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의 카프카 -하 (양장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김춘미 옮김 / 문학사상사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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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인들이 좋아하는 세계의 소설가 중 한 사람인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이름에서는 그냥 차분함과 적막함이 풍겨 나온다는 게 나의 느낌이다. '상실의 시대'에 이어 두 번째로 그를 접하게 되었다.

소설을 읽는 내내 '거대한 메타포구나'~~ 하는 생각을 시종 일관했더랬다. 잘 읽은 건가? 책 넘김은 비교적 쉬웠으나, 그 메타포에 한 번씩 지쳤다. 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열다섯 살 소년 다무라 카프카가 네 살 때 저를 버리고 떠난 엄마와 누나를 가설로 정해놓고 아들을 향해 오이디푸스 신화의 저주를 했던 아버지를 떠나 가출을 해서는 고무라 도서관이라는 한 자본가의 사립 도서관에 머물게 되면서 만나는 사람과 그들과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와, 초등학교 시절 원인 모르는 신비한 사건에 노출되어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깨어난 뒤 기억을 모두 잃어버린,  나카타라는 노인의 이야기가 번갈아 펼쳐지면서 고무라 도서관이라는 장소에서, 사에키라는 인물에서 종착이 된다.

1,2권에 이어지는 방대한 양과 방대한 전개를 마치 전혀 상관없을 듯, 하지만 거대한 퍼즐처럼 맞춰나가는 이 소설에서는 역시나 음식과 고전음악, 철학과 패션과 일본의 고전, 그리고 그리스 신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 부분에서 가끔 밀란 쿤데라를 생각하기도 했다.

상실의 시대에서처럼 어린 나이에 운명적인 사랑을 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가 등장하고, 그중 한 사람의 죽음과 남은 사람의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미용사이며 카프카의 누나일지도 모르는 사쿠라, 엄마 일지도 모르나 그가 사랑한 사에키, 텅 빈 사람 나키타, 혈우병을 앓고 있는 성별 불문의 오시마, 그리고 호시노라는 청년과 유명한 조각가 이자, 카프카의 아버지인듯하고, 고양이의 영혼으로 피리를 만드는 남자 조니 워커, 그리고 추상적이며 특별한 존재인 커넬 샌더스, 또한 사에키의 노래이기도 하고 그림이기도 한, '해변의 카프카', 그리고 '입구의 돌'...이 소설은 메타포로 이루어져 있다.,

대한 메타포, 하루키는 이 책을 반복해서 읽을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재미를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는데, 또 읽게 될는지는 .. 1Q84도 구입해 놓은 상태인데 좀 시간차를 두고 읽어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작품 속 호시노가 찻집에서 듣게 되는 베토벤의 '대공 트리오'와 하이든 협주곡 1번, 피에르 푸에니의 첼로 연주..

"나는 보다시피 이런 인간이다 보니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여러 의미에서 차별받아왔어" 하고 오시마 씨가 말한다. "차별당하는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얼마나 사람에게 깊은 상처를 주는 것인지, 그것은 차별당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지, 아픔이라는 것은 개별적인 것이어서, 그 뒤에는 개별적인 상처 자국이 남아. 그렇기 때문에 공평함이나 공정함을 추구하는 데에는 나도 남에게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해 다만 내가 그것보다 더 짜증이 나는 것은 상상력이 결여된 인간들 때문이야. T.S 엘리엇이 말하는 ‘공허한 인간들‘이지. 상상력이 결여된 부분을 공허한 부분을, 무감각한 지푸라기로 메운 주제에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바깥을 돌아다니는 인간이지. 그리고 그 무감각함을, 공허한 말을 늘어놓으면서, 타인에게 억지로 강요하려는 인간들이지. 즉 쉽게 말하자면 조금 전 도서관의 실태를 조사하러 온 두 여성 같은 인간들이라구."

누구나 사랑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결여된 일부를 찾고 있기 때문이지. 그렇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하면, 다소의 차이는 있을망정 언제나 애절한 마음이 되는 거야, 아주 먼 옛날에 잃어버린 그리운 방에 발을 들여놓은 것 같은 기분이 되는 거지."

인간이란, 물론 다 그런 건 아니지만, 태어나서 자란 장소에 얽매이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해, 사고방식이나 느낌은 아마도 지형과 온도와 풍향과 연동하고 있는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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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하는 칼날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바움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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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의 대표적인 추리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2008년 작품이다. 추리소설가답게 사건을 전개해가는 방식이 매우 세련되고 긴박함이 넘친다. 무거운 주제이지만 책 넘김이 매우 수월한 책이다


악한 사람은 태어나나? 만들어 지나? '가이지'란 소년을 두고 계속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저런 괴물이 생겨나는 건지? 이 소설 악의 축은 '가이지'다. '아쓰야도 마코토'도, 결국엔 '가이지'에게 동조하는 그냥 정체성 없는 십 대에 불과하다.
소년 범죄자, 과연 갱생이 되는 걸까? '나가미네'나, 그를 응원하는 시민이나 경찰이나 이 책을 읽어나가는 독자나 모두 그 점에 대해 의문을 품는다. 하지만 이론은 그러하다. 아직 어리므로 갱생의 기회를 주자는 .. 우리나라에서도 십 대의 소년 여럿이 한 소녀를 성폭행하는 사건이 있었다.
 개인마다 다르겠지만, 부모가 나서고 어떻게든 죄의 무게를 줄이려는 노력을 보면서, 나만 그런 게 아니잖아, 쟤도 그랬고 걔도 그랬고...어쩌면 그들은 다수의 공모이므로  죗값도 1/n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적이 있었다. '가이지'라는 저런 무서운 소년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의 부모는? 어른들은? 사회는? ...진심 청소년들이 행복하고 밝은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다.

 

오리베의 가슴에 허무함이 밀려들었다. 우리는 대체 무엇을 하는 것일까? 우리의 일은 법을 어긴 사람들을 잡는 것이다. 그것을 통해 악을 없앤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다. 그러나 이렇게 해서 악을 없앨 수 있을까? 죄인을 격리한다는 것은 다른 관점에서 보면 그들을 보호한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 기간 보호받은 죄인들은 세간의 기억이 희미해질 무렵, 다시 세상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죄를 저지른다. 그들은 알고 있지 않을까? 죄를 저질러도 누구에게도 보복당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국가가 자신들을 지켜준다는 사실을. ‘우리가 정의의 칼날이라고 믿고 있는 것은 정말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을까?‘ 오리베의 머릿속에 이런 의문이 똬리를 틀었다. 옳은 방향을 향하고 있다고 해도 과연 그 칼날은 진짜일까? 정말로 ‘악‘을 차단하는 힘을 가지고 있을까?

"오히려 법은 범죄자를 구해준다. 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갱생할 기회를 주고, 증오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범죄자를 숨겨준다. 그것을 형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더구나 그 기간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짧다. 한 사람의 인생을 빼앗았음에도 불구하고 범죄자는 인생을 빼앗기기 않는다. 더구나 미성년자인 경우, 어쩌면 교도소에 가지 않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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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탈로니아 찬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46
조지 오웰 지음, 정영목 옮김 / 민음사 /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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쩌다 보니, 전쟁소설을 연달아 읽게 되었다. 한 책을 읽으며 다음 읽을 책을 기웃거리면서, 나름 균형 잡힌 안배를 도모했는데, 일본 문학을 계속 미루다 보니, 이런 시행착오를`~

여러 이웃님들의 추천으로 '조지 오웰'을 네 번째 만나는 작품이다.

2년 전 바르셀로나를 갔을 때 공원에서 카탈루냐 전통춤을 추는 사람들을 만났었다. 남녀노소가 빙 둘러서 여러 그룹으로 나뉘어 간단한 동작의 댄스를 추다가 어느 박자에선가 "카탈루냐~" 하면서 외친다. 어르신들 틈에 낀, 소년 소녀들의 모습 모두 미소가 가득했고, 그 간단한 춤 동작과 외치는 소리가 아직도 눈에 선하다.

30대 중반의 '조지 오웰'은 스페인의 내전에 소련의 지지를 받고 있는 공화국 정부군 소속 통일노동자당의 의용군으로 참가한다.

영국인인 그가 남의 나라 내전에 참가한 이유는, 신문기사를 쓰려고 스페인에 갔다가 의용군 모집 포스터, "당신은 민주주의를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에 꽂혀서,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 공동체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의 북동부 카탈로니아의 항구도시이다.

그가 바르셀로나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무정부주의자(아나키스트)들이 장악하고, 혁명이 활발히 진행되고, 노동 계급이 권력을 잡은 이상적인 모습으로 비쳤다.

도시의 대동맥, 람블라스 거리는 노동 계급의 거칠 한 옷차림과 혁명가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노동자들의 국가, 그것은 그에게 싸워서 지킬 만한 어떤 가치가 있음을 확신케 하였다.

비록 식량과 물자가 부족했지만 사람들은 모두 만족해했고 희망이 넘쳤다. 실업은 없었고, 혁명과 미래에 대한 믿음으로 '조지 오웰' 역시 이미 평등과 자유의 시대로 들어 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모든 부르주아들은 도망가거나, 죽거나, 노동자 편으로 넘어왔거나 .. 그러나 실상 그들은 기회를 엿보며 프롤레타리아 행세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된다.

들 레닌 병영의 의용군들은 16세 미만의 소년이 절반이며, 무기 사용 교육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제복 또한 각각의 체계상 심각한 결함이 있는 오합지졸 집단이었다. '오웰'의 눈에 비친 카탈로니아 노동 계급의 사람들은 솔직하고, 관대함이 장점이지만, 비능률적이고 시간을 잘 어기며, 미루기를 잘하는 사람들로 비친다.

'오웰'은 스페인을 경멸하지만, 스페인 사람들을 매우 좋아하게 된다.

그 나라 사람들의 타고난 기질을 묘사하는 부분이 꽤 많다.

스페인다움, 스페인스럽다 등등.. 그리고 안달루시아 지방의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인상 깊다.

막상 전선에 투입이 되자, 전투를 본 적은 없었고, 추위를 견디는 것이 관건이었다. 이동하면서 만나는 전투는 이미 비켜갔거나 교착상태에 있었다. 그리고 의미 없는 총알들만 빈 골짜기를 가로질렀다. 그곳에서 '오웰'은 총 5명의 부상자를 목격하게 되는데, 모두 자기무기에 자기가 부상당한 경우였다.

쟁이 아니고 무언극일 뿐이다. 이 전쟁은 민주주의를 위한 눈속임, 사기이다. 회의감이 올 때쯤 참호에서 목을 관통하는 총상을 입게 된 '오웰'은, 병원으로 후송되고, 요양소 생활을 하게 된다.

전쟁 참여 불가 판정을 받고 제대증을 받은 후 아내가 묵고 있는 호텔로 돌아가는데,

'오웰'의 의용군이 속해있던 통일 노동자당이 파시스트에 매수당한, 불법 조직으로 몰려서 그곳 복무자 출신들이 모두 체포되고 있었다. 결국 그는 아내와 함께 프랑스로 탈출하고 영국으로 돌아온 후 이 책을 발표한다. 1938년,

이 전쟁은 1936년 7월부터 1939년 3월까지 이어지는데, 이미 1차 세계대전이 있었고, 2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바로 전 사이에 일어났었다.

국 '오웰'의 예측대로 의용군이 속한 공화국 정부군은 패하고, '프랑코' 장군이 주도한 반란군의 승리로 끝난다. 스페인의 민주주의 싹을 짓밟은 '프랑코' 정부는 강력한 파시즘 국가를 수립하고, 2차 대전엔 직접 참여하지 않지만, 독일과 이탈리아를 지원하여 국제적으로 고립되기도 한다. 그리고 '프랑코'는 죽는 날까지 공화파와 공산주의에 대대적인 탄압을 벌인다.

그때 당시 유럽 각국의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국제 의용군에 입대를 응원하였고, 사회주의자였던 '조지 오웰'은 반공주의자로도 유명한데, 어릴 때 사회주의와 공산주의가 같은 건 줄 알았던 나는, '유시민'과 '조지 오웰'을 통해 두 선을 확실히 긋게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오웰'에게 있어 이 전쟁의 경험은 훗날 '동물농장'과, '1984'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는 생각도 든다.

 

현실적이고 냉소적인 영어 문명권 사람들에게는 이 이상주의적인 스페인 사람들이 진부해진 혁명적 표현들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고 왠지 애처롭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13-14

아득한 소문과 같은 나라 스페인을 본 것 같았다. 하얗고 뾰족뾰족한 산맥, 염소 지기, 종교재판을 하던 지하 감옥, 무어인의 궁전, 꾸불꾸불 줄지어 가는 검은 노새, 잿빛의 올리브나무와 레몬 숲, 머리에서 어깨까지 검은 베일을 덮어쓴 처녀들, 말라가와 알리깐떼의 포도주, 성당, 추기경, 투우, 집시, 세레칸테, 간단히 말해 이것이 스페인이었다. 유럽국들 가운데 나의 상상력을 가장 강하게 사로잡았던 나라였다. 261

내 역할에 무력함을 느꼈던 이 전쟁은 나에게 대체로 나쁜 기억만을 남겼다. 그러나 전쟁이 없었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이런 참사--어떻게 끝이 나건 스페인 전쟁은 살육과 신체적 고통은 별도로 하고라도 경악할 만한 참사였다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를 잠깐 보았다고 해서 꼭 환멸과 냉소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이상한 일이지만, 그 경험 전체를 통해 인간의 품위에 대한 나의 믿음은 약해지기는커녕 오히려 강해졌다. 2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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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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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런 소설을 다 읽고 난 후엔 신음이 내뱉어진다. 티 안 내려고 숨죽이자니, 현기증도 나는 것이, '파이 이야기'를 통해 이 작가가 심상치 않음을 익히 느꼈었지만, 읽으면서도, 다 읽고 난후에도 뭐지 이 사람? 하는 생각이 들어 온다. 이 책을 자기의 인생 책이라고 말하는 이웃들도 많았지만, 난 이 책이 이 작가의 최고이지 않을까? 더 이상은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물론 더 읽어봐야겠지만..

'얀마텔'은 캐나다의 외교관 아들로 태어나서 알래스카, 프랑스, 멕시코, 코스타리카 등지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성인이 되어서는 이란, 터키, 인도 등을 여행하면서 지냈다고 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다양한 직업을 거친 후, 27세부터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일단 남다른 삶의 경험이 그의 이야기의 원천이 되겠고, 철학적인 사유가 또 그냥 흥미로운 소설을 넘어 서는 무언가를 던지기에, 내가 접한 이 두 책에서 나는 숭고함 마저 갖게 된다.

은 세 개의 부제로 이루어져 있다. [집을 잃다], [집으로], [집].. 그리고 각자 다른 이야기, 다른 시대를 사는 주인공들의 삶이지만, 어떠한 단서들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이 경이롭고 매혹적이다. 주는 상실에 관한 이야기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세 남자의, 고통의 극복 보다는, 승화도 아닌, 치환쯤 되려나? 그러나 독자에겐 결국 승화로 남는다고 봐야 할 듯..

암튼 고통은 극복할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은 결국 고통 속에 떠나보내고, 떠나야 할 존재일 테니까...

이런 고통과 상실의 이야기는 애써 외면해 보자는 주의인데, 책을 읽는 내내 고통의 정서보다는 마력에 사로잡힌다. 남미 특유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약간 버무린 탓에 ..

그리고 작가의 장치에..

[집을 잃다]

 예보조사라는 직업을 가진 '토마스'는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의 거듭된 사업 실패로 가난하지만, 아프리카의 토산품 무역으로 큰돈을 번 부자 숙부 덕으로 살고 있다. 그는 숙부 집의 하녀 '도라'를 통해, 사랑과 성에 눈뜬다. 둘 사이에 아들 '가스파라'라는 사생아도 태어나지만, 숙부의 냉담 속에 결혼은 하지 못하고, 더 자주 숙부 집을 드나들면서 셋이 함께 어울린다.

그리고, 5세의 아들이 디프테리아로 죽자, '도라'도 죽고, 아버지도 죽는다. 죽음의 3연타, 이 일이 모두 일주일 사이에 일어난다.

'토마스'는 그 이후 뒤로 걷는다. 마을 사람 모두 위험하다고, 특히나 숙부의 걱정이 태산이지만, 이 비극의 주인공은, 애도보다는 신에게 반발하는 마음으로 뒤로 걷는다.

즈음, 대주교의 포르투갈 전역에서 수집한 유물들을 박물관에 기증하기 위해 물건을 정리하는 중 오래 방치되었던, 목록에도 없는 낡은 책을 발견한다.

하도 읽어서 절로 외워진 이 책은 회복할 수 없을 만큼 황폐해진 '토마스'에게 사는 이유가 된다. 15세기 말부터 포르투갈의 식민지였고, 노예무역의 거점지였던 앙골라에 있던 항구에 파견된 '율리시스'라는 신부의 1631년부터 1635년까지의 기록이 담긴 일기이다. '율리시스'는 그 노예들을 하느님의 길로 안내하는 사제였다.

'이곳이 집이다. 이곳이 주께서 나를 품어 데려가실 때까지 주신 집이다'. 이 문구에 끌린다. '토마스'는.. 집이 없다는 것에 ..이 문구를 마음에 새기며 '율리시스'의 심한 향수병과 그 신부가 그린 독특한 얼굴 드로잉을 들여다보며 소일하던 '토마스' 는 '율리시스'의 그림 속 슬픔에 젖은 눈매에 빠져들어 아들을 잃은 기억을 되새기기도 한다.

노예(대부분 아프리카 원주민)들에게 세례를 주던 '율리시스'의 어느 날 일기에서 그가 선물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그 물건의 흔적을 좇으며 몇 달을 보낸다. 1년의 연구 끝에 그 선물은 십자고상이며 편지를 통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있는 한 교회에 선물로 보내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십자고상이 예수를 독특하게 묘사했다는 사실도..

'율리시스'는 노예들의 사제를 자처해서 떠났었다. 나는 낮은 자들 가운데, 가장 낮은 자들, 인간은 잊었지만, 신은 잊지 않은 영혼들을 섬기고 싶다고,, 그러나 노예들의 침울한 행동과 무력감의 신호로 손으로 땅을 파서 흙을 빚어 먹던 토식증을 보면서 그들의 자유는 죽어서야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신이 내가 사랑하는 이들에게 한짓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하기 위해 이 물건을 만들겠노라'는 다짐을 한다. 그는 성당에서 고함을 지르고 반항을 하고, 미사를 방해하는 소동을 벌이고 주교에게 말한다. '동등하지 않은 자들을 만났고, 그 만남에서 그들이 동등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우리가 그들보다 나을 게 없으며, 사실 우리가 더 못하다'고.. 그리고 파문을 당한다. 그 이후 '율리시스'는 자신의 사명이, 죽음이 그를 데려가기 전, 신을 위해 선물을 만들 겠다며, 인간이 자초한 파괴를, 우리가 동산에서 몰락한 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증언하겠다고 한다.

그리하여 '율리시스'의 고뇌에 찬 창작물을 찾는 것이 '토마스'의 과업이 된다.

1년간 뒤로 걷는 것으로 표출한 분노와 절망을, 관습에 어긋나는 십자고상으로 표출하고픈 ..

어렵게 열흘의 휴가를 얻어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 가기로 한 '토마스'를 위해 부자 숙부는 프랑스산 자동차를 빌려준다. 각종 먹거리와, 모피옷과, 장비들, 자동차 매뉴얼까지 살뜰히 챙겨서,

1900년대 초는 아직 마차와 말이 교통수단이어서 자동차란 물건은 낯설었다. '토마스' 역시 매뉴얼을 들여다보며 자동차와 씨름을 하듯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험난한 여정을 나선다.

어렵사리 도착한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산이 없었다. 언덕과 초원들뿐이었다.

그 마을의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그의 자동차만 보면 신기해하며 마구 달려 든다. 그리고 어떤 작은 아이를 친다. 부딪친 아이가 죽었는지? 아이가 맞는지?, 멀어지면서 구토를 하고, 결국엔 낮고, 단순하고 소박한 교회에 도착을 한다.

그리고 그 십자고상, 예수의 형상에 놀란다. '율리시스'의 스케치, 다른 예수상 모두를 조롱하는, '보라고, 당신이 내 아들을 데려갔으니. 이제 내가 당신 아들을 데려가는 거'라고 중얼거린다. 그리고 자기가 친 아이를 생각하고, 다시 토하고, 흐느낀다. 절규한다. 우리는 멋대로인 동물이다. 그게 우리이고 우리는 우리일 뿐 더 나은 무엇이 아니다. 더 숭고한 관계 따윈 없다.

* 토마스의 고통 만큼 율리시스 신부의 고통도 다가오는 이야기이다.

[집으로]

 

   '에우제비우 로조라'는 병리학 과장으로 의사이다. 그는 시신의 부검을 통해, 죽음의 보고서를 만드는 일을 한다. 그는 시신의 응고와 액화는 견딜 수 있지만, 감정의 응고와 액화는 견딜 수 없기에 전문분야를 이 일로 선택했다. 표면상으로는 무자비한 데가 있는 직업을 가졌지만 부드러운 마음의 소유자이다.

죽음에 대한 인내심이 없다고 그가 말하는 그의 아내는, 책을 많이 읽고 유창한 말솜씨를 가진, 50대의 나이임에도 여전히 심오하고도 아름다운 여인이다. 38년간의 결혼생활을 이어오는데, 이 부부는 '애거사 크리스티'의 광팬이다. 신작을 서로 돌려보며 토론하기를 즐긴다.

1938년 12월 마지막날, 부검 작업실에 아내 '마리아 루이자 모타알 로조라'가 나타난다.

"우리 모두는 육신 속에서 고통을 받다가 죽어요. 예수는 우리에게 죽음이라는 무거운 짐을 덜어주어요."

"예수를 죽인 것은 로마인도 유대인도 아닌 익명의 군중들이며, 우리 모두의 죄라고.."

"자연사는 처음부터 없다. 모든 죽음은 살해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부당하게 빼앗긴 것으로 느껴지니깐.." 이런 대화를 나누며

음에 대한 해답은 믿음이란 말을 남기고, '애거사 크리스티'의 신작 '죽음과의 약속'을 선물하고 돌아간다. 문을 나선 그녀가 다시 돌아왔나 했을 때 다른 여인이 들어온다. 검은 상복 차림으로 가방을 들고는, 그녀 역시 '마리아'라는 이름을 가진.

포르투갈의 높은 산이라는 시골마을에서 왔다는 그녀 '마리아 도르스 파수스 카스트루'는 자신의 가방에서 남편의 시신을 꺼내면서 그가 어떻게 죽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살았는지를 말해 달라고 한다. 밖에 나갔다 오니, 커피를 마시고 있던 남편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고, 그리고 부검하는 것을 직접 보겠다고도 한다.

어린 나이에 결혼을 해서 60년간의 부부생활을 해왔다고 말하는 그녀는 보통의 시체부검이 흉부와 두부 위주인데, 발부터 시작하자고 제안을 한다. 의아해하며 발바닥을 절개하자 토사물이 나온다. 놀라고 있는 그에게 그녀는 자신의 아들이 죽었다고 말한다. 그 이후로 부부가 서로 원망하고 발톱을 세우면서 살았노라고,

둥이로 얻은 아들이 5살 나던 해, '라파엘'은 농장으로 일하러 가면서 아들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그 아이를 잃고는 뒤로 걷기 시작한다. 난생처음 본 자동차란 기계를 몰고 왔던 그 이방인, 그럴 수 없이 슬픈 얼굴로, 애절과 비통으로 얼룩진 얼굴을 한 채로 뒤로 걷던, 교회에서 만난 그 이방인을 떠올리며 뒤로 걸었다고.

발바닥뿐 아니라 두발, 다리에서도 토사물이 나온다. 어느새 부검은 그녀의 지휘 아래 있다. 이어 양팔에서는 망치, 부젓갈, 긴 칼, 진흙 덩어리, 포크, 머리에서는 장난감과 거울 등이 나온다. 그리고 복부에서는 침팬지와 새끼 곰이 나온다.

상복을 벗어던지고 부검 대위에 알몸으로 올라선 그녀는 라파엘의 몸속에 자리를 잡고 함께 봉합해달라고 말한다.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여기가 집이야~" 하면서.

그리고 새해가 시작된다. 간밤에 그를 찾아왔던 아내는 산책을 나갔다가 사라졌었다. 그녀의 것이었던 '애거사 크리스티'의 책들이 발견되고 바위 틈에 낀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자, '로조라'는 직접 아내의 부검을 맡았다. 죽음의 단서는 찾을 수없었다. 생각이 깊고, 독실한 크리스천이자, 별나기도 했던 그녀의 죽음은 유서도 없고, 악천후 속에 돌아다닐 이유도 알 수 없었다. 인정이 많고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행복한 여인이었던, 그리고 그가 너무도 사랑했던 그녀의 죽음은 미궁에 빠진 살해 미스터리로 남았다. '애거사 크리스티'의 미스터리는 해답이 있었지만은..

밤 그를 찾은 아내의 혼과, 남편의 몸속으로 들어간 또 다른 '마리아'를 겪고 깊은 잠에서 깨어난 닥터 '로조라'는 꺼이꺼이 크게 흐느낀다. 그리고 '마리아'의 가방 속에 '라파엘'의 부검서와 그의 몸에서 나온 물건들이 담겨 있다.

* 의학의 본질적 사명은 고통을 완화시키는 것이다는 명제가 와닿음.

[집]

 

  1981년 62세의 '피터로비'는 캐나다의 상원 의원이다. 그에겐 40년의 결혼생활을 함께 한, 사랑하던 아내 '클래라'가 있었다. 그녀를 병으로 잃은지 6개월이다.

그녀가 병중에 있을 때 아들의 파경을 맞이했다. 의료연구인 그들의 아들 '벤'은 '피터'의 중재에도 양육권마저 아내에게 빼앗기고, 며느리와 10대의 손녀 '레이첼'은 밴쿠버로 떠난다.

그리고 그는 유령처럼 살고 있다.

어느 날 의장은 그런 그에게 미국 오클라 호마로의 여행을 권유한다. 의원들 초대에 공석 자리가 있다면서..

'피터'는 동물 관련 일을 했던 아내가 좋아했던 동물원 방문을 하고자 의뢰 하지만 보수작업 중이라 출입할 수가 없다면서 유인원 연구소인 침팬지 보호소를 추천받는다.

화론적으로 인간과 가장 유사한 침팬지를 연구하는 것이 결국엔 우리의 모습을 연구하는 것이라는 직원의 안내로 우리를 살펴보다가 큰 덩치와 까만 털, 그리고 지르는 소리에 놀라고 공포에 짓눌리다가 어느 한 침팬지의 눈빛에 끌리게 된다.

아내가 떠난 후 그렇게 충만하고 진솔하게 열린 문 같은 눈으로 쳐다봐준 사람이 없었음을 깨닫고, 침팬지가 보내는 눈빛에 사로잡히고, 침팬지가 내민 손을 위험하다는 경고를 뒤로하고, 맞잡으면서 '피터'는 그 침팬지를 사겠다면서 거금을 제시한다. 그 침팬지의 이름은 '오도'이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수없이 후회도 해봤지만, 결국엔 그 침팬지를 키울 수 있는 장소를 찾게 된다. 아내와의 추억이 가득한 지금의 집과 가구들을 정리하면서 그는 부모의 고향이었던, 그가 두 살 때 떠나온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오도'와 함께 가기를 도모한다.

프리카에서 야생 포획된 이후 한때 나사에서도 있었다는 '오도'는 주유소마다 나무에 올라가 잠을 자고, 깨기를 기다려 움직여야 했으므로 예약된 항공편을 뒤로 미루며 수수료를 내야 했다. 비행기를 내려서 자동차를 구입하고, 포르투갈의 높은 산으로 향하면서도 '오도'와의 알 수 없는 교감은 때로 '피터'를 공포의 도가니에 몰아넣기도 한다.

포르투갈의 높은 산에는 역시 산이 없었다. 숲이 높은 골짜기일 뿐이다.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낡은 집을 구하는데, 사람들이 청소며 수리며 모두 거들어 준다.

'피터'는 시계를 풀어 버린다. 새들이, 교회의 종소리가, 벌레 떼가, 매미와 귀뚜라미가 시간을 일러준다. '오도'와 함께 요리를 하고, 털 고르기를 하고, 카페를 순례하고, 숲을 산책하며 지낸다. 마을 사람들도 낯선 '오도'에게 익숙해진다.

'피터'는 아무 생각 없는 '오도'의 순수한 행동을 보면서, 인간의 특징인 생각이 오히려 어설프게 한다는 느낌을 갖는다. '오도'의 감정을 감지하고자, 쉽고 자연스러운 '오도'의 행동을 이해하려고 분석하면서 그는 침팬지 '오도'를 따라 하고 싶어진다.

기와 전화기도 없이 지내면서, 숲 탐험의 일과를 보내는 중, 그의 생활을 염려하는 아들 '벤'과, 동생 '테레사'와 통화도 하지만, 의장의 전화로 상원 의원 직을 사임을 하면서, 인간은 피로를 안겨주고 시끄럽고 성미 까다롭고 오만하고 믿음이 가지 않지만, '오도'의 곁에서 느끼는 강렬한 고요와 더딘 움직임, 대담하고 간결한 수단과 목적이 더 좋다고 말한다.

어느 날 마을의 장례 조문 행렬의 조문객들이 뒤로 걷는 모습을 지켜보게 된다. 그들은 뒤로 걷기를 통해서 슬픔을 표현하고 있다.

그리고 아들 '벤'이 열흘의 휴가를 얻어 찾아온다. 2년 만의 만남이다.

'오도'를 무서워하고 경계하던 '벤'과 지내면서 '오도'가 가져온 '애거사 크리스티' 의 포르투갈어 판 책을 보게 되는데, 그 책이 어디서 났냐고 '오도'에게 묻자, 가방을 가리킨다. 그 가방에는 부검 보고서와 함께 온갖 물건들이 있었다. 남편 '라파엘'의 몸을 집으로 여긴' 마리아' 그녀의 가방이었던 것이다. 그 책은 '죽음과의 약속' 이었고..

가방을 통해 자신이 머물던 집이 누가 살던 집이었는지가 궁금해진 '피터'는 자신의 집을 구해준 여인을 찾아 나선다. 가족사진을 들고..

그녀는 사진 속 '라파엘'과 '마리아' 그리고 아이를 가리키며 '황금 아이'라고 말하고는 '피터'를 교회로 데려간다.

부검 보고서에 있던 83세에 죽은 '라파엘'은 '피터'의 외가족 종조부였다. 이민을 떠나게 된 자신의 부모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있었던 듯하다.

그 교회에는 오래된 자신의 사진 속 그 아이의 사진이 있었다. 농장 일을 도우러 떠났던 아버지를 따라나선 이 아이는 도로변에서 시체로 발견된다. 마을 사람들은 죽어 있는 아이의 상처가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상처와 일치한다고 생각했다. 그 지역에 처음 등장했던 자동차 사고라기엔 증거도 없고, 미스테리 했다. 그래서 신이 한 일이라고 받아들였다. 천사가 하느님께 데려가려다가 아이를 떨구었노라고, 천사가 떨군 게 미안해서 그 아이에게 특별한 능력을 주었노라고, 그래서 그 아이에게 기도를 하면 임신이 된다는 것이었다.

한때 가난한 마을에 태어난 이 아이는 마을 전체가 사랑했던, 살아 있는 풍요와도 같은 아이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황금 아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자신이 '오도'와 함께 살던 그 집이 '라파엘'이 살던 집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집은 '오도'와 함께 하는 이야기였음을 깨닫는다.

'벤'은 그 교회에서 특별한 십자고상을 발견하고 가리킨다. '피터'는 응수하고 '오도'의 존재에 대해 '벤'에게 고백한다. '오도'는 내 삶을 채우고 있다고, '오도'가 내게 기쁨을 가져다준다...

'벤'을 놔두고 '오도'와 산책길에 나선 '피터'는 큰 바위에 올라 자신에게 손짓하는, 평소와 좀 다른 '오도'를 따라 급경사의 바위에 오르며 심장이 두근거리고 가슴의 통증을 느낀다. 그리고 '오도'의 시선이 멈춘 곳에서, 이베리아 코뿔소를 발견한다.

흐느끼던 '피터'에게 '오도'는 포옹을 해준다. '오도'의 든든하고 완전한 포옹 속 '피터'는 고통에서 벗어난다. 슬픔에 겨운 기침을 하던 '오도'는 이베리아 코뿔소를 향해 내달린다.

* 커다란 상실을 겪고 고통을 안은 채 남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미스터리니, 판타지니 하는데 그건 아주 작은 양념에 불과하다. 하지만 또 간과할 수 없는 주된 맥락이기도 하겠다. 슬픔을 바라보는 책이지만, 슬픔에 겨워지는 책이 결코 아니다. 오히려 아름답다. 그리고 종교적 배경이 있지만, 종교의 이야기도, 절대자를 향한 어떤 것도 결코 아니다. 오히려 인간 자체를 향한다.

인간의 고통은 극복할 무언가가 아니라면, 받아들일 무엇인가? 이 책을 읽은 후의 나는 인간의 고통이, 삶이 이어지는 동안에는 함께할 무엇이라는 결론을 조심스레 내려본다. 삶의 이면이 어쩌면 고통은 아닌지..'얀마텔'이란 이 천재 작가는 공허하고 허기진 인간이 갈구할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져주는 사람인 듯하다.

* 나의 집은 어디인가? 인간의 집은 어디인가? 영원한 안식을 주는 완전한 포옹을 내게 해줄 존재는 무엇일까?

 

삶을 돌아보는 것은 달콤 쌉싸름한 일이다. 그는 향수에 젖는다. 어떤 사진은 벅찬 기억들을 불러온다. 어느 날 저녁, 아기 벤을 안은 젊은 클래라의 사진을 보다가 피터는 울음이 터진다. 벤은 자그맣고 빨간, 주름투성이의 갓난아기다. 앙증맞은 손이 엄마의 새끼손가락을 꽉 잡고 있다. 오도는 동요하지 않고 근심스럽게 피터를 바라본다. 침팬지가 사진첩을 내려놓고 그를 껴안는다. 잠시 후 피터는 부르르 떤다. 왜 이렇게 흐느끼는 걸까? 이래 본들 무슨 도움이 된다고? 아니다, 명징하게 보는 데 장애가 될 뿐이다. 다시 사진첩을 펴쳐 클래라와 벤의 사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쉽게 슬픔에 매몰되지 않으려 애쓴다. 대신 그가 두 사람을 사랑한다는, 단순하지만 중요한 사실에 초점을 맞춘다. 369-370

풍경은 여느 때와 똑같지만, 익숙하다고 감동이 사라지진 않는다. 지평선까지 금빛 도는 노란 풀로 뒤덮인 거대한 사바나가 펼쳐지고, 드문드문 검은 바위들이 있다. 늦은 오후가 만개한 하늘은 제외하면 단출하고 아름다운 전망이다. 그들 위쪽으로 공기의 부피는 어마어마하다. 그 안에 해와 흰 구름이 서로 장난을 한다. 풍성한 빛이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찬란하다. 402-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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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은 다시 뜬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이한중 옮김 / 한겨레출판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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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헤밍웨이'의 첫 장편이자, 출세작이 되고, 대표작이 되는 '태양은 다시 뜬다'는 성경의 한 구절이다.

 

 

"한 세대가 가고 또 한 세대가 오건만,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태양은 다시 뜨고 다시 지며, 뜬 곳으로 서둘러 돌아간다.

바람은 남으로 갔다가 북으로 돌이키며, 빙빙 돌고 돌아

그 가던 길로 돌아온다.

모든 강은 바다로 흐르지만 바다는 넘치지 않으며,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돌아간다." -전도서(1:4-1:7)】"

 

 

책의 서두에 이 구절을 실어 놓았다.

'헤밍웨이'의 책 어디서나 '헤밍웨이'가 살던 시대의 사람들에 대한 '잃어버린 세대'라는 말 또한 여기서도 서두나, 해설에 실려 있다. 1차 대전 후의 청춘들을 가리키는 '잃어버린 세대', '길 잃은 세대', 말하자면 '헤밍웨이'가 그 세대의 전형을 가장 잘 그려낸 작가라는 것이다.

간결하고 절제된 문체를 구사하여 사실적이고 이미지적인 표현 아래 깔려 있는 의미심장한 것들이 생략된 그만의 독특한 문체는 20세기 세계의 소설 스타일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도 한다.

화자인 나는 '제이콥 반즈'(이하 '제이크')란 이름을 가진 미국 출신의 저널리스트이다. 파리에서 활동하며 문학인들, 화가들과 어울리며 지낸다. 같은 미국인이지만 유대인 출신인, 부유한 '로버트 콘'(이하 '콘')과 테니스를 치는 친구 사이이다.

'로버트 콘'에 대한 설명으로 소설이 시작되는데, 그는 어느 날, '인생이 너무도 빨리 흘러가는데 진짜로 사는 게 아니다 싶어서 못 견디겠다'라고 벌써 '거의 반평생을 살았노라'면서 내게 남미 여행을 제안한다.

나는 그 여행을 함께 할 수 없다며 곧 있을 스페인으로의 여행 계획을 이야기한다.

'제이크'인 나는 전쟁에서 다친 후유증으로 성불구가 되었다. 그때문에 '레이디 애슐리 브렛(이하 '브렛')이라는 여인을 사랑하지만, 그녀와의 사랑을 이룰 수가 없다. 그녀 '브렛'은 34세의 작위를 가진 귀부인, 즉 영국인이다. 다친 '제이크'를 치료해주던 구급 간호 봉사 대원이었던 그녀는 이미 한번 이혼을 한, 그리고 두 번째의 이혼 수속 중인 여인으로, 매우 아름답고 매력이 있는 기품이 있는 여인이다. 그리고 술꾼이며 보이시한 매력녀라고 하는데, 이 남자 저 남자를 갈아치우는 이 여인을 왜 기품 있다고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튼 그녀를 한번 본 남자들은 모두 그녀에게 빠지고, 그녀는 아무 남자하고나 여행을 떠나고 살다가 또 떠나온다. 그런 그녀 역시 '제이크'는 각별히 사랑한다.

진심 사랑하는 '제이크'와의 이루어질 수 없음이, 진정 사랑하지도 않는 다른 남자들과의 불같은 사랑으로 대체될 수 있으려나 찾아다니는 하이에나 같은 사랑질이지만, 어차피 '제이크'가 아닌 사랑은 늘 허무할 뿐인 듯..

결혼을 했다가 아이 셋을 낳고는 부유한 아내와의 가정불화가 있던 '콘'은 아내와 이혼을 결심한 즈음, 아내가 어떤 세밀화가 와 떠나버리자 '프란시스'라는 여인과 3년을 지낸다. 그녀 '프란시스'는 '콘'에게 무심한 소유를 통한 착취 끝 청혼을 하지만, '콘'은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다면서 거절하고, '제이크'를 통해 알게 된 '브렛' 에게 반하고 그녀와 여행을 떠나서 함께 지낸다.

'제이크'의 스페인 여행은 낚시와 축제장의 투우 구경이다. 그 여행에는 친구 '빌 코튼'(이하 '빌')과 '브렛'과 '브렛'의 약혼자 '마이크', 그리고' 브렛'과 며칠 지내다가 그녀를 못 잊어 그 여행의 불청객으로 낀, '콘'이 함께 하게 된다.

'브렛'의 마음은 이미 '콘'에게서 떠났고, 다시 현실의 애인 '마이크'와 함께 한 여행에서 그녀 곁에서 맴돌고 마치 그녀를 모두 알고, 그녀의 마음이 아직도 자신에게 향하는 양하는 '콘'이 못마땅한 '마이크'는 자꾸 만취 상태에서 물의를 일으키고..

스페인에서 '빌'과 함께 낚시를 하고, 다른 일행들과 합류하여 '팜플로나' 지방에서의 '산 페르민 축제'를 즐기며 불면과 환성과 흥분과 투우에 들떠있다.

'제이크'는 '아피시오나도' 이다. 투우광이란 뜻이다. 19세의 론다 출신인 투우사 '페드로 로메로'를 소개받게 되는데, 너무도 잘생긴 이 스타는 차분하고, 평온해서 순전한 감동을 주는 멋진 투우의 기술이 있다. 그의 부드럽고도 아름다운 투우 동작을 처음 본 사람들은 모두 그에게 반했는데, 특히 '브렛'이 그러했다.

제가 깊어질수록 술과 불면, 무질서 속에서 황소의 뿔에 받혀서 죽어나가도 재밌자고, 그냥 재밌자고 사람들은 뛰어든다. 떼로 몰려드는 황소를 향해 피하기는커녕 달려드는 무모한 사람들은 하루를 사는 불나방 같은 축제의 밤을 보낸다.

그리고 어리석은 사랑에 목메던 '콘'은 '마이크'와 충돌하고, 그녀가 '페드로 로메로'와 함께 지내는 것을 보자 극도로 흥분해서, '로메로'를 마구 두드려 패버린다. 그리고 '제이크'도 폭행을 하고는 떠나버린다. '마이크'는 취중에 자신의 애인이 유대인 애인 대신, 투우사 애인을 뒀다면서 무례하게 떠들고,

마지막 맞아서 망가진 얼굴로 또 멋진 투우를 펼친 '로메로'와 '브렛'은 떠나버린다.

우장에 나갈 싸움소( 즉, 황소)들은 우리에서 풀리자마자 극도로 흥분을 해서 난리를 치는데, 그 성난 황소들을 대기장까지 데려가는 역할은 거세된 소들의 몫이다. '브렛'을 둘러싼 그녀의 매력에 마구 달려들던 남자들과 무분별한 사랑을 나누는 그녀로 인한 실랑이들의 뒤처리는 결국 성불구인 '제이크'의 몫이다. 읽어내려가면서 이런 대조에 집중해 보았다.

다시 파리에서 일상으로 돌아온 '제이크'는 '브렛'의 전보 두 통을 받고는 그녀가 와달라는 '마드리드'의 좀 저렴한 호텔로 간다. 그녀는 '로메로'가 떠나갔다고 자신에게 청혼했지만 여자 경험이 별로 없던 그 애가 자신을 좋아한 것이 단순히 여자여서가 아니었고 오직 그녀였기 때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노라고, 하지만 애들 망가뜨리는 몹쓸 여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서 떠나보냈노라는 고백을 한다. 로메로는 열다섯살 연하였다.

그리고 '마이크'에게 다시 가겠노라고, 온 김에 '마드리드'를 좀 더 알고 싶다면서 구경을 하자고 한다. 그리고 '제이크'에게 아쉬움을 남기는 말과 수긍하는 '제이크'의 대답을 끝으로 소설이 끝난다.

속 그녀는 사랑하는 '제이크'를 밀어낼 것이고, 그의 인내심을 볼 것이고, '제이크'는 언제까지라도 그녀가 부르면 달려갈 것이고, 사랑할 것이다. 명백한 육체의 결함을 가진 남자의 사랑으로..

소설을 읽으니 다른 작가들이 자신의 소설에서 언급한 '헤밍웨이' 불구설의 근원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기도 한다. '헤밍웨이'는 정말 한때 그랬을 수도, 계속 그랬을 수도 ..

'제이크'는 '브렛'의 연인들을 질투하는 듯도 하지만, 인정하고 그 사랑을 도와준다. 또한 그녀의 온갖 염문과 연애도 지지한다. 그러는 그의 감정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유럽인들에게 그 시대의 미국인은 자본주의의 꽃쯤으로 여겨짐이 있고, 또 '헤밍웨이'는 그 당시 파리에 거주하는 해외파 문인들의 대표답게 원 없이 자유롭게 살다 간 듯하다.

가 반해서 한때 어느 여인과 잠시 살았던, 그리고 그가 산책을 했다는 곳, 그가 커피를 마셨다는 스페인 론다의 '누에보 다리'가 떠오르기도 했다. 하필 '로메로'가 '론다' 출신이란 것도..

이 소설로 인해, 스페인 팜믈로나의 산페르민 축제는 세계적으로 급 부상해서 인파가 끊이질 않았다 하고, '브렛'의 보이시한 헤어스타일 등이 엄청 유행을 했다고 한다. '무기여 잘 있거라', '파리는 날마다 축제'란 소설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어 사전에 읽었으므로 좀 더 깊이 있게 다가설 수 있던 독서였기도 했다.

다시 한번 미국 남성의 상징, 남성다운 필체의 '헤밍웨이'를 읽게 된 시간이었다.

쟁을 겪은 '잃어버린 세대'들의 아픔과, 한세대가 떠나고 또 한세대가 와도 땅은 영원하며 태양은 다시 뜬다는 의미, 그 해는 다시 뜬 곳으로 돌아가고, 모든 강이 바다로 흐르지만, 강물이 비롯된 곳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이 구절이, 그래서 '로버트 콘'의 빨리 흘러가는 인생이 아깝고, 아직 제대로 살아보지 못했음에 대한 회의가, 무겁게 와닿고 있다. 젊음은 그래서 빨리 지나갈것이다. 하여 지금은 진짜 제대로 살아야 한다는..

-낮에는 무슨 일에든 비정할 수 있지만, 밤에는 사정이 다르다. 53


- 프랑스에선 모든 게 확실히 금전적인 기준에 따라 움직인다. 그만큼 살기 편한 나라는 없다. 누구도 모호한 이유 때문에 남의 친구가 되어 일을 복잡하게 만들지 않는다.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만들려면 돈을 좀 쓰기만 하면 된다. 317


- 그 정도면 될 것 같았다. 그런 것인가, 한 여자를 딴 남자와 떠나보내고, 그녀를 또 다른 남자와 떠나보내고, 이제 그녀를 데리러 가다니, 그리고 사랑한다면서 전보를 보내다니, 아무튼 그렇게 되고 말았다. 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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