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들의 사생활 - 이승우 장편소설 문학동네 한국문학 전집 7
이승우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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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가 그 작가의 이 작품이야말로 노벨상 추천작이라 했다는 어디선가 보았던 기억이 나로 하여금 이 책과 그 작가에게 관심을 갖게 했다.

급 레스토랑 민들레의 주인인 엄마, 밖으로만 돈다는 능숙한 수완가인 그녀 이름은 서영숙, 그리고 하루 종일 바둑 채널과 정원 식물 가꾸는 것이 전부인 아버지, 그리고 군대에서 폭발물 사고로 다리를 잃고 돌아온 형 우현과 그 형의 애인을 짝사랑해서 억지 부리다 가출하고 돌아와서 형의 비극과 대면하는 기현, 이 가족이 식물처럼 사랑했고, 또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소나무를 휘어감은 때죽나무와 그 네 사람과 형의 애인 순미, 그리고 어머니의 평생 잊지 못하는 첫 남자, '남천'이라는 남해의 바닷가에 지어진 그림 같은 집, 태평양을 건너온 씨앗이 자라난, 커다란 야자나무, 그리고 형이 가고 싶어 하는 피안의 세계 물푸레나무와 형 우현이 수집한 나무들의 변신 이야기와, 식물과 대화하는 아버지.. '모든 나무들은 좌절된 사랑의 화신'이라고 말하는 우현의 말이 이 이야기의 전부를 지배한다.

위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던 대학생 형 우현은 엄마의 사랑과 기대 안에서 살고, 기타 치며 노래를 잘 부르던 순미와 애인 관계이다. 재수생 기숙학원에서 빠져나와 가출했다가 마음잡고 공부해 보려던 기현은 순미의 등장에 한눈에 반하고, 그녀의 형을 향한 노래를 들으며 자신의 사랑을 키운다. 그리고 주체 못하는 자신의 감정을 못 이겨 해프닝을 벌이고는 형의 카메라를 들고 가출한다. 그리고 그로 인한 엄청난 파장이 일고 형에게 빚을 지게 된다. 연꽃 시장이라고 하는 사창가에 다리 없는 형을 업고 들여보내는 모자의 은밀한 의식을 목격하면서 기현은 한없는 분노와 책임감이 생겨나고, 엄마를 미행하면서 '남천'이라는 비현실적인 장소에 가게 되고, 역시나 비현실적인 야자수 아래서의 식물 같은 남녀의 사랑을 보게 된다. '남천'이란 장소는 엄마의 첫사랑의 도피처이고, 그곳에서 아이를 낳은 신성한 곳이고, 그런 그녀를 아버지가 지켰던 곳이고, 그 운명적 사랑이 운명한 곳이고, 바다를 마주하는 두 슬픈 나무의 뿌리가 밤마다 뻗어나가 바다 한가운데서 만난다는 순미의 꿈이고, 기현의 상상이고, 우현의 신화이고, 엄마와 그 첫사랑의 세상에 드러나지 않는 공간이었던, 작가에게는 '성소(聖所)'인 곳이다.

음 도입 부분의 조금 충격적인 연꽃 의식에서 흐름을 쫓아가다가 중간중간 채식주의자 생각도 나고, 나무들처럼 사랑한, 식물들처럼 사랑한 이 글의 주인공들을 작가는 따뜻하게 감싼다. 그리고 다른 시간과 다른 공간을 살아가는 가족의 화해랄까 그런 결말이 너무 좋았으며, 가장 이해할 수 없었던 아버지란 존재의, 기현을 향한 '너희 어머니는 순결하다.'이 대목과 여전한 그의 사랑과 그 사랑의 대상인 어머니..

'사랑은 다 다르다. 사랑한다는 내용은 같아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하나도 같지 않다.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엄마의 사랑도, 아버지의 사랑도, 순미의 사랑도, 우현의, 기현의, 그리고 잘못된 형부의 사랑도, 그냥 사랑은 사람마다 다다르다. 식물들은 그런 사랑이 옳다 그르다 판단하지 않는다. 그냥 사랑하고, 그냥 기대고, 그냥 욕망할 뿐이다. 중간중간 후렴구 같은 반복이있다. 작가의 스타일인가 했으며, 이야기의 전환이 섬세하나 군더더기없고 힘차다는 느낌ᆢ다른 작품에서도 곧 만나지기를 ..

 

 

모든 기록은 기록하는 자의 시각과 입장을 반영한다. 사진을 찍는 자는 카메라의 앵글이나 초점을 통해 자신의 시각과 입장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럴 때 문제 삼을 수 있는 것은 그 시각과 입장의 윤리적 기반이다. 사진을 찍는 자의 앵글과 초점은 윤리적 앵글이어야 하고 도덕적 초점이어야 한다. 그것이 형의 사진론이었고, 그것이 그가 한사코 사진의 예술로서의 지위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 하는 이유였다.

그렇게 왔다, 사랑은. 마치 눈에 띄지 않는 사이에 꽃봉오리가 벌어지듯이, 그렇게 천천히. 사랑이었을까. 그것이. 그러나 사랑이 아니라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나무가 된 뒤에도 그들은 욕망과 사랑의 감정을 지워버릴 수 없다. 나무가 된 뒤에도 그들의 욕망과 사랑의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아니. 나무가 된 뒤에야 비로소 그들은 그들의 욕망과 사랑이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출할 수 있게 되었다. 나무가 됨으로써 그들은 사람으로 있을 때는 이룰 수 없었던 사랑을 이루었다. 나무는 욕망하고 사랑한다. 나무는 누구보다 더 크게 욕망하고 누구보다 더 간절하게 사랑한다. 큰 욕망과 간절한 사랑이 그들을 나무가 되게 했다.

사랑은 다 다르다. 하고 나는 나에게 말했다. 사랑한다는 내용은 같아도 사람들이 사랑을 하는 방식은 하나도 같지 않다. 백 명의 사람들은 백 가지 방식으로 사랑한다. 그러니까 특별하지 않은 사랑은 하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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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비닛 - 제12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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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수라는 작가는 '설계자들'을 통해서 관심을 가졌고, 인상이 깊었었다.  캐비닛은 그 책을 읽은 후 블로그 이웃을 통해서 알게 되었던 책, 제12히 문학동네 수상작이다.

기괴한 인간들이 나온다. 심토머라고 하는 변화된 종의 징후를 보여주는 사람들, 즉 현재의 인간과 미래 태어날 인간의 중간쯤에 있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해괴 망측하기도 하고 징그럽기도 하고 연민이 가기도 하는 아주 이상한 사람들..

13호 캐비닛에는 그런 사람들의 자료가 보관되어 있고 권 박사는 40년간 그것을 연구해온 사람이며 주인공 공덕근은 그 박사의 보조이다. 그곳은 엄연한 공기업이다.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존재함에 놀란 주인공에게 권 박사는 이것은 성경의 끝, 인간이란 종의 마직막 단계이거나 새로운 종의 시작이라고 한다. 

 

가락에서 은행나무가 자라는 사람, 시간이 사라져 버리는 사람들, 도플갱어, 혀에서 도마뱀이 자라는 사람, 토포러라고 하는 매우 긴 잠을 자는 사람, 한 몸에 여성과 남성을 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 다중소속자라고 하는 육체를 교환하는 사람들, 스스로를 외계인의 후손이라 여기며 교신을 보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작가는 매우 능청스러운 이런 뻥 같은 말도 안 되는 얘기를 매우 그럴듯하게 펼쳐 나간다.

 

각자의 이야기들은 독립적인 에피소드이나 서로 연결되는 구조이다.  작가의 상상력에 혀를 내두르다 웃다가 이건 현실 풍자이네, 블랙 유머네 했더랬다.

 

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포나 불안이 만들어낸 허상들,  이런 삶을 살면서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어 버리고 싶다는 그런 황당한 욕망? 작가의 상상력과 이야기를 끌어나가는 스킬이 역시 역시하며  먼저 읽은 책에 이어 선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 그리고 마지막 '주의 사항이'란 부분을 읽으며 다시 한번 빵~~ 터짐, 나는 진지하게 어떤 대목에선 정말로 그런가? 하며 인터넷도 뒤져보았던 망신당할 뻔했던 사람이었음 ㅋㅋ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시절은 없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살아 있지도 않을 거예요, 우리는 행복한 기억으로 살죠, 하지만 우리는 불행한 기억으로도 살아요. 상실과 폐허의 힘으로 말입니다.





우리는 불안 때문에 삶을 규칙적으로 만든다. 면밀하게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에 삶을 맞춘다. 우리는 삶을 반복적이고 규칙적으로 움직이게 해서 가장 효율적인 시스템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만든다. 습관과 규칙의 힘으로 살아가는 삶 말이다.





에두아르 마네는 [푸른 도마뱀]이라는 책에서 열다섯을 두고 ‘세계를 다이너마이트로 폭파시키고 싶은 나이‘라고 말했다. 그 책에서 기억나는 구절이라고는 그것뿐이다. 생각해보면 나의 열다섯이 꼭 그랬다. 다이너마이트가 있다면 학교를 폭파시키고 싶은 그런 기분이 들던 시절이었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들에게 나는 늘 화가 나 있었다.

"글쎄, 꼭 뭘 해야 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냥 자네의 시간을 견뎌봐. 인생이란 그저 시간을 잠시 담아두는 그릇에 불과한 거니까." "캐비닛처럼요?" "그래, 마치 캐비닛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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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우리가 사랑한 소설들 - 빨간책방에서 함께 읽고 나눈 이야기
이동진.김중혁 지음 / 예담 / 201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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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질문하는 책들'에 이어 이동진, 김중혁의 하모니에 꽂혀서 읽게 됨.

먼저 책에 대한 인상이 너무도 강렬했는데. 이 책은 내성이 생겨서이기도 하나, 아무래도 소설에 국한되다 보니 스펙트럼은 좁았으나 나의 취향이 또 이런 소설인 관계로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이언 매큐언의 속죄',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줄리언 반스의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 '니코스 카잔스키의 그리스인 조르바','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등 총 7편의 소설이 등장하는데 여기에 덧붙여 그 작가들의 다른 책들과 그 책들과 비슷한 류의 또 다른 작품들 이야기가 나오고 또 영화 이야기까지 나와서 위시리스트에 추가한 것들이 많아졌다.

 

 사람이 대화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술술 넘기며 읽을 수 있는 책인데, 관련 작품들을 검색하다 보니 자꾸 옆으로 빠졌지만, 가볍게 또 재미있게 독서할 수 있었다

허무하다는 것은 자기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것이 알고 보니 의미 없는 것일 때 느끼는 실존적인 공허감이겠죠. 권태는 같은 일을 계속 반복했을 때 생겨나는 삶과 세상에 대한 태도일 테고요. 그러니까 토마시는 권태가 두렵기 때문에 수많은 여자들과 만났다가 헤어지는 것이고 프란츠는 허무가 두렵기 때문에 한 여자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의미를 지닌 사랑을 하려는 것이죠.

권태가 두려운 사람은 일을 저지르고, 허무가 두려운 사람은 모범적으로 행동하려는 거예요, 여기에 행복과 쾌락에 관한 것도 비슷해요, 제가 볼 때 행복은 반복에서 오는 것 같아요. 반면에 쾌락은 일회적인 것에서 오구요, 그런데 작고 반복적인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이 필연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는 것은 권태예요. 반대로 강하고 일회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맞이하는 것은 허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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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도에 관하여 - 나를 살아가게 하는 가치들, 개정판
임경선 지음 / 한겨레출판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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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의 생각이 나 정리가 참 담백하다는 생각을 하며 읽어내려갔다. 

지혜롭고 쿨해서 공감하며.. 총 5부로 자발성, 관대함, 정직함, 성실함, 공정함에 대한 추억과 짧은 생각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마지막엔 정신과 전문의 김현철과 대화하는 식으로 저 다섯 가지 주제에 대해 써내려 감,  

 

이상 자기 계발서 따위는 읽지 않는다. 이렇게 마음을 달래주고 어루만져 주고 공감해주고 괜찮다고 나만 그런 게 아니라고 위로해 주는 그런 책들이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된다. 

인문학 책들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그런 맥락으로 본다. 사람들의 마음이 더 이상 병들지  않았으면 한다.

표를 이루기 위해 청춘을 담보잡지 않고, 삶의 과정과정에서 소소한 만족감과 행복감을 갖게되는 삶' 

그리고 더 이상 스펙과 공부와 대기업 취업 등에 목숨 걸지 않고 행복한 학교, 행복한 아이들,  그리고 청소부가 되더라도,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더라도 무리하지 않고 일하는 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중요한 게 아니고, 그런 구분부터가 잘못된 거라고, 무슨 일을 하더라도 행복하고, 자기의 지역사회를 사랑하고, 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의무를 다하고 존중받는 그런 삶, 행복한 시민이 되는 삶을 소망한다

‘태도‘란 ‘어떻게‘라는 살아가는 방식과 가치관의 문제로 그 사람을 가장 그 사람답게 만드는 고유자산이다.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 사랑이기도 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식기도 하는-을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사랑하고 헤어지는 것에는 그 누구의 잘잘못도 없다. 그래서 ‘그를 포기하고 싶지 않아‘가 나의 정직한 속내임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원한다면 분명 그를 놔주긴 해야 할 것 같다.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조금 더 했다고 손해 봤다며 억울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반대의 경우로도 인생의 많은 날들을 채우게 될 테니까. 서로의 노고를 고마워하고 아무렇지 않은 일로 경시하지 않는 것. 그것을 받아들이기만 해도 많은 것들은 사랑으로 함께 해 나갈 수 있다. 악처를 연기할 필요도 현모양처를 무리할 필요도 없다. 인간적인 공정함과 낭만적인 과대함을 최선을 다해 양립해 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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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어느덧 일 주일 문학동네작가상 9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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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 책이다. 2004년도 문학동네 작가 상 수상작이라나 .. 서른 살의 화자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아버지와 다른 소통, 다른 눈높이를 가지고 있다. 그와 불륜인 7살 연상의 유부녀 기연은 사랑 없는 결혼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카페의 주인이고, 그녀의 오빠는 아버지의 기대를 받던 훌륭한 자식에서 정신줄을 놓아버리고 어린 사람이 되어버린 채로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또 방황하는 어린 시절 야구 꿈나무였던 신호가 그 시절 야구 감독과 아버지를 원망하면서 살아온 이야기가 더해진다. 엄청 심오한 전개는 아니지만 세 쌍의 아버지란 사람과 아들이란 사람들의 히스토리가 등장한다.

론 주가 되는 건 화자의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아버지와의 관계이지만.. 작가의 인터뷰에서 근대 문학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아버지 죽이기'였다고 말한다. 여기서 아버지란 가부장제뿐만 아니라 봉건질서와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면서.. 아들과 아버지에 대해서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고 그 아버지들이 살아온 시간과 배경에 대해서 그들의 무게와 그들의 책임감과 그런 것들에 대해서 숙고해본다.

요즘 박카스 선전이 너무 좋다. 어린 딸이 출근하는 아빠에게 "아빠, 또 놀러 와~~"하는. 더 이상 묵묵히 혼자 희생하고 혼자 짊어지는 어깨들이 아니길 바라면서 ..

아버지는 아버지가 알고 있는 그 아이를 키워왔고, 나는 그 아이를 버린 지 오래였다. 내 생각을 말할 수 있으려면 우선 우리 사이에 있는 그 아이부터 지워야 했다.

그 아이는 허수아비일 뿐이었으니까



그것은 아주 막연하고도 깊은 공포였다. 언젠가 꼭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것이었다. 마치 내가 아버지 앞에서 출구 없는 블랙홀에 갇혀 있다고 느낄 때의 막연한 공포심과 비슷한 그런 것이었다. 언젠가, 때가 되면, 불행한 일이 찾아올 것이다. 나는 생각했다. 특히 기연 씨와 헤어지고 난 후엔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나는 인생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할 때가 있었지만 그런 짓이 바보 같다고 생각할 때도 많았다. 그런 식으로 고민해봐야 무엇 하나 달라지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이란 내가 어떻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누군가에 의해 단단한 구조로 오랜 시간 꼼꼼하게 지어진 구조물과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구조물의 미로 속을 천천히 두리번거리며 옮겨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복잡하지 않으면 미로가 아니니 그 속에서 길을 잃을 때가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생각도 어떤 때에는 칠 개월째 같은 자리에 붙어서 때가 덕지덕지 붙은 길바닥의 껌 조각보다도 못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다. 사실 내가 살아가면서 받아들여야 하고 또 그럼에도 불구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들은 너무나 자명 한 것들이었으므로, 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아버지의 그 침묵하는 등이었고, 그래도 언제나 창가에 수선화를 꽂아두는 어머니였고, 기연 씨였고, 기연 씨 오빠의 그 몸짓이었고, 신호 씨의 한숨이었고, 노숙자 아저씨의 굵은 주름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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