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그 파란의 역사와 생명력
백낙청 외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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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역사적인 내용을 조금 참고 넘기면 현안들을 가지고 흥미롭게 토론하는 걸 읽을 수 있다. 특히 표준어의 서울 중심의 편향성 뿐만 아니라 민주적 개념이 부족한 민족주의 성향을 띤다는 지적이 인상적이다.

표준어 개념은 두가지를 구별해서 봐야 합니다. 서울과 지방의 대결, 그리고 국가와 민간의 대립입니다. 서울과 지방의 문제를 보면요, 1935년 당시에 민간 국어운동을 주도한 조선어학회에서 표준어사정위원회를 구성하고 1만여개의 단어를 심의해서 그중 6천여개를표준어로 정합니다. 그 위원이 73명인데 과반인 37명이 서울과 경기출신 위원이었고, 표준어로 할지 말지를 결정할 권한을 이들에게만줬다고 해요. 나머지 지방 출신 위원들은 이의제기만 할 수 있었고요. 표준어 제도를 도입하는 과정에서 이미 서울중심의식이 반영돼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P63

언문일치가 꼭 입말과 문장을 일치하자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셨는데 T. S. 엘리엇의 유명한 말이 있어요. "당신이 말하는 그대로글을 쓰면 아무도 읽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쓰는 그대로 말을 하면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 P91

1990년대에 지방자치제가 시행되면서 그 반작용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투리가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봅니다. 그이후로 지역에 따라 사투리 교육도 이루어지죠. 저는 언어규범화의가장 큰 문제가 사투리에 모멸감을 안긴 것이라 봅니다. 사투리 쓰면창피한 것이고 전근대적인 것이라고 한 것…. 중앙집권이 조금씩 약화되면서 그런 모멸감도 줄어들고 있다는 점 역시 표준어운동이 결국 국가통제의 한 수단으로 활용되었음을 반증하는 사례가 아닐까합니다. 그런데 이미 전국적으로 전통 사투리가 많이 소멸되어버렸거든요. 언어다양성을 위해서도 남아 있는 전통 사투리를 보존하는노력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 P96

국문연구소에서 정한 표기법은 교과서나 사전 등의 표준을 정하는 것이지 일반에서 편지 등을 쓸 때 편리함을 좇아 달리 쓰는 것까지 국문연구소가 상관할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피력합니다. 저는 이런 의견이 연구보고서에 기록된것을 보면서, 표기법과 같은 규범의 적용범위를 그 당시에도 많이 고민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결국 글을 쓰는 사람은 누구에게 보일 것인지를 생각하며 쓰는 것이고, 언어규범은 공적인 글쓰기에서적용되는, 말 그대로 ‘공적인‘ ‘규범‘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해보면, 선생님 말씀처럼 규범의 적용범위를 제한하는 것은 필요하리라 생각합니다. - P139

하지만 국어원에 외래어표기법을개정하라는 요구는 성립이 안 된다고 보는데, 규정의 가장 큰 문제는규정을 바꿀 때 생기기 때문입니다. 있는 걸 바꿀 때 혼란이 훨씬 크기 때문에 국어원에서도 지금 표기법을 유지하려고 하죠. - P141

민족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차원보다 민주사회를 유지하는 차원에서 국어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정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을 겁니다. 이러한 정책은 향후 이주민의 증가로 이들의 집단거주지가 확대되는 상황에 대응하는 면도 있는데, 다문화사회로의 진입 국면에서세계화와 관련해 우리 사회의 공용어 문제에 어떻게 접근할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 P152

대개의 대학생들이 왜 욕을 안 쓰냐면 이 언어공동체가 그렇다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은 욕을 사용하는 공동체와 그렇지않은 공동체를 구별하거든요. 그래서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해도 사투리처럼 욕을 다시 사용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중고등학생들이욕을 하는 이유는 또래집단에서 그걸 일상어처럼 쓰기 때문이에요.
세대단절이라고도 이야기하는데, 어른들과 단절하려는 작용의 하나로 청소년기에 욕을 짙게 사용한다는 거죠. 그래서 지나친 언어적 간섭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역시 국가 전체를하나의 언어공동체로 보기 때문에 발생한 일로 생각돼요.
이와 관련해서 언어소멸의 문제에 대해서도 얘기해볼게요. 요즘 제주방언을 제주어라고 부르면서 제주방언의 소멸에 대한 얘길 많이 합니다. 대표적인 부분이 아래아 발음이죠. 젊은 사람들은 거의발음을 못하지만 저희 윗세대 어른들은 많이 씁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자꾸 아래아를 발음해야 한다고 이야길 하고요. 아래아를 안 쓰면제주도사람이 아니라고, 모멸감을 주는 방향으로 지나친 간섭이 이루어지는 거죠. 하지만 그럴수록 젊은 사람들은 스스로 제주도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더 커져요. 서양의 언어소멸에 대한 학자들 사이의 유명한 말이 있죠. "언어소멸은 젊은 사람들의 입에서생기는 게 아니라 노인들의 귀에서 생긴다." - P156

세계적으로 여러 사람이 쓰는 언어인데 동시에 각 지역의 영어가 독자성을 주장하고 있어요. 그걸로는 문학창작도 잘 안되죠. 지역적으로 한정된 독자성을 유지 못하면 언어의 창조력도 쇠퇴한다고 봐요. 영어의 위세에는 그런 양면이있다고 생각합니다. - P159

"언어는 민중 전체가 의식주보다도 평등하게 가지는최대의 문화물" (이태준 『문장강화』, 창비 2005, 95면)이라고 한 이태준의 말과 연관 지을 수 있겠다는 말씀을 드린 바 있습니다. 이처럼 언어라는 건 오늘을 사는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계속 새롭게 만들어나가는 측면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언어교육을 통해 어떤 말은써도 되고 어떤 말은 쓰면 안 된다는 식으로 바른말을 규정하고 가르치는 것을 경계합니다.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언어라는 공유지의영역은 경계가 명료하진 않은 상태죠. 그래서 써야 할 말과 쓰지 말아야 할 말을 인위적으로 구분해내기보다는 우리말의 원형적인 구조와 내용을 습득하면서 우리가 공유하는 언어의 영역을 확장해서볼 수 있는 안목을 기르는 게 언어교육에서 중요합니다. - P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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