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한때 천사였다. 아니 천사였을 것이다. 흔히들 말하는 천국이 아닌 순수한 영혼이 모여 사는 천사의 나라. 난 그곳에서 살고 있다가 엄마의 간절한 부름을 받아 엄마에게로 왔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빠를 통해 엄마에게로 왔다. 모든 빛과 모든 색상이 존재하는 그 곳에서의 기억은 거의 남아있지 않지만, 내가 천사였다는 사실은 내 천진난만한 미소에 남아있다. 사람들은 내 미소와 눈망울을 보고는 천사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 눈치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에는.
그래서 엄마는 나에게 주문을 하곤 한다.
“엄마에게 사랑의 하트를 날려봐”
나는 한 눈을 찡긋 감고(실제로는 두 눈을 감고), 두 손으로 작은 하트를 만들어 발사시키면 주위의 모든 사람은 쓰러지고야 만다. 마치 큐피드의 화살이라도 맞은 것처럼. 나는 그들에게 입술을 둥글게 내밀어 온기를 불어넣고 천사의 사랑을 일깨워준다.
빅뱅이론은 우주의 탄생을 설명하는 이론임을 나는 알고 있다. 위대한 이 이론이 어찌 우주의 탄생만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모든 인간은 하나의 소우주임을 나는 안다. 나 또한 천사의 신분에서 인간으로 변화할 때 이 이론의 도움을 받았다. 이른바 엄마 아빠의 감정의 폭발. 그 것은 어떠한 감정보다 위대했으며 값진 결과를 낳았다. 우리는 그 감정을 사랑이라고 부르는데, 천사들은 누구보다 사랑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천사의 기억을 머금은 젖먹이 시절 우리는 옹알이로 부모의 행위에 반응한다. 부모들은 자신의 눈빛과 손짓에 반응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깃든 사랑의 감정에 반응한 것이었다.
감정의 대폭발을 거친 육체는 열정과 환희를 꿈꾼다. 엄마와 아빠는 사랑의 기쁨이 넘치는 작고 소란스런 행위를 통해 나를 불러내는 신기한 재주를 가졌다.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의 비밀스런 행위를 통해 잠자고 있던 나의 영혼은 깨어났다. 그동안 오랜 시간을 기다린 보람이 있었다. 우리 천사들은 한 가지를 빼고는 모든 것을 가졌다. 가족이라는 명사. 그래서 천사들에게 꿈이 있다면, 행복한 가족의 일원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불러준 우리 엄마, 아빠에게 감사드린다. 그리고 누나들과 형에게도. 앞으로 몇 년 동안 그들은 나로 인해 사랑과 감동으로 충만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부모와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져다주는 그 무한한 기쁨. 물론 그 뒤로는 이를 보장해주지는 못할 수도 있지만.
현재의 내 이름이 지어지기 전, 사람들은 나를 길동이라 불렀다. 혹자는 강동구 길동에서 낳은 것이라고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 것은 아니다. 2월의 어느 새벽 송파구에 위치한 저명한 산부인과 병원 앞 인도에서 나는 첫울음을 터뜨렸다. 나를 받아낸 산파는 의사가 아닌 레깅스라는 분이었고, 라면을 먹고 귀가하는 이름 모를 취객의 도움(간호사를 불러왔다고 한다)도 받았다. 엄마가 정신줄을 놓은 상황 속에서도 침착함과 유연성을 잃지 않았던 레깅스라는 분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 당시 길을 지나던 여러 사람들도 어쩔 줄 몰라 했었다는 후문이다. 그들에게는 살면서 두 번 보기 힘든 광경이었으리라.
아홉 살 먹은 형은 학교가기 싫은 날이면 배가 아프다고 한다. 나는 다 안다. 나도 어린이집이 가기 싫을 때가 있기 때문이다. 나는 아침마다 묻는다.
“엄마, 아빠, 오늘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안가는 날이야?”
돌아오는 대답은 늘 그렇듯이 실망스럽게도,
“응, 어린이집 가는 날이야! 얼른 치카치카하고 옷 입자”
이때는 천사시절에 익혔던 애교가 덩어리로 발사돼도 통하지 않고, 결과는 유모차 탑승이다. 천사의 미소도 통하지 않는 세상의 실망스런 규칙이 있는가보다.
천사의 나라엔 온갖 신화가 있다. 그 중에서도 곰에 관한 신화도 있는데, 인간 세상에도 곰에 관한 이야기가 존재하고 있었다. 비록 세 마리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그래서 나는 천사 때의 기억을 되살려 곰 세 마리라는 동화를 노래로 열심히 부른다. 그런데 왜 아빠곰은 늘 뚱뚱하고 엄마곰은 날씬한지 의문이다. 내가 몇 년 동안 봤던 현실은 정반대가 많았다.
엄마는 나에게 내가 좋아하는 멍멍이와 같은 강아지라는 별명을 부른다. 아니 천사의 윙크와 미소를 가진 나를 멍멍이에 비유하다니, 분명 이건 나에 대한 모독이다. 하지만 강아지라는 말도 “우리 강아지, 우리 강아지”라고 자꾸 듣다보니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오히려 내 스스로 “보물 강아지”로 부르게 했다. 이왕이면 ‘보물강아지’가 더 좋지 않은가? 주위에서 보물강아지로 불리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렇다. 난 우리 집에 엄마, 아빠의 부름을 받고 온 네 번째 천사이자 유일한 보물강아지다. 나는 서열상 2녀 2남 중 막내이지만, 우리 가족 중에서는 슈퍼 갑이다. 네 살 먹은 세상에서는 아무도 나를 이길 수 없다. 그리하여 아빠는 슈퍼 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