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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고 낯선 담장 속으로 - 오해와 편견의 벽에 갇힌 정신질환 범죄자 심리상담 일지
조은혜 지음 / 책과이음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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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질환 범죄자라는 이름 앞에 높고 낯선 담장이라는 말보다 더 잘 설명된 말이 있을까. 사람은 심각하다, 설명할 수 없다, 이유를 모른다 등 표현할 길이 없는 일에 대해서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 알면 이해하려 하고 이해하고 나면 결국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다. 모르는 것을 사랑하게 된다는 극단적인 수순은 아니더라도 일단 어떤 사건에 또는 어떤 사람에게 연루되고 나면 더 이상 그일은 남의 일도 모른척할 수 있는 일도 될 수 없어진다. 내 삶의 일부가 되어 계속해서 남은 삶을 변화시키고 원치 않았던, 예기치 않았던 일들을 생각하거나 행동에 옮기게 된다.
우리나라의 정신병 유병율은 계속해서 높아지고 있는 추세이고 조사에 드러나지 않는 경우를 참작하면 국민 4명중 1명은 평생 한 번 이상의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비율 보다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내 가족의 일원이 아니더라도 우리 옆집에 또는 동네에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더 이상 나는 모르는 일이니까 해당사항이 없으니까 하고 그냥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혀를 차고 있을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책 속에 사례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무지함이 사건을 키우는 부분이 적지 않다. 어린시절을 생각해 보면 늘 동네에는 정신이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사람들이 한 두명쯤은 있었고 나름 어른들은 그들을 다루는 노하우가 있었다. 그 방법이 제대로 되어서 그랬던 건지 아니면 수용가능한 숫자여서 그랬는지 지금보다 사람들의 마음이 팍팍하지 않아서 였는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의 고도로 발달된 사회 속에서는 의료 과학 물질 자유 등 많은 것들이 무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이질적인 것, 우리와 다른 것 에 대한 배제와 혐오가 일반화 되어있다.
모르는 것, 두려운 것에 대한 몰이해와 배척, 저런 것들은 싸그리 잡아다 가두고, 약으로 무력화 시키고, 화학적 거세, 수술적 불임을 만들어야 한다는 극단적 해결방안들 까지 서슴지 않고 제시하기도 한다. 직접 피해 당사자가 된 사람들의 입장을 살펴보면 한편 그런 마음이 잔인하다고 생각되지 않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은 비단 선택된 소수의 자만이 겪는 저주 같은 것이 아니다. 우리 중의 누구도 나는 절대 정신병 같은 건 걸리지 않아 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내가 또는 나의 부모가 나의 배우자나 자녀가 삶의 궁지에 빠져서 환청을 듣거나 망상을 볼 수도 있고 예기치 못하게 그런 질환을 가진 채 세상에 태어날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그들을 그저 어딘가에 가두고 약을 먹이고 옴짝달싹 하지 못하게 옭아매 놓을 것인가 아니면 환자와 질환에 대해 알고자 하고 연구하고 다시 사회로 복귀해서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거나 범죄를 저지르지 않도록 시도할 것인가. 만일 우리가 후자를 택한다면 이것은 적극적인 사회적 국가적 지원이 필요한 일이다. 결국 사회와 국가의 지원과 제도가 없다면 정신질환자들은 다시 사회에 방치되며 재발 할 것이고 피해자는 늘어나고 그들의 가족들의 삶까지 나락으로 떨어지며 2차3차 피해가 얽히는 수순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그들에 대해 알고자 하고 조금씩 관심을 갖고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모색하고자 한다면, 그리고 거기에 국가 차원의 지원과 제도가 함께 한다면 개선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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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여자들의 은밀한 삶
디샤 필리야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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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자유를 갈망하고 온전한 내 삶을 살아가는 것은 교회와 부모를 거스르고 올바른 삶이라는 세상의 틀을 부수는 일이 아니다. 숨막히게 옥죄는 여성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기 위해 얻었던 타락이라는 이름. 우리는 위험에 처하지도 위험한 존재도 아니다. 당신은 우리를 우리의 이름으로부터 구해줄 필요가 없다. 아버지의 이름도, 사회의 규율도, 도덕이나 천국이라는 이름의 어떤 것도 우리에겐 진실이 아니었다. 순종적이며 사랑 받기를 원하는 딸, 아내 그리고 마치 그것이 숙명이며 하나님의 자녀이자 인간의 도리라고 믿게 만들어 넘어설 수 없는 이름 안에 가두는 어머니들과 할머니까지. 그들은 우리를 행복하고 진정 사랑하며 살 수 있는 삶에 대해 가르치지 않는다. 같은 굴레 안에서 더 사랑받도록 더 순종하도록 그 외에 다른 살아가는 방법은 없음을 가르친다. 그 외의 삶이 얼마나 척박하고 비참한지에 대해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가문의 시대도 종교의 시대도 국가의 시대도 갔다. 목사인 척 아버지의 탈을 쓰고 어머니와 이모들과 할머니를 조종하고 권위와 권력으로 이름으로서의 삶에 종속시키는 시대는 갔다. 우리는 다른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의 몸과 정신으로 삶을 살아내고 진정한 자유 아래 나의 고유한 이름을 사랑하는 자로서 나만의 방법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 어떤 자매든 어떤 형제든 그 누구도 혐오하거나 배제하지 않고, 빼았지 않은 자유와 행복을 함께 누려갈 방법을 찾아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더 이상 뒷짐지고 서서 알아서 잘해보든가, 거봐라 너희가 다 망쳤다는 식이 아니라 우리의 이야기를 듣고 함께 노하우를 탐색하고 발견하는 노력을 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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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희씨의 나들이
박리리 지음 / 사소한기록소 협동조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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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용실 옆에 사진관이 있고 그 건너 편엔 시장 국밥이 연기를 피워 올린다. 사소해서 더 소중한 일상. 오늘도 옥희씨는 씩씩하게 밭일을 하고 밥을 챙겨 먹는다. 마당 평상에서 함께하는 밥상은 바둑이도 냥이도 늘 같지만 왠지 더 속이 뜨끈해지는 느낌이다.
내일도 이렇게 강냉이 밭을 나가야지, 모레도 우리 똥강아지랑 똥냥이랑 밥을 먹어야지 생각하면 이제 다 예전같지 않지라고 서글플 새도 없다고 내 등을 토닥인다.
그래서 더 서늘해진 마당 평상이, 비어있는 밥그릇이 애잔하다. 더이상 흘러나오지 않는 구수한 트롯 한가락, 정갈히 정리된 앉은뱅이 식탁에 가슴이 덜컥 고장나 버린다.
막상 오랜 세월 속 옥희씨들은 저렇게 등 쫙 펴고 환하게 웃고있는데 말이다.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겠지, 살아가야지 하면서 책장을 덮는다.

옥희씨는 내년에도 강냉이 밭에 보라색 모자를 쓰고 나와 무심히 할 일을 해낼테고 똥강아지와 똥냥이랑 맛있게 한 상 차려 밥을 먹을거라고 그리고 머리도 하고 동네 마실도 가고 사진도 찍을 거라고. 내 마음에 꾹꾹 눌러 말해본다.

#옥희씨의나들이
#사소한기록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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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원 - 시리 허스트베트 에세이
시리 허스트베트 지음, 김선형 옮김 / 뮤진트리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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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을 너무 많이 쳐서 공부책이 되어 버릴 것 같은 챕터들이 있다. 그녀의 사고가 너무 깊고 방대해서 충분히 시간을 두고 읽어야 할 책이다. 에세이 같다가 비평글 같다가 논평 같다가 희곡이나 고전문학 연구 같다가 어느 순간 신랄한 기사 같기도 한 책. 과연 이 책을 에세이라고 해도 될까 싶은데... 작가와 밀착한 이야기로 연결되고 풀어내는 과정을 보면 또 에세이가 아니면 어떻게 묶일 수 있을까 싶다. 이 책의 조금 더 상세한 소개는 차차 이어서 기록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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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로원
장선환 지음 / 만만한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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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로를 달린다. 그것은 누군가가 우리를 위해 뜨거운 여름에도 함박눈이 쏟아지는 추운 겨울에도 쿵쿵 탕탕 선로를 지었기 때문이다. 흙을 단단히 다지고 땅 위에 침목을 놓는다. 나란히나란히 긴 레일을 얹는다. 우리가 달리는 이 길은 모두 나의 아버지가 너의 아버지가 우리의 아버지가 닦은 길. 손이 터지고 굳은살이 백이고 끊임없이 갚은 숨을 몰아쉬며 지은 이 선로는 우리를 위해 아버지들이 지은 혼이 담긴 길이다. 삶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로 선로 위에 서서 길을 잃고 방황한다. 그때 아버지가 남긴 말들을, 아버지의 숨결을 생각하며 다시 발을 내딛는다. 그리고 다시 내 뒤에 따라올 발자국들을 떠올린다. 이렇게 우리는 아버지가 되고 아들이 되고 역사를 이룬다. 그것은 바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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