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루지 - 생각의 역사를 뒤집는 기막힌 발견
개리 마커스 지음, 최호영 옮김 / 갤리온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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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진화 심리학자 개리 마커스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겪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인간에게 나타나는 클루지를 쉽게 설명해 준다. 클루지란 어떤 문제에 대한 서툴거나 세련되지 않은 해결책을 뜻한다.

책을 읽는 내내 지금까지 도통 이해가 되지 않던 배우자나 친구의 행동들이 쉽게 이해가 된다. 그래서 심리학을 공부해 본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러워지나 보다. 이 책을 추천해 준 자청(역행자의 저자)도 화가 날 법하지만 왜 그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지를 이해하게 돼서 화낼 일이 거의 없다고 한다. 책을 읽어보니 그의 말에 공감이 간다. 나도 화낼 일이 급격히 줄어들 것 같다. '인간은 그렇게 타고났다' 그 사람만 그런 게 아니다란 걸 알게 되었다. 인간으로 진화는 했으나 고대 선조들의 DNA는 아직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다. 그러나 완벽하지 않은 클루지한 상태로.

다이어트를 할 때, 왜 대놓고 종종 실패를 하게 되는가?

굳게 마음을 먹는다고 해서 쉽게 살을 뺄 수 없는 타당한 근거로 우리에게 위로 아닌 위로(?)를 해준다.

고대 수렵, 채집 시대에는 먹을 게 풍족하지 않았다. 게다가 냉장고도 없었기 때문에 저장이 불가능하다.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어야 하는 것이다. 짐승 사냥에 성공하게 되면 어차피 저장할 수도 없으니 고기를 마음껏 먹고 칼로리 높은 음식은 당연히 먹어둬야 한다. 일단은 먹어두고 보는 거다. 이런 DNA가 아직 우리 몸속에 내재되어 있으니 아무리 다이어트 중이라 하더라도 눈앞에 보이는 음식을 마다할 수는 없다.

p.53
열쇠를 일상적이지 않은 장소에 놓으면 최근 기억 (가장 최근에 열쇠를 놓은 장소)과 빈번한 기억(보통 열쇠를 놓는 장소)이 갈등을 일으키게 되어 열쇠가 어디에 있는지를 잊게 될 수 있다.

p.54
최근 것과 빈번한 것의 갈등은 인간에게 거의 보편적인 또 다른 경험도 설명해 준다. 사람들은 흔히 퇴근하면서 식품점에 들러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어느새 그것을 완전히 잊은 채, 그냥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곤 한다. 이것은 빈번한 행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기)이 최근 목표(우유를 사 오라는 아내나 남편의 부탁)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 이상은 경험해 본 사례다. 잘 보관해둔다고 다른 장소에 둔 것이 오히려 생각이 나지 않아서 당황했던 경험, 그만큼 반복해서 집에 올 때 우유를 사 오라고 했건만 잊고 안 사 와서 화를 냈던 경험. 이런 경험들 하나하나가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이 되어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행동들이 깔끔하게 해결이 된다. 그러니 정작 우리가 살아가면서 화를 냈던 경험들이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그러워지는 순간이다.

줄을 안 친 페이지가 없을 정도로 이 책 한 권이면 삶을 조금은 더 맘 편히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현대사회는 수많은 스트레스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데 많은 부분 덜어낼 수 있다.

회사를 다니면서 이런 일도 정말 많지 않은가?

p.77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집안일을 함께 하기이든 학술논문의 공동 집필이든 거의 모든 협동 작업에서 주관적으로 지각된 각 개인의 공헌의 합은 실제로 수행된 작업의 총량을 초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잘 기억한다. 때문에 누구나(심지어 요령만 피우던 게으름뱅이도)다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회사 생활에서는 공동으로 하는 프로젝트도 많다고 들었다. 그럴 경우에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함께 일을 한다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지 않을까?

이외에도 많은 사례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인간관계가 어려운 사람들, 상대방이 혹은 나 자신이 좀체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 믿고 싶은 것을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이유, 내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더 까다롭게 따지는 이유 등 모두들 인간이기에 한 번쯤 읽고 위로받을 수 있는 쉬운 심리학 책이다.

저자가 얼마나 많은 사례들로 연구를 했는지 존경스러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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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것과 빈번한 것의 갈등은 인간에게 거의 보편적인 또 다른 경험도 설명해준다. 
사람들은 흔히 퇴근하면서 식품점에 들러야지 하고 생각했다가도 어느새 그것을 완전히 잊은 채, 그냥 집으로 차를 몰고 돌아오곤한다. 이것은 빈번한 행동(차를 몰고 집으로 돌아가기)이 최근 목표(우유를 사오라는 아내나 남편의 부탁)를 압도했기 때문이다. - P54

여러 연구에 따르면 집안일을 함께 하기이든 
학술논문의 공동 집필이든 거의 모든 협동 작업에서 주관적으로 지각된 각 개인의 공헌의 합은 실제로 수행된 작업의 총량을 초과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한 일은 잘 기억하지 못하면서 자기가 한 일은 잘 기억한다. 때문에 누구나(심지어 요령만 피우던 게으름뱅이도) 다른 사람이 부당하게 이익을 취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 P78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을 우리가 믿고 싶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동기에 의한 추론motivated reasoning‘ 이라고 
불리는 편향으로서 확증편향과도 비슷한 구석이 있다.
확증편향은 우리의 신념과 일치하는 자료에 주의가 쏠리는 자동적인 경향인 반면, 동기에 의한 추론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보다 좋아하지 않는것에 대해 더 까다롭게 따지는 보완적인 경향이다.  - P93

정말로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흔들림 없이 참된 전제에서 참된 결론으로 나아가면서, 오직 참된 것만을 믿을 것이다. 그러나 진화의 산물이자 클루지인 우리 인간은 종종 결론에서 출발해 그것을 믿기 위한 이유를 찾는 식으로 거꾸로 나아가는 비합리적인 존재이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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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기 전에 읽는 인문학 365
양승욱 지음 / 오렌지연필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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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부터 365일까지 책제목대로 잠들기 전에 잠시 시간을 내어 꾸준히 읽는다면 기본적이고 얉은 지식을 쌓을 수 있다. 문학,세계사,철학,카오스,기독교,음악,미술 순서대로 반복이 된다.
664페이지의 꽤 두꺼운 벽돌책임에도 불구하고 흥미를 자아내고 부담스럽지 않게 교양을 쌓을 수 있다. 머리맡에 두고 매일 1~2장씩 읽어나가면 1년까지 걸리지는 않겠다.
1일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 관한 짧은 소개가 나오는데 흥미를 자아낸다면 책을 찾아 읽어보면서 깊은 지식과 교양까지 쌓을 수 있는 길잡이가 되는 책 임에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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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상실, 사랑 그리고 숨어 있는 삶의 질서에 관한 이야기
룰루 밀러 지음, 정지인 옮김 / 곰출판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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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을 쓰기 위해서 다시 2시간 동안 밑줄 친 부분을 확인하고 앞뒤로 책을 뒤적였다. 주위에서 극찬에 극찬을 더해서, 반드시 끝까지 읽어보라는 권유에 완독을 했다. 기대가 컸던 건지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아직 아리송하긴 하다. 작가의 프로필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읽어내려가서 중간 부분쯤 왔을 때야 이 책이 논픽션임을 깨달았다.

이 책만큼은 독자들이 우선 작가에 대해서 알고 읽기 시작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다. 책 앞날개를 참고해 본다.
'방송계의 퓰리처상'으로 불리는 피버디상을 수상한 과학 전문 기자로, 15년 넘게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고 있다. 룰루 밀러의 논픽션 데뷔작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전기이자 회고록이자 과학적 모험담으로 혼돈이 항상 승리하는 세계에서 꿋꿋이 버텨내는 삶에 관한 우화처럼 읽히는 경이로운 책이다.

나는 크게 2가지로 이해를 했다. 첫째는 작가가 혼돈이 지배하는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둘째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개인의 부조리를 파헤쳐 거대한 미국 사회의 부조리를 이끌어 낸다는 것.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분류학자로 수천 마리의 물고기에 하나하나씩 이름을 붙인다. 게다가 오싹하게 보이는 물고기 한 마리에 데이비드가 자신의 이름을 붙였고 이렇게 선택한 단 하나가 분류학자들도 알고 있었다. 물리 법칙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이는 과학의 범주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다. 나는 이를 감히 철학이라고 불러본다. 책을 인용해 보면, 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이름을 얻기 전까지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는 사상이 있다. 정의, 향수, 무한, 사랑 같은.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 개념은 현실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실재'가 된다.

예를 들어 제1차 세계대전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두 번째 전쟁이 발생하자 이전에 발생한 전쟁을 부를만한 이름이 필요했다. 그래서 두 번째 전쟁이 발생하고 나 자 제2차 세계대전이란 이름을 붙이고 이전에 발생했던 전쟁을 제1차 전쟁이라 이름 붙인 것과 같은 이치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있고 그래서 굳이 과학에 철학을 입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물고기의 내부는 인간과 너무나 유사해서 분류 체계에 없는 '어류'라는 범주로 이름을 붙였을 뿐. 그래서 굳이 실재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자, 그렇다면 데이비드는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물고기에 자신의 이름을 붙임으로써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자신을 놓아두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런 피라미드적 사고도 허구다)

이렇게까지 물고기에 집착하게 되는 것은 형의 이른 죽음, 사랑하는 딸의 죽음으로 무력함을 느껴 강박적으로 수집하는 상태가 된 것이다.

p.102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이런 강박상태가 수집을 뛰어넘어 우생학 신봉으로까지 확장된 것 같다. 최근까지도 계속된 우생학의 만행을 작가 룰루는 드러내고 싶어 한 것 같다.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형태로 아직도 어디에선가 행해지고 있을.. 룰루 밀러는 데이비드의 이런 악행을 비난하며 용서 한번 구하지 않은 그를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왜 그랬는지. 한나 아렌트라면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려줄까? 문득 궁금해진다.

또 다른 이야기는 후반부에 쏟아진다. 작가 룰루 밀러의 정체성을 찾게 되는 이야기다. 물고기를 놓아주고서..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어쨌든 끝까지 읽어야 하는 건 맞다.

p.268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ㆍ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 봐야 한다. 모든 자 ruler 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라.

챕터마다 무서운 그림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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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은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이라는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언제 일어나는가‘하는 시기의 문제다. - P15

스트레스나 불안을 겪는 사람들이 수집에 의지해 고통을 달랜다며 비슷한 현상을 지적했다.
"사람들이 이렇게 자신의 무력함을 느낄 때는 강박적인 수집이 기분을 끌어올리는 데 도움이 된다. - P31

‘혼돈‘만이 우리의 유일한 지배자라고 아버지는 내게 알려주었다. - P55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서 그는 "당신이 밟고 선 그 땅뙈기가 이 세상에서, 아니 그 어느 세상에서도 당신에게 가장 달콤한 기쁨을 주는 땅이 아니라면 당신에게는 희망이 없다"라는 헨리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인용한 뒤, 분발을 요구하는 ‘카르페 디엠‘의 구호를 외치며 독자들을 배웅한다. "그 어디에도 바로 여기,지금, 오늘만큼 하늘이 파랗고 풀밭이 푸르고 햇빛이 밝고 그늘이 반갑게 맞이해주는 곳은 없다." - P127

동물은 인간이 스스로 우월하다고 가정하는 거의 모든 기준에서인간보다 더 우수할 수 있다. 까마귀는 우리보다 기억력이 좋고,침팬지는 우리보다 패턴인식 능력이 뛰어나며, 개미는 부상당한 동료를 구출하고, 주혈흡충은 우리보다 일부일처제 비율이 더높다. 지구에 사는 모든 생물을 실제로 검토해볼 때, 인간을 꼭대기에 두는 단 하나의 계층구조를 그려내기 위해서는 상당히 무리해서 곡예를 해야 한다. 우리는 가장 큰 뇌를 갖고 있지도 않고 기억력이 가장 좋은 것도 아니다. 우리는 가장 빠르지도, 가장 힘이 세지도, 번식력이 가장 좋지도 않다. 같은 배우자와 평생을 함께하고 도구나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인간만이 아니다. 심지어 우리는지구에 가장 새롭게 나타난 생물도 아니다.
- P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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