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정 - 이광수 장편소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전집 19
이광수 지음, 김철 책임편집 / 문학과지성사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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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춘원 이광수'는 1892년 평안북도 출생으로 일본으로 건너가서 유학을 하고 돌아와 잠시 교편을 잡기도 했다. '톨스토이'의 작품에 심취했던 그는 1914년 러시아에 갔다가 1차 대전 발발로 귀국하고 다시 1915년 일본 와세다대학에 편입을 한다.

1919년 조선 청년 독립선언서를 기초하고 상해로 가서 임시정부의 독립신문 주간으로 활동하다가 귀국하여 체포된다.

그러나 일제 말기에 창씨개명 등 친일행위를 했고, 8.15이후 반민족 행위 처벌법으로 수감되었다가 병보석으로 풀려난 후 한국 전쟁 중 인민군에게 납북돼 1950년 폐결핵으로 사망하였다 한다.

 

소설은 1917년, 그의 첫 장편 소설로 매일신보에 6개월간 연재되었다. 「무정」은 근대문학 사상 최초의 장편소설로 간주된다.

 

유치하고 부자연스러운 부분이 드러나지만 섬세한 개인의 심리묘사와 전통적인 가치관과 근대적인 의식 사이에서의 인간의 갈등이 잘 드러나 있다. 여전히 어려운 고어들과 문어체의 문장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구어체 접근으로의 진일보적인 측면이 많이 보인다.

1926년도까지 우리나라 전인구의 99%, 1930년도에70-80%가 문맹이었다고 하는데 글을 읽을 줄 아는 인구가 고작 5만-8만이던 시절에 이 책이 1만 부 팔렸다는 기록으로 보아 초특급 베스트셀러였다는 셈이다.

 

립신문의 발행인에서 변절자가 된, 결국엔 친일한 '이광수'가 아직 푸르른 절개가 있던 시절, 야망의 청년 시절에 내놓은 첫 작품이, 바로 이 소설인 것이다.

 

그는 본 아내와 이혼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산부인과 여의사인 '허영숙'과 재혼을 했으며, '나혜석'과 삼각관계를 이루기도 했다고,..

 

'이 광수'(1892-1950)를 동시대를 살았던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1867-1916)나, 중국의 '루쉰'(1881-1936) 등과 견주기도 하는데

 

세 인물 모두 서구의 신문물, 신문명을 먼저 접한 선각자로서 신문명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 더불어 인간 개조 등의 견해가 비슷했다고 생각 된다. 다만 일본, 중국의 근대소설가와는 다르게 '이광수'는 친일행위로 인해, 아쉬움이 좀 남는다는 점인데, 글 쓰는 분들의 그 감수성이, 독한 인간을 만들어 낼 수는 없다고 보므로, 그들도 그와 같은 나라 태생들이라면 어땠을까 한다. 그래도 어렵게 독립운동하다가 생을 마친 분들도 많은데 그는, 결국 변절자가 되었고, 그 당시에 같이 교류하던 문화계 인사들로 부터 면전에서 많은 욕과 배척을 받았다는 것으로 알고는 있다.

감은 있겠지만 일단, 이곳에는 작가 '이광수'와 작품 「무정」이야기만 하련다.

1916년, 24세의 경성 학교 영어교사 '이형식'은 재산가로 소문난 '김장로(김광현)'의 딸 '선형'의 영어 과외 교사로 초빙된다. '선형'의 어미는 '부용'이라 하는 한때 평양의 명기였으나, '김장로'의 본부인이 별세하자, 정실로 들어앉은 사람이다. 외교관 출신의 '김장로'는 서양문명의 우수성에 일찌감치 눈뜬 자로서 서양을 본받으려는 태도로 양복을 입고, 침상을 사용하는데 허영심이 아닌, 진보한 문명인사이다.

☞그런 자가 기생 출신의 첩을 본부인으로 들어 앉히게 되는 것도, 선각자로서 신문물, 기독교적인 가치관의 변화이다.

 

집에서, 여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선형'과 그녀의 동료 '순애'를 가르치게 된 '형식''은, ABCD부터 가르치기로 하는데, 아직 이성도 사랑도 모르는 그에게 이 얌전한고 아름다운 규수의 모습은 설렘으로 다가온다.

 

그날 자신이 머무는 객줏집에 여인이 방문을 한다. '박영채'..

열여섯 '형식'이 소싯적 조실부모하고 자기 아버지의 동년배였던 평양의 박진사(박응진) 집에서 신세 지며 공부하기를 4,5년가량 하였는데, 그 집의 막내딸 '박영채' 나이 열 살이었다.

열아홉이 된 '영채'는 울면서 그간의 살아온 이야기를 '형식'에게 털어놓는다.

 

역사회 자선 교육 사업가였던 '박진사'와 두 아들이 어이없는 일로 감옥행을 하게 되어 홀로 남자, '영채'는 '형식'과도 헤어져 친척 집에 보내지면서, 형식을 자신의 배필감이라 여겼고, 친척의 구박을 피해, 도망을 쳤다가, 아버지를 구해내기 위해 돈을 벌 양으로 꾀임에 빠져 기생이 되었으나, 장차의 배필을 위해 정절만은 지켜왔노라고, 하지만 자신이 기생이 된 이야기만은 차마 하지 못하고 돌아간다.

 

그녀의 아버지는 감옥에서 딸이 기생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곡기를 끊어 자살하고 두 오빠도 모두 죽는다.

 

'형식'은 함께 울면서, 자신의 은인에 대한 예의로 영채를 아내로 삼아야 한다는 생각도 하다가, 그녀의 처녀성 여부에 초조해지기도 하다가 어릴 적 「열녀전」, 「내칙」, 「소학」등을 공부한 그녀이지만, 혹시 그 이후 공부가 미진하여 자신과 대화의 수준이 안될까 고민도 하고, 또 '선형'과의 비교도 하는 등, 심사가 복잡하다.

 

외롭게 자라나고, 부모 형제자매의 사랑도 모르고, 동무도 없었던 '형식'은 자신의 가난과 외로움이 소년시대를 건너뛰게 했다는 아쉬움으로 학생들을 사랑하고, 교육과 인재만이 새로운 조선에 대한 희망이라 여기는데 교사 '배명식'의 행태에 불만을 품었던 학생들의 동맹 퇴학 결심을 미리 전해 듣고, '배명식'을 설득하려 했지만 허사였다.

'배명식'은 경성 학교의 학감으로 지리역사 담임인데, 동경 고등 사범 출신이지만, 본처와 이혼하고 학생과 결혼을 하고도 화류계를 드나드는 질 나쁜 사람이다.

'영채'는 그 다음날, 청량리 연회에 불려나갔다가 작정을 하고 온, '배명식'과 '김현수'라는 자에게 강제로 성폭행을 당한다.

'영채'는 '계월향'이라는 예명을 가진 유명한 기생으로 '배명식'을 비롯한 여러 남자들의 구애를 받지만, 미래의 남편을 위해 정절을 고집해 오다가 이런 일을 겪게 되자, 평양으로 돌아가 대동강 물에 투신함으로써 오욕을 씻고자 한다며 '형식'에게 편지를 남기고 사라진다.

'형식'은 죽음을 막겠다고, 아니면 시체라도 찾겠다고 신문기자 '신우선'과 평양으로 가지만 성과 없이 돌아온다.

'신우선'은 잠시 기생 '영채'를 짝사랑했었지만, '형식'의 배필감인 줄 알고는 복잡한 마음을 접는다.

- 중간생략-

 

당시에는 꽤나 파격적이었을, 많은 진보가 있는 책이지만 여전히 구세대의 사고, 감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한계가 보인다.

그 정점이 형식의 여성관과 연애관이다.

1910년도의 경부선이, 이 소설의 중요한 장치이다.

신문물, 신 문명, 새로운 조선을 상징하는 이 기차안에서

'영채'는 죽으러 가다가 '병욱'이라는 신여성을 만나 새로운 인생을 열고

'형식'은 죽겠다는' 영채'를 말리러 갔다가 허탕치고 돌아오는 길

그리고 '선형'과 미국 유학길에 '병욱', '영채'를 만나 어쩌지 못해 괴로운 중 자아에 눈뜨고 각성하는 장소이다.

그리고 '우선'까지 네 명이 선로 고장으로 선행을 나누면서 신조선을 만드는 일에 한몫하겠다는 결심을 확고히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 당시 도대체 미국은 어떻게 가는데 일본으로 가는 일행과 같은 기차에서 만난다는 건가? 호기심이 일었음..

미국은 경부선을 타고 부산에서 내려서 배를 타고 시모노 세키로 가서, 다시 차를 타고 요코하마로 가고 그곳에서 다시 배를 타고 샌프란 시스코를 가는 것이다. 사오일을 걸려서~~

리고 읽기 전 「무정」이라는 제목을 헤아려 보았다.

「무정」이란 단어는 몇 번 나온다.

그리고 '영채'가 처음 찾아왔을 때 자신의 은인의 딸에 대한 생각이 나, 어여쁜 '영채'의 모습에 대한 심정이라든가를 전혀 내색하지도 않고, 심지어 돌아가는 '영채'를 불러볼 생각도 않았던 '형식'의 마음인가,(실제로 형식은 그렇게 자신의 처사를 후회하는 언급을 하기도 함) 하다가

그들의 생이, 사랑이 그렇게 흘러 가게 만든 사회에 대한 원망이기도한가했는데

- 어둡던 세상이 평생 어두울 것이 아니요 무정하던 세상이 평생 무정할 것이 아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밝게 하고 유정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가멸게 하고 굳세게 할 것이로다. 기쁜 웃음과 만세의 부르짖음으로 지나간 세상을 조상하는 무정을 마치자. 473

역시 나의 예감이 맞는다.

그 당시 치고는 엄청 세련된 결말이다 한다.

설픈 연애관과 사랑에 대한 묘사이지만 세 남녀의 심리묘사는 제법 가치가 있다고 보여지며 1916년 조선의 모습, 그 시대 사람들, 그시대 어투, 봉건적인 가치관과 새로운 가치관 사이에서의 혼돈,.. 그런 과도기를 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가치가 크다 하겠다.

 

 

여자란 매우 아름답게 생긴 동물이라 하였다. 어깨의 동그스름한 것과 뺨의 불그레한 것과 머리 터럭의 길고 까만 것과 또 앉은 태도와 옷고름 맨 모양과 그중에도 널찍한 적삼 고름이 차차 좁아오다가 가운데서 서로 꼭 옭혀 매여 위로 간 코는 비스듬히 왼편 가슴을 향하고 아래로 간 고름의 한끝이 훌쩍 날아 오른팔굽이를 지나간 양이 더욱 풍정이 있다. 이렇게 두 처녀를 보고 앉았으면 말할 수 없는 향기로운 쾌미가 전신에 미만하여 피 돌아가는 것도 극히 순하고 창쾌한 듯하다. 인생은 즐거우려면 즐거울 수가 있는 것이라, 아무 목적과 꾀도 없이 가만히 마주 보고 앉았기만 하면 인생은 서로서로 사랑스럽고 즐거울 것이라. 여자의 몸이나 남자의 몸이나 내지 천지의 모든 만물이 다 가만히 보기만 하면 그 새에 친밀한 교통이 생기고 따뜻한 사랑이 생기고 달큼한 쾌미가 생기는 것이라. 쓸데없이 지혜를 놀리고 입을 놀리고 손을 놀리므로 모처럼 일러놓은 아름다운 쾌락을 말 못되게 깨트리는 것이라 하였다. 106-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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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의 이면 - 1993 제1회 대산문학상 수상작, 개정판
이승우 지음 / 문이당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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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이면, '이승우' 작가를 만나는 세 번째이다. 식물들의 사생활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으면서 그 무게와, 신비함과, 독특함, 그리고 언어의 유희에 지배당했던.. 내가 아는, 지금 활동하는 한국의 남성 작가 중에 가장 무게감 있고, 만만치 않는 작품을 쓰는 작가가 이 분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해외 번역판이 많다는 얘기는 해외에서 많이 읽힌다는 얘기인데, 국내에서는 아는 사람만 아는 마니악 한 작가라고 한다.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을 썼던 그의 고향 선배 '이청준'이라는 작가의 뒤를 잇는다는 언급도 있고, 한국의 최초 노벨문학상 후보로 이 분에 대한 언급도 있다.

「식물들의 사생활」과, 「사랑의 생애」를 읽으면서, 이 작가의 작품을 대할 땐, 심호흡부터 해야 한다는, 그리고 독서 이력이 없다면 절대 그 진가를 알 수 없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의 이면」은 작가의 자전적 경험을 소재로 한, 역시나 그답게 독특한 플롯으로 전개해나가는 소설이다.

소설가 '박부길'이라는 사람이 살아온 삶의 이력을, 그의 작품(소설, 산문 등) 들과 관련지어 추적해보라는, 출판사 측의 기획으로 시작된 일종의 작가 탐구 형식이다.

'박부길', 그는 고향을 꺼려 하는 사람이다. 순진성과 고집성을 갖춘 전형적인 촌놈인 그는, 태평양 한쪽 남해의 외지고 작고 가난한 바닷가 마을 출신으로 14세에 고향을 뜬 이후로 그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예 없는 사람으로, 그가 고여 있다고 말하는 그 마을은 버스도 다니지 않았고, 전깃불도 없었던 벽촌이었다.

 

슬프고 참혹한 기억들로 점철된 그의 고향에서 필사적인 탈주를 감행했던, 그는 친구들과도 어울리지 못하고, 동심이란 것이 없었던 유년시절, 아버지의 책들을 소나 양이, 닥치는 대로 풀을 뜯어 삼키듯이, 혹은 되새김질을 하듯이 읽어대던 소년이었다.

애당초 자신의 삶에 대한 진술에 비협조적인 '박부길', 화자는 작가의 미발표 원고, 산문집, 소설 등을 짜 맞춰 가는 식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가의 삶과, 화자의 삶과, 작가의 작품 속 주인공의 삶이 다르지만, 또 같고, 사실인 듯, 유추인 듯 하지만 결국 '박부길'이란 사내는 작가 '이승우'이다.

년기부터 시작된, 그의 독서에의 몰두는, 현실에 눈 감고, 현실로부터 자신을 유폐시키고자 하는 수단이었으며, 그에게 책과, 글 만들기는 마취제가 된다. 그리고 그의 유년은 자물쇠로 봉쇄된다.

그 자물쇠 너머의 있는 것..

큰아버지로부터 내려진 금령(禁令)..

가족 모두에게 접근 금지된, 곳, 뒤란..

구체적으론 감나무였지만, 그 뒤란 한켠의 방엔, 차꼬를 찬, 미친 남자가 있었다

찍이 어머니와 헤어져 큰아버지의 집에서 성장하게 된 '박부길'은..

그 금령의 구역에 기웃거리고, 우연히 열린 문, 방안에 앙상하게 뼈만 남은, 털투성이의 남자와 마주치고는 슬프고도 애잔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그리고 절에서 고시공부를 한다는 그의 아버지는, 막연한 궁금함과 그리움의 대상이고,

어머니가 다니던 교회의 전도사와 함께 어린 그가 외출한 날, 어머니는 사라지고,

뒤란을 기웃대던 '부길'에게 손톱깎이를 부탁했던 그 남자는 생을 마감했고..

'부길'은 막연하게 알아간다.

무수한 소문 속 어머니는 도망친 게 아니라, 쫓겨난 것이고,

뒤란의 그 남자는 자신의 아버지였음을..

의 아버지 '박태성'은 고시공부를 하던 사람으로, 기울어가는 집안의 장래를 짊어진 수재였지만

결혼을 한 후 그의 아내만 보면 종잡을 수없이 난폭해지고, 도를 넘은 의처증을 동반한 심각한 정신장애로

발작을 일으켰으며,

그 난폭성이 결국엔 차꼬를 채운 감금으로, 금령의 구역을 만들었고,

어머니에겐 발병의 책임과 함께 그녀 인생에 대한 배려로 내쳐진다.

그리고 집안의 가장, 권위의 상징 큰아버지는, 이 모든 사안의 주모자였으면서 끝까지 어린 '부길'에게 사실을 말해 주지 않고,

제 아비 뒤를 이어, 훗날 고시공부를 통해 집안을 일으킬 재목으로서의 기대를 내세우고 있었다.

바닥만 한 동네에서

어미 아비 없이, 더구나 미친 아비, 도망친 어미라는 찬란한 역사를 지닌 어린 '부길'은, 친구들의 놀림과, 친척들의 지나친 애정의 관심과 눈길을

피해 책에 침잠하다가

마침내 아버지의 무덤에 불을 지르고, 치욕의 시간들을 뒤로하고 고향을 버린다. 1965년 그의 나이 14세.

조숙하고 폐쇄적인 이 소년은 가출 이후 아버지가 공부했다던 사찰을 찾고

그곳의 한 식당에서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고시공부를 했다던 아버지의 친구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부길'을 알아보는 덕에 수재였던, 유망주였던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 이후 만화방과 중국집을 전전하면서 지내던 그는,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하는 악몽을 자주 꾼다.

자신이 배달 일을 하던 중국집에서 우연히 만난, 그 옛날의 전도사로부터 자신의 어머니가 경찰 공무원의 아내가 되었다는 소식도 듣고

어머니 덕에, 서울 친척 집에 보내져, 중학교 2학년으로 편입도 하지만, 사투리와 따라가기 벅찬 공부와, 또래들 보다 두 살을 더 먹은 탓에 더 폐쇄적이고 비 사교적인 아이로 지내게 된다.

학교를 우등생으로 졸업한 이후 고교에 진학하면서

친척 집을 나와, 자취를 하게 되는데, 헌책방 나들이를 하면서 무작정 책을 읽는 '부길'에게 독서는 취미가 아닌, 버릇이 되고, 친구가 없던 그는 볕이 안 들고, 좁은 자취방에서 특별하지만, 문학적이고, 비현실적인 외톨이가 되어간다.

- 중간 생략-

 

역시나 그의 문장들은 곱씹으며 읽는 맛이 있다. 어떤 문장은 무심코 읽어내렸다가 열번 쯤 다시 읽어야 했다. 소설가 '박부길'을 낱낱이 해부하는 듯한 상세한 묘사와 유려한 문체는 아무나 범접할 수 없는 그 만의 색깔이 있다. 그리고 그가 인용한 '앙드레 지드'의 산문, '그대를 닮은 것 옆에 머물지 말라. 결코 머물지 말라. 그곳을 떠나야만 한다. '너의' 집 안, '너의' 방, '너의' 과거보다 더 너에게 위험한 것은 없다.

 

나는 내 취사선택되고 검열된 기억 속의 과거로 들어가는 것의 무의미함을 안다. 과거란 희미한 밑그림, 그 위에 어떤 색칠을 하고 어떤 형태를 그려 내는 것은 현재의 나이다. 과거란 결국 인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인상은 실체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실체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지 않지만, 그렇기 때문에 용납되기도 한다. 114

이름은 어떤 사물에 대한 가장 제한적인 정의이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알지 못할 때 우리는 편의적으로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쓰는 것이 인식의 방법이긴 하지만, 그것은 최악의 방법이다. 이름을 붙이는 것은 구별하기 위해서이지 인식하기 위해서는 아니기 때문이다. 구별을 통하지 않고는 인식할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이름을 사용한다. 그러면 구별할 필요가 없을 때는 어떤가, 구별함 없이도 이미 총체적인 인식에 이르러 있을 경우에 이름을 알고 부른다고 하는 것은 무슨 유익이 있을까, 오히려 그 새로운 이름이 참된 인식을 방해할 수도 있지 않을까. 163-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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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
생 텍쥐페리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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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텍쥐페리'는 분명 서두에 이 책은 어른들에게 바치는 책이라고 밝혀둔다. 그래서 어린이들에게 용서를 구하기까지 한다.

필자가 지금은 어른이 되었지만 한때 어린 소년이었을 그에게 바친다고 하는 이 책..

다시 봐도 이 책은 어른들에게 유용한 책이 맞다.

단, 아직도 문학적이고, 소년 소녀적인 감성이 살아 있는 어른에 한해서..

딩시절 이 책을 읽을 때, 울컥하면서 어른이 되는 게 왠지 두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뭔가 어른들은 지혜롭지 못하고, 이상하고, 계산 방법이 다르다는 ..

1,2차 세계대전 모두 참가했던 '생텍쥐페리'는 미술학교에서 건축 공부를 하다가 군 입대를 하고, 비행기 수리를 하다가 조종사 자격을 딴다.

그리고 연합군 반격 작전의 정찰 임무를 수행하다가 행방불명이 되었다. 1944년 7월, 그의 나이 44세때의 일이다.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고 많이 읽혔던 [어린 왕자]로 그는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지만

하늘을 너무도 사랑했고, 그래서 하늘로 증발해 버렸다고 한다.

섯 살의 그는 맹수를 삼킨 보아 구렁이 그림에 사로잡힌다. 먹이를 통째로 삼키고는 여섯 달 동안 잠을 자면서 서서히 먹이를 소화시킨다는..

그래서 그는 온갖 상상을 하고 코끼리를 삼킨 보아 구렁이를 그리지만 어른들은 그림을 알아보지 못한다. 다시 보아 구렁이의 내장을 투명하게 그리지만 역시 어른들은 관심이 없고 차라리 실질적인 공부를 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를 한다.

그래서 그는 화가의 꿈을 접고 비행기 조종을 배운다.

어른이 되어 여러 사람들과 수많은 접촉을 하지만 그의 보아 구렁이 그림을 알아주는 사람은 없다. 여전히 그가 그린 보아 구렁이는 남들에게 모자를 그린 것으로만 보일뿐이다.

러던 중 비행기의 고장으로 사하라 사막의 한가운데 착륙하게 되는데, 지쳐 잠든사이 어린 소년이 다가와 양 한 마리만 그려달라고 한다.

그 소년, 너무도 연약해 보이는 황금 머리의 아름다운 이 소년이 바로 어린 왕자이다.

어느 별에서 왔을까?

어린 왕자는 집 한 채의 크기만 한 별, 그는 그 별이 소행성 B612호(1909년 딱 한 번 터키의 천문학자 망원경에 잡혔던 )라고 추측을 한다

 

어린 왕자는 그가 여섯 살 때 그린 그림에 대해 말한다. 속이 보이는 보아 구렁이와 속이 보이지 않는 보아 구렁이를..

자신의 그림을 알아준 친구가 생겼기에 그는 어린 왕자의 그림을 그려둔다.

실제로 '생텍쥐페리'는 이 책의 삽화를 직접 그려 넣는다.

린 왕자는 그에게 질문을 많이 하고, 한번 질문하면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으면서 정작 그의 질문에는 답을 않는다.

자신의 작은 별에는 바오밥나무가 비극을 몰고 오기 때문에 씨를 뽑아버리는 일을 해야 하고,

겸손하지 않지만 마음을 설레게 했던 낯선 꽃, 심술궂은 허영심으로 어린 왕자의 마음을 괴롭혔던, 바람을 질색하는 꽃에 관한 이야기도 들려준다.

자신의 질문에는 대답도 않는 어린 왕자지만, 그는 여러 정황들을 미루어 어린 왕자의 연약하고도 쓸쓸한 생활을 알게 된다.

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서 지구라는 별에 도착하기 전에 다른 소행성들을 여행하였었는데

각자의 별에서 왕과 허영심에 빠진 사람, 술꾼, 바쁜 사업가가 살던 별, 가로등을 켜는 사람이 있는 별, 큰 책을 쓰는 늙은 신사가 있는 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곳에서 어린 왕자는 덧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을 얻는다.

덧없음은 머지않아 사라져 버릴 위험이 있다는 것,

지리학자인 큰 책을 쓰는 늙은 신사는 어린 왕자에게 평판이 좋은 지구라는 별을 추천한다.

그곳에는 그동안 소행성에서 만난 사람들의 몇십 배, 몇백 배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린 왕자는 지구에서 뱀을 만나고, 꽃잎이 고작 세 개뿐인 꽃을 만나고 메아리를 만나고 장미꽃을 만나고 여우를 만나고 철도원과 장사꾼을 만난다.

여우에게 길들인 다는 것에 대해 물었더니, 여우는 길들이는 것은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것이라고, 세상에 흔한 것들을 길들이고 친구로 만들어서 오직 하나뿐인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며 자신을 길들여 달라고 한다. 그러고 나서 장미꽃을 찾아가라고도 한다.

그리고 각종 광고와 드라마나 영화에 잘 인용되는 그 유명한 대화..

 

-"같은 시간에 왔으면 더 좋았을걸." 여우가 말했다. "가령,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시간이 갈수록 나는 점점 더 행복해지겠지. 네시가 되면 난 벌써 흥분해서 안절부절못할 거야. 그래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게 되겠지! 그러나 네가 시간을 정하지 않고 아무 때나 오면 나는 몇 시부터 마음을 곱게 단장해야 하는지 통 알 수가 없잖아... 그래서 의식이 필요한 거야."

"의식이 뭐지?" 어린 왕자가 물었다.

"그것도 사람들이 너무나 잊고 있는 것이지." 여우가 말했다.

"어떤 날이 다른 날들과, 어떤 시간이 다른 시간들과 다르게 만드는 게 의식이야. 가령, 나를 쫓는 사냥꾼들에게도 의식이 있어. 그들은 목요일이면 마을 처녀들과 춤을 추지. 그래서 나에게 목요일은 신나는 날이야! 나는 포도밭까지 산보를 갈 수 있어. 하지만 사냥꾼들이 아무 때나 춤을 춘다고 해봐. 모든 날이 다를 바 없이 다 같은 날일 테니 난 하루도 마음 놓고 쉬지 못할 거야........" 101-102

 

 

 

-중간생략-

 

국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난 지 1년이 되는 날 몸을 가볍게(노란 뱀과의 협상.. 이 부분이 인어공주와 마녀의 협상만큼이나 가슴이 아프다. ㅎㅎ) 하여 떠난다.

아픈 이별을 하면서, 자신이 그려준 양이 어린 왕자의 별에 가서 그 꽃을 따먹게 될까 봐 양을 다스릴 굴레를 그려주게 되는데..

어린 왕자와의 슬픈 이별을 겪은지 6년이 되어 생각을 해보니

그 굴레에 가죽끈을 그려 넣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양이 그 꽃을 과연 먹었을까, 아닐까에 따라 세상의 모든 게 온통 달라질 텐데, 어른들은 아무도 그게 그렇게 중요하다는 걸 깨닫지 못한다고 한다.

학동네 이 번역과 출판 너무 맘에 든다.

종이의 질감도 딱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 맞고..

지금 내 나이에도 손색없는 철학 동화라고 하겠다. 어릴 땐 이 짧은 책이, 오히려 난해 했었다.

아직 어른이 아니었기에, 근데 아직 철딱서니는 없지만 충분히 넘치는 어른이 되어보니 오히려 그 철없음으로 이 책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와닿는듯도 하다. 그냥 여전히 막연하게 울컥울컥하면서 읽었다.

들인 꽃에 대해 책임을 지는것,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 행복은 한송이 장미꽃, 물한모금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것, 언젠가 사람들이 자기의 별을 찾아낼수 있게 하려고 수많은 별들이 반짝이고 있다고..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서툰 인간인 나는 언제쯤 나의 별을 찾을 수 있을지

 

※ 소년이었던, 마냥 소년일줄로만 알았던 그 아이의 권유로 읽게된 책, 내 리뷰를 어디서 보고 있게될지?

네가 오후 네시에 온다면 난 세시부터 벌써 행복해지기 시작할 거야.

 

 

 

 

 

 

- "오직 마음으로 보아야 잘 보인다는 거야. 가장 중요한 건 눈에 보이지 않아."105

-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하게 된 것은 네가 네 장미꽃을 위해서 소비한 시간 때문이야."105

- "하지만 넌 그걸 잊으면 안 돼. 네가 길들인 것에 대해서 너는 영원히 책임이 있는 거야. 너는 네 장미꽃에 대해 책임이 있어." 106

- "사막이 아름다운 건 어딘가에 샘을 감추고 있기 때문이야......"114

- "그래, 집이건 별 이건 사막이건 그것을 아름답게 하는 건 눈에 보이지 않는 법이지!"115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건 오직 껍질일 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115

- ‘이 잠든 어린 왕자가 이렇게까지 내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은 꽃 한 송이 대한 그의 변함없는 마음, 잠들어 있을 때조차도 꺼지지 않는 등불처럼 그의 마음속에 빛나고 있는 한 송이 장미꽃 때문이야..‘그래서 나는 그가 더욱 부서지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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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3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지음, 이영의 옮김 / 민음사 / 1998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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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 수용소의 하루', 1962년에 발표한 이 작품은 그의 첫 작품이었으나, 이 작품이 소련 내에서 반체제적이고 반소적인 목적을 위해 쓰여지고, 서구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하여, 거부당하고 외면당한 채, 국외에서 먼저 발표되었다.

그는 1974년 결국 체포되고 추방당하여, 오랜 망명생활을 하고 러시아의 정치 개방과 더불어 고국으로 돌아가 2008년 90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제로 '솔제니친'은 1945년 반소 행위를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어 8년 동안 강제수용소 생활을 했었고, 이 경험으로 인해 그곳 생활의 상세하고 실감 나는 묘사를 하여, '스탈린'의 공포정치를 대표하는 강제노동 수용소의 실상에 대한 폭로로 여겨지기도 했다고.

'슈호프(이반 데니소비치)'는 반역죄로 8년째 수감 중이다. 그는 무슨 일이든 남보다 못하진 않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으로 그곳에서의 생활에 익숙해져서 약간의 돈벌이도 해서, 담배도 조금 살수 있는 사람이다. 항상 기상과 동시에 일어나던 그가, 그날따라 몸이 으슬으슬하고 오한이 났다. 밖과 다름없는 추운 건물에서 최악의 컨디션으로 기상시간에 늑장을 부려보지만, 하필 그날이 모두 기피하는 새로운 작업 현장인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의 배치계획이 잡힌 날이라, 한 데서 구덩이를 파고 말뚝을 박고, 가시철망을 두르는 일을 움막도 없고 모닥불도 피울 수 없는 최악의 작업환경에서 해야 하므로 최대한 눈치껏 빠져야 하지만 이 어마어마한 작업이 어느 반으로든 정해져야 하는 결정의 날이었던 것이다.

수들은 대부분 말도 안 되는 죄목으로 끌려와 있고, 혹독한 추위 속에서 고된 노동과, 죽지 않을 만큼의 식량을 배급받으며 부자인 죄수들은 소포가 계속 들어오고, 가난한 죄수들은 굶주리며, 또 어떤 죄수는 뇌물을 바치면서 자신의 안위를 추구하고, 다른 죄수들을 밀고하기도 하고, 일을 안 하려고 꾀부리며 살아가기도 하지만, 또 너무도 선하게 종교적인 신념으로 자신의 영혼에 집중하며 누구의 부탁도 거절하지 않고 그곳에서의 생활을 즐기기도 하면서 지내는 사람도 있지만, 어쨌든 그들 사이에 계급이 형성되기도 한다.

죄수들의 사이의 서열은 먼저 들어왔거나, 부유하거나, 간부들을 잘 다루거나 하는 경우가 계급의 상위를 차지한다.

'슈호프'는 1941년도에 아내와 헤어지고, 영양실조와 이질을 앓고 이도 몇 개 잃었다. 그는 함량 미달의 빵 배급을 알면서도 불평도 하지 않고, 따지지도 못하는 소심한 성격이다.

가 속한 104반의 반장 '추린'은 19년간 수용소 생활을 한, 절대적인 존재이다. 반장의 권한인 매일의 작업량 조정에서, 그리고 새로운 작업 현장으로의 배치에서 빠지는 일, 반별로의 성과급식 등에서 그의 능력은 빛을 발한다. 그는 부농의 아들이었다는 이유로 수용소로 보내졌는데, 그의 지혜와 작업조정원들을 구워삶는 수완으로 반원들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된다. 일단 그날 104반은 [사회주의 생활 단지]에서의 노동에서 면제된다.

'슈호프'는 반역죄로 수감되었는데, 부정하면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에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그의 죄는 1942년 2월 그가 속한 부대가 포위되어 비행기로 받던 식량배급이 중단되자, 몇 명씩 독일군의 포로로 잡히게 되었는데. 그도 네 명과 함께 도망쳐 나오다가 우군 부대에 발견이 되었지만, 포로였다가 되돌아왔다고 죄명을 씌웠다.

아주 짧게 한국전쟁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중국이 왜 거기에 참가했을까? 하는..

침에 꾸물댔다고 간부실 청소를 하게 되고, 컨디션 때문에 의무실도 가게 되고, 아침 배급도 받고, 빵도 좀 감춰두고, 담배도 얻어피우고, 작업 현장에서 줄칼도 숨겨 들어오고, 저녁 배급에서 부유한 죄수 '체자리'의 몫도 먹게 되면서, 신체검사와 점호에서 걸리지 않고 영창도 가지 않고 그럭저럭 하루의 작업량을 마쳤으며, 추위와 배고픔도 넘긴 하루가, 별 탈 없이 끝났고, 오히려 행운이 함께 했던 하루가 너무도 순조로워서 들뜬 마음이 되어 좀처럼 잠이 오지 않을까 걱정도 살짝 하면서 흡족하게 잠이 든다. 거의 행복한 날이었다고...

그의 하루하루는 그 시간과, 그 공간을 살아내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런 일상이다.

운 좋은 하루를 마감하기까지의, 악착같이 살아남으려고 터득한 요령으로 버텨온 수많은 날들 중의 어느 하루..

슈호프가 8년을 살고도 2년을 더 산 이후 형기가 끝나게 되는데 그런 무수히 많은 날(삼천육백오십삼일)들 중의 어느 평범한 하루에 대한 이야기이다.

련의 강제수용소 생활에 대한 이야기가 다소 무겁고 불편한 묘사일 거라고 조금은 꺼려 하기도 했었으나, 너무도 담담하고 자제된 문체로 인해 오히려 담백하고 유머러스 한 코드도 있다. 무슨 수용소 생활 수칙 내지는 수용소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여겨질 정도로..

문호들이 살아 숨 쉬던, 문학의 성지 러시아가, 독재와 혁명과 정치적인 소용돌이 속에서 침체되었지만, 이후 이 작가, 이 작품을 통해서 그들의 뿌리를, 역사를 되새겨주었다고 평가받았다고도 봐야 할 듯..

어떤 이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을 계승하는 러시아 문학의 걸작이라고까지 극찬을 하더만은.., 앞으로의 탈 이데올로기 탈 냉전 시대에서의 러시아 작가들의 활약과 러시아 문학의 부활을 기대해본다.

저녁이 되어, 이때쯤 여기서 인원 점검을 받을 때, 그다음 수용소 문을 통과하여 막사 안으로 돌아올 때, 죄수들에게는 이때가 하루 중에서 가장 춥고 배고플 때이다. 지금 같은 때는 맹물 양배춧국이라 해도 뜨뜻한 국 한 그릇이 가뭄에 단비같이 간절한 것이다. 국물 한 방울 남기지 않고 단숨에 들이켜게 된다. 이 한 그릇의 양배춧국이 지금의 그들에겐 자유보다, 지금까지의 전 생애보다 아니, 앞으로의 모든 삶보다도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이다. 157

- 뭣 때문에 당신은 자유를 원하는 거죠? 만일 자유의 몸이 된다면, 당신의 마지막 남은 믿음마저도 잃어버리게 될 거예요. 감옥에 있다는 것을 즐거워하셔야 해요! 그래도 이곳에선 자신의 영혼에 대한 생각을 할 수 있으니까요. 203



- 슈호프는 말없이 천장을 바라본다. 그는 이젠, 자기가 과연 자유를 바라고 있는지 아닌지도 확실히 모를 지경이었다. 처음에 수용소에 들어왔을 때는 아주 애타게 자유를 갈망했다. 밤마다 앞으로 남은 날짜를 세어보곤 했다. 그러나 얼마가 지난 후에는, 이제 그것마저도 싫증이 났다. 그다음에는 형기가 끝나더라도 어차피 집에는 돌아갈 수 없고, 다시 유형을 당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유형지에서의 생활이 과연, 이곳에서의 생활보다 더 나을지 어떨지 그것도 그는 잘 모르는 일이다. 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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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피
김언수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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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뒷면에 '이것은 누아르가 아니다. 이것은 차라리 우리 안에서 늘 끓어넘치고 있는 그 뜨거운 것들에의 송가다. ' 막연했던 누아르.. 범죄와 폭력을 다루면서, 도덕적 모호함이나 성적 동기에 초점을 맞추는 일군의 영화..

'김언수'를 만나는 세 번째이다. [설계자들], [캐비닛].. 모두 강렬했고, [설계자들]의 '래생'은 아직도 오래된 중고서점 어딘가에서 툭 튀어나올 것 같이, 책을 읽는 내내 사로잡혔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이 작가의 책은 '작가의 말'이 너무도 인상 적였던 기억이 있다. 소설을 전부 읽어낸 후에 그가 밝히는 그의 말을 읽으면, 어찌 보면 매력적인 그의 소설보다 더한 매력으로 작가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갖게 한다. 두꺼운 책을 읽어가면서 결론만큼, '작가의 말'은 어떻게 썼을지를 궁금해하며 읽게 되는 책인 셈이다.

[고래]의 작가 '천명관'이, 영화감독자로 나서게 되는데, 그 첫 작품이 [뜨거운 피]라고 해서, 의아했다. 역시나 강렬했던 [고래]도 영화로 충분한 소재이겠거늘, 감독 데뷔작으로 그가 택한 시나리오가 되었다고 해서 궁금했던 책..

대는 부산의 낡은 항구도시 '구암'.. 시대는 '노태우'정권에서 '김영삼' 정권으로 들어서는 어느 봄, 여름.. 1990년 [범죄와의 전쟁]이 마무리되어가던 때이다.

'구암'의 건달들은 양복을 입지 않는다고, 양복 입고 설쳐대는 건달들이, 추리닝 입고 설쳐대는 건달들 보다 더 먼저 감옥에 가고, 더 오래 감옥에 있다고' 주장하는 '손 영감'은 일제시대 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만리장 호텔'의 사장이자 '구암' 암흑가의 두목이다.

그는 건달로서 그저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지내는 게 성숙하고 아름다운 자태라고, 건달이 폼 나고 이름을 날려봤자 갈 데는 감옥뿐이라고 자신의 오른팔 '희수'에게 늘 말한다.

18세에 건달 세계에 입문해서 50년 동안 살아남은 자신은, 더러운 바다에서 매춘, 밀수, 물건을 훔치고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어도, 서슬 퍼런 '박정희 정권', '전두환의 삼청 교육대' 광풍, '노태우의 범죄와의 전쟁'에서도 살아남은 비결을 강조하지만, 마흔의 '희수'는 이런' 손 영감'이 장악한 항구에서 큰돈이 되는 덩치 큰 밀수는 하지 않고, 고춧가루나 깨 등을 밀수하게 하는 처사를 겁쟁이라고 못마땅해 한다.

'만리장 호텔'은 2층짜리 건물로, 1913년 일본인들의 유흥을 위해 만들어진, 일본 야쿠자들이 실질적 주인이기도 했던 곳으로, 구암 원유 주식회사를 만들고 조선 최초의 해수욕장을 만들면서 지어진 곳으로, 일본식 목조건물이었던 것을 한국 전쟁 이후 철근 시멘트로 개보수한 곳이다. 케이블카도 있고, 다이빙대와 구름다리도 있었던 일제시대, 이때가 구암 바다의 최고 전성기였다.

곳의 바지 사장이었던 '손 영감'의 조부 '손흥식'이 태평양전쟁으로 일본이 패망하자, 슬쩍 삼켜버려 주인이 된 것이고, 그 시절엔 일본인을 주인으로 모시던 마름들이, 혼란한 시국을 틈타 일본의 사업체나 비밀스런 재산들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일이 흔했다고도 한다. 해방 직후 1960년대까지, 낮의 대통령은 '이승만', 밤의 대통령은 '손흥식'이 었다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엔 '이기붕'에게 밉보여 경찰에 끌려가 맞고 이틀 만에 죽었고, 그의 아들, '손 영감'의 아버지는 미군들과 시비 끝에 칼을 맞고 죽는다.

'손 영감'은 큰 권력 앞에서 설치고 까불면 모난 돌이 정맞아 죽는다고, 건달은 그저 쥐 죽은 듯 조용히 사는 것이 최고라는 좌우명을 갖게 된다. 그래서 개폼도, 똥폼도 잡지 말라고 한다.

그들이 무기 창고라고 부르는 밀수품 보관소에는 손은 많이 가고 돈은 안되는 고춧가루, 마른 멸치. 콩, 들깨 등이 넘쳐난다. 그들은 이것을 소량의 국산과 버무려서 국산품으로 둔갑시켜 차액을 챙긴다.

'희수'는 '모자원'이라고 하는 전쟁미망인들이 자녀를 데리고 자립할 수 있게 도와주기 위해 선교사들이 지은 시설에서 성장했다.

그의 어머니는 춤바람이 나서, 도망을 갔고, 그곳에서 일곱 명의 동생들을 먹여살리기 위해 제 어머니와 포장마차를 하다가 결국엔 제 발로 '안월동'으로 찾아가 창녀가 된 '인숙'이, 열세 살 때부터의 첫사랑이었다.

변두리 지역 깡패의 중간 간부로, 부하들 몰래 우울증 약을 먹고 있는 전과 4범의, '만리장 호텔'의 지배인이기도 한, 그는 호텔 구석에 달방을 살면서, 담배와 술과, 노름에 빠져 제법 많은 빚도 가지고 있다.

'인숙'에게는 4년 만에 출감하는 아들 '아미'가 있다.

1930년대 부산의 인구는 고작 20만이었고, 부산항은 쇄국정책으로 포구 수준이었지만, 한국전쟁이 터지자 부산의 인구가 급증하여 4백만에 육박했다. 전쟁은 물자를 넘쳐나게 했고, 물자는 큰 항구를 필요로 했다. 부산은 뜨내기와 악에 받친, 자기 몸뚱이 말고는 가진 게 없고 더 이상 물러설 곳도 없는 피난민들이 만든 곳이다.

'손 영감'이 이끄는 구암 해변이 대부분 토박이 들인데 반해,

'영도'는 부산 폭력조직의 본거지로 한국 전쟁 때 피난 온 건달들로 출발해서 오십 년 가까이 부산을 지배해온, 전국 규모의 조직이 항구를 지배하고 미군 군사물자, 러시아 마피아., 일본의 야쿠자들과 지속적으로 연계되어 있다. 이곳은 '남가주'회장이 지배하고 있다.

'인숙'이 열일곱의 나이에 낳은 아들 '아미'는 190센티의 120킬로그램을 육박하는 거구로 아버지가 누군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성은 주 씨이다.

'영도'의 실세 건달들과 싸움 끝에 감옥에 가게 된 그는 4년 만에 출감을 하고, 도망간 여자부터 찾는다고 강원도로 갔다.

사춘기 시절, 떡잎부터 건달이었던 '아미'는, '인숙'과 친하고, 자신의 학교 방문 등을 대신해 주던, '희수'를 좋아해서 아버지라고 부르며 따른다.

-중간생략-

 

밌게 읽은 책이다. 분량은 많지만..

건달들의 철학과 건달들의 인생사가 고스란히 들어있다.

조폭이 건달이고, 건달이 깡패이고, 깡패가 양아치라고 생각했는데

건달과 양아치는 엄격히 다른가 보다

다들 진정 건달로는 불려도

양아치라고 불리기는 싫어한다.

아예 건달은 뭔가 로맨틱하기까지 하다.

은 돈을 주무르지만, 결코 부자가 되기는커녕

늘 빚더미에 앉게 되는

'건달식 산수'

'창녀식 산수'가 인상적이고, 안타깝다.

밥처럼 심심한 사람 '손 영감'보다

설탕처럼 단 '양동이'를 선택했던 '희수'

뻔한 조폭 이야기이지만, 심장을 쫄깃거리게 만든다.

해 개봉한다는 이 영화의 '희수'역은 배우 '정우'이다. '손 영감' 역은 '김갑수'이고,

책을 읽는 내내 '정우'의 표정과 말투로 '희수'를 읽게 된다.

영화 [바람]에서 '정우'의 표정연기.. 결코 잘생긴 배우가 아니지만, 괴물인 배우

'정우'를 클로즈업하면서 표정을 읽게 만드는 '정우표 연기'가 기대되고,

역시나 법상치 않은 '천명관'의 프리즘으로 들여다보게 될 영화를 기대해본다.

볼 수가 없는 영화인것이, '천명관'이고, '김언수'이고, '정우'의 삼박자이므로..

영화의 시작은 어디서부터 일까?

'희수'에게 펼쳐질듯한 화양연화, 사무실 신에서부터 일까?

'달자'아저씨의 배에서부터 일까?

'남가주'와 협상하던 '멍텅구리배'부터일까?

아니면 '빨래 공장'부터?

혹시, '이누이트'의 얼음집에서?

리고 '김언수'작가의 말은 역시나이다.

그린란드의 '이누이트족', 그중 80%가 우울증을 앓고, 매년 천명 중 서른다섯 명이 자살을 한다고. 강인한 유전자로 태어나 동토의 땅에서 강인한 삶을 살아가면서, 얼음집 안에서 사람들의 따뜻함을 지향하던 그들은 관대하고, 인정 많고 유머감각과 잘 웃는 성향이지만, 그리하여 결코 화를 내거나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지 않고 불평도 불만도 말하지 않고, 남들을 간섭하지도 않고 서툰 동정이나 위로 따위도 하지 않고, 자신에 대해서 말하지 않고, 조용히 생각에 잠기는 거칠고 뜨거운 이 사람들이,

상냥하고 온순하고 평화롭게 지내다가 어느 날 마음에 견딜 수 없는 격정과 우울이 찾아오면 조용히 얼음집 밖으로 나가 혼자서 자살을 한다고, 그리하여 이제 더 이상 뜨겁지 않은, 더 이상 물기 없는 '희수'란 사내는 구암을 잃고 '이누이트'를 닮아간다고. 그리고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이 사내의 삶이 보기 좋으냐고?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한, 구암의 사람들이, 그 지리 멸렬한 삶이 그립다는 작가, 그 시절엔 차라리 외롭지 않았다고..

- 사람들은 이제 뜨겁지 않다. 뜨거운 것들은 모두 미숙하고 촌스럽고 어른스럽지 못하다는 죄목으로 촌충처럼 사라져버렸다. 그럴 때마다 나는 구암의 그 지리멸렬한 삶이 그리워진다. 구암의 시절엔 짜증 나고, 애증하고, 발끈해서 술판을 뒤집었지만 적어도 이토록 외롭지는 않았다. 595



- 이 밤에 혼자 소주 병을 따며 나는 상처를 주지 않고 사랑을 건넬 방법을 떠올려본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사랑을 받을 방법을 떠올려본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흔든다. 그런 삶은 없다. 모든 좋은 것은 나쁜 것과 버무려져 있다. 문을 닫으면 악취가 들어오지 않지만 꽃향기도 들어오지 못하는 것처럼. 5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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