, 예술, 학문, 대중문화 등 사회의 거의 모든 영역에까지 깊숙이 침투해 있기 때문에 그 정체를 손쉽게 파악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결국 세상을 어지럽히는 주범은 정신병원에 있는 환자들이 아니라 오히려 병원 밖에 있는 도덕적 광기의 소유자들이라 할 수 있다.

역사 속에 드러난 도덕적 광기의 현현은 실로 참혹했다. 히틀러의 종족주의와 무솔리니의 파시즘, 스탈린의 피의 대숙청과 모택동이 벌인 문화 대혁명과 홍위병의 난동 등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훨씬 이전의 마녀사냥이나 원주민 학살, 왕이나 권력자들의 횡포로서의 살육이나 종교지도자에게 이끌린 집단 자살, 셀 수도 없이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으며 억울하게 죽어갔다.

문학이나 대중음악, 드라마, 영화에서도 도덕적 광기는 널리 퍼져 나갔는데 이는 사람들에게 위험 불감증과 도덕적 불감증을 가져다주었다, 노골적인 성적 표현과 적나라한 폭력의 묘사가 담긴 음악과 문학 그리고 드라마와 영화에서 보여주는 각종 변태적이고 공포스러운 영상들은 금기시하던 성과 죽음에 대해 대놓고 드러내면서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하고 보편타당한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

현재는 광기의 세상이라는 말을 붙여도 어색하지 않을 정도로 많은 규율과 규범들이 무너진 상태이며 뉴스를 보면 구멍 난 양심으로 인한 도덕적 광기의 향연이라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인간관계의 무너짐은 말할 것도 없고 환경적으로도 심각하게 세상은 손상되어 가고 있다.

타인의 삶을 착취하고 고통을 안겨주는 대가로 자신만의 욕망을 채우는 일부 반사회적 지도계층과 그들을 추종하며 소비만을 촉진하는 언론과 미디어는 민중의식을 마비시키고 괴물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들이 전하는 왜곡된 메시지로 인해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정의이고 불의인지 구분하기 매우 어려워진 혼돈의 시대를 살고 있다.

도덕적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은 반사회적 인격장애로 보는데 비대해진 자아 때문에 쉽게 정신적인 치료를 받으러 오지도 않지만 설사 정신분석이나 심리치료를 받으러 온다 해도 상담사나 의사가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치료나 도덕적 양심의 회복이 거의 어렵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 위해서 이러한 도덕적 광기에 사로잡힌 사람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눈부시게 발전한 정신 약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들의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고칠 수 있는 약은 없다. 현재까지 유일한 치료 방법은 정신분석이나 정신치료적 도움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전혀 치료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치료가 효과있을리 만무하다.

대중심리의 역설은 진실을 원하는 듯하면서 정작 진실을 두려워한다는 것이고 진실로 믿었던 것이 거짓으로 드러나는 것도 두려워한다. 반사회적 인간을 그런 약점을 잘 간파하고 이용하고 파고든다. 개개인이 그런 마수에 걸리지 않도록 항상 깨어있는 정신과 도덕적 양심을 가져야 한다. 나아가서 혼자의 힘보다 건전한 상식과 윤리의 공유에 따른 사회적 합의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입시제도로 인한 학업 과열로 포기한 도덕과 인성교육은 살려내고 아이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위 회복으로 광기 어린 우상화로부터 아이들을 보호하고 잘못은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어른이 되어주어야 한다.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없고 절대적으로 그른 것도 없는 중도의 미덕을 실천하여 나의 가치뿐 아니라 상대방의 가치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교묘히 파고드는 반사회적 인간의 꼬임이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분석적 안목과 비판적 수용이 필요하고 이성적 비판을 가할 수 있는 냉정함과 침착성 또한 필요하다. 이웃에 대한 무관심이나 적개심을 버리고 사랑과 관용을 바탕에 둔 믿음을 회복할 때 건전하고 든든한 사회의 울타리가 형성되는 것이다.

현재 사회는 도덕적 광기와 반사회적 인간이 과거처럼 독재나 전체주의를 표방하며 드러나기보다는 정신을 세뇌하거나 문화를 잠식하여 멋대로 조정하고 삶을 파괴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적으로 재정비된 도덕성과 사회의 울타리가 있고 그 안에서 서로를 연대하는 힘과 깨어있는 정신이 함께 한다면 우리의 미래가 그리 어둡지만은 않으리라 믿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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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된 서평/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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