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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아이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
도리스 레싱 지음, 정덕애 옮김 / 민음사 / 1999년 6월
평점 :
아이의 폭력성에 대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기보다는 폭력적인 아이와 평안한 가정 중에서 선택의 갈등을 겪는 여자의 이야기이다. 초반엔 ‘벤’이 어떻게 될까 궁금했지만, 이 소설에서는 결국 ‘헤리엇’은 어떤 기분으로 남겨지게 될까를 고민하게 하며 결말을 맞는다.
헤리엇과 데이비드는 직장 파티에서 처음 만나 서로에게 반해 런던 외곽의 도시에서 빅토리아풍의 3층 저택에 신혼을 차린다. 수입이 적은 편은 아니었지만, 데이비드의 아버지 제임스의 도움으로 집을 마련했고, 이혼해 각각 재혼한 배우자를 두고 있는 데이비드의 아버지와 어머니 몰리의 식구들을 비롯해 헤리엇의 어머니 도로시, 사촌들까지 모여 대저택에서 미래를 계획하며 풍성한 파티를 즐긴다. 많은 아이를 낳을 계획으로 루크, 헬렌, 제인, 폴 등의 자녀를 출산하고, 제임스의 경제력과 도로시의 양육을 토대로 양가의 지원을 받으며 행복한 가정을 이루지만, 폭력적인 성향의 다섯째 아이 벤을 낳으면서 가정의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태생부터 힘이 세고 폭력적인 성향이 강했던 벤은 다른 형제들을 위협하고, 강아지를 목 졸라 죽이는 등 비정상적이고 통제 불능한 아이이다. 벤에 대한 공포심과 두려움은 로버트 부부와 친지들과의 왕래를 드물게 만들고, 헤리엇은 벤을 낳은 엄마라는 비난의 시선을 감당한다. 다른 가족들은 벤을 로버트 가와 분리 시키기로 합의하고 몰리의 남편 프레데릭이 나서 벤을 요양소로 보내버린다. 하지만 헤리엇은 벤을 보내고 난 후 계속해서 죄책감과 죄의식에 시달리다 결국 몰리를 통해 벤의 요양소를 찾아내고, 요양소에서 구속복에 묶여 진정제를 투약받고 정신이 나가 있는 벤을 보고는 기겁을 하고 그를 구출해낸다. 벤이 없는 동안 다시 가정의 평화가 찾아오는 듯했던 로버트가의 분위기는 다시 삭막하게 가라앉고, 헤리엇은 벤을 낳은 여자라는 비난과 동시에 벤을 요양소에서 데려와 집안을 파탄 낸 여자라고 질타를 받는다. 헤리엇도 가정의 화목과 벤을 두고 선택의 저울질을 해보지만 벤에 대한 죄책감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한다. 루크는 제임스의 집으로 떠나고, 헬렌은 몰리와 프레더릭의 집으로 떠나고, 제인은 도로시와 함께 로버트 가를 떠난다. 벤으로 인해 영아기에 충분한 관심을 받지 못해 정서적으로 불안한 폴은 벤을 두려워하며 가장 오랫동안 헤리엇과 데이비드와 함께한다. 그러다 우연히 벤은 정원 일을 도와주러 온 날품팔이 존을 따르고 신뢰하게 된다. 헤리엇은 존에게 대가를 치르며 벤과 함께 시간을 보내달라 부탁하고, 벤은 저학년까지 존과 함께 시간을 보내지만, 존도 곧 다른 일을 찾아 로버트의 가족을 떠난다. 헤리엇은 벤의 학교생활을 염려했지만, 벤은 존과 헤어진 후 다른 비행 청소년들과 함께 어울리며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킨다. 오랜만에 로버트 부부의 집에 모인 가족 모임에서 폴도 결국 제임스가 데려가기로 하고, 로버트 부부는 자신들의 꿈과 함께 빅토리아풍의 저택을 팔기로 결정한다.
헤리엇이 잘못을 했을까. 그녀는 왜 죄의식에 시달려야 했을까. 헤리엇의 선택과 그녀가 처하게 된 주변 상황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점들이 많았다. 어떤 선택이든 주변의 인물들은 ‘벤’이라는 사태에 대한 책임과 비난을 헤리엇에게 돌리고 있는 것이 모순이다. 모성의 책임이 ‘벤’이라는 존재의 탄생에 대한 비난의 수단이었고, ‘벤’을 선택한 그 모성의 책임은 또 역설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고 보면 결국 모성이라는 것은 어머니를 억압하고 비난하기 편리하게 만든 개념인지도 모른다.
벤에 대해서는 따로 생각해 볼 수 있게, <세상 속의 벤>이 빨리 번역되어 나오길 바란다.
그가 루크의 머리를 쓰다듬고 자신에게 키스를 하기 위해수그릴 때, 해리엇은 그의 강렬한 소유욕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좋아했고 이해했다. 왜냐하면 그가 소유하고자 하는 것이 자신이나 아기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녀와 그의 행복. - P26
그럴 만한 돈은 없었지만 제임스가 돈을 주겠다고, 해리엇이 나아질 때까지만 도와주겠다고했다. 제임스답지 않은 퉁명스러운 어조로 그는 해리엇이 이런인생을 선택했으니 다른 사람들이 그 값을 대신 치러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선언했다. - P53
하지만 벤은 자기도 고통받는 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까? 그 애는 고통을 받고 있는가? 그 애는 과연 무엇일까? - P91
그 애는 다른 아이들을, 특히 루크와 헬렌을 항상 쳐다보았다. 그들이 어떻게 움직이며 앉고 서고 하는지를 연구했다. 그들이 먹는 방식도 그대로 따라했다. 그 애는 이 두 나이 든 아이들이 제인보다 사회성이 더 발달했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는 폴도 완전히 무시했다. 애들이 텔레비전을 볼 때 그 애는 그들 근처에 웅크리고 앉아 화면을 보다가 그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냐하면 어떤 반응이 적절한 것인지 알 필요가 있었기때문이다. 그들이 웃으면 잠시 후에 그 애는 딱딱하고 어색하게들리는 커다란 웃음소리를 더했다. 그 애에게 즐거운 순간에 자연스러운 것이 있다면 온 이를 드러내면서 적대적으로 웃는 미소였다. 그 웃음은 정말 적대적으로 보였다. 그들이 뭔가 흥분된 순간에 가만히 관심을 집중하느라 고요해지면 그 애도 그들처럼 자기의 근육을 긴장시키고 화면에 빨려드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 그 애의 눈은 그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 P93
그녀는 전반적으로 안도하게 되었고 자신이 어떻게 그러한긴장을 그렇게 오래 견뎌냈는지 믿을 수 없었지만 그래도 자신의 마음으로부터 벤을 추방할 수는 없었다. 그녀가 벤에 대해생각할 때 그건 사랑이나 온정의 마음에서가 아니었다. 그녀는자기 내부에서 정상적인 감정의 불티 하나도 찾을 수 없는 자신이 싫었다. 오히려 죄의식과 공포감으로 그녀는 밤새 잘 수 없었다. 감추려고 애썼지만 데이비드는 그녀가 깨어 있는 것을 알았다. - P105
「그래요, 로바트 부인. 그 말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시겠어요? 우선 저는 이것이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그리고 또한 이런 일이 희귀한 일도 아니라는 사실도요. 우리가 복권 추첨에서 무엇이 나올지를 선택할 수 없듯이 아기를갖는 일도 마찬가지랍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간에 우리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당신이 해야 할 첫번째 일은 자신을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 P139
「전 제 자신을 비난하지 않아요」 해리엇이 말했다. 「당신이그 말을 믿기를 기대하지 않지만요. 하지만 이건 정말 불쾌한농담이에요. 난 벤이 태어난 이후 줄곧 벤 때문에 비난을 받아온 것 같아요. 난 죄인처럼 느껴요. 사람들이 내가 죄인처럼 느끼도록 만들어요」이렇게 불평하는 동안 ― 신랄했지만 해리엇은 목소리를 낮출 수 없었다― 쓰라린 세월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길리 박사는 책상에 앉아 쳐다보았다. 이건 정말희한해요. 이전에, 아무도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네 명의 정상적이고 똑똑해 보이는 멋진 아이들을 갖다니 넌 정말 똑똑하구나! 그 애들은 모두 네 덕분이야. 훌륭한 일을 해냈어, 해리엇!〉이라고 말한 사람은 없었어요. 아무도 이제까지 그런 말을안했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아요? 하지만 벤에 대해서는 ―전 그저 죄인이죠!」 - P140
불쌍한 데이비드…………. 항상 그런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해리엇은 알았다. 때때로 불쌍한 해리엇, 그러나 그 경우는 드물었다. 대개는 항상 무책임한 해리엇, 이기적인 해리엇, 미친 해리엇………… - P158
「우린 애가 없어, 해리엇. 아니, 나는 애가 없어. 당신은 애가 하나 있지」 - P169
두루두루 둘러봐. 만약 내가 그를 죽게 내버려두었다면 그럼우리 모두가,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었는데. 하지만 난 그럴 수 없었고, 그래서……..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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