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고 기다리던 나의 롤 모델 박웅현 작가님의 책이 출판되었다. 바로 구매했다. <책은 도끼다>를 읽고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두근거려 살포시 책을 덮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박웅현 작가와 같이 삶을 아름답고 고귀하게 바라보는 그 통찰력이 부러웠고 어린아이와 같은 그 시선이 질투가 났다. 알았으면 행해야 한다. 내가 깨달은 바를 삶 속에서 살아낼 때 내가 새긴 그 문장을 비로소 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p.8이 흔적을 엮어서 내는 것은 책 속 한 문장이, 한 편의 시가 세상과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다. 넘어졌다가도 일어나 다시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 때문이다. 오늘을 견디고 버틸 힘이 되어 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p.9<문장과 순간>이라는 책 제목 그대로 작가가 책 속에서 발견한 문장으로 혹은 삶의 한순간에 느낀 감정으로 여백이 느슨하게 채워져 있다.산문으로 된 책이기는 하지만 획기적인 형태의 새로운 자율시와 같은 느낌이 강하다. 고정된 틀이 없는 산문 더하기 시.<책은 도끼다>에서는 인문 강독회의 느낌을 그대로 살려서 청중에게 전달하듯이, 독자에게 꼭꼭 씹어서 소화까지 시켜주었다면 <문장과 순간>은 작가 자신의 감정과 통찰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있다. 그동안 독자들이 관찰과 통찰을 연습해서 성숙해져 있다는 전제하에서 글을 쓴 것 같다. '내가 책 속의 문장에서 이렇게 느꼈습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이렇게 바라볼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한 번 바라보는 건 어떻습니까? ' 하고 권유하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명백한 사실이 한 가지 있다. 부조리 없는 인생은 없다는 것. 인간은 그저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부조리를 견딜 뿐이다.한탄하지 말고 부러워하지 말고, 그저 내가 해야 할 일상의 작은 의무들을 수행하는 것, 그것이 부조리하고 불합리한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내 조건과 남의 조건을 비교하며 이러쿵저러쿵 따지지 말고 내 할 일을 묵묵히 수행하는 삶의 자세.p. 49,51책을 읽다 보면 나의 생각과 딱 들어맞는 글을 볼 때가 있다. 반갑다. 나는 <월든>을 읽으면서 '누구나 새벽을 맞이할 수 있는 건 아니다'라는 한 구절에 얼어붙었다. 역시 책은 도끼다. <월든>을 읽기 전, 나에게 새벽이란 단어는 없었다. 아침이 하루의 시작이었다. 나도 새벽을 맞이하고 싶었다. 아침이 내 허락도 없이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새벽에게 아침을 안내하도록 하고 싶었다.어스름한 새벽을 보고 차가운 새벽 공기를 느끼고 숨을 들이쉰다. 느끼는 것과 체험하는 게 같다. 들이쉰 공기는 차갑다. 책상에 앉아 커피를 한잔하노라면 어두운 하늘에서 빛이 비집고 나온다. 비집어 뒤틀고 나온다. 어느 순간 그 빛은 급속히 사방으로 번져나가 새벽 공기를 소멸시키고 만다. 소멸과 동시에 탁하던 나뭇잎의 초록색은 윤기를 발하기 시작한다.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다. 계절에 딱 맞는 책 한 권 <문장과 순간> 으로 각자의 문장을 찾아 그 순간을 즐겨보시길 바란다.
이 작품의 줄거리는 지극히 단순하다. 주인공인 '나'는 병약하게 태어나서 평생을 병상에서 지내야만 하는 '마리아'라는 여인을 만나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이다. 평범한 신분의 나는 어느 날 아버지와 함께 후작 부인의 집을 방문하게 되고, 후작에게는 백작 지위를 가진 '마리아'라는 딸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만났던 그녀는 맥없이 그저 누워만 있었다.마리아의 생일날 그녀는 다섯 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하나씩 동생들에게 나누어 준다.네 번째 반지를 막내에게 주고 반지 하나가 더 남았다. '나'도 그 반지를 받고 싶었다. 나만 반지를 받지 못해서 어린 마음에 서운해서 가슴이 먹먹해졌다. 그런 '나'를 눈치채고 그녀는 마지막 반지를 빼서 나에게 준다.이 반지는 너희들과 헤어질 때 내가 가지고 가려던 거야. 하지만 네가 지니고 있으면서 세상에 없는 나를 생각해 주는 편이 더 좋겠어. 반지에 새겨진 글을 봐.'주님의 뜻대로'독일인의 사랑 p.27그러나 나는 반지를 받지 않고 마리아에게 그냥 가지고 있으라고 한다. 이 반지는 날 주지 말고 그냥 그대로 가지고 있어. 네 것은 모두 내 것이니까.독일인의 사랑 p.28여러 해가 지났다. 후작 부인도 죽고 나는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마리아가 하인을 통해서 다시 만나고 싶다는 연락을 취해왔고 둘은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다.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대화는 언어로 표현된 아름다운 시와 같고 한층 더 깊은 사고의 결과로 대화의 수준도 깊은 내면의 진리와 같이 느껴진다.그런데 왜 나를 사랑하지?왜냐고? 마리아! 어린아이에게 왜 태어났냐고 물어봐. 들에 핀 꽃에게 왜 피었냐고 물어봐. 태양에게 왜 햇빛을 비추냐고 물어봐. 내가 너를 사랑하는 건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야. p.103그녀는 떠났다. 의사는 마리아가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를 나에게 전해준다.편지 속에는 내가 그녀에게 돌려주었던 반지가 들어있었다. '주님의 뜻대로'이렇게 책은 끝이 나지만 많은 여운을 남긴다. 의사는 '나'를 마치 자신을 보는 것과 같았으리라.마리아를 위해서 자신과 같이 떠나주기를 원했지만 마리아는 나와 함께 사랑을 유지하기를 원했다.의사도 내적 갈등이 심했을 것이다. 자신이 사랑했던 마리아의 어머니도 지금 마리아처럼 떠난 자신을 그리워하며 괴로워했을 테니깐.마리아의 어머니에게서 이루지 못한 사랑을 천사와 같은 마리아에게 마지막까지 쏟아부었다.소설이지만 전혀 있을 수 없는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 애잔함과 의사에 대한 안타까움도 더해진다.내가 떠나기를 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마리아에게 남아있길 원하는 괴로움을 혼자 다 감당하였으리라.마리아를 볼 때마다 눈물을 감추어야 했을 것이고, 매일매일이 행복이라기보다는 조마조마해 하면서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었을 것이다.한 번 도려낸 마음을 아물기도 전에 다시 또 한 번 더 도려내야 하는 그 심정이 과연 어떠했을까.자신이 그만큼 고통을 겪었기에 나에게는 잘 견디고 공허한 슬픔으로 세월을 보내지 말라고 진심을 전해주는 게 아닐까.너무나 얇은 책이라 빨리 읽고 말아야지 했는데 그게 아닌 게 되어버렸다. 이 여운이 며칠은 나를 사로잡아 묶어둘 것 같다.
동물 농장에서 존경받던 메이저 영감이 동물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게 된다.두 발로 걷는 것은 모두 우리의 적입니다.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모두 우리의 친구입니다. 인간에 맞서 싸우는 데엔 우리 동물들이 결코 인간을 닮아서는 안 된다는 점도 기억하시오. 여러분이 그른 정복하더라도 절대로 그의 악한 짓거리들을 모방해선 안 됩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집 안에 살아선 안 되며 침대에서 자도 안 되고 옷을 입거나 술 마시고 담배 피우고 돈을 만져서도 안 됩니다. 장사에 손을 대서도 안돼요. 인간의 모든 습관은 사악합니다. 동물은 어느 누구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됩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합니다.동물 농장 p.14사흘 후, 늙은 메이저 영감은 숨을 거두고 동물들 중에서 제일 똑똑한 돼지들이 지도자가 된다.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단연코 뛰어나며 그중에서도 스퀼러는 언변이 뛰어나기로 유명하다.농장 주인 존즈 씨가 술에 취해 먹을 것을 주지 않자, 동물들은 얼떨결에 반란을 일으켰고 존즈 씨와 부인은 쫓겨난다. 메이너 농장은 동물들의 차지가 되었다.스노볼은 메이너 농장을 <동물농장>이란 이름으로 바꾸었고 헛간 벽에 큼직하게 일곱 계명을 써 놓았다.일곱 계명1. 무엇이건 두 발로 걷는 것은 적이다.2. 무엇이건 네 발로 걷거나 날개를 가진 것은 친구이다.3.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4.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5.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선 안 된다.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동물 농장 p.26이 일곱 계명은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 둘씩 변색되어 간다돼지들은 처음 그들이 이루고자했던 평등한 사회를 점차 퇴색시키고만다. 누구나 원했던 동물들의 동물농장이 더 이상 그 누구도 원치 않는 동물농장이 되어 버린다. 세월이 흘러 남은 동물들도 죽게되면 불평등한 사회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이다.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떻게 살아야할지 고민해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