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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원이 되고 싶어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10월
평점 :
우리 시대를 풍미했던 하위문화들을 기록하기 위해 반드시 보존해야 할 가치가 있는 책.
다만 몇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들이 있다. ‘나’의 살인미수는 어떻게 용서할 수 있을까? 태리의 공갈 협박죄는 그가 살인미수 피해자이기 때문에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희영은 정말 친구들을 조종해 이용해 먹는 아이인가. 윤도는 그저 호색한에 불과했나.
나는 이 책을 사자마자 읽고 바로 알라딘 중고로 팔아 버렸다. 박상영의 책을 모두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지만, 이 책은 잘 모르겠다…
그때, 그 눈물의 시간을 통해 무늬는 진심이라는 감정이, 사랑이라고 믿었던 어떤 형체가 실은 매우 연약하다는 진리를 배웠다. 나미에언니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경했고 무늬는 결심했다. 할 수 있는 한빨리 서울로 갈 것이라고. 그저 부모님만의 기대에 불과했던 특목고, 그러니까 서울에 있는 외고 진학이 이제는 무늬 본인에게 더 간절한꿈이 되었다. - P85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모든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모조리 쏟아내 죄책감을 떨쳐내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해결할 수 없는 문제 앞에서 나는 언제나 침묵해버리는 사람이니까. 모든 것을 덮어버리고, 상처를 썩혀버리는 종류의 사람이니까. 그것이 내 삶을 좀먹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었지만, 내 유일한 삶의 방식을 바꿀 수는 없었다. - P240
윤도는 쑥스러운지, 아니면 정곡 찔려 기분이 상한건지 별다른대답을 하지 않고 묵묵히 화면을 바라보았다. 영화가 다 끝날 때쯤 윤도가 내게 말했다. "우리도 같이 이과수폭포에 가자." 윤도야,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하는 말인 거니. 윤도는 나를 목마른 사람처럼 만든다. 자꾸만 기대를 하게 만든다. 보고 있어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처럼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윤도는 내게 좋은 사람일까.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게 마땅할까. 믿지 않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나는 자꾸만 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고 싶어진다. 번번이 실망하게 될 걸 알면서도 바보같이 또 기대를 하고 마는 나를 더 미워하게 된다. - P263
생각해보니 윤도와 태리를 신경쓰지 않기위해 공부로 도피한 결과 같았다. 어쩌면 나는 그런 종류의 인간일지도 몰랐다. 커다란 고민에 맞닥뜨렸을 때 충실히 고민하는 대신, 일상의 과업들로 도망쳐버리는 사람. 그렇게 함으로써 무너져내리는 마음을 다잡고 기어이 모든 감정을 무감각하게 만들어버리는 사람. 바꿔말하자면, 한국의 시험이라는 것은 무감각한 기계가 될수록 유리하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제야 나는 실연의 아픔을 겪은 뒤 전교 1등을계속 유지하는 무늬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했다. - P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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