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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ADHD의 슬픔
정지음 지음 / 민음사 / 2021년 6월
평점 :
어차피 인간들은 다들 미쳤다. 작가가 책에서도 언급했듯이 ADHD가 아닌 사람들을 다 정상범주에 넣어버리는 것은 지나친 과오다.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조금 불편했던 점은 ‘정상’과 ‘비정상’이라는 표현 자체다. 그렇다고 이를 ADHD와 비(非)ADHD라고 구분하기에는 억지스럽지만, 내가 보기엔 ADHD도 보통의 삶에 안착해 있는 정상인이다. 인격을 재단하는 것은 누구도 함부로 시도해선 안 되는 영역이다. ADHD를 이해했다느니 응원한다느니 같은 감상은 주제넘어 보인다. 그 자체로 인정하면 될 일이다. 세상엔 우리가 반대하고 싸워야 할 일(차별? 편견? 격차?)이 무수한데, 타인의 산만한 행동 같은 것들을 지탄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내가 ADHD가 아니더라도, 나 자신을 성찰하거나, 보듬어 줄 수 있는 책이다. 거기다 유난히 두드러지는 재능인 ‘글발’ 덕에 통렬하게 유쾌하다. 누구에게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우리의 자기반성을 위해서든, 자존감을 위해서든.
세상에는 ‘네가 무엇이든 소중하고 아름답다‘라는 식의 낙관이 유행했지만 내게 적합한 안심은 아니었다. - P10
나는 차라리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상투적 표현을 감투처럼 뒤집어쓰기로 했다. 스스로를 바꾸자 와닿지 않았던 충고들도 전부 새로워졌다. "괜찮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너무 흔해서 모욕적이기까지 했던 위로들이 생동감을 획득하기 시작했다. 괜찮아지거나 걱정이 사라진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괜찮아지지 않을까? 이렇게까지 걱정할 일일까?‘ 내게 반복해 물어볼 순 있었다. - P18
심리 테스트를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스스로를 모르니통계로 정의되길 갈망하는 것이다. - P20
짝사랑은 슬픈 것이지만 상호 혐오라면 해피 엔딩이라고 본다. - P24
나는 홀로 있을 기회로부터 도망쳤어야 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요양이 아니라 고립이었다. 전에는 ‘혼자‘라고 느껴도 군중 속의 고독이었는데 이젠 진짜 물리적으로 혼자인 거였다. 내가 생각보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못 보게 되니 그리워진 심보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외로웠다. 지루했고 고루했고 기약이 없었다. - P46
소주 기준 두 병을 넘기면 자기 고백 욕구와 과잉된 감성이 흔든 콜라처럼 터지곤 했다. - P58
나는 장래희망이 가난뱅이인 사람처럼 돈을 쓴다. 저축도 없고 저축없이 승승장구할 묘수도 없으면서 무모하게 지출한다. - P78
공동생활에서 끊기는 건 늘 나의 인내심뿐이었다. 그러다 보면 인간관계도 끊기게 되니까 나는 혼자 사는 게 나았다. 실제로 혼자 살고 있는 지금 부모님과 자매들을 훨씬 더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은 변하지 않았지만 그들을 감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현실이 변했다. 어떤 사랑은 거리감에서 온다는 걸, 아니 거리감에서만 온다는 걸 독립으로 배운 셈이다. - P86
누군가 이토록 예민하다는 건, 그가 늘 화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이다. - P88
누군가 내게 "넌 정말 싸가지가 없어."라고 하면, 나는 슬퍼하는 대신 이렇게 생각한다. "한 발 늦었어요. 그 사실은 29년 전의 제가 먼저 발견했답니다. 아직 저의 고향이 엄마 배 속이던 시절에 말이지요." 그러면 욕을 먹고도 윙크할 수 있는 기분이 된다. 약간의 유머를 더하면 변형도 가능했다. "저는 싸가지만 없는 게 아니에요. 집중력도 없고 기억력도 없지요. 두 사실을 조합하면 님이 지금 하는 말에 집중하고 오래 기억할 수도 없다는 얘기랍니다." - P90
행복을 정의하지 말고 행복해지려는 노력이 뭔지 정의하자는 뜻이다. - P100
어쩌면 난 성숙함 자체보단 ‘성숙해지고 있다‘라는 미래지향적 환상에 집착 중인지도 모른다. - P151
흔한 말로 가족을 둥지라고 한다. 흔한 표현은 싫지만 아직 ‘둥지‘만큼 멋진 두 글자를 찾지는 못했다. 엄마 아빠는서른을 앞둔 내게 아직도 훌륭한 둥지였고, 때문에 난 독립된 세계를 홀로 꾸리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 P161
내가 단순히 흥미를 위해 고양이를 들이는 건 아닐까? 고양이가 계속 내 흥미를 끌어 주지 못하면 내가 맷돌이를 짐짝처럼 여기게 되지 않을까? 맷돌이가 갑자기 죽으면 나는 어떡하지? 못난 생각들이 반죽처럼 뒤섞였고 어떤 빵으로도 구워지지 않았다. 맷돌이를 생각하면서도 실은 내 처지만 첨예하게 궁리하고 있었으니, 그때까지의 나는 이타적이고 싶은 이기적인 사람에 불과했다. - P167
많은 인연을 떠나보내며 느낀 건 사람에 대한 기대를 거두어야 사람들을 사랑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 P168
그러나 같이 산다는 건 매일매일 환상을 깨부수겠단 결심이어서, 나는 곧 맷돌이의 잔악한 두 얼굴을마주하게 되었다. - P173
그래서 타인은 지옥이고 내가 선의의 피해자였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아니다. 피해자는 역시 내 지인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슬프게도, 수없이 지적당해 외울 지경인 스무 가지 증언들은 거의 다 사실이기 때문이다. 나는 되갚지 못할 남의 인내를 마구 끌어다 쓰는 게 감정적 사채 빚과 같다는 걸 몰랐다. 관계라는 게 그렇다. 상대방이 양보할수록 내 삶은 편안해진다. 나의 패착은 편안함을 느낄 때마다 착취적으로 굴었다는 데 있었다. 한 개를 내어 주면 두 개를 달라고 하고, 두 개를 받아 낸 후엔 세 개를 취했다. "멀쩡한 네가 나 좀 참아줘." 이런 바람을 은연중에 보였는지도 모른다. - P209
그러면 나는 누구의 사랑과 이해를 받아야 할까? 대체누가 이다지도 엉망인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 줄까. 심지어 내게 이용되길 원하면서도 무보수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했다. 부족한 나를 발전시키려 들지 않고 오히려 보존하려 애써 주는 것, 그게 바로 내가 원하는 완전무결의 상냥함이다. 모든 조건은 불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적합한 사람 하나를 알긴 알았다. 그는 본인의 결심만 선다면 요구받은 것보다 내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다. 나를 최고 등급의 행복으로 적시고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위로와 응원을 퍼부어 줄 수도 있다. 그가 나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일은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렇게 멋진 사람이 지금껏 나를 외면했던 이유는, 내가 그를 원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가 가치 있는사람이라는 생각 자체를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오히려 사는 내내 그 애를 배척하고 흠잡아 오지 않았던가? 미안한 마음을 담아, 들어도 들어도 직접 발음하긴 어색한 이름을 불러 본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지만 명치에무언가 차오르는 느낌이 든다.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종류의유대감과 충족감이다. 내가 부른 이는 나다. 결국 나에겐 나만이 유효하고 고유하다. 나는 너무 나답게 아름다워서 모든 타인에게 해석에 대한 실패를 주었다. - P223
수치스러울 때는 수치에 솔직해지는 게 낫다. - P234
혹시 열등감으로 똘똘 뭉쳐 자존감까지 결여된 주제에 음침하게 관종요소를 갖춘 이들이 ADHD를 싫어한다면, 그건 놈들이 우릴 부러워한다는 뜻이다. 그런 이들과는 상종을 말고 멀리하자. - P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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