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편혜영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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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밭 묘지>
상고를 졸업한 네 여성이 졸업 후 현실에서 겪는 지난한 경험에 대한 소설이다. 상고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용모단정’이라는 벽에 부딪혀 끝내 취업에 성공하지 못한 채로 수석졸업장을 받는 수영. 졸업 후 화자의 백화점에 취업하지만 백화점의 과한 규율과 통제방식에 끝내 퇴사를 하며, 몇 년째 공무원시험에 낙방하고 있다. 유일하게 대학교에 입학한 동기 한오는 은행에 취업하지만, 대졸 행원들에게 실적도 빼앗기고 승진도 늦는 각종 불이익을 당하고 그에 따른 자격지심에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직원 휴게실에서 과로사한다. 윤주는 대기업에 취직한 후 직장 상사들의 핀잔과 냉담함 속에서 유일하게 자신에게 따듯했던 13살 연상의 차장과 결혼을 한다. 결혼하면 회사를 그만둬도 좋다는 말에 도피하듯 결혼한 윤주는 한오의 죽음 이후 한오의 실적을 가로채 간다는 김대리에게 복수하려 은행에서 진상 민원을 부리다 업무방해죄로 고소를 당한다. 알고 보니 한오를 괴롭히던 김대리는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었고, 다른 엉뚱한 김대리에게 분풀이를 했던 것을 알게 되었으며 심지어 남편에게 외도 의심까지 사고 만다. 한오의 기일에 만난 친구들은 윤주의 사연을 들으며 다 죽은 포도밭에 들어선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34p.)

‘얻어 터지기 전에는 누구나 전략이 있’(9p.)던 것처럼, 결국 세상에 얻어터져 인생의 쓴맛만 본 친구들은 그래도 “아무도 죽지마”(34p.)라며 서로를 응원한다.
나도 무엇인가 될 줄 알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에 진학하면, 군대를 다녀오면, 취업을 하면, 내가 무엇인가 될 거라는 착각을, 세상에 얻어터지기 전엔 가지고 있었다. 결국 내 자신이 될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는 위로로 정신승리하며, 행복을 바라지도 않고, 소소하고 평탄한 나날과, 소중하고 아껴주고 싶은 사람이 곁에 있는 것이 너무 좋은 인생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지만. 포도밭 묘지처럼 그들이 너무 인생이 비참해 보이진 않는다. 다시 봄이 오면 살아날 나무들처럼, 나의 인생도, 나머지 세 친구들의 인생도 그 실패가 너무 비극이 아니라고 응원하고 싶다.


<진주의 결말>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어머니를 여의고 홀로 치매에 걸린 아버지의 병 수발을 들다가 지쳐 아버지를 살해하고 방화까지 저질렀다고 오해를 받는 ‘진주’가 있다. ‘사건반장’이라는 프로그램에서는 자극적인 땔감을 찾고자 심리학자인 화자에게 범죄심리를 의뢰하면서 아버지의 성범죄라는 최악의 경우의 수까지 추가해 유진주를 패륜아로 묘사한다. 방송을 본 유진주는 화자에게 메일을 보내며 형편없는 심리분석과 유추를 조롱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68p.)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71p.)

어머니가 죽고 낯선 생각들이 떠오르던 유진주는 그 글을 공책에 적어나갔다. 주변에서 미친 사람 취급을 받았지만, 아버지는 그 글을 보고 생각에 밑줄을 긋고 지우듯, 생각도 겁먹지 말고 마음껏 연상하고 지우면서 좋은 생각만 선택하라고, 그게 너의 미래라고 말한다. 제주의 어느 작가의 북토크에서 “모든 글‘쓰기’는 글‘짓기’입니다”(68p.)라는 말이 연상하게 한 그 당시의 아버지의 말을 빌어 유진주는 ‘인간의 실존은 앞뒤가 맞지 않는 비논리적인 이야기’(69p,)라며 자기는 ‘스스로를 속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루는 언론과 타인들의 앞뒤 맞지 않는 기만에 대해서, 누구나 가진 모순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유진주는 존속상해치사죄 무혐의 처분을 받고 방화죄는 심신미약을 사유로 감경돼 징역을 1년 6개월 받는다. 유진주는 화자를 제주도로 초청해 바람의 박물관으로 안내한다. 아버지가 죽기 전에 예약한 입장권이라며 아버지의 치매증상이 극에 달할 때 유진주가 과거를 떠올리며 아버지에게 무엇이라도 쓰라고 준 펜으로 아버지는 신혼여행 때 다녀온 풍림호텔과 ‘바람이 돌멩이 보다 흔하다.’(75p.)라는 문장을 썼고, 유진주는 풍림호텔이 바람의 박물관으로 바뀐 것을 알아내고는 예약을 하지만 아버지와 함께할 수 없는 상황에, 화자를 제주로 초청해 함께 관람하며 말한다. 앞뒤가 맞지 않는 실존을 창조하는 신처럼, 사전 경고 없이 일을 질러버리는 신처럼 하고 싶어 방화를 저질렀다고 말한다.
누군가 이해를 할 수 없다며 한탄할 때마다 ‘이해라는 것이 꼭 필요한가, 그 상대방은 꼭 이해하려는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행동만 해야하는가, 그런 생각이 요구가 너무 이기적이고 폭력적이지 않은가’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이해를 포기하는 것은 관심을 끊는 극단적인 행동이 아니라 사람을 그 자체로 존중해 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유진주의 이메일이, 화자를 만나면서 날리는 말이 너무 통쾌했다.


<홈 파티>
연극배우 이연은 성민에게 홈파티를 함께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성민이 최고경영자 과정을 받으면서 알게된 지인으로 오대표의 홈 파티에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지위와 특권을 누리고 사는 명상센터 소장, 성형외과, 변호사 등이 초대받았다. 배우인 이연을 신기해하면서 각자 자신들이 소비하는 고급 취향을 열거하며 이연은 점점 이 모임에서 자신이 소비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자신이 감염병 재난 상황 때문에 취소된 배역을 학창시절 연극에 대한 경험으로 비교하는 그들은 무례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무감함으로 이연과 성민의 상황을 비참하게 만든다. 이연에게 코로나로 뒤집힌 <보이체크>무대를 어린 시절 잠시 거쳐간 순수한 감수성으로 소비되고, 성민의 금융 문맹에 가까운 경제적 관념은 불우한 환경의 결과라 단정해 버린다. 동등한 인격체로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한 수 아래의 계급을 대상으로 평가하고 훈계하고 있었다. 그들과 어울리는 사람으로서 연기하는 것을 포기한 이연은 고아원을 퇴원하는 아이들이 자립 정착금으로 명품가방을 산다는 것을 한심하다는 듯 탄식하며 염려하는 그들에게 뜬금없이 돌직구를 날리며 분위기를 냉각시키면서 일어나다 오대표의 가보인 찻잔을 깨버린다. 오대표는 이연의 멋진 퇴장이 실패했음에 살짝 미소를 비추지만 이를 간파한 이연이 오대표를 향해 오늘의 홈파티가 즐거웠다며 다시 오대표에게 실망감을 준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주고 싶다면 그에게서 먼저 그걸 빼앗으라‘는 법칙이었다.’(123p.)

오대표는 자기보다 못한 자들 앞에서 우월감을 과시하고 열패감을 안겨주어 만족감을 느끼려던 홈파티의 기획 연출에 변수가 생기자 심기가 불편함을 감추지 못한다.


<일시적인 일탈>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사람들과 어울리지 않고 혼자 시간을 보내 특이해 보이는 K는 요주의 인물이다. K의 아들과 화자의 딸이 같은 반 친구라는 이유로 화자는 K와 가까워진다. K는 이혼한 돌싱으로 작가였고 둘은 쉽게 친해지면서 켈리그라피를 하는 화자에게 K는 작업실을 공유해 주었다. 하지만 K의 전남편이 재혼하고, 아이를 방치한다는 근거를 내세우며 K에게 아들을 빼앗아 가자 둘 사이는 자연스럽게 멀어진다. 그러던 어느 날 K가 건설 현장 인근에서 봉변을 당하고 장례식에 간 화자는 가족들에게 K의 작업실을 계속 사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는다. 화자는 엉망이 된 K의 작업실을 청소하고 K의 책과 작업실에 쌓여있는 책들을 보며 시간을 보낸다. 점점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진 화자는 남편에게 켈리그라피 학원을 열었다는 거짓말을 하고 학원수익으로 위장하기 위해 물건을 팔고, 대출까지 받으면서 작업실에 머무는 시간에 집착한다. 가족들이 캠핑을 가기로 한 날 화자는 갖은 핑계를 대 작업실에서 하루를 머물기로 하고, 그날 새벽 K의 소설에 등장했던 인물들이 유령이 되어 떠드는 소리를 듣는다. 화자는 K의 소설에 등장했던, 뇌사상태에 빠져 남편의 간호를 받으면서 동시에 증오를 받는 아내를 떠올린다.

‘나는 그 소설의 주인공이 남편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것은 아내의 이야기였다. 자신을 향한 증오와 악의를 가늠하지 못한 채 잠든 여자. 몸에 불이 붙은 뒤에도 깨어나지 못하는 여자. 그 유령이 바로 여기 있었다.’(162p.)

<자기만의 방>이나 <19호실로 가다>에서 계보를 잇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화자가 어렸을 때 아버지로부터 당했던 억압을 상징하는 ‘개구리’라는 매개체가 등장한다. 화자는 어렸을 적 폭력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랐고, 어느 날 하굣길에 마주친 개구리를 보고 공포에 질려 움직이지 못하다 통금시간을 어기는 일이 벌어졌고, 그때부터 화자에겐 개구리 공포증이 생겼다. 하지만 유령을 만난 그날 밤, 작업실을 나오면서 화자는 비오는 길가에서 마주친 개구리를 움켜잡는다. 개구리 공포증을 극복하는 것을 통해 화자는 K의 소설의 주인공을 인식하는 것처럼 자기 인생의 주체성을 얻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
우연히 스타벅스에서 만난 화자와 아야는 같은 대학에서 초급 한국어와 일본어를 가르치는 사이이다. 화자는 성수대교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문학 전공인 듯하나)도시공학에 가까운 논문을 쓰고 있었고, 아야와 함께 다리를 건너자는 제안을 한다.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우연히 살아남은 작가는 맨해튼을 지나며 911테러 당시 자신이 복무 중이던 군대에서 전쟁이 발발해 휴가가 짤렸던 기억을 떠올리고, 아야는 동일본 쓰나미 때 집을 빠져나오지 않은 히키코모리가 파도에 떠밀려 온 집 안에서 살아남은 일화를 나눈다. 화자는 끊임없이 우연과 확률에 대해서, 아주 희박한 확률로 연결되는 우연들에 대해서, 다른 두 곳을 연결해주는 역할을 하는 다리를 건너며 생각한다. 여러 가지 우연들이 겹쳐서 엮이고 묶이고 풀어지기도 하는 삶을 다리라는 장소와 함께 잘 엮은 단편인 듯했다. 인생은 무엇인가 운명적인 우연인 듯해 보이지만 사실 큰 의미 없이 모든 경우의 수 중에 하나를 지나가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소설의 초고를 던져버릴 생각이었지만 우연히 만난 아야를 핑계로 마음을 바꾸고, 학교에 가려고 하지만 돌아서는 선택들이 뭔가 중대하고 부담스러운 결정이 아닌 것처럼...


<아주 환한 날들>
할머니 옥미가 앵무새를 돌보며 과거를 회상하고, 앵무새와 헤어지지만 옥미에게 앞으로 환한 날들만 이어지기를 기대했던 소설이다. 옥미는 어렸을 때 집안 사정으로 백부의 집에서 키워지고, 결혼 후에도 삶이 고단해 딸에게 큰 애정을 쏟지 못한 채 노년을 맞았다. 딸이 어렸을 때 운동회도 가주지 못하고, 과일 노점을 하던 중 실랑이를 벌이는 옥미에게 챙피하다는 말을 내뱉는 딸에게 체벌을 가한 뒤로 딸과의 사이는 계속 소원했지만, 옥미의 진심은 딸이 결혼해서 손주를 낳을 때 간절하게 딸의 무사를 염원했던 만큼 진정한 사랑이었다.
옥미는 사위에게 부탁을 받은 앵무새를 맡아 키우면서 밥도 주고 새장도 관리를 하지만 앵무새의 건강이 나빠져 동물병원에 데려간다. 의사에게 앵무새는 애정이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는 앵무새와 놀아주고 산책도 다니면서 지극정성으로 돌본다. 마치 딸에게 쏟지 못했던, 딸을 키울 때처럼 밥만 챙겨주고 잠잘 곳만 챙기면 되는 줄 알았던 과거 자신의 행동과는 다른 행동을 하면서 앵무새와 애정을 주고받는다. 사위가 다시 앵무새를 집으로 데려갔고, 앵무새를 떠나 보내서 옥미의 마음은 허전하고 쓸쓸하지만, 수필 쓰기 수업에서 들었던 ‘마음을 들여다보세요.’라는 조언도 마음에 와닿기 시작해 글도 쓸 수 있게 되었다. 결국 앵무새도 딸처럼 옥미를 떠났지만, 옥미는 딸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던 것처럼 앵무새에 대한 아쉬움은 남지 않았을 것 같다. 수필을 쓰면서, 앵무새와 함께했던 아주 환한 날들처럼, 그녀 혼자의 인생도 환한 날들만 계속될 것 같았다.

그럴 거면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지 애당초왜상고에 왔느냐고묻는 사람은 우리 중에 아무도 없었다. 공부를 못하거나 대학에가고 싶지 않아서 선택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부모는 교육에대해 단순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형편이 좋지 않으니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면 족하다는 식이었고, 그 이상을 꿈꾸기를 바라지않았다. 우리는 일단 우리 몫의 미래에 순응했다. 대학을 가거나사회적으로 주어진 것과 다른 사람이 되려면 응석을 부리는 대신자립심을 키우는 편이 나았다. 자립심이 마음이나 용기가 아니라돈이라는 게 문제가 됐다. - P13

성실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최악의 노동자가되기 십상이라는 걸 미처 몰랐다. - P27

곳곳에 버려진 비닐 무더기를 보자 고등학교 교실에 두고 온방석이 생각났다. 솜이 다 꺼진 그 방석은 누가 버렸을까. 그 시절 우리는 모두 비슷한 모양의 방석을 깔고 가까운 자리에 앉았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알아서 다른 자리를 찾아갈 줄 알았다. 그때 우리가 가능하리라 여겼던 인생은 다 어디로 갔을까.
초에 그런 것이 있기는 했을까. - P34

우리가 달까지 갈 수는 없지만 갈 수 있다는 듯이 걸어갈 수는 있다. 달이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만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리는 달까지 걸어가는 것처럼 살아갈 수 있다. 희망의 방향만 찾을 수 있다면. 꽉 막힌 어둠 속에서 살아가던 제게 그 말씀들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런 선생님이 제가 쓴 일기며 낙서를 꼼꼼하게 읽으셨다니. 제가 집에 불을지른 일과 우리를 기억할까 말까 싶은 이웃들이 한 말들을 토대로 아빠와 제가 보낸 육 년의 삶을, 아니, 그 이전의 모든 인생을손금 들여다보듯이 하나의 이야기로 꿰뚫어보시다니. 그런데 선생님, 선생님이 말하는 게 분명 제 마음일 텐데도 전혀 제 마음 같지가 않았어요. 아빠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제가 몰리고있었다는 게 선생님의 전제인데, 그것부터가 잘못됐습니다. 그러니 그다음의 분석도 죄다 틀릴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저는 선생님이 말씀하신 수동적인 희생자가 아니에요. - P57

말씀드렸다시피 이런 살인은 화산 폭발 같은 거예요. 자잘한것들이 쌓이고 쌓이다가 임계점을 넘기면 터집니다. - P64

누군가를 이해하려 한다고 말할 때 선생님은 정말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아니면 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이해하려고 하는 것인가요? 그동안 제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상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이해하려고 애를 쓰는 것이면서 그게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니 이상한 글을 써대는 저를 보고는 이상한 애야, 라고 간단하게 이해해버렸겠지요. - P68

그러니까 선생님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잘 아실 거예요. 인간 안에는 수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하잖아요. 모든 게 잘될 거라는 희망에 부풀어 잠들었다가도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싫을 정도로 끔찍한 아침을 맞이하기도 해요. 인간의 실존은 앞뒤가 맞지않는 비논리적인 이야기예요. - P69

아까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때 우리 인생은 살아볼 만한 값어치를 가진다고 말씀하셨는데, 누군가를 이해하는 게 정말 가능하기는 할까요? - P71

타인들에게 이해받을 수 있는 삶을 산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삶의 일들은 그저 벌어질 뿐인데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받기 위해이유를 만들어낸다.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다. 하지만 자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유가 필요 없다. 대신에 희망이필요하다. 나의 희망으로는 결코 타인들에게 이해받지 못한다고해도 말이다. - P82

성민은 ‘너무 평범한가?‘ 갸웃거리다 ‘왠지 부족한 게 없어 보이는 어른들 선물사는 게 제일 어렵다‘고 혼잣말하듯 중얼거렸다. 그러다 ‘아니야, 압도적이지 못할 바엔 관습적인 게 나아‘ 웅얼웅얼하며 주억거렸다. - P94

-부담은 명예래. - P97

이연은 자신이 대상을 편견 없이 대하는 태도에 작은 만족을 느꼈다. 타고난 성정이라기보다 수양의 결과였다. ‘어렸을 땐 정말 타인을 시시콜콜 판정했는데… 지난 세월, 시간의 물살에 깎이고 깨지며 둥글어진 마음이 있었다. 실제로 이십여 년간 이연이 여러 인물에게 자신의 몸을 빌려주며 깨달은 사실은 단순했다. 그건 ‘한 사람이다른 사람의 자리에 서보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라는 거였다. - P106

- 매일 쓰는 물건이 아름다우면 좋죠. 그리고 그냥 시간을 견딘 것들이 주는 위로가 있잖아요? 제 사무실에도 비슷한 거 있어요. - P110

-그래, 모던에 질릴 때도 곧 있을 거예요. 모던도 모던 나름이고 가끔 싸구려 자재 쓴 모던만큼 또 싫증나는 게 없더라고요.
요즘처럼 무슨 저가 시공, 저가 인테리어 상품에 창궐하는 그런모던은…………
박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순간 이연과 성민의 눈이 짧게 마주쳤다. 두 사람만 아는 순간이었다. 박이 말을 계속 이어나갔다.
- 흉내는 흉내고, 본질은 돈으로 못 사죠. 역사도 그렇고.
이연이 박을 흘깃 쳐다보며 ‘저 사람 진골이 아니라 성골인가?‘ 갸웃거렸다. ‘뒤늦게 인맥 학교 다닌 분이 하실 말씀은 아닌것 같은데?‘ 싶어서였다. ‘창궐이라니. 사람들이 한정된 자원 안에서 나름 생활에 윤기를 주려 하는 게 무슨 질병이라도 되나?‘
눈을 굴렸다. 그런데 그 눈빛을 맞은편의 서가 봤고, 그 시선의 흐름을 또 성민이 알아챘다. - P111

술자리가 무르익자 대화 주제는 자연스레 ‘돈‘으로 흘러갔다.
사람들은 최근 흥행하는 드라마를, 플랫폼과 콘텐츠의 관계를,
이제는 시들해진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그러나 여전히 ‘쇼‘가 된계급 상승을, 그 쇼가 ‘모욕과 영광을 동시에 주는 방식‘을 밀도높고 느긋한 어휘로 토론했다. ‘요즘엔 관심만큼 비싼 것도 없다‘면서 ‘자기 서사가 있는 사람이 살아남는다‘는 식의 말도 이어나갔다. 이연도 어디서 한 번쯤 들은 말이었다. 그러자 누군가 ‘전염병 시대에 가장 큰 수혜자 중 하나가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라했고, ‘영화관 시대가 이렇게 끝날지 누가 상상했겠어?‘ 한탄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관련주 사둘걸‘ ‘요즘 유명 배우들도 다 스트리밍 플랫폼 회사에 줄선다‘라며 안주를 씹었다. - P113

-나도 이십대 때만 해도 바보같이 빛이 나쁜 건 줄 알았어.
빚에 대한 안 좋은 경험만 있어서. 생각해봐. 어릴 때 대출로 어딘가 투자하는 부모를 본 사람하고, ‘빚‘ 하면 보증과 고함, 부모의불화, 이런 것만 떠올리는 사람하고 뭐랄까, 대출 상상력이나 금융 감수성이 다르지 않겠어? - P118

처음 여기 왔을 때만 해도 ‘임원‘ 연기를 위해 ‘최대한 저 사람들처럼 생각하자, 저 사람들 입장에서 느끼고, 즐기자‘ 다짐했는데,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안 되는 게 있어서였다.
-그게 꼭 그 아이들이 철없거나 허영심이 세거나 금융 문맹이어서가 아니라요, 제 생각에는………… 밥은 남이 안 보는 데서 혼자 먹거나 거를 수 있지만 옷은 그럴 수 없으니까, 그나마 그게 가장 잘 가릴 수 있는 가난이라 여겨 그런 것 같아요, 가방으로순간 몇몇 이들이 묘한 눈빛을 주고받았다. 이연은 자신이 뭔가 망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그걸 수습하고 싶은 마음이들지 않았다. 동시에 술을 더 마시고 싶은 걸 꾹 참고 성민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 애쓰는 제 모습을 의식했다. 여기서 혼자 정색하면 연극이 망한다고, 막이 내릴 때까지 최대한 자연스레 퇴장하자 다짐했다. - P120

이연이 넋 나간 얼굴로 어쩔 줄 몰라하며 오대표의 옆얼굴을 살피다 문득 몸이 굳었다. 오대표의 얼굴에 잔을 잃은 서운함이나 원망 대신 묘한 만족감이라 할까 승리감이 얼핏 스치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전혀 놀란 기색 없이 마치 오늘 파티에서 얻을 건 다 얻었다는 이만하면 괜찮은 계산서가 나왔다는 표정을 지은 까닭이었다. - P122

그런 뒤 오대표는 이연에게 갑자기 이상한 걸 물었다.
-오늘 어땠어요?
정말 궁금한 것 같기도 하고 마땅한 작별인사가 떠오르지 않아 불쑥 튀어나온 말 같기도 했다. 오대표의 목소리를 듣자 이연의 머릿속에 문득 학교에서 배운 서사 이론 하나가 떠올랐다. ‘작가로서 당신이 누군가에게 뭔가 주고 싶다면 그에게서 먼저 그걸빼앗으라‘는 법칙이었다. 그래서 이연은 지금도 소설이나 연극,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너무 행복한 표정을 지을 때면, 사랑이나어떤 성취 혹은 명예 앞에서 너무 벅찬 감정을 표할 때면 어김없이 ‘저 사람 곧 저걸 잃어버리겠구나‘ 예감하곤 했다. 이연은 오대표의 눈을 빤히 바라보다 어떤 주문을 외듯, 마치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사랑에 빠진 사람처럼, 그 사랑을 어서 잃고 싶어하는연인처럼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았어요. - P123

이전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켜 좌천을 당한아버지는 그 분풀이를 가족들에게 했는데, 자신이 정한 규율을따르지 않으면 말그대로 발작을 일으켰다. - P142

나는 이 일시적인 일탈이 곧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그 방에는 수백 권의 책이 남아 있었다. 한 이야기가 끝나면 또다른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 나는 그 이야기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고 느꼈다. 책이 나를 이곳저곳으로 끌고다녔다. 집으로 갈 때면 아쉬움에 입이 말랐다. 아이들과 저녁을먹으면서도, 밤에 남편과 침대에 누워서도 작업실의 빈 공간을떠올렸다.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 P154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은 언제나 너무 무섭고 고통스럽다. 소설을 쓸 때마다 달아나고픈 충동에 휩싸이는 건 소설을 쓰는 일이인간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옥미는결국 해냈고 그걸 생각하면 아주 작은 불빛이 켜진 것처럼 내게도 용기가 생긴다. 그 용기를 등불 삼아 컴컴한 강물 속 물풀처럼자라나 있는 슬픔과 고통, 시기심과 비겁함, 자기모순과 기만 따위를 헤치며 또다시 조금씩 앞으로 헤엄쳐나간다. 그 길에서 마주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기어코 환한 쪽으로 고개를 돌릴 것이다.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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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기술
에리히 프롬 지음, 황문수 옮김 / 문예출판사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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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은 우연한 기회에 찾아온 행운이 아닌 능동적으로 성취해야 하는 기술이다. 사랑을 배워야 할 필요가 없다는 잘못된 통념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받는’ 것이라는 생각과, 할 줄 아는 ‘능력’이 아니라 ‘대상을 찾는’ 것이라는 가정,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랑에 머무는 상태가 아닌 사랑에 빠지는 최초의 경험이라는 착각에서 나온다.
인간이 ‘분리’되어 있다는 인식, 즉 개별적인 존재라는 인식은 다른 무언가의 ‘합일’을 갈망하는 욕구에서 사랑의 필요성이 발생했다. 이러한 합일은 상대방으로써 자신이 충족되는 공서적 합일과는 다른, 자신의 개성을 유지하는 능동적인 힘을 가진 합일을 뜻한다.
‘형제애’는 동등한 자, 혹은 모든 인간에 대한 사랑이자 모든 사랑의 바탕이 되는 근간이다. ‘모성애’는 무조건적인 긍정이자 수동적인 사랑이며 보호와 책임을 동반한다. 성숙한 모성애는 자식으로 하여금 분리(개별적인 독립)를 지지하는 사랑이다. ‘성애’는 사랑의 종류 중 가장 기만적인 사랑으로 육체적으로 원할 때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이르며, 독점욕으로 발전해 소유적 애착으로 변질되기도 한다. 사랑은 강렬한 감정이 아니며 감정일 뿐이면 영원하리라는 근거는 더욱 없다. ‘자기애’는 이기적, 배타적인 것이라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누군가를 사랑하기 위한 기초이자 근원이며 미덕이다. ‘신에 대한 사랑’과 관련해서 서양의 사상은 올바른 행동이 아닌 올바른 ‘사고’를 강조해온 누를 범했으며, 바람직한 종교인이라면 신에게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올바른 신앙이 아닌 올바른 행동을 강조한다.
사랑이 붕괴된(사이비 사랑이 판을 치는) 이유는 자본이 노동력을 지배해 생명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게 되고, 개인의 개성을 잃고 소모품으로 전략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낳은 소비의 사회는 행복을 ‘즐기는 것’으로, ‘만족스러운 소비’를 하는 것으로 변해버렸다.
두 사람의 이기주의에 불과할 뿐인 결혼(‘팀’이라고 말한다)은 ‘신경증적(괴로운) 사랑’으로 종종 나타난다. 어버이에 대한 애착에서 벗어나지 못한 남녀의 과오들이 고통으로 점철된다. 누군가를 우상시하는 ‘우상 숭배적 사랑’은 결국 기대를 저버리기 마련이라 새로운 우상을 찾아 부유하는 결과를 낳는다. 영화나 잡지, 유행가에서 추상화 되는 ‘감성적인 사랑’도 나타난다. 또한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는 ‘투사적 매커니즘’도 사랑의 실패를 야기한다. 그렇다고 사랑이 결코 갈등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오해해서는 안된다.
사랑의 기술을 습득하기 위한 안으로는 집중과 인내를 강조하고,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나의 상을 극복하고 객관적인 현실을 파악하는 데 노력해야 한다.

해결책은 역시나 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사랑에 대한 범인류적인 차원의 접근과 행동을 강조하는 부분이 인상적이다. 자주 책을 들춰 꾸준히 상기시켜야겠다.

인간이 분리된 채 사랑에의해 다시 결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의 인식, 이것이 수치심의 원천이다. 동시에 이것은 죄책감과 불안의 원천이다. - P26

현대 서양 사회에서도 집단과의 합일은 분리 상태를 극복하는 일반적인 방법이다. 이것은 개인의 자아 대부분이 사라지고그 목적이 군중에 소속되어 있는 합일이다. 만일 내가 남들과 같고, 나 자신을 유별나게 하는 사상이나 감정을 갖고 있지 않으며, 나의 관습이나 옷이나 생각을 집단의 유형에 일치시킨다면나는 구제된다. 고독이라는 가공할 경험으로부터 구제되는 것이다. 독재체제는 이러한 일치로 이끌어가려고 위협과 공포를 이용하고, 민주 국가는 암시와 선전을 이용한다. 물론 두 체제에는 매우 큰 차이가 있다. 민주주의에서는 불일치가 가능하며 사실상 불일치가 전혀 없을 때란 없다. - P30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이 가학성 음란증적 인간에 의존하듯이가학성 음란증적 인간도 복종하는 자에게 의존한다. 양자는 한쪽이 없으면 살아나갈 수 없다. 차이점은 오직 가학성 음란증적인간은 명령하고 착취하고 상처를 입히고 모욕을 가하고, 피학대 음란증적 인간은 명령받고 착취당하고 상처를 입고 모욕을당한다는 점뿐이다. 현실적 의미에서 여기에는 상당한 차이가있다.
그러나 더욱 깊은 감정적 차원에서 볼 때 양자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 다시 말하면 통합성이 없는 융합에 비하면 차이는그다지 크지 않다. 이 점을 이해한다면, 우리는 한 사람이 보통 가학성 음란중적 방식과 피학대 음란중적 방식이라는 두 가지방식으로 서로 다른 대상에 반응한다는 것을 알더라도 놀라지않을 것이다. - P39

공서적 합일과는 대조적으로 성숙한 ‘사랑‘은 ‘자신의 통합성‘,
곧 개성을 유지하는 상태에서의 합일‘이다. 사랑은 인간에게 능동적인 힘이다. 곧 인간을 동료에게서 분리하는 벽을 허물어버리는 힘, 인간을 타인과 결합하는 힘이다. 사랑은 인간으로 하여금 고립감과 분리감을 극복하게 하면서도 각자에게 각자의 특성을 허용하고 자신의 통합성을 유지시킨다. 사랑에서는 두 존재가 하나로 되면서도 둘로 남아 있다는 역설이 성립한다. - P40

사랑은 수동적 감정이 아니라 활동이다. 사랑은 ‘참여하는 것‘
이지 ‘빠지는 것‘이 아니다. 가장 일반적인 방식으로 사랑의 능동적 성격을 말한다면, 사랑은 본래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라고 설명할 수 있다. - P40

사랑의 능동적 성격은, 준다고 하는 요소 외에도, 언제나 모든사랑의 형태에 공통된 어떤 기본적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는사실에서도 분명해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보호 책임, 존경, 지식등이다. - P47

어머니에게 내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랑받는다. 더 일반적으로 말하면 ‘나는 현재의 나로서 사랑받는다.‘ 혹은 더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나이기 때문에 사랑받는‘ 것이리라. 어머니의 사랑을 받는 이러한 경험은 수동적인 경험이다. - P65

본래 사랑은 특정한 사람과의 관계가 아니다. 사랑은 한 사람과, 사랑의 한 ‘대상‘과의 관계가 아니라 세계 전체와의 관계를결정하는 ‘태도‘, 곧 ‘성격의 방향‘이다. 어떤 사람이 다른 한 사람만을 사랑하고 나머지 동포에게는 무관심하다면, 그의 사랑은사랑이 아니라 공서적 애착이거나 확대된 이기주의다. 그럼에도대부분의 사람들은 사랑은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상에 의해서 성립한다고 믿고 있다. 사실상 그들은 심지어 그들의 ‘사랑을 받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사랑의 강렬함을 입증하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것은 위에서 이미 말한 바와 동일한 오류다. - P74

성애는 아마도 현존하는 사랑의 형태 중 가장 기만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우선 성애는 흔히 사랑에 빠진다‘는 폭발적인 경험, 곧 그 순간까지도 낯선 두 사람 사이에 있던 장벽이 갑자기 무너져버리는 경험과 혼동된다. 그러나 앞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갑작스럽게 친밀해지는 이러한 경험은 본질적으로 오래가지 못한다. - P83

이 밖에도 많은 사람들에게 분리의 극복을 나타내는 또 다른요인들이 있다. 자기 자신의 개인 생활, 자신의 희망과 불안을 말하는 것, 자신의 어린아이 같은 유치한 면을 보이는 것, 세계에 대해 공통된 관심을 확립하는 것, 이 모든 일은 분리를 극복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자신의 분노, 증오, 그리고 자제심의완전한 결여를 드러내는 것도 친밀감으로 여겨진다. 이것은 흔히 부부가 서로에 대해 갖고 있는 변태적인 매력이 부부는 잠자리에 들었거나 서로에게 증오와 분노를 발산할 때만 친밀하다—을 설명해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형태의 친밀감은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희박해지는 경향이 있다. - P84

성적 욕망은 대부분의 사람들 마음속에서 사랑이라는 관념과 짝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육체적으로 서로를 원할 때 서로 사랑하고 있다는 잘못된 결론에 도달하기 쉽다. - P85

성애에는, 형제애와 모성애에는 없는 독점욕이 있다. 성애의이러한 배타적 성격은 좀 더 검토할 필요가 있다. 흔히 성애의독점욕은 소유적 애착으로 오해되고 있다. 우리는 흔히 서로 ‘사랑하고’ 있는 두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는 전혀 사랑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들의 사랑은 사실은 두 사람 사이의 이기주의다. - P86

우리는 성애의 중요한 요인, 곧 ‘의지‘라는 요인을 무시하고 있다. 어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결코 강렬한 감정만은 아니다.
이것은 결단이고 판단이고 약속이다. 만일 사랑이 감정일 뿐이라면, 영원히 서로 사랑할 것을 약속할 근거는 없을 것이다. 감정은 생겼다가 사라져버릴 수 있다. 내 행위 속에 판단과 결단이포함되어 있지 않다면, 어떻게 내가 이 사랑이 영원하리라고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 P88

다른 사람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도 우리의감정과 태도의 ‘대상‘이며, 다른 사람과 우리 자신에 대한 태도는 모순되기는커녕 기본적으로 ‘결합적‘인 것이다. 지금 토의하고 있는 문제와 관련해서 말하면 다음과 같다. - P91

여기서 다음과 같은 결론이 나온다. 곧 나자신의 자아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의 사랑의 대상이 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 자신의 생명, 행복, 성장, 자유에 대한 긍정‘은 ‘우리 자신의사랑의 능력‘, 곧 보호, 존경, 책임, 지식에 근원이 있다. 만일 어떤 개인이 생산적으로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자기 자신도 사랑할 수 있다. 만일 그가 오직 다른 사람만을 사랑할 수 있다면, 그는 전혀 사랑할 줄 모르는 사람이다. - P92

이기심과 자기애는 동일한 것이기는커녕 정반대되는 것이다. 이기적인 사랑은 자기 자신을 엄청나게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거의 사랑하지 않는다. 사실상 그는 자기 자신을 미워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애착과 배려의 결여-이것은 그의 생산성의 결여에 대한 한 표현에 지나지 않는다는 그를 공허하게 만들고 좌절시킨다. 그는 필연적으로 불행하며 생활에서 만족을얻기 위해 초조해하지만 스스로 이 만족의 달성을 가로막고 있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자기 자신을 돌보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진정한 자아를 돌보는 데 실패한 것을 은폐하고 보상을 받으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며, 이러한 노력은 실패로 끝난다. 프로이트는 이기적인 사람은 자신의 사랑을 다른 사람들로부터철수시켜 자기 자신에게 돌리는 것과 같으므로 자아도취적이라고 주장한다. 이기적인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다는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또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도 못한다. - P93

다르지 않다. 사실상 비이기적인 어머니의 영향이 더욱 나쁜 경우가 많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비이기주의 때문에 어머니를 비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실망시켜서는 안된다는 압박을 받는다. 아이들은 덕이라는 가면 아래서 삶에대한 혐오를 배운다.
만일 순수한 자기애를 가진 어머니의 영향을 연구할 기회를갖는다면, 우리는 자녀들에게 사랑, 기쁨, 행복이 무엇인가를 경험하게 하는 데 있어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어머니의 사랑보다 더 전도력이 있는 것은 없다는 것을 알게 되리라. - P96

신의 사랑은 ‘은총‘이고, 종교적 태도는 이 은총을 믿고 자신을연약하고 무력한 자로 만드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일이라도 신을 움직이지는 못하며, 또한 가톨릭 교리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신이 우리를 사랑하게 만들지도 못한다. - P100

신이 아버지인 한, 나는 어린아이다. 나는 전지전능에 대한 자폐적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다. 나는 아직도 인간으로서의 나의 한계, 무지, 무력함을 깨닫는 객관성을 획득하지 못했다. 나는 아직도 어린아이처럼 나를 구해주고 지켜주고나에게 벌을 주는 아버지, 내가 복종할 때 나를 좋아하고, 내가찬미하면 기뻐하고, 내가 복종하지 않으면 화를 내는 아버지가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P106

참으로 종교적인 사람은, 만일 그가 일신론적 관념의 본질에따른다면, 어떠한 일을 위해서도 기도하지 않고 신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다. 그는 어린아이가 아버지나 어머니를 사랑하듯 신을 사랑하지는 않는다. 그는 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 자신의 한계를 느끼고 있어서 겸손하다. - P106

브라만교에서는 불교나 도교와 마찬가지로 종교의 궁극적 목적을 올바른 신앙이 아니라 올바른행동에 둔다. - P115

서양 사상의 주요한 흐름에서는 이와는 반대되는 것이 참된것으로 생각되었다. 올바른 사고에 의해서만 궁극적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고 기대했기 때문에, 올바른 행동도 동시에 중요시되기는 했지만, 중요한 강조점은 사고에 놓였다. - P116

자본은 노동력을 지배한다. 생명이 없는 축적된 물품이 살아 있는 인간의 힘, 곧 노동보다 더 높은 가치를 갖는 것이다. - P124

근대 자본주의는 원활하게 집단적으로 협력하는 사람들, 더욱많이 소비하는 사람들, 그 취미가 표준화되고 쉽게 영향받고 예측할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근대 자본주의는 권위나 원리, 또는 양심에 종속되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되어 있다고 느끼는 사람들, 그러면서도 즐거이 명령에 따르고 그들에게 기대되는 일을 하고 마찰 없이 사회 기구에 순응하는 사람들, 폭력 없이 관리되고 지도자 없이 인도 되고 목적 없이 좋은 것을 만들어내고 계속 움직이고 기능을 다하고 곧바로 나간다는 목적 이외에는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 P126

오늘날 인간의 행복은 ‘즐기는 데 있다. 즐긴다는 것은 ‘만족스러운 소비‘를 말하고 상품, 구경거리, 음식, 술, 담배, 사람들,
강의, 책, 영화 등을 ‘입수하는 것‘을 말한다. 모든 것이 소비되고 모든 것을 삼켜버리는 것이다. 세계는 우리의 식욕에 대한 하나의 커다란 대상으로서 커다란 사과, 커다란 병, 커다란 유방이된다. 우리는 젖을 빠는 자이고, 영원히 기대하는 자이고, 희망에 가득 찬 자이다. 그리고 영원히 실망하는 자이다. 우리의 성격은교환하고 받아들이고 싸게 팔아버리고 소비하는 데 적합하다.
모든 것은, 물질적 대상과 마찬가지로 정신적 대상도, 교환과 소비의 대상이 된다. - P128

사람들은 세계에 대항하는 두 사람 사이의 동맹을 형성하고, ‘두 사람만의‘ 이기주의는 사랑과 친밀감으로 오해된다. - P129

사랑은 성적 만족의 결과가 아니며, 성적행복은 오히려 -심지어 이른바 성의 기교에 대한 지식조차도-사랑의 결과다. - P130

신경증적 사랑의 기본적 조건은 ‘애인‘ 가운데 한 사람 또는두 사람이 모두 어버이 상에 애착을 느끼고 있고, 어른이면서도일찍이 아버지 또는 어머니에 대해 품고 있던 감정, 기대, 공포를애인에게 전이한다는 사실에 있다. 이러한 사람들은 유아적 관계 유형에서 결코 벗어나지 못했고, 어른으로서의 애정적 욕구에 있어서도 이러한 유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이 사람은 지능적·사회적으로는 자신의 생활 연령 수준에 도달해 있지만, 애정에 있어서는 두 살 또는 다섯 살, 또는 열두 살 어린아이로 남아 있다. 더 심각한 경우에 이러한 감정적 미숙성은 사회적 유능성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보다 덜 심각한 경우에 갈등은친밀한 개인적 인간관계 분야에 국한된다. - P136

대체로 그녀를(또는 그를)우상시하는 자의 기대에 따라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에 결국은 실망하기 마련이고 따라서 보상으로서 새로운 우상을 찾게 되는데, 때로는 이러한 순환이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 P143

신경증적 사랑의 또 하나의 형태는 자기 자신의 문제를 회피하고 그 대신에 ‘사랑하는 사람의 결함이나 결점에 관여하려고
‘투사적 메커니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개인은 집단, 민족 또는 종교와 매우 흡사한 행동을 한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사소한 결점까지도 낱낱이 비판하고 자기 자신의 결점을천연덕스럽게 무시해버린다. 항상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개조하기에 바쁜 것이다. 두 사람이 모두 이와 같이 하면 아주 흔히 있는 일이지만-사랑의 관계는 상호 투사의 관계로 변한다.
만일 내가 오만하거나 우유부단하거나 탐욕스럽다면, 나는 상대방의 이러한 점을 비난하고 나의 성격에 따라 그를 고치거나처벌하려고 한다. 상대방도 이와 같이 한다. 이렇게 해서 두 사람은 그들 자신의 문제를 무시하는 데 성공하고 따라서 그들 자신의 발달에 도움이 되는 조치를 하는 데 실패한다. - P145

사랑은 갈등이 전혀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고 보는 환상이다. - P146

정신과 의사가 고객에게 좀 더 어필하기 위해서는 고용인들이행복해야 한다고 권고하는 것처럼, ‘신을 당신의 반려로 삼으라‘
는 말은 사랑과 정의와 진리에 있어서 신과 일체가 되기보다는오히려 사업에 있어서 신을 동업자로 만들라는 의미이다.
형제애가 비개인적 공정성으로 대체된 것처럼, 신은 멀리 떨어져 있는 ‘우주‘라는 주식회사의 사장으로 변했다. 당신은 신이저기에 있고 신이 쇼를 연출하고 있다는 신이 없어도 아마 쇼는 연출되겠지만) 것을 알고 있고, 당신은 신을 결코 보지 못하지만 당신이 ‘당신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동안에는 신의 리더십을 인정하고 있다. - P151

사랑의 기술을 배우려고 한다면, 나는 모든 상황에 객관적이기 위해 노력해야 하고 내가 객관성을 잃고 있는 상황에 대해 민감해야 한다. 나는 자아도취적으로 왜곡된 어떤 사람과 그의 행동에 대한 ‘나의‘ 상과, 나의 흥미, 욕구, 공포와는 관계없이 존재하는 나의 현실 사이의 차이점을 파악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 P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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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러키 스타트업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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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다. 무조건적인 상대의 비난에 물린지 오래지만 그래도 재밌다.

박국제는 어떤 미팅에서든 본론보단 기선제압에 용쓰는 사람이었다. 제시간에 갈 수 있음에도 일부러 늦게 도착하기, 회의 내용을 숙지하지 않고 상대방에게재차 설명하도록 만들기, 느슨한 존대에 비아냥거리는 반말을 농담처럼 섞기. 의미 없는 기선제압은 상대방이 어린 여자일수록 은밀해졌다. - P29

- 서경 언니가 조언하길…… 상대에게 큰 실망을 선물하고 싶다면 먼저 기대감을 키워 주래. 기대가 클수록 깨졌을 때 실망도 충격도 커지는 법이라고. 배신하고 싶으면 더충성하고, 절연하고 싶으면 더 친해지고, 헤어지고 싶으면더 사랑하래. 처음엔 이 언니 뭐야, 되게 무섭다 싶었는데, 생각할수록 무슨 말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 P78

용도가 결백하지 않을 땐 ‘크리에이티브‘, ‘린‘, ‘그릿‘등의 단어도 금지해야만 옳았다. 그것들은 원래의 건강한의미를 잃고, 스타트업 대표가 노예에게 산업혁명을 떠넘길때나 쓰이게 된 지 오래였다. 사람을 노예처럼 다루는 자의최후는 노예혁명뿐이라는 걸……. - P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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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이별을 위한 짧은 편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68
페터 한트케 지음, 안장혁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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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그 무엇도 해석하려하지 않았어. 어떤 것은 다른 것의 결과일 뿐이라고 여겼지. 당신도주변 세계가 당신 곁을 스쳐 지나가며 춤을 추도록 내버려두는 타입으로 보여, 당신도 자신을 직접 연루시키기보다는 경험들이 스스로를연출해 보일 수 있도록 배려하는 편이라는 의미야. 당신은 세상이 당신을 위해 마련된 성탄절의 선물 축제인 듯 행동하지. 당신은 포장된 선물 꾸러미가 하나하나 풀어지는 모습을 공손하게 지켜볼 뿐이야. 그 일에 관여하는 것은 무례한 태도가 되겠지. 당신은 사건이 일어나는 대로 그냥 내버려두었다가 무엇인가 당신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면그제야 놀라서 해결하려고 나서지. 그러고는 그 수수께끼 같은 사건에 감탄하면서 그것을 이전에 경험했던 수수께끼와 비교해보기도 하고 말이야.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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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공무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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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대와 비슷한 듯 아닌 듯.

발자크의 소설 중 이 정도 냉소는 겪어본 적이 없는데, 소설 외의 형식이다보니 본색이 드러나는가 싶을 정도로 신랄한 것이 충격적이다. 에밀 졸라가 생각났는데, 해설을 보니 순서가 바뀌었다. 졸라가 발자크의 영향을 받았다.

발자크의 소설을 읽을 때 그의 냉소와 풍자를 유심히 찾아봐야겠다.

살기 위해 봉급이 필요한 자, 자신의 자리를 떠날 자유가 없는 자, 쓸데없이 서류를 뒤적이는 것 외에 할줄 아는 게 없는 자.

철학자라면, 약간 의사라면, 약간 생리학자라면, 약간 작가라면, 약간 행동관찰가라면, 약간 골상학자라면, 약간 자선가라면, 우리 시대 편집증의 산증인인 공무원의 정신상태가 심히 의심스럽다는 것을 인정할 것이다. 제3장에서 ‘백치로 만들다‘라는 동사를 가지고 이미 언급한 것처럼, 몇 년 동안 사무실에서 똑같은 일만하면 그런 불운한 자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이 깃털 포유류가 이 직업으로 인해 백치가 되는 건지 아니면 태어날 때부터 약간 백치였기 때문에 이 직업을 택하는 것인지, 뭐가 더 맞는 건지는 알 수가 없다.

회계사는 기계처럼 또는 의미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처럼 주고받는 것에 능하다. 하는 일이 ‘회계‘ 이다 보니 자신을 화폐처럼 다룰 줄 아는 것이다. 쥐며느리처럼 창구에 딱 붙어 해고 걱정 없이 은신하면 되는 것이다. 행복한 사람을 그리고 싶다면 장관 부처의 금고 창구에 딱 붙어 있는 포동포동하고 반반한 얼굴을 그리면 된다. 이 자들은 얼굴에 주름이 하나도 없다.

이 청년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적 인간이거나 인간 정치 그 자체다. 거의 항상 젊은 사람인데, 장군에부관이 있듯 장관에 보좌관이 있는 것이다. 그의 역할은 밀착전담이다. 그는 장관의 필라테스이다. 장관에게 아첨하고 충언한다. 아니, 충언하기 위해 아첨하고, 아첨하면서 충언하고, 충언 아래 아첨을 감추기도 한다.
새파란 젊은이는 얼굴이 누렇게 뜬 채 장관의 말에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게 몸에 배어 있다. 전혀 이해되지 않는 내용인데 소통을 해야 하니 아는 척을 하느라 연신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당신이 하는 말에 대해서도 무심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하는 척할 것이다. 그들은 ‘그러나‘ ‘하지만 ‘그런데도‘ ‘그러니까 저라면‘ ‘당신 입장이라면 저는 같은 말을 항상 입에 달고 산다. 문장마다 이미 모순어법이 준비된 것이다.

순진하고 순박하며 어떤 환상에 젖어 있는 자다. 하기야 환상 없이 어찌 살 수 있을까? 예술이라는 ‘성난황소‘를 실컷 먹고 우리에게 믿음을 주는 모든 기초 과학을 게걸스럽게먹어 치울 수 있는 힘을 주는 게 이런 환상 아니던가. 환상이란 과도한 믿음이다!

두 종류의 임시직밖에 없다. 가난한 임시직과 부유한 임시직
가난한 임시직은 희망만큼은 부자이다. 자리 하나만 주면 된다. 부유한 임시직은 정신만큼은 가난하다. 아무것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부유한 집안의 이름난 재사라면 관청에 들어가겠다고 그렇게 아등바등하지 않는다.

수집가
관공서 일은 교대 근무를 하는 사람에게 너무나 따분한 일이다. 이 권태를 다른 열정으로 풀게 하는데, 직원들 정신 상태가 완전히 불이 꺼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일까? 행정부마다 수집가나 예술가가 없는 부처가 없다.
정리 정돈을 좋아하고 세심하고 꼼꼼한 수집가는 자신의 승진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생활할 수 있을 만큼만 벌고 취미에 몰두할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있으니 말이다.

국가는 공무원에게 아주 적은 비용을 들이지만, 공무원은 두 배의 실존을 요구받는다. 정부 일과 산업 일 둘 다 공유하면서 해내야 한다. 그 결과 일은 더 힘들어지니 천천히 진행하는 수밖에 없다. 달리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모든 공무원은 사무실에 9시에는 출근하지만, 대화하고 설명하고 토론하고 깃털 펜 다듬고 밀통하다 보면 벌써 오후 4시 반이다. 노동 시간 가운데 50퍼센트는 이렇게 날아간다. 20만을 지불하면 되는 일에 1천만을 지불하는 꼴이다.

적게 받기 때문에 적게 일한다.

두 친구는 평화 시에는 함께 흐르는 강물을 보며 낚시의 기쁨을 누리다가 전쟁 시에는 아주 미세한 차이로 갈라설 수 있다.

프랑스 문학에서 ‘생리학‘ 시리즈가 대유행한 것 1840~1842년 무렵이다. 이 용어는 이중적인 함의를 갖는데, 하나는 내용적인 면이고 하나는 형식적인면이다. 인간 또는 인간 사회를 더는 관념적으로 설명할 수 없을 때, 이제 동물이나 식물의 분류법처럼 인간 또는 인간 유형을 과학적 연구 대상으로 삼아 분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간은 그 나름의 생존방식에 따라 생리적 기질대로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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