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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 증명 ㅣ 은행나무 시리즈 N°(노벨라) 7
최진영 지음 / 은행나무 / 2023년 4월
평점 :
적당히 절박한 상황에선 서로 의지하는 것이 큰 힘이 된다. 적정을 넘어선 불행한 상황에서도 누군가 나에게 기댈 수 있는 어깨를 내어준다면 세상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것이다.
구는 결국 살아나진 못했지만 누군가에게 살아갈 의미를 주는 것, 세상에 큰 별이 되진 않더라도 한 사람에게 기억되고, 의미가 되어 주는 일을 생각해 보았다.
성서는 언제 쓰였지? 적어도 이천 년은 넘지 않았나? 어떤 사람은 이천 년 전에 써진 글을 읽으며 감동하고 위로받고 황홀해하고 미친다. 그리고 믿는다. 섹스 없 이 아이를 낳았고 죽은 자가 살아났다는 이야기를. 그 건 사십 일 동안 비가 내렸다거나 바다가 갈라졌다는 것과 차원이 다른 사건인데..... 터무니없는 것을 받아 들여야 할 때 믿음은 아주 유용하다. 말도 안 돼, 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일에야 믿음이란 단어를 갖다붙일 수 있다는 말이다. 일단 믿으라. 그러면 말이 된다. - P10
그 나이에 요구되는 것을 이룬 사람 같았다. 대학을 나와 취직을 하고 돈을 모아 작은 빌라를 얻고 자동차 할부를 갚고 있는 사람. 아직 하지 못한 것은 결혼뿐인 사람. - P124
나만 살아 있다. 나만 이 몸에 갇혀 있다는 말이다. - P131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 P133
전쟁 중에 태어나서 전쟁만 겪다가 죽는 사람들이 있 다. 열악한 환경에서 기아와 질병으로 죽어가는 아이들 이 있다. 전염병이 유행하는 곳에서 속수무책으로 죽어 가는 사람들이 있고, 조상들의 전쟁에 휘말려 평생을 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 전쟁이나 질병은 선 택 문제가 아니다. - P157
행복하자고 같이 있자는 게 아니야. 불행해도 괜찮으 니까 같이 있자는 거지. - P159
만약에 너 때문에 내가 알코올 중독자가 된다면 너는 술병을 치우는 대신 내 술잔에 술을 따라줘야 해. 우린 그렇게라도 같이 있어야 해. - P160
사람이란 뭘까. 구를 먹으며 생각했다. 나는 흉악범인가. 나는 사이 코인가. 나는 변태성욕자인가. 마귀인가. 야만인인가. 식인종인가. 그 어떤 범주에도 나를 완전히 집어넣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는 사람인가. 아이는 물건에도 인격을 부여하지만 어른은 인간도 물건 취급한다. 아이 에서 어른으로 무럭무럭 자라면서 우리는 이 세계를 유 지시키고 있다. 사람은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 사람은 뭐든 죽일 수 있고 먹을 수 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사기를 친다. 누군가의 인생을 망치고 작살낼 수 있다. 그리고 구원할 수도 있다. 사람은 신을 믿는다. 그리고 신을 이용한다. - P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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