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여자들 현대문학 핀 시리즈 소설선 44
이서수 지음 / 현대문학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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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쎄… 그녀는 결국 자신의 몸을 생긴대로 사랑하는 법을 알지 못했다. 그녀도 과거 짝궁과 남몰래 같은 학교 남자애들의 외모 품평을 즐겼던 일을 반성하지 않을 것이며, 비루한 자신의 몸만큼, 다른 이들의 비천한 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도 모를 것이고, 쾌락은 몸을 도구화하는 비인간적인 짓이기 때문에 몸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경험할 기회도 없을 것이고,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게 행복이라고 믿고 살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불필요한 간섭을 삼가하고 그 나름의 삶의 방식에 대한 지지와 응원일 뿐이니…

아이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이 세상을 자신의 우 주로 바라보고, 자신의 시선으로 해석하기 마련입 니다. 그런 점에서 아이는 조물주와 같습니다. 모 태 신앙의 경우는 다르겠지만, 절대적 존재에게 존 경심을 갖추길 요구하는 환경이 아니라면 아이는 자신이 절대적 존재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그렇게 살다가도 유치원에 들어가거나 동네 아이 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조물주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긴 하지만요. 여하튼 저 역시 조물주의 시선으 로 모든 것을 보던 시기를 벗어나 어른들의 말을 알아듣는 나이가 되면서, 제가 다른 사람의 눈에 말라빠져 보인다는 걸 깨닫게 되었던 것입니다. - P11

섹스가 의무가 아닌 소녀로 돌 아가서 저의 몸을 아무 곳에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 P59

하지만 저는 섹스에 제 몸 을 사용하고 싶지 않은 것처럼 아이를 낳는 일에 도 제 몸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갖 는 일은 온전히 저의 선택과 열망으로 결정되어야 할 일이라고 굳게 믿었습니다. - P61

저는 결혼 자체엔 아무런 불만이 없지만, 정기 적인 섹스는 구독 거절한 신문이 우편함에 계속 꽂혀 있는 것처럼 아주 지겨운 일이라는 것을 고 백하고 말았습니다. 서른이 넘은 성인 여성이지만 섹스에 나의 몸을 사용하는 것이 어렵고 어색한 일이라고도 말했습니다. 사실은 싫고 불쾌한 일이 었지만 순화해서 말했습니다. - P63

이혼한 여자의 몸으로 어떻게 살아가려고 그러니.
저는 어머니의 입에서 나온 말들 중에서 유독 ‘몸‘이라는 단어에 귀가 커졌습니다. 어머니가 저 를 딸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그때 처음으로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세상의 모든 여 성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몸으로 보고 있는 것 같 았습니다. 저는 어머니에게 이런 문자를 보낸 뒤 이혼을 감행했습니다.
-엄마, 나는 내 몸이 아니라 그냥 나야. 나는 내 몸으로 말해지는 존재가 아니라, 내가 행하는 것으로 말해지는 존재야. - P65

저는 딸들을 역할을 수행해야 할 몸으로 보고 싶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그것이 사회와 가정이 정해준 역할이라면요. 저는 뒤늦게 저의 행동을 후회했습니다. 하지만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엔 여전히 그 아이가 이 잔혹한 사회를 혼자 헤쳐 나가긴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있기 때문입니다. - P85

저는 크게 웃었습니다. 저는 영석 언니가 저와 참 다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언니의 건 강한 태도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그렇다고 섹스를 싫어하는 제가 건강하지 못하다는 건 아닙니다.
저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석 언 니가 웃는 저에게, 너 왜 웃니? 하고 묻더니 자기 도 크게 웃다가 다시 말을 이어갔습니다. - P95

그러나 저는 그 곳에서 섹스에 꽤 많은 관심이 있고, 그것을 당당 하게 드러낼 줄 아는 여성으로 행동하고 싶은 마 음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거짓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덜트 숍이라는 공간이 저에게 그런 태도를 요구하고 있었으니까요. 섹스를 주체적으 로 즐기는 여성이요. - P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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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
하완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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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엔 소신을 피력하는 듯했으나, 목표했던 분량이 벅찼는지 후반부로 갈수록 자기연민으로 불행에 동정심을 호소하고, 자기합리화로 불안을 무화 시킨다.
무엇보다 심기가 불편한 이유는 저 한심스러운 삶이 나의 것과 무척 닮았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말이다. 우리는 이런 말들을 신양처럼 품고 살아간다. 이 말들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세상을 좀 살아보면 알게 된다. 아니, 살면 살수록 아니라는 것을 더 크게 느낀다고나 할까? 그래서 흔란스러운 거다. 우리의 가치관이 흔들리니까.

우리가 지금 괴로운 이유는 우리의 믿음, 즉 ‘노력‘이 우리를 자주 배신하기 때문이다.

왜 노력이 우리를 배신하는지, 그럼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물어도 난 답을 알지 못한다. 다만 괴로움을 줄이는 법은 안다. 분하지만 ‘인정‘해버리는 것이다. ‘노력해도 안 되는 것이 있고, 노력한 만큼 보상이 없을 수도, 노력한 것에 비해 큰 성과가 있을 수도 있다‘라는 사실을 인정하면 괴로움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다.

원래 인생은 공평하지 않아. 노력으로 다 된다는 말도 거짓말이지.
알겠어? 네 노력이 부족한 탓이 아니라는 이야기야.

나도 모르는 사이 어떤 ‘경주‘에 참가했었는데 지금은 그 경주를 기권한 기분이다. 경주에 참여하지 않으니 당연히 승리도 패배도 없다. 그런데 궁금한 건 그 경주가 무엇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그 경주의 타이들은 무엇이었을까?
‘누가 돈 더 많이 버나" 대회?
‘누가 먼저 내 집 장안하나‘ 대회?
‘누가 먼저 성공하나‘ 대회?
도무지 모르겠다. 아무든 나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경주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열심이었던 모양이다. 그만두길 잘했다.

열정 은 여정을 기반한다. 하기 싫은 일을 해야 하니 당연히 열정도 없다. 열정 콘텐츠로 반짝 의욕이 생길 수도 있지만, 약발은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렇게 강요로 만들어진 열정은 대개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경우가 많다.

열정은 스스로 일어나는 것이지 절대 강요로 만들어질 수 없다. 열정은 사랑이다. 그 일을 사랑하는 것에서 열정은 시작된다. 물론 사랑하려고 노력하 다 보면 사랑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별로 권하고 싶지 않다.

열정이 생기는 일을 찾으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긴다.
"돈은 많이 줄 수 없지만, 열정을 가지고 일할 좋은 기회가 될 거야. 아무래도 이 바닥은 경험이 자산이니까. 못 하겠다고? 넌 열정이 없는 거네."
‘열정 페이‘다. 돈을 안 주거나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으로 실컷 부려먹으려는 속셈이다. 속이 반히 보이는 이야기지만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이런 말에 잘 속아 넘어간다. 아무래도 사랑은 눈을 멀게 만드니까. 더 좋아하는 쪽이 지는 게 사랑의 공식이니까.
세상은 우리에게 열정을 가지라고 강요하고 그 열정을 약점 잡아 이용하고 착취한다. 그래서 열정을 함무로 드러내는 건 위험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열정이 없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열정은 좋은 거다. 나를 위해 쓰기만 한다면 말이다.

좀 과격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노력이라는 이데올로기는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을 준비하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걸까? 우리는 과연 자녀들에게. 후배들에게 어떤 잔소리를 해줄 수 있을까? 요즘 젊은이들은 노력하라는 잔소리에는 공감하지 못할 것이 다. 나부터도 와닿지 않으니 말이다.

청춘이 끝나서 아쉽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기쁘기도 하다. 그 이유는 청춘의 열병을 심하게 않았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불두명하고 어 둡게만 보이던 시절, 그때는 하고 싶은 것과 현실적인 문제 사이에서 갈팡질팡 방법도 모르고, 용기도 없고, 그저 삶에 끌려다니는 기분이 었다. 치열하게 고민했지만 자주 화가 났다. 마음처럼 되지 않아서 참 많이도 않았다. 몸은 늘 뜨거웠고 숨은 잘 쉬어지지 않는 시절이었 다. 지금은 그때처럼 뜨겁지는 않다. 일이 많이 내렸다.
다행히 열이 내렸다고는 하지만 그 시절에 했던 고민과 불안은 여전하다. 앞날은 늘 불투명하고 현실의 문제들은 한 번도 사라진 적이 없으며 여전히 답도 용기도 없다. 나이가 들어도 삶에 끌려다니는 기문은 여전하다.

그때 내가 느낀 것은 인생은 내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을뿐더려 내가 아무리 고민해서 무언가를 선택해도 그 선택이 무의미해지는 순간들이 있다는 사 실이었다. 마치 열심히 한 방향으로 노를 젓는데 커다란 파도가 올려와 나를 다른 곳으로 데려다 놓은 기분이었다.
우리는 인생을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다고 믿지만, 한날 파도에 휩쓸리는 힘없는 존재일지도 모든다.

우리는 대학 입시와 취직이라는 한 가지 길로 내몰렸다가 또다시 자영업이라는 한 가지 길로 내몰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미지근한 다수를 공략하는 것보다 열광적인 소수를 공략하는 게 더 성공률이 높다는 말도 덧붙였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자신이 대단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가지고 있는데, 이 환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이 커질 수목 괴로움이 커진다는 이야기다. 자신이 만든 환상 속의 나는 대단한 사람인데, 현실의 나는 초라하고 별 볼 일 없고 인정도 못 받으니 현실의 내 모습을 점점미워하게 되고 못마땅하여 보기 싫어진단다. 너무 보기 싫어지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도 일어난다.

더 많은 이야기를 안다는 건
더 많은 이해를 갖게 된다는 것일지도 모른다.

"천재는 노력하는 자를 이길 수 없고, 노력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이길 수 없다." 이 명언은 다 좋은데 이게 문제다. 꼭 누굴 이기고 싶어서 즐기는 건 아니다. 그냥 재미있게 살고 싶은 거다. 누굴 이기는 게 목적이 되는 순간 절대로 즐길 수 없을걸? 아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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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나쁜 일 오늘의 젊은 작가 37
김보현 지음 / 민음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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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리 추리물. 근데 이런 건 넷플릭스에서 킬링타임용으로 보고 싶지 책으로 보고 싶지는 않더라

조 원장은 인간관계를 끈끈하게 하는 것은 정이나 신의가 아니라 실리와 필요라는 것을 배웠다. 찰리 킴은 그런 쪽에 몹시 영리했다. 그는 신중하게 사람을 들었으며 철저하게 숫자와 문서로 관계를 유지하고 정리했다. - P197

"주변에 있는 사람들한테 기대 볼 수도 있겠죠. 사람들은 대체로 내게 다정해요. 내가 너무너무 불행하니까. 나를 동정하면서 아직 자기들이 잃지 않은 것에 감사하고 안도하기도 하겠죠. 하지만 나아지는 건 아무것도 없고, 결국엔 다정했던 사람들도 내 슬픔에 진절머리를 내게 되죠." - P275

가족의 지긋지긋 한 점이 이런 것일 거다. 외면할수록 더 곪는 상처 같은 것. - 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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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사 워크숍 오늘의 젊은 작가 36
박지영 지음 / 민음사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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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이렇게까지 분량이 늘어질 필요가 있나 싶었다. 처음엔 재밌었는데, 서로 다른 사람들이 비슷한 듯 아닌 듯 지루한 이야기를 이어가는데 점점 재미없어졌다…

내게만 주어지는 행운을 기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공 평한 불행과 재난에 안도하는 사람도 있었다. - P17

"별 볼 일 없이 살다가도 고결한 돼지처럼 죽을 수 있다고 믿는 거 보세요. 정말 사랑스럽지 않나요? 이렇게 속물적인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사람들, 자기혐오와 자기 구애를 멈추지 않는 사람들이 마침내 고독사에 이르는 법이거든요.
저는 말입니다, 고독사란 결국 인간의 존엄이랄지 위험에 대 한 절박한 구애의 형태로 완성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러니까" - P19

경로를 이탈해도 길은 이어진다는 걸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강제 종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아주 작은 비겁함일 뿐이다. - P28

송영달은 어떤 조롱이나 모욕에도 재미있는 농담을 들은 양 미소 지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모두가 감정에 솔직하고 용기 있을 필요는 없었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면 모욕도 모욕이 아니었다. - P34

사람들이 꺼리는 대상이 되는 건 나만의 공간을 확보하는 가장 쉬운 방법이었다. - P39

보편적이고 무난한 사람, 시대에 뒤떨어지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을 선호하는 직장에서 일하고 싶었다. - P50

소문으로 사람을 훼손하고 그 훼손 됨에 우월감을 느끼며 만만하게 대하는 사람들의 저열한 태도 를 젊은 날 질리도록 겪어 왔는데 결국 김자옥 씨도 마찬가지 였다. 그래서가 아니라니. 이윤영이 편한 건 그래서였다. - P73

모든 게 그렇듯 취향의 세계 역시 일부에게 만 너그러워서 이미 가진 자들만이 취향을 탐색하고 키워 나 갈 수 있었다. 그렇게 다듬어진 취향은 곧 또 다른 능력이 되 었다. 알리스의 경우에는 취향 없음을 숨기기 위해 타인의 취 향을 훔쳐보며 다수의 취향을 거스르지 않고 따르는 것 정도 가 유일한 취향이었다. - P129

일단 시작하면 노오오오오력이라는 걸 하 는 사람들, 게으르거나 불성실하더라도 그대로 머무는 게 아 니라 지금의 존재가 아닌 다른 존재가 되기 위해 그것이 무어 건 애쓰게 되는 사람의 변태(한) 본능이란 고독사 앞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 모든 무용에 이르는 실수를 죄책감 없이 하루하루 해내도 된다는 안도감을 배우기 위해 그들은 또다시 어쩔 수 없이 노오오오오력이라는 걸 하는 거였다. 오 대리가 볼 때 그들은 이미 저마다 고독사의 거장들이었으나 타인의 고독사를 학습하고 모방하며 자신의 고독사를 좀 더 높은 수준에서 완성하고자 했다. - P145

고결한 돼지처럼 죽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워크숍이라니. 웃기지도 않는 인간들이 웃기지도 않는 것을 벌이는구나 싶었다. 그래서 신청했다. 이런 식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계기로 회복되는 삶 같은 건 없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결한 죽음 따위는 없었다. 남은 이들에게 가능한 건 개죽 음뿐이었다. 방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 못된 장난이 장난 으로 끝나지 않도록 하는 건 이 고독사 워크숍에 진짜 고독 사를 선물하는 거였다. - P154

자신은 피해자였을 뿐인데 피해자의 얼굴을 한 가해자가 되 어 있었다. 소문 속의 여자는 자신이 아니었으나 못돼 처먹은 건 사실이라서 무얼 부정하고 무얼 해명해야 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 지겨워졌다. 4개월 넘게 버틴 선배보다 더 빨리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리고 알게 되었다. 선배도 참 지겨웠겠구나. 사람답게 살기 위해 사람다움을 잃어 가는 하루하루가 저마다 피해자의 얼굴로 가해자의 얼굴을 감춘 채 무리의 습성에서 낙오하지 않기 위해 매일매일 못됨을 처먹어 가는 일상이. 무엇보다도 타인의 불행 앞에서 다행을 챙기는 다행하지 않은 자신의 마음과 자꾸 마주해야 하는 공포가. - P246

시스젠더의 정의는 단순하게는 지 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경우를 의미했다. 그러나 그 말을 마르템은 매우 지루하고 재미없고 시시하고 볼품없다는 의미를 담아 말하곤 했다. 성 정체성의 결정권을 스스로 갖지 못하고 부여된 성에 적응해 그 밖의 가능성을 탐색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도태된 존재라고들 했다. 덜 진화된 구시 대의 인물이라는 거였다. 그리고 그런 옛날 사람을 나는 사랑 하지. 안드로진과 데미젠더를 거쳐 지금은 논바이너리로 자신 을 규정했다는 마르은 말하곤 했다. - P298

개소리였다. 락스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사촌 형은 망 쳐져 있는 자신을 위한 변명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락스는 소 년이 아는 가장 순결하고 무해한 것이었다. - P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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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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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당히 절박한 상황에선 서로 의지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적정을 넘어선 불행한 상황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준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구는 결국 살아나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살아갈 의미를 주는 것, 세상에 큰 별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에게 기억되고, 의미가 되어 주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성서는 언제 쓰였지? 적어도 이천 년은 넘지 않았나?
어떤 사람은 이천 년 전에 써진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위로받고 황홀해하고 미친다. 그리고 믿는다. 섹스 없 이 아이를 낳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 건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다거나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사건인데.....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 P10

그 나이에 요구되는 것을 이룬 사람 같았다.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고 돈을 모아 작은 빌라를 얻고 자동차 할부를 갚고 있는 사람. 아직 하지 못한 것은 결혼뿐인 사람. - P124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 P131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 P133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 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 택 문제가 아니다. - P157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 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P159

만약에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우린 그렇게라도 같이 있어야 해. - P160

사람이란 뭘까.
구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 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 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 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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