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전혜린 에세이 1
전혜린 지음 / 민서출판사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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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생 '전혜린', 그녀는 '전봉덕'의 딸이다. '전봉덕'은 경성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경성제국대학 법과 졸업과 일본 고등문관시험의 행정과와 사법과에 합격했던 수재로, 일제시대 경찰의 수뇌부에 근무하였고, 해방 이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후 헌병부(당시 친일 경찰들의 도피처)에 근무하면서 '김구' 살해범 '안두희'의 보호 및 사건 축소 및 은폐로 '김구' 암살의 배후라는 소문이 꾸준했던 사람이다. 그 이후 '전봉덕'은 국무총리 비서실장을 거쳐 변호사로 일하고 대한 변호사협회 회장을 지내는 등 1980년대 이후 미국으로 건너가기까지 우리나라 근, 현대사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이번 독서를 통해 '전혜린'이란 사람의 삶을 들여다보기 위해 그녀에게 가장 영향을 끼쳤던 부친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되었다.

녀는 '전봉덕'의 1남 7녀 중 맏딸로 수재인 아버지의 사랑과 기대, 격려와 자부심에 부합하는, 그녀 역시 수재였다 한다.
1950년대 서울대 3학년에 재학 중 독일로 건너가 5년을 유학한 후 한국에 돌아와 서울대 강사와 성균관대 조교수를 지냈다. 그 유학 중 현 서울대 명예교수이며 헌법학자인 '김철수'와 예정된 만남을 갖고 결혼하여 딸을 낳고는 그 해에 한국으로 돌아온다.
그녀의 집에는 그녀 부모와 그녀의 자매들과 딸, 그리고 이듬해 유학에서 돌아온 남편과 식모둘까지 대가족이 살았다 한다.

녀는 독일의 '뮌헨대학' 유학 중, 패전 독일의 다소 독일스럽지 않은 '슈바빙'에 살면서 많은 예술인과 젊은 청춘들과 각 나라에서 온 유학생들과 교류하면서 그들의 문화를 관조하기도, 즐기기도, 부러워하기도, 또 우리 것과 비교하기도 하면서 고독하고 오롯이 자신에게만 침잠하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리고 스위스에 살던 당시 80세의 '헤르만 헤세'에게 편지를 보내고, 그로부터 사진과 그림과 책 '데미안'과 '싯다르타'를 받기도 한다. 

'데미안', 사강의 '어떤 미소', 루이제 린저의 '생의 한가운데'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외 여러 작품을 번역하였다. 

녀는 남편과 이혼하고 얼마 안 돼, 그녀가 끊임없이 두려워하고, 이의를 품었던, 여자로서의 삶과 아내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을 자살로 마무리한다. 향년 31세..

그녀에 대한 평가는 많이 갈린다. 요절한 천재의 안타까움과 천주교 세례까지 받고 그토록 감동하고 어여뻐하던 어린 딸을 두고 저지른 극단의 선택에 대한 어이없음.. 그리고 그녀의 짧은 유학기간과 그에 반하는 성과에 대한 의구심까지..

책에서의 그녀는 남다르게 예민한 감수성의 소유자이다. 자기애가 강하고, 여성이란 존재로 태어나 살면서 유독 부대끼던, 존재를 앓았던 사람이다. 다른 어떤 평가들보다 내겐 그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시대 다른 여인들의 삶에 비해서 많이 배우고 깨어있음이, 그녀로 하여금 여자로서의 삶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계속 들여다보게 하고, 모성애를 통해 성장해가는 듯하지만 이내 멈춰진다.

그녀에게 있어 결혼은 자기 내면에 대한 끊임없는 방해이고, 그 시대 사회에 진출한 여성은, 석기시대 수렵하는 남자들을 대신해 동굴을 지키며 아이를 낳고 불을 지피던 그녀들이 동굴 밖으로 나왔을 때 돌팔매질을 해서 죽여야 했던 변절자였던 것이다. 선사시대 이전부터 여자에게 부여되었던, 마땅히 그래야 했던 삶,,이것에 대한 그녀의 상념들이 이세대의 삶을 사는 나를 비롯한 여성들에게도 아직 유효하다하겠다.
    
시대에는 사철 발벗은 아내들이 들로 밭으로 다니고, 폐경이 올 때까지 자녀를 생산하고, 아들도 꼭 낳아야 했던 여인의 삶을 살아야 했던 것이다.
그런 여성들을 엄마로, 할머니로 두었던, 세대들이 한동안 그녀의 이 수필집을 읽으며 엄마처럼은 살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며 사춘기를 보냈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부터 '죽더라도 평범하게는 살지 말자'라고 스스로를 단속시켰던 그녀는 남다른 지성과 관찰력과 조숙함으로 학업에 대한 경쟁심과 성취, 남다른 독서가 그녀의 생 전부를 지배했던 듯하다. 그래서인지 그녀의 분신이었던 딸에게는 책을 읽지 않게 하겠다고 했다. 

딸이 성장하면서 읽게 되길 바랐던 육아일기와 동생에게 쓴 편지글들, 그리고 '데미안'에 대한, '생의 한가운데'에 대한 그녀의 해설이 또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유의미한, 이미 많이 앓았고, 없어져 버린 그녀를 평가절하해버리려는 마음이 없다면,,, 그런 독서라 하겠다.

그녀의 사춘기 시절 친구와 주고받던 편지들, 그리고 일기장 교환 등의 아련한 정서와 때론 고독의 심연에서의 지적인 외침이 와 닿는다. 
내 사춘기 시절, 이 책을 읽으며 나의 감성은 더 충만해졌으며, '루살로메'와 '생의 한가운데' '니나'를 알게 했던 그녀 '전혜린'은 나의 치기어린 시절과 함께 소중하게 간직된 추억이다

- 짙은 안개를 들이마시면서 나는 새파란 하늘을 그리워했다. 감나무와 대추나무를 꿈에 그렸다. 사실로 내가 그리워한 것은 황색 그림자였는지 모른다. 그것은 감상이나 미학적인 어떤 음탄이 아니었다. 그것은 색이 있는 민족의 환영, 그들의 비극이 내 속에 담겨져 있고 그들의 대표자로 내가 여기에서 간주되고 있는 그러한 절실한 비전이었다. p 22

- 그러나 운명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간다. 우리의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자유롭지는 않다. 우리가 생을 형성하는 것이 아니라 생이 우리를 형성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기치 않았던, 때로는 소망치 않는 방향과 형식 속에 생이 형성해 놓는다. p30

- 작은 우연이 일생을 결정하기도 한다. 인간은 유리알처럼 맑게. 성실하고 무관심하게 살기에는 슬픔, 약함, 그리움, 향수를 너무 많이 그의 영혼 속에 담고 있다. p31

-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자의 손에 쥐어진 경제적 특권, 남자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명예,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게 하고 있다. p179

-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 더 응시할 수 있는 것, 자기를 견딜 수 있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을 긴박하고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p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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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블루픽션 (비룡소 청소년 문학선) 22
정유정 지음 / 비룡소 / 200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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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을 읽으면서 정유정 작가에게 반했던 한때가 떠올랐다. 작가 이름 세 글자를 꼭 새겨두었던,,, 그 후 '28'을 읽고서는 내 취향의 소설이 아니었음을 확인하고는 당분간은 쉬어야 했다. '종의 기원'도 그래서 안 읽고는... 그러다 올 들어 '내 심장을 쏴라'를 읽었더랬다. 그리고는 자신감이 붙어서 ㅎㅎ 이 책을 집어 든 것이다. 청소년 문학선 시리즈물로, 관련 상도 받았던... 이런 재미나고 쓸모 있는 성장 소설을 이제사 발견한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김준호는 열다섯 살 열혈 청소년으로 엄마의 재혼식 날 마지못해 참석하고, 엄마의 혼전임신과, 총각 연하남을 아빠로 받아들여야 하는 일생일대의 고비에 서있던 1986년 8월 14일을 기억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대적으로 그러하듯이, 곳곳에서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던 때였고, 준호의 친구 규환이의 대학에 다니는 형 주환은 학생 운동의 중심인물이다. 그 형을 무사히 외국으로 피신시키려는 규환의 계획이 사고로 무산되자 준호가 나서게 된다.

래저래 물불 안 가리고 싶은 딱 그날, 엄마가 신혼여행을 떠난 그날, 양조장 트럭을 몰래 타고 전남지방을 가서 주환이 형을 접선하고 돈과 서류를 건네주어 외국으로 가게 해줄 작전으로...

그런데 그 트럭에 자꾸만 불청객들이 합류하게 된다. 정신병원을 도망친 노인 박양수, 양조장 집 아들 차승주, 가족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는 개장수 아빠를 둔, 정아, 그리고 그 아빠가 훈련시킨 대형견 '루스벨트'까지..

들 다섯은 싸우고, 부딪치고, 골탕 먹이고 투닥거리다가 함께 트럭운전사를 피하고, 경찰을 피하면서 장성에서부터 신안까지 걷고, 또 임자도로 가고, 무인도에 가기까지

어둠과 배고픔과 고통과 두려움과 거위 떼와 군인들로부터 그리고 어둠과, 진흙탕과 폭우와 태풍을 돌파하며 서로의 비밀과 사연들을 공유하게 된다.

그 할아버지의 비밀은 마치 구전동화 같고, 전설 같고, 그의 삶이 아득하게 가슴 미어진다. 그리고 똑똑하나 상처투성이인 정아와 엄마의 광적인 보호로 인해 숨 막히는 부잣집 아들 승주, 어느 날 집을 나서서 돌아오지 않는 아빠에 대한 아픔과 그리움을 간직한 준호.. 그들의 여정이 너무도 재미있게 펼쳐진다. 준호를 빌린 작가의 유머가 한 번씩 허를 찔러 웃게 만든다. 정말 재미있고, 따스한 이야기이다.

아버지의 딸과의 이별, 준호의 아빠와의 이별이 결국은 광주 민주화 운동과 관련된다. 지난겨울의 영화 '1987', '택시운전사'도 오버랩되면서 이 소설을 영화로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과 그들이 헤맨, 장성, 광주, 함평, 노루목, 임자도, 그리고 무인도 안개섬을 잇는 대장정의 걷기 여행 코스의 출현도 기대해본다.

그리고 그 코스는 입술 언저리가 자리를 못 잡은 까칠한 수염으로 삐죽일 나이, 딱 그 나이의 필수 여행 코스이기를.. 하는 마음^^아빠와 걷게 하거나, 체험학습으로 친구들끼리 가게 하거나, 선생님과 혹은 상담교사와...ㅎㅎ

 

나는 허수아비처럼 무너졌다. 세상이 미련 없이 내게서 떨어져 나갔다. 살아야 한다는 절박함은 죽음의 공포만큼이나 사람을 미치게 하는 모양이었다. p346

눈을 떴다. 그러나 의식은 계속 꿈의 잔상과 기억이 교차하는 지점을 배회했다. 나는 한동안 더 흐느꼈다. 누군가를 끌어안고 소리 내어 울었다. p355



- "하느님은 참 괴상한 방식으로 공평해. 사랑이 있는 쪽에선 사람을 빼앗고 사람이 있는 쪽에서는 사랑을 빼앗아 가고." p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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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모유키 - 제1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조두진 지음 / 한겨레출판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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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그 이웃 어느 오후 님의 리뷰를 보다가 제목도 끌리고 해서 얼른 구입해뒀던 책.. '도모유키'는 창녀로 팔려간 동생을 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다이묘에게 땅을 받은 대신 전쟁에 참가하게 되어 조선으로 온다.

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거치며 잔인한 사사키 휘하의 군막장을 지내면서 여동생을 닮은 아름다운 '명외'와 그녀의 아버지를 포로로 맞게 된다. 다쳐도 식량을 축낸다며 죽여버리고, 조선의 여인들은 병졸들에게 몸을 바쳐야 하지만, 다리가 부러진 명외의 아버지도 살리고, 병졸들에게 몸을 내주지 않아도 되게끔 명외를 지킨다.

우리는 두 난의 피해자로서 일본인들 모두를 가해자로만 여겼었더랬는데 그들도 가난과 배고픔과 거듭되는 전쟁에 희생양이었다는 생각을 처음 해봤다. 히데요시를 비롯한 무사계급이나 우두머리들은 몹시 잔인하고 가혹했으나 아무것도 모르고 가난 때문에 끌려온 병졸들 역시 난의 피해자였노라고.. 늙은 대장장이의 미숙한 아들 '도네'와 역시 아비 없이 가난한 어미와 처와 딸을 둔 가장 '히로시'의 삶 또한 너무 처절하다. 다이묘들은 아들이나 남편들을 강제로 전장에 내보내면서 보상으로 땅을 주는데, 아녀자들의 농사 실력으론 소작료를 낼 수가 없게 되어 그 땅을 다시 뺏길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모유키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명외를 만나는 꿈을 꾸지만 과연 이루어질 수 있는 건지?  도모유키가 서술하는 조선 땅, 조선의 산세, 조선 사람들의 근성, 지금은 사라졌지만 '이리'라는 동물과 조선 겨울의 추위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해군 수장 이순신에 대한, 소문으로 들은 묘사가 우리가 아닌 그들의 관점이란것이 또 이 글을 읽는 낯선 재미였다.

왜군들이 환장하여 열렬히 수집하는 조선의 밥그릇들, 도공들을 잡아다가 고이 모셔가는 일들.. 실제로 우리나라에선 천했던 도자기 만드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가서는 대접받고 한평생 잘 살았다고 하며 기술을 천시하고 맹자왈 공자왈 하다가 조선의 패망을 앞당겼다는 초등학교 때의 국사시간이 떠오르기도 했다. 죽은 적들의 코를 베어서 소금에 절여 보고하는 일본군의 잔인함이나 베어진 목의 숫자로 공적을 기리는 조선이나 명나라군의 잔인함이나, 전쟁은 모두에게 끔찍한 것이다. 그때 태어나지 않았음이 얼마나 다행인 건지.. 아님 전생에 겪었음을 기억 못 할 수도 있으려나? .......암튼 역사소설이라고 시작했는데, 연애가 가미되어있다. 도모유키의 명외에 대한 연모가 가슴 저리게, 안쓰럽게 아름답다

조선인들이 함정을 파놓을 게 분명했다. 도모유키는 조선인을 이해할 수 없었다. 쌀 서 말을 바친 자는 일본인으로 인정했지만, 그들은 일본 사람이 되지 않았다. 성을 함락하고 우두머리를 베었지만, 그들은 복종하지 않았다. 조선의 임금이 한양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전쟁이 쉽게 끝날 줄 알았다. 그러나 점령지의 조선인들은 저항하거나 도망쳤다. 원래 주인이 도망치고 새 주인이 왔지만 조선인들은 새 주인을 따르지 않았다. 얼굴도 모르는 원래 주인을 끝까지 섬기는 조선 농민들을 도모유키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일본에서는 다이묘의 군대가 죽거나 항복하면 땅은 새로운 다이묘의 땅이 됐다. 그러나 조선에서는 달랐다. 땅은 늘 원래 주인의 땅이었고 백성은 늘 원래 주인의 백성이었다.. 조선의 산과들은 어디나 사람을 품고 있었고, 강과 계곡 어디에나 조선인들이 집을 짓고 살았다. 깊은 산과 골짜기를 모두 뒤질 수 없었고, 살아 있는 조선인을 모두 죽일 수도 없었다. 조선인들을 모두 죽여야 한다면 이길 수 없는 전쟁이었다. 해가 지고 밤이 오고 봄이 가고 겨울이 가고 수많은 계절이 지났지만 조선인들은 죽어 없어지지 않았고 항복하지도 않았다. p132

- 조선의 산은 부드러웠다. 산은 끊어질 듯하면서도 끊어지지 않고 먼 곳으로 뻗어 나갔다. 산에는 곧은 나무가 많았고 구릉마다 사람들이 사는 집이 비집고 있었다. 사람이 파고든 곳은 어디나 논밭이 생겨났다. 조선인들은 타고난 농부 같았다. 그들은 어디나 괭이를 댔고 씨앗을 뿌렸다. p175

- 도모유키는 다짐했다. 놈을 베어버리는 것이다. 뒷일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씨를 뿌리면 싹이 트고, 싹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것은 전장이 아니라 논밭의 약속이었다. 전장에서 내일을 약속할 수는 없었다.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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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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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생 오은수라는, 2006년도의 32세를 서울에서 살고 있는 처자의 이야기이다. 성년식을 치른지 10년을 훌쩍 넘겼으나 사랑에도 서툴고, 단, 남자는 잘 꼬신다. 허나 남자를 볼 줄 모르는..하기사 저 자신도 제대로 볼 줄 모르는.. 한없이 측은하고 귀엽기도 한 여주인공과 그녀의 발랄한 두 친구들의 서른을 넘기는.. 방황기이다.

은수의 사랑하는 방식, 서른한 살과 서른두 살이라는 아직 어리다고도, 늙었다고도 할 수 없는.. 결혼이라는 제도와 그 제도 속에서 견디는 것이 남편과 아내의 일인 양, 자식을 낳고 그 주변을 빙빙 돌면서 살았던 주인공들의 부모들의 삶처럼은 살 수 없는 발칙한 여자 나이 서른두 살...
2006년도의 서른두 살과 십여 년이 흐른 지금의 서른두 살의 차이는 더 많이 다르다. 그만큼 독립의 나이도 결혼의 나이도 많이 늦춰졌다.
여자들이 서른을 넘기면서 결혼이란 것을 고민해 보지 않을 수는 없지,.. 확고하게 비혼 선언을 하기에도 결심이 서지 않을 나이가 서른한두살이 아니던가. 대학을 졸업하고 결혼을 했다면 이미 학부모도 되어있을 나이인데..

강희 주연의 드라마도 만들어졌었다는데, 본 적은 없으나 왠지 최강희의 오은수 연기가 제법 잘 어울렸을 거라는 생각을 해보며
매끄럽고 세련된 '정이현'이란 작가의 문체에, '오은수'라는 캐릭터에 흠뻑 빠져서 지루하지 않고, 쳐지지 않은 독서를 하였던 것 같다.

뚱이만 자라나지, 나이만큼 철드는 게 아닌데 우리의 부모들은 어른 노릇하려고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또 그들의 부모 기대에 부응하려고 얼마나 몸부림쳤을까? 돌이켜 보면 그들도 어린 나이에 부모가 돼서는 또 부모라는 이름으로 살려고 얼마나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 했을까?
2006년도나 2018년도에도 그들이 키워준 우리 은수들은 여전히 서툴고, 어른 되기를 피하려 하고, 여전히 허덕대는데... 십여 년 전 그 애들이 사십이 넘은 지금 철이 들었을 거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철이란 모름지기 무얼까? 나이가 든다는 건..? 딱 열아홉까지만 좋았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엄마의 목소리엔. 그 자식들에게 기기묘묘하고 복잡한 감상을 불러일으키는 주파수라도 흐르는 걸까. 엄마 목소리를 듣는 순간, 뾰족한 창끝마냥 곤두섰던 마음이 순두부처럼 몽글몽글 풀어졌다

화장에도 순서가 있듯, 삶도 그럴 것이다. 완벽한 메이크업을 마치고 난 얼굴, 그것을 진짜 내 얼굴이라고 할 수 있을까. 화장으로 한 겹 가리고 나면 내 얼굴에 대하여 스스로 고개 돌리지 않을 수 있을까. 인생이 점점 무서운 속도로 달려드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 내 모습을 멀뚱멀뚱 내려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는 손바닥으로 황망히 얼굴을 가렸다

후회하지는 않으련다. 혼자 금 밖에 남겨진 자의 절박함과 외로움으로 잠깐 이성을 잃었었다는 핑계는 대지 않겠다. 저지르는 일마다 하나하나의 의미를 붙이고 자책감에 부르르 몸을 떨고, 실수였다며 깊이 반성하고 자기발전의 주춧돌로 삼고, 그런 것들이 성숙한 인간의 태도라면, 미안하지만, 어른 따위는 영원히 되고 싶지 않다. 성년의 날을 통과했다고 해서 꼭 어른으로 살아야 하는 법은 없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미성년으로 남고 싶다. 책임과 의무, 그런 둔중한 무게의 단어들로부터 슬쩍 비껴나 있는 커다란 아이, 자발적 미성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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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나를 찾는 전화벨이 울리고
신경숙 지음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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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숙은 90년대를 대표하는 여류작가이다. 그녀의 섬세한 문체를 나는 좋아한다. 차분해지고 오로지 나에게로 침잠할 수 있는 시간, 그리고 조용히 몰입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대체 불가한 그녀 문체의 묘미.. 딸기밭을 읽었던 기억, 깊은 슬픔, 엄마를 부탁해도 읽었던 기억이 있는데 몇 해 전 리진을 읽으면서 다시 읽어봐야지 하며 이번에 세 권을 구입해뒀다.

때 표절 시비로 그녀의 자세가 어떻고 현실이 어떻고 그런 문구를 대조해가며 인터넷이 떠들썩했을 때 나는 일부러 그 기사를 피했었더랬다.  음악이나 그림이나 글도 마찬가지, 예술의 영역은 남의 작품들도 충분히 감상하고 비춰봐야 하므로 그 많은 내용 중 일부가 닮아있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간에.. 그런 다분히 있을 수 있는 시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예술가들이 시달리는것이 싫다.

'청소년기를 앙드레 지드나, 헤세와 함께 통과해온 세대가 있었다면, 90년대 이후엔 일본 작가들의 소설이 청년기의 사랑의 열병과 성장통을 대변하는 것을 보며 아쉬움을 느꼈다'라는 그녀의 일곱 번째 장편소설, '여러 개의 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사랑 이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라는 작가의 말이 있다. 

설은 80년대 대학,, 뜨거운 시위와  헤매는 청춘들의 사랑과 이별 이야기가 어떤 의문사를 비롯해서 엮여진다. 글의 중심 나'정 윤'과 그 '명서, 소꿉친구 미루와 단의 사랑과 이별 속에서 아파하고 성장해가는,

극적인 이야깃거리지만 담담한 작가 특유의 생략과 함축으로 무난하게 이어진다.  간만에 그녀의 소설이 벚꽃 엔딩의 계절에 충만감을 준다.

살아보지 않은 앞날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앞날은 밀려오고 우리는 기억을 품고 새로운 시간 속으로 나아갈 수 있을 뿐이다. 기억이란 제 스스로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속성까지 있다. 기억들이 불러일으킨 이미지가 우리 삶 속에 섞여 있는 것이지, 누군가의 기억이나 나의 기억을 실제 있었던 일로 기필코 믿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 고 필요 이상으로 강조하면 나는 그 사람의 희망이 뒤섞여 있는 발언으로 받아들인다.

-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는 진부한 시구를 애송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삶이 나를 속인것이 아니라 이제껏 내가 삶을 속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회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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