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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토끼 (리커버)
정보라 지음 / 아작 / 2022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는 후광으로 찾아보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그로테스크한 내용에 놀랐다. 표제작 <저주토끼>는 흥미진진했고, 저주는 결국 인과응보로 돌아온다는 ‘교훈’도 좋았다. 다만 그다음 작품들은 어찌나 기괴하고 불쾌한 소설들이 이어지는지, 중간에 책을 그냥 덮을까 생각도 들었지만, 끝까지 차분히 읽어보기로 했다. 다행스럽게도 <몸하다>부터는 불쾌감은 가라앉힐 수 있었고, 윤리적 상상력이 가미된 장르소설의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다만 그로테스크한 불쾌감보다 더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내용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흉터>나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에서 나타나는 ‘장애’에 대한 그릇된 인식이 두드러지는 점. ‘장애’를 ‘죄로 인한 형벌’로 다루고 있고, ‘선’을 행하면 보상과 면죄의 차원에서 ‘장애’를 ‘극복’한다는 전개가 좀 짜증이 난다. <심청가>는 그래도 ‘고전’이기 때문에 지금 시대에 맞게 새로운 해석을 덧붙여 읽으면 되지만, 지금 시대에도 장애를 ‘벌’로 인식하고 이러한 장애를 극복하여 행복에 이른다는 새로운 소설이 나올 필요가 있을까.
작가 후기(원래 세상은 쓸쓸한 곳이고 모든 존재는 혼자이며 사필귀정이나 권선징악 혹은 복수는 경우에 따라 반드시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필요한 일을 완수한 뒤에도 세상은 여전히 쓸슬하고 인간은 여전히 외로우며 이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326p.)처럼 인생에서 쓸쓸함과 허무함과는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너무 크게 분노할 것도, 정말 나쁜 사람이라며 미워할 것도 없이.
아래는 줄거리 요약.
<저주토끼>
과거부터 저주를 집안의 업으로 삼는 집이 있다. 할아버지는 할아버지 친구의 양조사업을 망하게 한 경쟁사 사장을 저주하기 위해 토끼인형을 만들어 경쟁회사에 보낸다. 토끼인형은 밤마다 회사의 모든 종이로 된 문서와 목재를 갉아먹고 똥을 싸지만, 경쟁회사는 이를 쥐의 소행이라 판단하고 방역만 열심히 한다. 하지만 좀처럼 사태는 진정되지 않고, 귀중한 문서를 금고로 옮기지만,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해 회사의 중요 문서나 수표까지 전부 토끼에 의해 갉아 먹힌다. 경쟁사는 위생문제로 언론의 입방아에 오르고, 매출이 감소해 점차 기울어가는 도중, 경쟁회사 사장의 손주에 눈에 들어온 토끼인형은 사장의 집으로 들어가게 된다. 손주는 저주에 걸려 토끼 흉내를 내며 정신을 잃어가다 죽고, 사장의 아들 역시 건드리기만 해도 뼈가 부러지는 증세를 보여 병원에서 미쳐가다 죽는다. 사장의 사업은 망하고, 집안사람들은 결국 다 죽어버린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32p.)
친구의 복수를 위해 가문의 불문율을 어긴 할아버지도 결국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할아버지는 화자에게 본인이 저주를 건 이야기를 들려주러 화자를 계속해서 찾아온다.
<머리>
한 여자의 배설물로 형체를 점점 이루어 가는 머리가 변기에서 계속 나타난다. 여자는 ‘머리’를 없애려 머리가 나타나면 변기 물을 내려 버리고 이사도 가고 머리를 꺼내 쓰레기통에 버려도 보지만 ‘머리’는 계속해서 여자가 결혼한 후에도, 여자의 딸 앞에도 나타난다. 어느 날 여자가 중년의 나이가 될 때까지 보이지 않던 ‘머리’는 완전한 성체가 되어 변기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여자에게 옷을 벗어달라던 ‘성체’는 여자의 옷을 입고는 발가벗은 여자를 변기 속으로 밀어 넣는다.
‘내가 언제 태어나고 싶어 네게 부탁한 적이라도 있더란 말이냐? 네게서 비롯된 피조물이라 하여 네가 한 번이라도 다뜻이 돌보아준 적이라도 있었더냐? ...... 하지만 드디어 나는 몸을 이루었다. 어두운 구멍 속에서 이날만을 기다려왔다. 이제 나는 네가 되었으니 너의 자리를 차지하여 살아가리라.’(57p.)
<차가운 손가락>
어둠에서 눈을 뜬 여자는 앞이 보이지도, 아무것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옆에서 그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 목소리는 그녀와 같이 사고를 당한 것 같다. 목소리는 그녀와 같이 학교 동료 선생님의 신혼집 집들이에 갔다고 했다가, 이혼해서 지방으로 내려간 자취집에 갔다고 했다가, 목을 매 자살한 동료의 장례식에 갔다고 하는 둥 혼란스럽게 상황을 바꿔가며 이야기를 한다.
‘산다는 거, 정말 불공평하지 않아요? ...... 재미있지 않아요? 독같이 차 사고를 당해도, 누구는 끈질기게 살고, 누구는 그 자리에서 그냥 죽고....’(78p.)
여자는 어둠 속에서 자신이 운전대를 잡은 손에 다른 손이 얹혀있는 차를 마주하게 되고 다시 어둠이 덮친다. 다시 어둠에서 깨어난 그녀에게 같은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몸하다>
남자 없이 여자의 몸에 아이가 들어선다. 의사는 임신을 했으니 여자에게 아이의 아빠를 구해야 한다고 말한다. 어리둥절한 여자는 아빠를 찾아 맞선을 보러 다니게 되었고, 맞선 상대들은 다 임신한 여자를 보고는 외면해 버린다. 딸의 배우자를 찾던 가족들은 신문에 아이의 아빠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버리고, 이로 인해 여자는 사기 전화에도 시달리고, 어떤 사업가가 나타나 아이를 불임부부인 자기 아들의 자식으로 삼게해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보상을 해준다고 하기도 한다. 결국 아빠를 구하지 못한 여자는 태동을 느끼며 병원에 실려가는데 여자가 실려간 구급차의 운전사가 처음으로 맞선을 본 남자였다. 아이는 그냥 핏덩이로 태어나고, 의사는 아빠를 구하지 못한 여자의 책임이라며 타박한다. 그 사이 구급차 운전사가 자신이 아빠가 되겠다고 나타나지만 아이는 흥건한 피로 고여있을 뿐이다.
<안녕, 내사랑>
로봇 개발자는 수명이 다한 로봇 1호 로봇 ‘세스’에게 애착이 가 폐기하지 못하고 보관하고 있었다. 개발자는 새로운 로봇 ‘샘’을 ‘세스’라고 명명하고 옷장에 방치되어 있던 1호 로봇을 ‘세스’에게 동기화한다. 동기화가 완료된 1호 로봇은 옷장에서 자신이 수명이 다해 곧 폐기될 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세스’에게 동기화가 완료된 1호 로봇은 다른 두 로봇 ‘세스’와 ‘데릭’의 힘을 빌려 개발자를 살해한다.
<덫>
어떤 남자가 덫에 걸려 금빛 피를 흘리는 여우를 발견한다. 여우는 남자에게 “나를 풀어주시오.”라고 말하지만, 여우의 피가 굳으면 금덩어리가 되는 걸 발견한 남자는 여우를 잡아 와 조금씩 피를 흘리게 하여 황금을 만들어 낸다. 계속 황금을 흘리는 화수분 같은 여우 덕에 남자는 남들과 달리 조급하지 않게 사업을 운영하였고, 이런 수완은 남자를 부자로 만들어 주었다. 남자는 곧 결혼해 남녀 쌍둥이를 낳는다. 하지만 결혼 3년째 여우가 죽자 남자의 안정적 자산이 사라지게 되었고, 남자는 불안감이 커져 예전만큼 수완을 발휘하지 못하고 결국 사업은 기울어진다. 그러다 남자는 아들이 딸의 피를 빨아먹으면 여우처럼 황금피를 흘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는 아내 몰래 아이들을 이용하여 황금을 만들었는데, 이를 발견한 아내는 그 자리에 쓰러지다 수년 전 여우가 걸렸던 덫에 부딪혀 사망한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남자는 중년의 부자가 되어 큰 사업을 벌이고 방탕한 생활을 하다 남매관리를 소홀히 하던 차에 아들이 딸을 임신시킨다. 어느 날 딸의 배가 불러온 것을 본 남자는 의사를 매수해 낙태를 시키려 하지만 딸은 비명을 지르며 “나를 풀어주시오.”라고 외친다. 아들은 의사에게 덤벼들어 목을 물어뜯었고, 난장판이 된 집 안에서 딸은 죽고 아들은 의사가 꺼낸 딸의 아이를 들고 사라진다. 집에는 딸의 유령이 나타난다는 소문이 돌았고, 모든 사업에 손을 뗀 남자는 마지막 순간 “나를 풀어주시오.” 하면서 숨을 거둔다. 이후 어느 다른 마을에 아버지의 시체에서 황금을 꺼내 먹는 아이가 발견된다.
<흉터>
한 소년이 마을의 저주를 풀기 위해 괴물에게 제물로 바쳐진다. 괴물은 소년의 척추에서 무언가를 빨아먹었고, 평생을 괴로워하던 남자는 어느덧 성장하여 동굴을 탈출한다. 하지만 어느 중년 남자가 아이를 데려다가 동물부터 사람까지 상대하는 싸움판에 끌고 다니며 돈을 벌었고, 몸이 쇠약해져 더이상 싸움을 할 수 없는 남자는 산속에 버려지고, 가까스로 살아남아 우연히 자신을 제물로 바쳤던 마을에 들어선다. 그 마을에서 남자를 알아본 눈이 먼 여자와 그녀의 오빠는 그를 헛간에 가둬버린다. 눈먼 여자는 남자에게 오래전 마을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아버지가 마을의 저주를 풀기 위해 고아인 소년을 제물로 바쳤던 일을 고백한다.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괴물을 죽이러 나섰고, 결투 끝에 괴물을 죽인 남자는 마을에 돌아오지만, 괴물과 함께해야만 상생할 수 있었던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었다.
<즐거운 나의 집>
한적한 곳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싶었던 부부는 아파트를 청산하고 시골의 빌딩을 매수해 정착한다. 하지만 계약 전 미처 확인하지 않았던 꼭대기 층 주인세대에 쥐와 벌레가 들끓고 있는 것을 발견하면서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다. 이상하게도 지하에는 다행히 쥐와 벌레가 없었고, 이 지하층은 부부 아들의 놀이터가 된다.
집에서는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졌다. 텃새를 부리던 이웃집 남자가 원인 모를 폭행을 당해 부부를 고소하기도 하고, 사무실에 임대해온 남편의 친구가 행방불명이 되며, 1층 상인은 권리금으로 마찰을 빚다 토막살인을 당한다. 행방불명된 남편의 친구 전화를 받은 아내는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었고 남편은 결국 상간녀와 사고를 당해 숨진다. 처음엔 그림자만 있던 아들은 점차 형상이 드러났고, 여자는 원래부터 그 빌딩에 있던 아이와 함께 계속 살아간다.
<바람과 모래의 지배자>
모래사막 위 황금 배의 주인인 주술사는 전쟁 중 모래사막의 왕에게 팔이 잘리고, 이에 분노한 주술사는 앞으로 모래사막 왕의 후손들은 모두 불구로 태어나리라는 저주를 내린다. 모래사막 왕은 이를 무시하지만, 그의 아들은 장님으로 태어난다. 그의 신부감이었던 숲의 공주는 결혼식 전 왕자에게 모래사막왕국에 대한 저주를 듣게 된다. 공주는 황금 배의 주술사를 찾아가 전쟁에서 졌다고 저주를 내린 것은 비겁하다며 저주를 풀어달라 요청한다. 하지만 주술사는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모래사막의 왕이 황금을 약탈하기 위한 침략전쟁이었다며, 저주를 풀어줘도 공주는 왕자와 결혼할 수 없을 것이라 말한다. 저주를 풀어달라는 공주의 요청에 주술사는 눈먼 물고기를 잡아 풀어주면 왕자의 눈이 뜰 것이라고 알려주고, 사막에서 헤매던 공주는 눈먼 물고기를 발견해 왕자의 저주를 푼다. 모래사막의 왕과 저주가 풀린 아들은 황금 배를 침략하려 했고, 자신이 믿지 않았던 진실을 확인한 공주는 침략을 막으려 하다 주술사의 마녀로 오인되어 처형당할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황금 배의 주술사가 모래사막의 왕국을 무너뜨렸고, 공주는 주술사와 함께 평온과 무한의 여정을 떠난다.
<재회>
폴란드에 유학 중인 여자는 카페에서 폴란드 남자와 함께 광장을 한 쪽 방향으로 걸어가는 유령을 바라본다. 유대인 수용소에서 풀려난 남자의 할아버지는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며 살았다. 남자는 여자에게 안전함을 느끼기 위해 자신을 묶어달라는 부탁을 한다. 몇 년 뒤 그들은 재회하고, 남자는 여자에게 자신이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카톨릭 신자인 부모에게 당한 일을 이야기하고, 여자는 이번에도 남자의 부탁대로 남자를 묶어준다. 다음 날 여자는 욕실에 스스로 자신을 묶은 남자를 발견하고 남자는 혼자 죽기 위해 효율적으로 스스로 묶는 방법을 고민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여자를 떠난다.
‘남을 저주하면 무덤이 두 개‘라는 일본 속담이 있다고 한다. 타인을 저주하면 결국 자신도 무덤에 들어가게 된다는 뜻이다. - P32
자신이 ‘요령‘이 없다는 건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런 ‘요령‘ 을 남들은 대체 어디서 배워오는 것인지, 그녀는 알지도 못하고 관심도 없었다. 돈을 최대한 빨리 많이 벌어서 더 넓은 집과 더 비싼 차를 사고 자식을 수업료 비싼 영어 유치원과 경쟁률 높은 사립 학교에 집어넣고 계절마다 온 가족이 해외여행을 가는 것은 남 보기에 ‘번듯한 삶일 수는 있어도 그녀가원하는 인생은 아니었다. 그녀는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원했고 이웃과 사이좋게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소박하지만 따뜻한 동네 공동체를 찾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런 동네를 찾아냈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 P235
인생은 문제의 연속이다. 결혼해서 가정이 있는 경우에는더욱 그렇다. 집밖의 문제를 피해가정으로 돌아와도 가족이집 안에서 또 문제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 P259
아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자기 나름대로파악한다. 어린아이의 지각에는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에 대한 세상의 호의와 인간의 신뢰 여부를 아이는 어른보다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이해한다. 왕자는 아름답고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 친절하고 예의 바르지만 진심이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성장했다. 왕자가 아는 한, 그것은 세상과 인간의 기본적인 특성이었다. 이 보이게 - P271
"저주는 풀 수 있으나 자신의 욕심에 스스로 눈먼 인간을눈 뜨게 할 방법은 없다. 저들이 언젠가는 다시 전쟁을 일으키려 할 것을 알고 있었다." - P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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