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가 정말 프리라이팅을 한 것들을 모아서 묶은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실망스럽다기 보다는 프리라이팅의 중요성이 진심으로 와 닿았다.
(직업이 쓰는 일이 아니더라도)뭐라도 하루에 조금씩 아무것이나 써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이제서야) 들었다.

학생 때는 A4용이 한 장 정도 분량의 글쓰기가 고통스럽지는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문장 두 세개 쓰는 것도 어렵고 고통스러워졌다. 옛날엔 뭐든 쓰는 일이 많았는데, 일을 시작하고 난 뒤로는 ‘재기안’, ‘재작성’해서 숫자만 고치거나, ‘복붙’으로 중요한 단어 몇개만 수정하고 마니 점점 쇠퇴해가고 있던 거다.
항상 다짐만 하지만, 그래도 뭐라도 쓰는 습관을 들여야겠다고 또 다짐이라도 해본다…

자는 것은 힘이다. - P11

어제 위에 오늘을 겹친 뒤 불을 켤 수 잇는 라이트박스가 있다면 더 나은 오늘을 그릴 수 있지 않을까? - P25

글과 그림은 생각 이후에 가능한 활동이라고 여겨왔다. 이제는 아니다. 쓰고 그리는 과정이 곧 생각이자 생각의 기술임을 알게 됐다. - P49

리뷰나 후기, 요약본으로 대체될 수 없는 시간의 영역, 다짐의 영역이 있었던 거다. 실제로 이 책을 완독한 이 후 책 내용과 더불어 그 책을 읽으며 통과한 ‘시간‘이 그대로 내게 새겨져. 지금도 잠을 소홀히 하지 않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 P53

활동이 수월하려면 여유 공간이 필요하구나
일주일에 걸쳐 대대적인 작업실 정리를 끝내고 여유의 힘을 극적으로 체험하고 나니, 정신적 공간도 물리적 공간과 마찬가지 아닐까 싶어졌다. 생각을 정리하고 비워 내야만 생각을 더 잘 할 수 있었다. - P55

프리라이팅은 창작 활동이라는 측면에 더 초점을 맞춘 글쓰기다. 방법은 간단하다. 10분간 멈추지 않고 뭐라도 걔속 써 보는 것. 그러면 그다음부터 술술 쓸 수 있게 된다. - P65

현대사회의 근본적인 가설부터 잘못되었다. 불편을 최소화하고 행복을 최대화하려는 노력 자체가 노화를 가속하고 있다. - P68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이 아니라 자기 가치관으로 자신을 규정할 때, 사람들은 새로운 증거가 제시될 때마다 자신의 기존 관행을 수정, 보완하는 유연성을 가질 수 있다. - P80

글로 남겨 둔 예전의 생각과 지금의 생각이 다르다면 그건 그것대로 좋은 일이다. 달라진다는 것은 변화한다 는 것이고 변화한다는 것은 살아 있음의 방증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보자면, 변화하면 살아 있게 되는 것이 다. 언젠가 내가 쓴 글들이 부끄러워지는 날이 오면 내가 그 글들을 닫고 나아갈 수 있었음에 감사해야 마땅하다. - P1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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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이 사라진 사회에서는 어떤 갈등이 촉발될까라는 설정이 상당한 호기심을 자극했다. 하지만 정작 뚜껑을 열어보니, 고통이 사라진 사회에서 고통을 신성시하는 사이비 종교의 등장으로 발생하는 사이비 범죄에 대한 내용이었다. 기발한 상상력이 사이비 종교에 대한 혐오로 점철되는 소설이 되어버려 아쉽다.
이 작가의 소설은 상상력이 특출나지만 장르소설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심오한 문제의식이 조금 부족했던 것 같다. 기대에 살짝 미치진 못했지만, 그래도 종종 챙겨보고 싶은 작가이다.

그들은 도스토옙스키를 읽고는 고통을 겪지 않는 인간은 신의 구원을 갈구하지 않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므로, 고통이 없는 상태가 죄악에 빠진 상태보다도 더욱 무서운 타락이라는 주장을 수긍했다. 그들은 통증의 신체적 감각뿐 아니라 고통에 수반되는 두려움, 절망감, 모멸감, 자괴감, 분노 등의 정서적 반응에도 주목하며 이것이 영혼의 존재를 증명한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고봉은 곧 영혼이자 인간의 정수이고, 고통의 근절은 영혼의 멸절이자 신에 대한 거부이며 구원에 대한 모독이었다. - P18

중독되지 않고 내성이 생기지 않는 강력하고 안전한 진통제의 등장은 고통의 개념, 통각의 문화를 서서히 그 러나 확신하게 바꾸었다. 통증은 그 부위나 정도와 관계없이 참는 것이 아니라 간단하게 조절하거나 퇴치하는 것으로 변했다. - P18

그리고 동서고금을 통틀어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삶의 의미. 그 삶이 고통이라도, 거 기에 의미가 있고 목적이 있다면 사람은 어떻게든 견뎌낸다. 그리고 그러한 경험이 오래 지속되면 고통을 견 며내는 것 자체가 삶의 의미가 된다. 삶의 의미를 고통에서 벗어나거나 더 건강하고 자학적이지 않은 방식으 로 찾을 능력과 자원은 이미 고통을 견디는 데 소모되어 사라진다. - P19

거기에는 초월도 깨달음도 없었다. 그저 인간의 신체에 대한 이해가 있을 뿐이었다. 그것은 물리적인 신체를 갖는다는 것은 욕구의 발생과 그것의 한시적인 충족이 반복되는 생존의 투쟁이며 그 모든 과정 자체가 또한 고통이라는 쓸쓸한 결론이었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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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23-12-31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입부만 읽다 쉬고 있는데 충분히 강렬한 소설이었어요. 틈새를 타서 종교와 범죄가 사람들을 교란하는 내용이군요. 다시 책 펴야 겠는데요?^^
 

수학을 언제부턴가 잊고 살았다. 사는 데 크게 문제되진 않았다. 다양한 수학적 배경지식을 보여준다고 했는데, 그렇다고 이 책에서 다루는 내용이 수학적 호기심으로 연결될 지는 의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연결고리를 찾으려 들면 뭐든 그 접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연결고리만으로 각각의 대상들이 관심을 유발하는 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이상야릇하다는 뜻의 ‘불가사의‘는 10의 64제곱 을, 수 가운데서 가장 큰 단위를 나타내는 무량수는 무려 10의 68제곱을 말해요. - P21

자데 교수는 이 이론을 ‘애매하다‘. ‘모호하다‘ 라는 뜻을 가진 ‘퍼지(fuzzy) 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퍼지 이 론‘이라고 불렀어요. 그러나 자데 교수가 퍼지 이론을 발표하자. 수학자들은 애매하고 모호한 것은 수학이 될 수 없다며 수학으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 P101

퍼지 이론이 전자제품에 응용되면서 상황은 정반대로 변했어요. 전통적인 컴퓨터 프로그램은 ‘예‘ 또는 ‘아니 오만 처리할 수 있었지만, 퍼지 이론으로 다양한 단계의 명령어를 처리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 P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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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스토너 (초판본)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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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태어나 뜻밖의 문학에 대한 열정에 사로잡혀 영문학 교수가 되지만 아내와의 결혼은 실패하고, 자식도 엇나간다. 젊은 제자와 불륜에 빠지기도 했고, 영악한 제자와 자격지심에 빠진 동료 교수에게 모함을 받기도 하지만 끝내 그들을 굴복시킨다.
삶은 그렇게 행복하기도 불행하기도 하지만 결국 삶이기에 조건없이 아름다운 것이다.
내가 죽을 때도 스토너처럼 무엇을 기대했나 자문하며 기쁨이 몰려올 수 있기를 바란다.

어머니는 삶을 인내했다. 마치 생애 전체가 반드시 참아내야 하는 긴 한순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 P6

대학은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걸세. 세상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학생들이나 이타적인 지식추구나 그밖에 사람들이 말하는 이런저런 이유를 위해서가 아니야. 우리가 이런저런 이유를 내놓고 평범한 사람들, 그러니까 세상에서 잘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을 몇 명 받아들이는 건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보호색일 뿐이지. 중세 교 회가 평신도는 물론이고 심지어 신에 대해서도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도 살아남기 위해 가장을 하는 걸세. - P28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이 그들의 신혼여행도 실패로 끝났다. 하지만 두 사람은 이 사실을 스스로 인정 하려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흐를 때까지 이 실패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다. - P56

그는 그녀가 불행해 보인다는 말을 할 수 없었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내면, 그녀는 그것을 자신에 대한 질책으 로 받아들여 그가 사랑의 행위를 할 때처럼 침울한 표정으로 마음을 닫아버렸다. 그는 자신이 서투른 맛에 그 녀가 마음을 닫았다고 한탄하며 그녀의 기분을 자신의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 P61

그는 침묵을 배웠으며, 자신의 사랑을 고집하지 않았다. - P61

그는 가끔 이만하면 살 만하다고, 심지어 행복하기까지 하다고 생각했다. - P101

젊음의 서투름과 어리석음 - P108

젊다 못해 어렸을 때 스토너는 사랑이란 운 좋은 사람이나 찾아낼 수 있는 절대적인 상태라고 생각했다. 하지 만 어른이 된 뒤에는 사랑이란 거짓 종교가 말하는 천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재미있지만 믿을 수 없다는 시 선으로, 부드럽고 친숙한 경멸로, 그리고 당황스러운 향수(40.6)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 이제 중년이 된 그는 사랑이란 은총도 환상도 아니라는 것을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다. 사랑이란 무언가 되어가는 행위, 순간순간 하루하루 의지와 지성과 마음으로 창조되고 수정되는 상태였다. - P153

그해 여름 두 사람의 시간이 온통 정사와 이야기로만 채워진 것은 아니었다. 두 사람은 말하지 않고도 함께 있 는 법을 터득했으며, 편안히 쉬는 데에 익숙해졌다. - P155

그것이 그해 여름에 두 사람이 배운, 이른바 ‘기존 관념‘의 기이한 점 중 하나였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 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 를 강화해 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 P156

흡연실에서 언뜻언뜻 화제에 오르는 자신의 모습, 싸구려 소설 속의 등장인물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아 내에게 이해받지 못하고, 젊음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자기보다 한참 어린 아가씨와 사귀면서 자신은 가질 수 없는 그 젊음을 향해 원숭이처럼 서투르게 손을 뻗는 비루한 중년남자. 번쩍번쩍하게 차려입은 어리석은 광대 같은 그 모습에 세상 사람들은 불편함, 연민, 경멸을 느끼며 웃음을 터뜨릴 터였다. - P158

그들은 서로에게 입힌 상처를 용서하고, 자신들의 삶이 지금과는 다른 모습이 될 수도 있지 않았을지 생각하 는 일에 빠져 있었다. - P214

넌 무엇을 기대했나? 그는 다시 생각했다.
기쁨 같은 것이 몰려왔다. 여름의 산들바람에 실려온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이 실패에 대해 생각했던 것 을 어렴풋이 떠올렸다. 그런 것이 무슨 문제가 된다고. 이제는 그런 생각이 하잘것없어 보였다. 그의 인생과 비교하면 가치 없는 생각이었다. - P218

스토너의 삶은 뜻밖의 ‘기회‘와 그에 따르는 ‘대가‘에 언제나 공평하게 점령당한다. 그런 그가 계산한 바에 따 르면 삶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기대‘와 ‘실망‘의 총합은 결국 0이다. 이 계산 과정은 경이롭도록 정확해서 어 떤 아름다움에까지 이른다. - P221

서술형 수학 문제의 경우 답이 틀려도 풀이 과정에서 부분 점수를 받는다. 인생이라는 문제를 푸는 세상의 많 은 좋은 소설들도 자신만의 오답으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부분적 옳음을 성취한다. - P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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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예쁜 걸 먹어야겠어요 - 박서련 일기
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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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 작가의 소설은 유쾌했거나 비참해도 통쾌했으며 그게 위로가 되었다.
일기라니 재미가 없을 리는 없을 것이다.

나는 예쁘고 산뜻하고 재미있는 것들에 대한 나의 직관을 아끼는 사람이고 나는 내 기준에서 너무 벗어나 있고나는 내가 그만 죽었으면 좋겠다.
제일 싫은 건 이렇게 형편없으면서도 죽고싶지 않은 너절함이다.
품위라곤 하나도 없다. - P29

나는 관객이아니었지만 아마 관객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다면시즌제 드라마 앞부분을 하나도 보지 못한 채로시즌3의 1화를 보기 시작한 기분이었을 것 같다. - P54

지난 사흘간 내가 쓴 접시가 사실은 디저트접시였고 제대로 된 식사용 접시는 훨씬 크다는 걸알았다. 목적어 없이 배신감을 느꼈다. - P239

"잔고가 20만 원일때랑 200만원일 때랑 문장이 달라요." - P2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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