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사요코
온다 리쿠 지음, 오근영 옮김 / 노블마인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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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과 천둥], [밤의 피크닉]으로 만난 '온다 리쿠'의 데뷔작이다. 그냥 학원물 만화 같은 내용이다.

그녀여서, 그리고 그녀의 데뷔작이라서 챙겨봤지만, 추리소설이나, 학원물이나 내가 좋아할 분야는 역시 아니다.

표지가 너무 강렬하고 그 강렬함이 기괴스럽기조차 해서, 과연 읽을 수 있을까 하기도 했으나 또 기우였고

개연성은 많이 떨어지지만 이미 앞선 두 작품으로 좋은 인연이 되었기에 읽을 수 있었다고나 할까..

'히가시노 게이고'와 함께 다작을 하는 추리작가로 알려져 있는 '온다 리쿠'는 화려한 문체와 묘사로 표현이 풍부하다고 하며 탐미적이고 섬세한 작가 특유의 분위기에 호불호가 갈리니, 많이 알려진 작품 위주로 읽기를 권한다고도 한다.

그 탐미적이고 섬세한 작가 특유의 분위기를 [꿀벌과 천둥]으로 처음 접하고 매료되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있어 그녀 작품의 원픽은 아무래도 [꿀벌과 천둥]이 유일무이하지 않을까 한다.


전통 있는 명문 고등학교에 3년에 한 번씩 15년간 이어져오는 행사가 있다. 그 학교에서는 일종의 관습이 되어버리기도 한 일이지만, 어찌 보면 아무 의미도 없다 여겨지는 게임 같은 것..

졸업을 하는 '사요코'가 새로운 '사요코'를 지명한다.

주인공들이 졸업하는 그해가 그렇게 이어져 내려오는 '여섯 번째의 사요코'를 지명하는 해였던 것이다.

과거 15년간의 '사요코'들은 모두 다섯이었는데, 그중 세명이 실패하였고 그중 한 명은 공포에 짓눌려 스스로 폭로해버리기도 했다는 전설 같은 이야기도 있다. 그리고, 그 행사가 잘 시행된 해에는 대학입시 성과가 매우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패했을 경우, '사요코'의 징크스도 있다.

행운의 편지같이 찝찝하고 피하고 싶지만, 막상 오면 그런 미신적인 믿음이 마음 한구석을 차지해, 결코 외면할 수 없는 그런 일이 바로 이 행사인 것이다.

게임의 시작은, 새 학년이 시작되는 날 아침, 자기 교실에 빨간 꽃을 꽂아서 그 방에 '사요코'가 있다는 것을 알리는 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가 누구인지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해야 한다.

올해의 '사요코'로 지명받은 그녀는 빨간 튤립을 들고 아침 일찍 나타났다.

이런 일을 왜 해야 하는 건지, 이런 관습은 왜 반복되는 건지 의아한 마음과 들키지 않아야 한다는 긴장에 불안과 공포까지 합세를 하는데 사람이 없는 복도와 계단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차갑기까지 하다.

-이하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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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 박태원 단편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5
박태원 지음, 천정환 책임 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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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중산층 집안에서 태어나 '이 광수'에게 문학 지도를 받기도 했다는 '박 태원'은 한국전쟁 발발 후 월북하여 북한 쪽 종군기자와 평양 문학대학의 교수를 역임하기도 했다.

1930년대의 대표적인 모더니스트 작가로 평가되는 그는 영화 기생충의 감독, '봉 준호'의 외할아버지..


새로운 소설적 기법의 시도, 작품의 이데올로기 보다 문장 그 자체의 예술성을 중시하고, 인간의 내면 의식 묘사를 중시했다는 그의 실험적인 작품세계는 먼저 읽은 [천변 풍경]보다 이 책에 더 잘 드러나있다고 보인다.

하여 그 온갖 실험적인 도모와, 기법이 난해하게 다가오기도 하다가, 그는 천재였던가 하면서 읽게 되는 단편집..

'구보'는 '몽보'와 함께 작가 '박 태원'의 필명이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은 총 13편의 작품이 수록된 이 작품집의 표제작이다.


-중간생략-

주로 자칫 한량처럼 보이는, 자타 공인 글을 쓴다는 무능한 남자들과

예술인들이 꼬여드는 다방들과

'노는 계집'들이 등장한다. '노는 계집'들이란, 술과 함께 몸을 파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기생, 색주가 따위의 여자들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여기서는 시대적으로 기생이라는 표현보다는, 주로 카페의 여급쯤으로 여기면 될 듯..

1930년대의 우리나라 여인들이 할 수 있는 돈벌이, 카페의 여급은 백화점 여직원, 공장의 여공, 버스 안내 양보다도 더 가깝고 쉬이 할 수 있는 일이었던 듯

아니면, 글쟁이나 예술 한답시고 부유하는 그 시대 남자들이 하릴없이 다닐 수 있는 만만한 곳들이 다방이요, 거기서 쉽게 대할 수 있는 이성들이 이들이었던 듯도..

대부분 등장인물들은 너무 무책임하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너무 경박하거나 하다. 그시대 친일하지 않으면, 다들 저렇게 가난했던가, 비참했던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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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 개정판
막심 고리키 지음, 서은주 옮김 / 큰나무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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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회한을 잔뜩 품은 이 적나라한 제목의 책은 '막심 고리키'의 짧은 소설이다. 한때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다는 [어머니]에 이어 두 번째 만나는 작가이다.

이 책은 [어머니] 보다 2년 앞서 발표되었다.

한때 인간이었던 그들, 지금은 더 이상 인간일 수 없는, 짐승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시 중심부에서 추방된 사람들, 사회로부터 소외당한 빈곤층에 대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내고 인간 삶의 초라함과 우주의 비정함을 드러내 작가 자신의 종교, 사상, 철학에 대한 관점을 반영했다고 평가받는 이 작품은, 러시아 혁명과는 관련 없어 보인다.

가난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마을의 외곽, 길이 끝나는 곳에 서있는 2층 집, 마을의 상인 '주다스 페투니코프' 소유의, 음침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커다랗고 오래된 이 집의 본채는 아무도 살지 않고, 한때 대장간이었던 헛간을 '쿠발다'라는 사람이 임대하여 싸구려 여인숙으로 운영하고 있다.

다리를 절고, 늘상 군복을 입고 지내는 40대의 '쿠발다'는 은퇴한 대위이다.

한때는 직업소개소도 운영했다 하고, 귀족 출신이라고도 하는데 담배와 술에 절어 지낸다.

그 여인숙에는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기거하고 있다.

지붕과 벽만 있는 집,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어차피 안락과 사치 따위에는 익숙지 않은 가난한 부랑자들로

오랜 기간 동안 투숙하기도 하고, 나가서 새삶을 살아보려 하다가도 다시 찾아오게 된다.

'쿠발다'는 이들 가난한 투숙객들에게 인기가 많다. 왜냐면 언제나 웃음 짓고 자신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농담 섞인 그의 일장 연설이 언제 들어도 좋기 때문이다.


이 싸구려 여인숙에 모여든 사람들은, 진탕 술을 마시고, 가진 돈을 술값으로 모두 써버리며 짐승처럼 지낸다.

숱한 운명의 씁쓸한 장난을 겪으며 삶에서 추방당하고, 생존을 위한 싸움에 지칠 대로 지친 이들은 술과 심술에 절어, 더럽고 추한 삶을 살고 있지만,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

계속된 불행의 규칙을 되풀이하며 자기 인생에 잔뜩 화가 나 있는 이들은

힘들고 고단한 인생 쇠사슬의 고리를 어쩌지 못해 한때는 마누라였던 여자들을 때렸고,

겨울이 다가오는 지금은 두려움으로 서로를 패고 난폭하게 굴면서 더 거칠어져있다.

이들 중, '쿠발다'와 가장 말이 통하는, 서열상 가장 가까운, 선생이라 불리는 '필립'이 있다.

그는 한때는 도시학교 선생이었는데 해고되었고 가죽 공장 등등의 여러 직업을 전전하다가 사법시험에도 합격하여 변호사가 되었지만, 술 때문에 운명이 뒤틀려 이곳까지 흘러들어와 여인숙 인생을 살고 있다.

그는 지역신문의 기자로 기사를 써서 돈이 들어오면 절반은 거리의 아이들에게 쓰고 남은 돈으로는 모든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술을 퍼마신다.


-중간생략-


실제로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의 러시아는 유럽에서 후진적인 농업국가에 속해있었고, 크림전쟁에서의 패배로 인해, 본격적인 근대화를 추진하게 되어 산업노동자가 탄생하게 되는데, 그 산업노동자와 혁명의 이야기가 [어머니] 라면,

이 책에서는 어떤 투쟁의 의지가 보이지는 않지만 근대화, 산업화에 도태된 인간들의 소외 내지 상실에 관한 자조적인 작가의 관점이 드러난다.

'쿠발다' 대위가 '그들도 한때는 인간이었다'라고 계속해서 언급하는데 책 속에 반은 친근한 마음, 반은 비꼬는 말투라고 밝혀두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 '막심 고리키'는 빨갱이 작가로 낙인찍혀, 1987년 6월 항쟁까지 그의 책들은 모두 금서였다.

가난하고 불우한 유년을 보낸 그는 독학으로 글을 깨우쳐, 투박하고 세련되지 못한 문체 구사로 당시에 비난도 많이 받았다는데

실제 그의 작품들에서 묘사나, 문장의 아름다움을 찾기는 힘들고, 혼란의 러시아, 혁명 시대의 러시아 서민들의 삶을 잘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다 보겠다.

러시아인들은 예술적 소질이 풍부하다고 한다.

문학사에서 대문호 하면 당연하게 러시아의 작가들을 떠오르게 하는 것만 보아도 문학사상 러시아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묵직하다.

흔히 '막심 고리키'를 19세기 러시아 문학과 20세기 소비에트 문학을 잇는 교두보로, 20세기 새로운 문학의 기초를 세운 인물로 평가하는데

21세기의 러시아 작가는, 그들에게 흐르는 예술가의 진한 피를 어떻게 그려낼 수 있을지? 한 백 년쯤은 기다려야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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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크리스티네, 변신에 도취하다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남기철 옮김 / 이숲에올빼미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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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는 1920-1930년대 전 세계에 명성을 떨쳤던 오스트리아의 전기작가이다. 그는 부유한 유대인 면직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나, 철학을 전공했고, 1차 대전 당시에는 국방부에서 근무했다는데, 종전 이후 언론인 겸 작가로 활동했으나 1933년 히틀러의 독일 집권 이후, 나치즘이라는 폭풍에 휘말려, 1934년 런던으로 망명했고 2차 대전이 발발하자 다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곧 남미의 브라질로 옮겨갔다. 전쟁이 독일에 유리하게 전개되자, '츠바이크'의 절망감은 점점 깊어졌고, 1942년 2월, '자유의지와 맑은 정신으로'라는 유서를 남기고 아내와 함께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프로이트'의 영향으로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 작용하는 심리적 측면을 예리하게 묘사하기로 유명을 떨친 그는 자신의 정신적 고향 유럽의 자멸을 보면서 우울했고, 특히나 이 책의 배경이 1차 대전 직후인 1926년인데, 작품 속 등장인물들을 통해, 그의 분노, 그의 죽음에 대한 자세, 그의 정부나 정치에 대한 생각들을 여실히 드러내주어서, 유의미한 독서가 되었다.

전쟁소설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속에서 피어나던 사랑과 이별을 소재로 한 책들을 읽게 되면서, 전쟁의 상흔과 함께 살아갔던 상처 입은 사람들의 삶 이야기를 좋아해 일부러 찾아보곤 해왔다.

[바다 사이 등대]라던가, [개선문] 같은 책들이 그래서 내게는 의미 깊은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1차 대전을 소재로 삼고 있다.

오스트리아 빈에서 기차로 두 시간 거리인 시골의 우체국, 경직되고 인색한 관료주의 분위기와 고리타분한 관청 냄새로 가득한 곳, 우체국 소인을 찍고 전화를 바꿔주고 전보를 회신하는 지루한 일에 지쳐있는 스물여덟 살의 '크리스티네'..


그녀 나이 열여섯이던 때, 전쟁은 그녀의 집안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아버지의 사업이 기울고, 오빠는 전사했다. 물가는 살인적으로 치솟고 그들은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괴로움은 부모를 늙게 만들었고, 아버지가 죽자, 가족들은 전부 돈벌이에 나서야 했다. 삼촌의 중개로 우체국 임시직을 거쳐 정규직원이 되었지만, 병든 어머니와의 생활비는 늘 빠듯했다. 뭐든지 너무 비쌌다.

어느덧 그녀의 나이가 이십 대 후반이 되었지만, 고된 노동으로 젊음을 소진해 버렸다.

전쟁은 젊음을 앗아갔고, 모든 감각을 망쳐놓았다. 이미 오래전에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춰버렸던 그녀에게는 연애도 쉽지 않았다.

그녀보다 젊은 처녀들은 성에 대해 개방적인 전후세대였지만, 그 대열에 끼지도 못한 그녀이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고, 행복했던 적이 언제였는지도 모르던 그녀에게 스위스에서 전보 한 통이 날아온다.


-중간생략-


슈테판 츠바이크'는 '페르디난트'를 통해 유럽에 대고 소리 지르고 있었다.

'크리스티네의' 변신이, 또 다른 신데렐라의 탄생쯤으로 알고, 낭만적으로 접근했다가, 바로 내가 찾던 소설이야 하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작가가 끝까지 내보이지 않았던 미완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 완성되지 못한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에 망설였지만, 여기까지의 결말로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여겨진다.

그가 사망 후, 유고 더미에서 발견되었던 이 책은, 40년 동안 잠자고 있다가 1982년 독일에서 출판되었다.

1930년경에 쓰였으며, 작가는 제목을 [우체국 아가씨 이야기]라 했고, 출판 당시에는 [변신의 도취]라는 제목을 썼고, 영화로도 제작되어 큰 인기를 얻었다 한다.

'츠바이크'의 책은 계속 읽게 될 것 같다. 항상 기대 이상이라 읽을 때마다 놀란다. [초조한 마음]이 그랬고 [베르사유의 장미]가 그랬고, 그 책들과는 결이 다르지만, 그만의 심리 묘사는 압권이다.. 내가 좋아하는 '에밀 졸라'의 묘사와는 또 다른, 그런 그만의 색깔이 있다.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한 그답게..

철학과 심리학에 심취할뻔했던 나답게 그의 작품들을 읽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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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일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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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영혼이, 묘지가 없어서 구천을 떠도는 이야기이다. 여기까지만 생각해 보면,, 왠지 어두울 것 같아서, 혹은 전설의 고향일까 봐 기피하고 있던 차, 어느 이웃님의 격려로 용기 내어 읽었는데, 역시나 잘 읽은 책, 고마운 이웃님이었다.

'위화' 특유의 꾹꾹 눌러 담은 무언가는 참 웃기면서 슬프고, 참 말도 안 되면서 거룩하기까지 하다.

어처구니없는 중국의 이야기, 중국의 현실이 고대로 반영되어 있어 지금의 중국을 알 수 있는 책이기도 하다.

나, '양페이'는 죽은 사람이다. 자신이 왜 죽었는지도, 어디로 가는 지도 모르고 떠돌고 있다.

그는 자신의 화장 예약시간에 맞춰 빈의관(화장터)으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는데 씻지도 않았고 수의도 없이 평상복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가난한 셋집으로 돌아가 씻고는, 수의 대신 짧은 결혼 생활 동안 아내였던 '리칭'이 그녀의 이름을 수로 새겨 놓았던 하얀색 잠옷을 입고 빈의관으로 향한다.

빈의관에서도 가난한 자와 부자인 자는 차별을 받는다.

소파에 따로 앉아 있는 '귀빈 대기 구역'의 사람들은 수입 가마를 타고 묘지로 간다.

'일반 대기 구역' 사람들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기다리다가 국산 가마를 타고 묘지로 간다.

'귀빈 구역'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의 유골함과 수의가 얼마나 높은 가격인가를 자랑하고

'일반구역'의 사람들은 누구 것이 싸고 좋은지를 비교하고 앉아있다.

그 대기가 자꾸 미뤄지는 이유는 시장의 고별식 때문이다. 항간에는 시정 운영으로 인한 과로사로 알려져 있지만, 실은 호텔에서 모델과의 애정행각 중, 복상사였다 한다.

묘지는 서양식 별장의 축소판으로, 바다가 보이는 곳을 최고로 쳐준다. 유기농 묘지도 있다한다.

하지만 '양페이'에게는 유골함도 묘지도 없다.

그래서 저쪽 세계의 마지막, 아직 숨결과 체온이 있던 삶의 마지막 광경을 찾고자 길을 나선다.

시청 앞 광장에서는 강제 철거 시위가 한창이었다.

'양페이'는 그 시기, 인생의 가장 밑바닥을 살고 있었다. 아내는 진즉에 떠났고, 1년 전, 자신을 키워준 양아버지는 불치병을 얻어, 그 병구완 차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집도 팔았는데, 아버지는 아들에게 누가 될까 사라져 버렸고, '양페이'는 가게까지 팔아서, 아버지를 찾아 나섰다.

'양페이'는 식당에서 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때 신문에 '리칭'의 아름다운 사진과 함께, '여성 부호의 자살'이라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리칭'은 그에게 아름답고 가슴 아픈 기억 자체였다. 그 기사에 몰두하고 있을 때, 주방에서 불이 났고, 엄청난 굉음이 들렸다.

이것이 그가 기억하는 저세상 기억의 끝이자 마지막 순간이었다.

'양페이'의 사랑, '리칭'의 이야기도 가슴 아프지만

그의 양아버지, '양진바오'의 이야기는 가슴이 시리다.

가난한 '슈메이' 커플 이야기와

아버지와 양페이가 살던 동네의 이웃 '하오샤'부부와의 우정 이야기가

그때 중국에서 일어나는, 아니 중국이어서 일어날 수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과 맞물린다.

가난한 소시민들이 사는 고통스러운 삶은, 차라리 죽어서나마 평온을 찾는 것이 나을 듯도 싶은데, 죽어서도 차별이 있다는 설정은 좀 불만이지만,

그래서 재미나기도 하다.

어쨌든 '양페이'는 자신의 출생비밀을 만나고 양아버지의 헌신과 사랑, 그리고 아내이자 유일한 여자였던 '리칭'과의 재회를 통해,

그리고 희생된, 인재의 주인공들을 만나면서 펼쳐지는 이야기들이 과하지 않게 서술되지만,

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게감이 있다.

외톨이였던 '양페이'가 죽어서 떠도는 7일 동안, 그의 말도 안 되는 출생부터, 어린 시절, 그의 지나온 삶의 종적에 빠져 읽게 된다.

무덤이 없는 사람들은 따로 모여서 지내는데

가난해서, 혹은 마련해 줄 사람이 없어서, 묘지의 안락함으로 향하지 못하는 무리들 속에는 좋은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남아있는 영혼들도 있다.

무덤으로 가지 않은 오래된 영혼은 해골뼈로만 남아있다.

맨날 바둑을 두면서 싸워대는 두 해골은, 경찰과 매춘 여성을 가장한 남자였다.

그들의 이야기도 웃픈데,, 맨날 말다툼을 하면서 다시는 바둑을 두지 않겠다 선언하다가도 다시 어울리며 또 싸운다.

서로의 관계는 끔찍한 가해자이자 피해자였는데, 눈물겨운 우정이 있다.

아무도 가보지 못한 이 생의 너머..

완전한 소멸인, 그 영역과의 경계가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그곳을 책에서는 가난도, 부유함도 없고, 슬픔도 고통도, 원수와 원망도 없는 평등한 곳이라고 하지만..

그냥 뭔가를 정리할 수 있다는 설정, 그렇게 딱 삼일 만이라도 시간이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

아니 부질없을 거야. 이 강을 건너면 그냥 끝, 클리어 인걸로~~

하여 오늘을, 지금을 잘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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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ari 2025-11-06 2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억이 새록새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