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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 청미래 / 2022년 1월
평점 :
미우라 시온 성장 스포츠소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미우라 시온 지음, 임희선 옮김, 청미래 펴냄
아주 어렸을 적, 지금의 몸매를 보자면 전혀 믿기지 않겠지만, 달리기 육상부원이었다. 사실 엉겁결에 뽑힌 거라 내가 굉장히 잘 달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다리 긴 그 소녀, 그 아이가 달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진. 그 아이는 다리가 어찌나 긴지 한 걸음 떼면 이미 저만치 나가 있다. 말하자면 다리 긴 걸로 달리는 아이랄까. 걸을 때도 확연히 차이 나는 보폭은 달릴 때는 더욱 차이가 났다. 속된 말로 콤파스가 긴 아이였던 것이다. 그 아이는 달리기는 정말 잘하는데 정말 달릴 줄을 모르는 아이였다. 그저 다리만 길었다고 할까. 다리 긴 게 다였다고나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따라잡겠다고 뛰던 내 모습을 지금 떠올리자니, 나 엄청 쫑쫑거렸을... 선생님은 왜 나를 육상부로 뽑았을까. 혹시 달리기에 그다지 흥미 없고 연습하기 싫어하는 그 콤파스 소녀를 자극시키려는 것이었을까. 하지만 나도 끝까지 달려주겠어.
아무 생각 없어도 심장은 온몸에 피가 돌게 하고
폐는 막힘없이 산소를 빨아들인다.
몸이 점점 가벼워졌다. 어디까지든 달려갈 것 같았다.
새해 첫날이면 반바지에 어깨띠 차림으로 진행하는 행사가 있다. 하코네 역전경주다. 고등학교 때 무릎이 고장나 달리기를 중단했지만 자기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를 잘 아는 기요세는 치쿠세이소 사람들, 말하자면 간세이대학교 육상부원들을 독려해 진지하게 달리기에 매달린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매일 아침저녁으로 10킬로미터씩 조깅을 하는, 의지가 강해 보이는 눈동자의 가케루는 뛰어난 기록을 남겨 명성을 얻는 일에는 관심이 없다. 그저 바람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자기 몸을 느끼면서 자유롭게 달리는 행위 자체에 매력을 느낄 뿐이다. 조직의 목표나 명예욕에 얽매여 관리 받는 삶을 못 견뎌하던 가케루는 결국 폭행 사건을 일으켜 고등학교 육상부를 탈퇴하고 말았다. 천부적인 육상 선수지만 그외 모든 것에는 눈치가 꽝이랄까.
밖에서 놀지도 않고 다른 데 돈도 안 쓰고 모든 시간과 돈을 오직 만화책에만 쏟아붓는 열정의 지속력을 가진, 그렇게 지치지도 않고 한 가지만 파고들기에 장거리에 딱 맞는 만화 덕후 왕자. 세상의 모든 퀴즈를 다 풀어버리겠다는 기세인 킹. 아프리카에서 왔지만 킹 덕분에 언어를 제대로 익힌 '달리기는 난생처음인데요'라는 무사. 체력과 활력이 넘치는 쌍둥이 형제 조지와 조타. 고향인 산골마을에서의 등하교로 자연스레 지구력을 익힌, 보통 시골집에는 먼지를 뒤집어쓰고 구석에 처박힌 러닝머신 같은 게 있는 거라며 쌍둥이를 위해 선뜻 내놓는 신동. 학점도 다 땄고 사법고시에도 이미 붙었을 정도로 자신이 목표한 것은 철저하게 이뤄내는 분석파임에도 달리기 연습 때문에 내려진 갑작스런 클럽 중지령에 화가 난 유키. 대학 입학 전에도 후에도 계속 방황하느라 5년째 학교를 다니면서 끊임없이 담배를 피워대던 '니코짱'은 육상으로부터 오래 떨어져 있었던 탓에 '아주 죽을 맛'이라고 불평하면서도 어느새 담배를 끊고 다이어트를 할 생각에 잠긴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겨내고 어떤 먼지에도 견딜 수 있도록 예리하고 유연하게 다듬어나간다.
기세 좋군, 싶다가도 어리바리한 이들의 좌충우돌 우당탕당 달리기 도전. 그나마 합숙 후원이랍시고 받은 별장은 거의 폐가 수준이요 합숙지에서 마주친 뜻밖의 경쟁자들은 치쿠세이소 사람들을 도발하는데... 기록은 내세울 만큼 나오지 않아도 협찬해준 음식은 공짜라면서 몸에 들이붓듯 하는 이 순진하기도 하고 맹해 보이기도 하는 사람들, 과연 역전경주를 무사히 치러낼 수 있을까?
달리는 게 좋아?
달리기에 대한 모욕은 트랙에서 갚는 거야.
달리는 모습이 이렇게 아름다운지 정말 몰랐다. 이 얼마나 원시적이고도 고독한 스포츠인가. 아무도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없다. 주위에 아무리 관객이 많아도, 함께 훈련한 팀메이트가 있어도 저 사람들은 지금 오로지 자기 홀로 자신의 신체기능을 모두 동원해서 달려야 한다.
열 명의 숨소리와 말소리, 그리고 발소리가 들리는 기분이다. 선뜻 하겠다고 나서지도 않았으면서 어느새 러닝화를 사고 스톱워치 기능이 있는 시계를 장만한다. 이런 것들을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해야 할 형편들이지만 아르바이트 금지령이 떨어진다. 운동복은 어떻게 사라는 거야? 어느 순간 생겨난 후원회, 모든 것은 이미 기요세의 머릿속에서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운동과 연습이 쉬운 일일까! 씻기도 귀찮아질 정도로 연습은 고되지만 누구 하나 그만두겠다고 하질 않는다. 이 남자들, 대체 뭐지^^
좌우의 다리를 번갈아서 앞으로 내밀어! 그럼 언젠가는 결승선에 도착하게 된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은 겉으로는 사이 좋은 척하면서 뒤에서는 어떻게든 남의 발목을 잡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인간 행태, 자기 내면을 다스리는 힘, 마음이 통하는 진심 등 다양한 모습의 일상을 잔잔하게 그려내고 있다. 어떠한 입장에 있건, 처지가 어떻건, 달리기 앞에서는 모두 같은 출발선에 설 수밖에 없다. 성공도 실패도 지금 여기 있는 자기 몸 하나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각자의 속도로, 혼자서 그러나 모두와 함께 달리는 사람들의 성장과 변화와 위안을 담은 청춘소설.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될 정도로 인기를 받았던 10인 10색의 달리기 도전기! 간세이대학교 육상경기부의 하코네 역전경기를 통한 믿음과 의지의 성장 스포츠소설, 미우라 시온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이다.
출판사 지원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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