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81
윌리엄 포크너 지음, 김명주 옮김 / 민음사 / 2003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현대 미국 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하나라 일컫는 '윌리엄 포크너'는 194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이다. 노골적인 제목이 주는 불편함 때문에 사놓고도 망설였던 작품인데, 결국은 '포크너'를 읽어야 했기에, 이 책으로 입문한다.

첫 몇 장을 가볍게 패스하지 못해서 서너 번은 도돌이표를 찍어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곱 명의 가족과 그의 이웃들, 그 가족의 여정에서 스쳐 지나며, 그 가족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름이 각장의 제목이며 그들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번드런 가(家), 그 가족의 여정이란, '앤스 번드런'의 아내, '애디 번드런'의 매장을 위해, 40마일 떨어진, 그녀의 친정 가족 묘지로 마차를 타고 그녀의 관과 함께 가족 모두가 이동하는 길이다.

아버지 '앤스 번드런'은, 아내와의 약속이었다면서,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가까운, 번드런 가의 가족 묘지를 두고, 열 배나 더 먼 거리에 있는 처가의 가족 묘지로 옮겨야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유언대로, 가족의 손으로, 즉 그들의 장남 '캐시'가 짠 관에 누워있다.

그녀 '애디'는 꼬박 열흘을 꼼짝 않고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창밖으로 '캐시'의 목재 자르는 소리와 모습을 보면서.. 그녀는 아픈 것도 병든 것도 아니고 그냥 피곤할 뿐이었다 한다. 남편 '앤스'에게 그런 아내의 모습은 죽을 생각만 하는 것처럼, 죽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애디'는 사내아이 넷과 딸아이 하나를 낳았다.

'캐시', '달', '주얼', '듀이 델', '버더만'.

장남 '캐시'는 훌륭한 목수이지만, 교회 지붕에서 떨어져 다리를 전다.

엄마의 성품을 가장 많이 닮은 둘째 '달'은 애정을 품을 줄 아는 아이이다.

그리고 보석이란 뜻의 '주얼'은 말썽을 일으켜 엄마의 속을 가장 썩이는 아들인데 '애디'는 그 아들을 편애했다.

반쯤 벗고 다니는, 시골 소녀치고 예쁜 열일곱의 '듀이 델'은 죽어가는 엄마의 병상을 지키며, 부엌일을 챙긴다.

보살핌이 필요한 막내 '버더만'은 낚시를 좋아한다.

그들의 아버지 '앤스'는, 땀을 흘리면 죽는다면서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참 기독교인이고자 노력하며 사는 선량한 이웃들의 신세를 당연시하면서 때론, 이용해 가며 살아가고 있다.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려고 애썼던 '애디'는 둘째 '달'을 낳고 자신이 죽으면 친정의 가족 묘지에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편에게 말했다.

그녀의 아버지는 '우리가 살아 있는 이유가 오랫동안 죽어 있을 준비를 하기 위해서'라고 늘 말씀해왔었는데 비로소 그 뜻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한 십 년 터울로 '주얼'을 낳고 그 '주얼'에 대한 속죄로 남편에게 '듀이델'과 '바더만'을 낳아주었다고 한다.

밤낮으로 톱질하는 '캐시'의 수고에도 관의 완성은 더디고, '애디'의 촛불 같은 목숨은 아직 붙어있을 때 '앤스'는 두 아들, '주얼'과 '달'에게 3달러를 벌 수 있다면서 벌목일을 내보낸다. 아이들은 그새 엄마가 어떻게 될까 봐 불안해하며 일하러 떠난다.

'앤스'는 자신의 불운이 길이 만들어진 때문이라고 여긴다. 집 앞에 길을 내면서 세금을 내라 하고, 그 탓에 '캐시'가 목수가 되었고, '달'이 땅만 바라보고, 아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앤스'는 돈이 아까워서 아내의 임종 직전에나 의사 '피바디'를 부른다. 그 가족이 사는 집은 절벽 위에 있다. 뚱뚱하고 늙은 의사는 '앤스'의 전갈에 그녀의 시간이 이미 다 했음을 직감했고 그가 도착하자 몸져누운지 열흘만'에 '애디'는 눈을 감는다.

온 가족이 '앤스'가 미리 준비해둔 마차에 올라 장례를 위한 이동을 하려는데 며칠째 큰비가 내려 강물이 불어 다리가 떠내려갔다. '애디'의 주검은 삼 일 동안 관 속에 있고 '주얼'과 '달'은 빈털터리로 돌아왔다. 폭우 속 그 가족의 장례 행차는 장엄하기 보다 치열하다.

자기 몸에서 태어난 아이들 모두 자기의 주검과 함께 마차를 타고 가기를 원했던 그녀의 바램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주얼'은 별도로 말을 타고 동행한다. 사내 중의 사내 '주얼'은 무뚝뚝하고 공격적이지만, 그만의 방식으로 집안의 궂은 일들을 해결하기도 한다. 그가 탄 말은 그가 한때 가족들 몰래 잠을 아껴가며 노동한 대가로 구입했던 좋은 품종의 말이었다.

그들은 강의 다른 곳을 돌아 아직 남아있는 다리를 찾지만 대부분 떠내려갔고, 할 수 없이 강에 빠진채로 건너는 시도를 한다.

마차를 끌던 노새들이 물에빠져 죽고, 물속에서도 어머니의 관을 지키려던 '캐시'는 끝내 관을 놓치고 부상을 입는다. 그가 소중히 여기는 연장들과 어머니의 관이 물속으로 가라앉고, '주얼'의 맹활약으로 대부분 건져내는데 아버지 '앤스'는 그런 광경을 그냥 바라보기만 한다.

남은 길을 가려면 또 노새가 필요했다. 아버지 '앤스'는 상의 한마디 없이 '주얼'의 말과 노새를 바꾼다. '자신은 15년 동안이나 이빨도 없이 살고 있는데, 너도 말없이 살수 있지 않겠느냐'며..

꼴사나운 사람, '앤스'는 누군가는 꼭 요절을 내고 마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들의 여정은, 썩는 시체에서 풍기는 악취로 물든다.

그들이 지나가는 곳에서는 신고까지 들어오기도 한다. 언덕을 만나면 모두 내려서 걷고, 이때 부상당한 '캐시'는 엄마의 관위에 누워있고, 노새를 끄는 아버지는 제외이다.

별거 아니라며 부상을 견디고 있는 '캐시'의 다리가 검게 변하고,

마차가 쿨럭거릴 때마다 부러진 다리가 흔들려 고통스러워하자, 아버지 '앤스'는 시멘트를 구해와서 다리를 고정시킨다.

그들이 묵던 헛간에 화재가 발생하고, 가까스로 관을 꺼내낸, '주얼'은 화상을 입는다.

그 화재는 마차에서 실없이 웃어대던 '달'의 소행이었다. 눈치챈 가족들은 쉬쉬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좋은 기독교인을 찾아서 도움을 받고 엄마의 매장을 끝낸다.

그는 딸, '듀이 델'이 가족몰래 낙태를 하려고 남자친구가 건네준 약값 10달러를 가지고 있는것을 보고는 꼬드겨서 빼앗아 버린다.

자꾸 사라졌다가 나타나던 아버지는,

가족의 귀갓길에 축음기를 든 한 여인을 동반하고 나타나 새엄마라고 한다.

그리고 그의 쭈글하던 얼굴은 빛나는 의치 덕에 비열하게 더 빛나고.....

이 가족들은 정말 고집이 세고, 타협이란 게 없다.

아버지 '앤스'는 정말 징글징글한 사람이다.

애들이 모두 제멋대로인데,, 답이 없지만, 엄마의 유언을 지키려는 노력만은 거룩하다 할 수 있다.

실험적인 시도를 많이 했던 작가로 알려져 있듯이, 이 책의 서술 방식은 독특하다. 서술자의 이름이 붙여진 각 장은, 그 서술자의 시점으로 독백하듯 이어지는데 후반부에 가서는 '달'이 '달'을 3인칭 시점으로 서술하고, 이 부분이 정신 나간 자의 영역인가 했고,

죽은 '애디'의 장에서는 '애디'가 '주얼'의 출산과 관련해 남편에 대한 속죄 부분과, 그녀의 죽음에 불려온 마을의 목사가 서술자인 장에서, '주얼'이 그들의 불륜의 씨앗이던가를 짐작해야 하는데, 제대로 해석한 게 맞는지.. 작가의 상징과 메타포가 난해한데, 또 책 읽기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이런 작가의 상상력을 어찌 나 같은 독자가 다 가늠할 수 있겠는가..

답답한 현실속, 가족 구성원과 그들의 기이한 장례여정을 묘사하는 문체의 서정, 독백으로 이루어지는 각 사람들의 심리 묘사가 여운을 남긴다.

일종의 부조리극 같다. 희곡으로 재탄생 해서 상연이 되어도 좋겠다 싶다. 왜 자꾸 [고도를 기다리며]가 떠오르던지..

- 머리는 명석한데 삶에 대한 성찰과 느낌이 없는 사람들이 주변에 많다.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포크너를 권하고 싶다. 한 점으로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며 존재가 확대되는 기쁜 체험이 있길 바란다. 309(작품해설)

작품 해설의 끝머리이다. 삶에 대한 성찰은 좀 더 나이 들어 해도 된다. 한 점으로 작아지는 자신도 한참 후에 경험해도 된다.

일단 젊은 날엔 명석한 재주로, 자신의 존재를 한없이 키워가며 그냥 삶을 살면 된다. 그런데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 부분, 그래서 작가는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독백으로 이 책을 엮었던가.. 누구나 다 자신의 관점으로 생을 살고, 자신의 관점으로 이야기하며 자신에게 함몰되어 있기에, 타인을 향한 진정한 이해는 어쩌면 영원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문학의 선율, 음악의 서술
위화 지음, 문현선 옮김 / 푸른숲 / 2019년 9월
평점 :
품절


가장 세계적인(?) 중국 작가 '위화'의 산문이다. 그가 아직 떡잎이었던 시절부터 매료되었던 작가와 음악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고전을 탐하게 되고, 고전문학을 가까이하다 보면 클래식 음악을 기웃거리게 되는 것이 수순인가 보다.

'문학의 선율',이라 하고, '음악의 서술'이라 한다.

이 제목에 끌려 사둔지 1년도 넘은 책,,

이웃님 리뷰에 홀려서 당장 읽겠노라 했다.

문학도 음악처럼 선율이 있고

음악에도 문학처럼 서술이 있다. 엄청 공감하면서, 제목을 계속 읊조려본다.

- 정말로 짧은 서정에는 모든 거대한 선율과 격앙된 리듬을 덮을 능력이 있었다. 사실 문학의 서술도 마찬가지이다. 변화무쌍한 문장이나 단락 다음의 짧고 침착한 서술이 훨씬 강력한 전율을 가져올 수 있다. 242

처음 부분엔 그가 읽은 작품과 작가들이 나온다. '위화'에게 문학의 지속성과 광대함을 깨닫게 해준 작가와 작품들.

'윌리엄 포크너'

아직 입문하지 못했는데,, 그래서 다음 책은 바로 [내가 죽어 누워있을 때]이다.

- 이 기묘한 작가는 타인의 글쓰기에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이다. 그의 서술은 기교로 가득한 동시에 보이지 않게 은폐되어 있다. 27(윌리엄 포크너)

- 그는 시종일관 삶과 나란하고자 했고 문학이 삶보다 대단할 수 없음을 증명한 매우 드문 작가이다. 29 (윌리엄 포크너)

이 두 줄로 엄청 관심이 가는 작품이다.

작가와 다른 작가의 만남은 문학에서 가장 기묘한 경험이라고 하며 멕시코의 '후안 룰포'를 이야기한다.

그의 [빼드로 빼라모]는 누구도 '후안 룰포'처럼 계속 서술할 수 없는 책, 영원히 완성을 기다리지만 영원히 완성을 기다릴 수 없는 책, 그러면서도 아무런 제약 없이 활짝 열린 책이라고..

- 어떤 작가의 창작이 다른 작가의 창작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이미 문학 속 글쓰기의 연속성으로 자리 잡아, 오래전부터 내려오는 감정과 사상에 지속성을 부여한다. 여기에는 누가 이익을 얻는가의 문제도 없고 누가 가려지는가의 문제도 없다. 문학 속의 영향은 식물에게 쏟아지는 햇살 같다. 식물은 햇살을 필요로 하지만 스스로 햇살이 되기를 바라지는 않는다. 그저 식물의 방식으로 건장하게 자라나려 할 뿐이다. 33(후안 룰포)

위화는 자신의 20년 독서사에서

'할도르 락스네스'의 [청어]와 '스티븐 크레인'의 [소형 보트] 그리고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를 가장 중요한 작품으로 제시한다.

- 나는 위대한 작품을 읽을 때마다 그들에게 끌려 들어간다. 겁 많은 어린애처럼 조심스럽게 그들의 옷자락을 붙들고 그들의 걸음걸이를 따라 시간의 강을 천천히 걸어간다. 따스하면서 온갖 감정이 뒤섞이는 여정이다. 그들은 나를 이끌어준 뒤 돌아갈 때는 혼자 가라며 등을 떠민다. 돌아온 뒤에야 나는 그들이 영원히 나와 함께 있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56

그리고 '체호프'의 [세 자매]와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기다림을 비교하고

- 이 이야기와 체호프, 베게트 희곡의 공통점은 기다림의 모든 의의가 기다림의 실패에 있다는 것이다. 그 대가가 짧은 순간을 잃는 것이든 평생의 행복을 날리는 것이든 상관없이 말이다. 우리는 거의 모든 문학작품에서 기다림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수시로 자기 이미지를 바꾸어 가끔은 감동을 자아내는 주제가 되고 또 가끔은 한 단락의 서술, 특정한 동작, 혹은 어떠한 심리 변화, 세부 묘사나 시구가 되더라도 기다림은 문학 속 어디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93

'단테'와 '마르셸 프루스트'를,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카프카'를

-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무한한 부드러움의 상징이고 카프카는 극단적 날카로움의 상징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서술에서 응시를 통해 영혼과 사물의 거리를 단축시킨다면 카프카는 절단으로 그 거리를 넓힌다.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육체의 미궁이라면 카프카는 심리의 지옥이며,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만개한 양귀비꽃처럼 혼곤한 잠으로 이끈다면 카프카는 혈관에 헤로인을 투입한 듯 강렬한 흥분을 일으킨다. 41

'스탕달'의 [적과 흑] 과'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비교한다. 가장 관심 깊게 봤던 대목이다.

- 윌리엄 포크너뿐만 아니라 누군들 서술의 광기에서 도스토옙스키에 비할 수 있겠는가. 라스콜리니코프가 살인을 저지른 뒤 도스토옙스키는 20페이지를 할애하여 공포에 빠진 그의 상태를 강렬하게 묘사한다. 조금도 우회하지 않고 직접적으로 그 순간 가능한 모든 행동과 주변 반응을 세세히 그려낸다. 다른 작가라면 이럴 때 기교를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할 것이다. 그러나 도스토옙스키는 기교를 선택하는 대신 용감한 흑곰처럼 우직하게 전진한다. 137

- 도스토옙스키보다 서른여덟 살이 많은 스탕달은 신사, 그것도 프랑스 신사였다. 망망대해처럼 광대한 19세기 문학에서 도스토옙스키와 가장 비슷한 작가는 아마 스탕달일 것이다. 비록 두 사람의 스타일은 궁전과 감옥만큼 다르지만 유럽에서는 늘 역사적으로 궁전과 감옥을 같은 건물에 배치했으니, 도스토옙스키와 스탕달 역시 기이한 대칭을 이루더라도 유럽 문학에서 나란히 놓여도 될 듯싶다. 138

'세헤레 자데'의 [천일 야화]를 이야기하면서 서술의 요소를 강조한다. 이야기의 힘, 꼭 듣고 싶게 만드는 서술.. 이게 소설을 읽는 묘미라는 것.. 아는 사람만 알 터.

-[천일야화]가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이야기란 무엇이며, 이야기가 진행될 때 어떤 길이 펼쳐져야 하는가이다. 우리는 늘 서술에서 가장 빛나는 단락, 이를테면 뜻밖의 놀라움을 선사하거나 신묘한 매력으로 유혹하는 단락에 빠져든다. 그런데 세헤라자데의 이야기는 이런 화려한 글과 클라이맥스 및 결말의 글들이, 아름드리 거목도 작은 뿌리털에서 자라나는 것처럼 사실은 작고 담백한 디테일, 국왕의 손짓 같은 묘사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110

문학의 음악적 요소,, 착착 감기는 단어, 어휘, 문장인데,, 대부분 번역본을 읽어야 하는 한계가 늘 아쉽다.

그가 들었던 음악가와 음악 이야기는 중간 이후부터 이어진다.

- 하지만 음악은 단숨에 사랑의 힘으로 나를 잡아끌었다. 뜨거운 햇살과 차가운 달빛처럼, 혹은 폭풍우처럼 내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햇빛과 달빛을 받고 바람과 눈을 맞으며 다가오는 모든 사물을 맞아들여 그것들을 침잠시키고 소화시키는 드넓은 땅처럼 사람의 마음도 활짝 열려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발견할 수 있었다. 235

'쇼스타코 비치'를 이야기하면서 '너세니얼 호손'과 그의 [주홍글자]를 언급한다.

얼마 전 읽어서 그가 말하는 작가와 그의 감상평에 어느 정도 맞장구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그리고

미술 이야기도 나온다.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단스키',,

그가 말하는 색채, 특히 빨강에 대한 부분이 인상적이다.

- 칸단스키가 보기에는 거의 모든 색채가 음악 속 악기에 대응될 수 있었다. 그는 "파랑은 전형적인 천국의 색깔이며 거기에서 드러나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은 평온이다. 파랑이 검정에 가까워지면 인간에게 없을 법한 비애를 드러내고, 하양으로 향하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약해진다"라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파란색은 플루트, 짙은 파랑은 첼로, 더 짙은 파랑은 우레 같은 더블 베이스, 제일 짙은 파랑은 파이프 오르간에 해당한다고 단언했다. 파란색과 노란색이 균등하게 섞인 녹색의 경우 칸단스키는 인상파를 계승해 특유의 안정과 평정의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초록에서 일단 노랑이나 파랑이 우세해지면 상응하는 활력을 동반하면서 내재된 영향력이 바뀌기 때문에, 칸단스키는 초록에 바이올린을 연결시켰다. 그리고 "순수한 초록은 바이올린의 조용한 중간 음색 같다"고 평했다. 또한 빨강은 제어할 수 없는 생기를 가졌다며, 노랑 같은 제멋대로의 영향력은 없어도 성숙하고 충분히 강력하다고 보았다. 칸단스키는 옅은 빨강과 중간 노랑이 힘과 열정, 과감함과 개선의 느낌을 비슷하게 준다며 트럼펫 소리 같다고 말했다. 또 날카로운 감각의 빨강인 주홍은 파랑을 만나면 냉각되지만 빛을 죽이는 검정을 만나면 깊이를 잃게 딘다며"주홍은 튜바 혹은 천둥 같은 북소리처럼 들린다"고 비유했다. 그리고 보라는 냉각된 빨강이므로 슬픔과 고통을 의미해 "잉글리시 호른이나 목관악기(바순 등)의 깊은 음색을 가진다"고 말했다. 346-347

-칸단스키는 색채가 영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믿어서 "색채의 조화는 영혼과 상응하는 떨림에 의지해야 하며 이는 내면의 목적을 따라 움직이는 원칙 중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칸단스키가 말한 '내면의 목적'에는 정신세계의 충동과 갈망뿐 아니라 실제 표현의 의미까지 포함됐다. 또한 칸단스키는 음악도 똑같이 영혼에 직접 작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속 시구를 인용하며 그처럼 영혼에 음악이 없는 사람들, 달콤하고 조화로운 음악을 듣고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극악무도하고 간사한 사람이라고 과감하게 분류했다.칸단스키가 보기에 영혼은 모종의 그릇 같아서, 미술과 음악은 그곳에서 만나 비슷한 화학 반응을 일으키고 서로를 받아들인 뒤 새로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듯했다. 혹은 영혼에게 색깔과 음향은 모두 내면의 감정이 확장될 때 필요한 길, 동일한 길이라고 할 수 있었다. 348-349

- 칸단스키는 색깔마다 따뜻하고 차가울 수 있지만 어떤 색깔의 온랭 간 대립도 빨강처럼 강렬할 수는 없다고 보았다. 에너지와 강도가 얼마나 크든 빨강은 "자신을 태워 장엄한 성숙을 이룰 뿐 에너지를 바깥으로 많이 내보내지 않는다"고 여겼으며 "빨강은 냉혹하게 연소하는 열정이자 자체적으로 존재하는 견고한 힘이다"라고 말했다. 그에 앞서 괴테도 진빨강에서 고도의 장엄함과 엄숙함을 발견하고 빨강은 다른 모든 색깔을 자기 안에서 통합시킨다고 보았다. 354

19세기 말, 급진적인 경향을 보였던 '리스트'와 '바그너' 이야기와

그와 대조를 보이며 보수적이고 내향적였던 '브람스'를 길게 언급한다.

사실, 나는 아무리 들어도 '브람스'는 잘 모르겠더란 말이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와 그의 작품들도 여러 번 언급되고 '슈테판 츠바이크'와 '헤밍웨이'도 등장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책을 읽으면서 느끼는 바가 많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슈테판 츠바이크는 한때 역사와 문학의 중간쯤 되는 전기 작품에 열중했는데 이런 작품에서도 자신의 성향을 명확히 드러낸다. 내 말은 이 오스트리아 작가가 역사학자처럼 실제로 있었던 역사 사건을 다루면서도 소설가답게 역사 속 사소한 부분들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는 사소한 부분이 중대한 사건을 결정하고 인간의 운명과 역사의 방향을 정했다. 그래서 역사의 서술에서 그러한 디테일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자신의 소임이라고 여겼다. 그 스스로의 비유에 따르면 가끔 피뢰침의 뾰족한 부분에 우주의 모든 전기가 모이듯, 그는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결정이 사실은 하루, 한 시간, 심지어 1분 만에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보니 슈테판 츠바이크의 에세이에서 비잔틴 제국의 함락, 콘스탄티 노플의 함락은 오스만 튀르크인의 강력한 공세 때문이 아니라 케르카포르타라는 작은 문 때문으로 묘사된다. 112

- 헤밍웨이처럼 자신의 구조와 언어를 고스란히 드러내 강물을 들여다보듯 명료하게 만드는 작가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와 동시에 헤밍웨이는 독자가 작품을 분석할 권리도 약화시키기 때문에 독자는 느끼고 추측하고 상상할 수밖에 없다. 118-119

물론 처음 들어보는 작가와 작품들이 더 많아서 황당하지만,, 특히나 '후안 룰포'의 [빼드로 빼라모]는 리뷰들이 역시나 만만치 않고.

[이즈의 무희]로 만난 '가와바타 야스나리'에 매료된 부분도 참 인상적였는데,, [설국]도 다시 한번 읽어야겠고, '히구치 이치요'의 [키재기]부터 기웃거려 본다.

- 나는 한때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묘사, 가느다란 실로 연결해놓은 디테일에 매료되었다. 세세한 부분을 묘사하는 방식 말이다.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서술 속 시선은 얼마나 치밀한지 물건의 무늬 하나도 놓치지 않는 듯하지만 동시에 아무 데도 닿지 않는 듯해서, 나는 가까이 있는 듯도 하고 떨어져 있는 듯도 한 묘사가 감각의 방식에 속한다고 생각했다.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눈빛과 내적 파동으로 사물을 어루만지지, 손으로 건드리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이 디테일을 드러내는 한편 끊임없이 뭔가를 숨겼다. 숨겨진 것이 더 매력적인 법이라 독서 방향은 접근 불가의 상태에 가까워졌다. 뒤쪽에 신비한 공간이 있고 그 경계 없는 공간은 무한히 확장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언제든 축소될 수도 있어서였다. 우리는 왜 독서를 마친 뒤 생각에 잠길까? 그 신비한 공간에 들어가 계속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42-4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관촌수필 문지클래식 1
이문구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관촌은 충청남도 보령시, 대천의 한 마을이다. 제목이 착각하기 딱 좋게 수필이란 이름을 내세웠지만, 작가의 실제 어린 시절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연작 소설집이라 하고, 해설에서는 느슨한 연작이라 하지만, 그 느슨함이 별개의 단편소설집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이지만, 전체적인 골자가, 작가가 어려서 성장한 관촌과 관촌 사람들의 이야기이므로, 또 연작이라 할 수도 있겠다.

1973년부터 1977년까지의 작품들을 1977년도에 묶어 출판한, 8편의 작품이 실려있다.

제목이 모두 사자 성어로 이루어져서, 갸우뚱거릴 차, 단락마다 첫머리에 달아둔 뜻풀이를 발견하니, 안심이 되었다.

충청도 사투리와 한자어로 인해, 헤맨다던 리뷰처럼, 토속어와 비속어, 지금은 사라진 고어들의 향연을 애쓰면서 즐겨야 했다.

일락서산(日落西山)-서산에 지는 해. 1972년 발표.

양반가의 자손으로 태어나, 조부로부터 친구관계나 행동거지에 많은 제약을 받고 자라, 자신의 근본적인 고립을 조부의 영향이라 한다.

이미 기울고 퇴색해 가던 가문이 6.25사변을 겪으면서 쑥대밭이 되는데, 남로당의 지역 지도자였던 아버지와 형들을 잃고, 전쟁 중 돌아가신 사대부의 후예 할아버지의 유언은 '족보만은 잘 간직해라'이다. 작가 가족의 실제 이야기로, 중학을 졸업하고 일찌감치 서울로 올라온, 주인공이 장성하여 할아버지 성묘를 가면서 '내 심신의 통치자' 할아버지와 옛사람들에 대한 그리움의 서정을 디테일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후기에 [일락서산]을 자기소개라고 하여, 첫 순서로 놓았다고 밝혀둔다.

화무십일(花無十日)- 열흘 가는 꽃이 없다. 1976년 발표.

전쟁 이후 서울로 돌아가던 피난민들의 길목인 관촌에 사람들이 모여들어, 주인공의 집에도 일행들이 하룻밤씩 묵어가게 되는데, 윤영감네 일가족과는 인연이 되어 한참 동안 지내게 된다.

남자들이 없어진 집안의 살림에 윤 영감 내외가 큰 보탬이 되지만, 그들의 젊고 예쁜 며느리가 여관 종업원으로 취직을 하면서 패가망신에 이르고, 그 며느리를 찾겠다고 행상에 나섰다는 윤영감네의 그 이후를 궁금해하면서, 소반 장수의 외침을 통해 떠올려 본다.

행운유수(行雲流水)-떠가는 구름과 물. 1973년 발표.

자신의 집에서 부엌일을 돌보던 열 살 연상의 '옹점이' 이야기, 그녀와 유독 따뜻한 추억이 많은데,,

그녀가 장성하여 시집을 갔고, 남편이 군인 가서, 홀로 모진 시집살이를 살다가 쫓겨났다는 소문을 들어왔는데

약장수를 따라나서 노래를 부르고 다닌다더니, 그가 대천장에서 그녀인듯한 모습을 목격하게 되는데,,

녹수청산(綠水靑山)- 청산녹수, 푸른 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 1973년 발표.

주인공을 챙겨주고 위해주던 여남은 살 연상의 '대복이' 이야기,

그를 따라다니면서 온갖 구잡스러운 놀이들을 하게 되는데

미군들에 의해 대천 해수욕장이 개발되고, '대복이'는 미군들의 심부름을 하면서 물건을 훔치고 마을에서는 소문난 사람이 된다.

그의 행실에 물들까, 주인공에게 경고들을 하지만, 어머니의 묵인처럼, 자신을 끔찍이 챙기는 '대복이'가 딱히 해될 것은 없고,

또 무엇보다도 그를 너무도 좋이 여기는데, 점점 '대복'의 도벽은 대담해지고 두려워질 무렵, '대복이'가 유치장에 가게 된다.

전쟁이 발발하자, 옥문이 열려서 출옥하게 된 '대복이'는 공산당 활동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강간 미수로 잡히게 되는데,,

공산토월(空山吐月)- 빈 산이 달을 토하다. 빈 산에서 떠오른 아름다운 달. 1973년 발표

일가친척의 행랑아범을 살던 신 서방의 장남으로 태어난 신 석공의 결혼 스토리와 그가 자신의 집안에 행한 의리를 떠올린다.

어머니가 그 아들을 빗대어, '빈 산의 달이 뜨기를 저런 아들을 둘 수 있냐'던, 성실하고 반듯한 신석공,,

- 추석을 마중 가는 길이라서 반달은 물색없이 밝기만 했다. 마치 석공이 작아던 날 밤, 온 하늘에 가득하던 그 예전 달같이........아, 별들은 또 어찌 그리도 고대 숨넘어가듯 가물거려댔던 걸까. 별빛은 보면 볼수록 불안스럽기만 했다. 정말 요망스러운 망상이니라 하면서도 자꾸 불안스럽기만 했다. 정말 요망스러운 망상이니라 하면서도 자꾸 불안해지던 가슴, 그 중의 어느 별이라도 깜뭇 꺼져버린다면 석공의 숨소리 또한 그와 동시에 멎어버릴지도 모른다 싶던 그 두려움, 그 이겨낼 수 없던 시시각각의 공포와 초조로움. 268 (공산토월)

관산 추정(關山芻丁)-고향에서 꼴 베는 사람, 고향의 옛 친구. 1976년 발표.

두 살 연상의 소꿉동무 '복산이', 그의 아버지 '유천만'은 추접스럽구, 우스운 사람이었지만, 징용을 다녀왔던 사람으로 죽다 살아난 이후로 가사를 돌보는 것은 점점 억척스러워지는 아내의 몫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유천만'도 남들이 아주 꺼리는 일은 도맡아서 하게 되는데,,

그 아들 '복산'은 아직도 그들의 고향 관산에 살고 있다.

관산이 고향을 지키고 있어서 고향에 가려면 반드시 거치지 않을 수없는 산(사마천의 사기)이란 뜻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주인공에게 있어 '복산이' 그런 존재이다.

도깨비불을 보고 변하지 않은 게 있다고 좋아하던 차,

낚시꾼들의 간드렛불(candle)이었음을 알게 되고 변해가는 고향 이야기, 사람약의 정체, 그리고 인간 공해..

- 세월은 지난 것을 말하지 않는다. 다만 새로 이룬 것을 보여줄 뿐이다. 나는 날로 새로워진 것을 볼 때마다 내가 그만큼 낡아졌음을 터득하고 때로는 서글퍼하기도 했으나 무엇이 얼마만큼 변했는가는 크게 여기지 않는다. 무엇이 왜 안 변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관촌 부락을 방문할 때마다 더욱 절실하게 느껴졌다. 325(관산추정)

여요주서(與謠註序)- 별것 아닌 일에 대한 설명, 또는 그저 그런 이야기에 관한 해설. 1976년 발표.

역전에서 '장부식( 늘 몰라~)'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신용모'를 만나게 된다.

야생조류 금지법 위반에 휘말려 재판을 앞둔 어리숙하고 무식한 그의 재판 이야기,

사연인즉슨, 오해할 수밖에 없이 처신한 것만 잘못인셈인데,,

야생동물에게 물격이 있다면, 자기도 야생인간인 셈인데, 자신에게도 야생의 인격이 있다면서, 물격보다 거시기 하지 않겠느냐는 호소가 너무 황당하고 웃겨서, 폭소가 터졌던..

월곡후야(月谷後夜)- 월곡 동네의 밤중부터 아침까지. 1977년 발표.

* 후야:밤중에서 아침까지를 이르는 말, 불교에서 새벽 한 시부터 다섯시까지의 시간

유령 출판사에서 번역의 위조일을 하던 '김희찬'이 고향에 내려가려고 일단 몸을 섞던 애인 '조미애'를 따돌리고

두메산골 월곡면으로 들어가 동생 '수찬'과 함께 과수원 일을 하며 사는데

그는 주막의 과부와 관계를 하였고, 그 과부의 첫딸과 자신의 동생 '수찬'과 눈이 맞은 듯한데..

마을엔 14세의 '순이'가 개에 물려 낙태한 사건이 발생하였고,

'순이'를 겁탈한 자는 '순이'의 동무 아버지로 폐결핵을 앓고 있던 사람이었는데

'순이'의 엄마와, 거금 삼만원과 땅문서로 합의를 보고 덮기로 하자

'수찬'과 또래의 청년들이 모여 도덕적인 응징을 가해 그자를 마을에서 쫓아내고자 하는데,,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혼 생활의 마모된 비석,, 하지만, 나는 인생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 더 힘 빠지고, 힘을 느끼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또 용기를 얻었다. 그냥 힘을 빼고 읽어야 했다.

이 책은 서른 후반 이후의 독자들과, (그리고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노년의 문턱에 있는 독자들에겐 추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보의 독자들에게는, 다행히 도입 부분부터 장벽이 높지는 않지만, 스쳐가는 인물들, 그들의 수많은 대화들과 시점의 잦은 변화와 중요 사건들을 지나치는 문체가 적응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

나래이션 같은 전개 또한 지루해서 포기했다는 리뷰들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조금은(아주조금) 독서 내공이 필요하다는 팁을 주고 싶다.

한 명의 독자라도 제대로 이 책을 읽고, 산다는 것과 영원한 소멸,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 진지한 사유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내 블로그 대문 글처럼, 주파수가 다 달라서, 마음이 움직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종의 의무감이 든다.

그냥 힘 빼고 문장 자체를 즐기면 된다.

문장들은 터질듯하다. 미국 작가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긴 호흡의 문장은 없다. 헌데 짧지만 강렬해서, 또 주워 담고 주워 담느라, 페이지 넘김이 더뎠다.

표지 뒤에 어느 문학평론가는 그렇게 말했다.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깊은숨을 내쉬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이라고..

저지대의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생 절반 동안, 이 책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작가로서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의 빚을 졌다'했고, 어떤 이들은 '너무 아름다워 눈부시고 감동적이며 진실로 가득하다'라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리뷰를 어찌할까를 고민한 책은 처음인듯하다.

첫 페이지부터 뭔가 숨차게 내닫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군데군데 심상찮은 문장들을 발견하면서도, 역시 내 취향은 미국 작가가 아닌가 의 의심하다가 사로잡혀버렸다.

 

 

축가 '비리'와 그의 아내 '네드라',

지적인 이들 부부는 허드슨 강가에 빅토리아식 주택을 짓고 도마뱀, 뱀, 거북이, 조랑말, 개를 키우면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신들의 집에서 부부동반 모임을 자주 열며 파티를 즐기고 서로에게 그리고 두 딸들에게 헌신한다.

각각 7세와 5세의 딸을 낳아 키우는, '네드라'는 아름답고 늘씬한 여자이다. 사치스럽고 충동구매를 좋아하는 그녀는 꿈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은, 몸을 장식해 줄 나이 스물여덟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이지적인 분위기의 '비리'는 유태계 사람으로 우아하고 로맨틱한 남자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떨리는 사랑 대신,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만족해 보이는 생활을 하며 '만기 없는 계약을 맺은 것처럼' 인생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뭔가 위태하고 공허한 메아리 같은 문장들로 묘사된다.

들의 삶은 함께 꾸며졌다.

두 부부와 이 아이들이 함께..

그리고 과거, 그 부부의 부모들과 그들이 그랬고,

두 아이들과 미래의 아이들이 함께 그러할 것이다.

계절이 마구 흐른다.

삶이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자라나고 두부부는 늙어간다.

삶의 순간마다 아이들 양육, 지원, 가정생활에 모든 것을 쏟아내지만, 둘은 자꾸만 무심함 속으로 빠져든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는 '비리'에겐, 비밀의 사랑이 있다. 그 비밀로 비로소 완전해졌다고 느끼는 그에게 아내의 존재는, 가정의 신성함과 질서의 마지막 징표라 여겨진다.

'네드라'에게도 한 낮 사랑을 나누는 남자가 있다.

그 둘의 친구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있지만, 비혼 주의자, 결혼에 실패 한 사람, 결혼은 않고 누군가와 연인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옷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물질적인 '네드라'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의 익숙함은 좋다는 자신의 애인 '지반'에게

결혼이란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마치 타투 같아. 어느 순간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피부에 새겨져 있으니 없앨 수도 없고, 심지어 했는지조차 몰라."

그녀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결혼생활에는 흥미를 잃어간다.

자기가 사는 울타리를 벗어난 적도 없고, 유럽여행은커녕 여행자체를 못 해본 그녀는 프랑스 여행을 하고 싶다 한다.

 

(중간 생략)

절이 바뀌면 죽은 나뭇가지들이 잘려나가고 그 자리 새로운 가지가 돋는다.

그들은 시들고 아이들은 피어나고, '대니'의 두 아이가 피어나듯이, '대니' 또한 시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가 만들어주는 크리스마스카드도 달력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부모들을 보내고, 우리의 자녀들은 또 그렇게 우리를 보내고, 그들의 아이들은 또 그렇게..

함께 꾸려졌던 가정, 함께 꾸려졌던 삶들은 그렇게 흩어지는 것이다.

가루처럼, 먼지처럼 가벼웁게.. 인생은 하찮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끝이 어디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봤던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가 계속 떠오르던 차, 시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갔다는 표현이 나온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 이 책 읽기가 그러했다.

적요 속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흐르는 것은 나란 존재였다는 것..

의 공허와 늙어감의 초라함과, 체념이 문득 두렵고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강줄기처럼 거스를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흘러가는 인생을 바라보며, 영원할 것 같은 긴 오후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아무리 강렬했던 것도, 언젠가는 지워진다. '네드라'가 그토록 사랑했던 '지반'에 대한 추억이 잊힌 것을 통탄해 하면서 바닷가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던 대목과

'비리'와 '리아'의 집에 오던 80세의 늙은 가정부가, 울먹이면서, '아픈 건 아니지만 죽기 싫다고.. 정말 무섭다'면서, "사모님, 죽은 후에도 뭐가 있을까요?" 하자, 젊은 '리아'가 말한다.

" 마치 너무너무 피곤해서 잠드는 것과 같아요. 그것은 아름다운 잠이고, 끝나지 않을 편안한 잠이 될 거예요."

그러자 끄덕이던 늙은 가정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게 얼마나 좋은데..." 하던 대목

'네드라' 가 자신의 인생에서 함께 삶을 꾸렸던 사람들의 질병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늙음을 두려워하지만, 그리고 사색적인 남자 '비리'역시 자신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딸의 결혼식에서 비통해하고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오후를 준비했다.

- 아이는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아이는 갑자기 가벼워졌다. 훨씬 가벼워진 채로, 무서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아이를 떠났다. 순진무구함, 울음, 아버지와의 의무적인 놀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 이 모든 것에 무게가 있었다. 그것들은 떠나가고 용해되어 먼지처럼 흩어졌다. 119

결핵균으로 인해 다리를 잘라냈던, 이웃소녀 '모니카'의 죽음,, 그것은 무서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는 것.. 그 소녀의 몸을 이루던, 그 소녀의 삶을 이루던,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

진정, 삶은 이토록 가벼울 것인가?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무게가 가벼울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하다면, 삶도 죽음도 먼지처럼 가벼워져야겠기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주홍글씨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12
나다니엘 호손 지음, 조승국 옮김 / 문예출판사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주홍 글씨]는 19세기 대표적인 미국 소설이다. 미국 고전 문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너새니얼 호손'은 1850년도에 이 소설의 시대적인 배경을 200년 전으로 잡는다.

200년 전, 영국에서 박해를 받던 청교도들은, 신대륙 미국으로 종교의 자유를 찾아 이주하여 식민지를 건설하고 엄격한 생활의 윤리를 지키고자 했다

 

엄격하기로 유명한 청교도들의 개척지에는 감옥과 무덤부터 만들어진다. 어느 6월, 어둡고 우중충한 감옥문 앞에 들장미가 피어있다. 그 장미가 감옥에 들어가는 죄수나 처형을 받으러 나오는 죄수들에게 향기와 덧없는 아름다움을 베푸는 듯하다고 서문을 열면서 작가는 '이 들장미가, 이야기의 줄거리에서 나타날 아름다운 도덕의 꽃을 상징하거나 또는 인간의 연약함과 슬픔으로 엮은 이 이야기의 어두운 결말에 위로가 되어주길 바란다'고, 매우 낭만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부분에서 나는 이 책의 고전 다운 진가를 알아보았고 단숨에 읽어보고 싶었다.

보스턴의 시민들이 장터로 모여들었다.

간음한 여인, '헤스터 프린'의 형 집행을 구경하러 모여든 사람들이었다. 그녀 옷의 가슴팍에는 금실로 수를 놓은, A(Adultery의 약자)가 새겨져있고, 한 쪽에는 불륜의 씨앗인 3개월가량 된 아이가 안겨있다.

이 젊은 여인은 키가 늘씬하고 몸매가 이를 데 없이 아름답고, 귀부인 테가 나는 우아함을 지녔다. 사람들은 그녀의 주홍 글씨를 보면서 마구 불경스러워하고, 욕도 내뱉고 야유를 퍼붓는다.

사형의 집행 대신, 처형대에 올라 세 시간 동안, 서 있게 하고, 여생을 가슴에 치욕의 표시를 달고 사는 형벌을 내리면서, 그녀와 함께 죄를 범한 상대를 묻지만, 그녀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그녀는 영국에서 어깨 하나가 높이 솟은 기형이며, 늙어서 주름지고 파리한 얼굴을 가진 학자와 사랑 없는 결혼을 했었다. 그녀 먼저 보스턴으로 보내고 뒷정리 후 오겠다던 남편은 오는 도중에 인디언들에게 붙잡혀 살다가, 2년이 지난, 오늘 처형대에 올라 시민들의 야유를 받고 있는 그녀 앞에 나타나지만, 그녀더러 자신이 남편이었다는 사실조차 비밀에 부쳐달라 하며, 이름까지도 바꾼다. 그 '로저 칠링 워드'는 큰 도서관의 책벌레이고, 사색적인 인간이고 굶주린 지식욕이 넘치는 사람으로, 이 일이 모두 자신의 어리석음과 그녀의 연약함으로 인한 일이라 여긴다. 그녀는 남편에게 '사랑하지 않았고, 사랑하는 체하지도 않았다'고 하고, 그는 '보복이나 흉계를 원치는 않지만, 그자를 꼭 잡고야 말겠다'고 한다. 인디언들과 지내면서 의술과 약초를 공부한 그는 학자이자, 의사가 되어있다.

아이와 함께 구금 기간을 끝낸 '헤스터'는 마을의 변두리 오두막에 정착한다. 빼어난 바느질 솜씨로 그녀의 수예품은 인기를 끌고 상당한 보수의 일거리가 끊이지 않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허술한 옷을 만들고, 죽어가는 사람의 수의를 만들어 주는데, 사람들은 그녀를 경멸하고 침 뱉기 일쑤이다. 그녀의 가슴에 달린 주홍 글씨에 떨어지는 인간들의 시선이 고스란히 고통으로 다가오지만, 그녀는 아이에게 이쁘고도 독창적인 옷들을 지어 입히고 마을의 궂은일들을 하면서 지낸다.

그 아이의 이름은 '펄'(진주)이다. 타고나길 아름답고 우아하고 결함 없는 아이지만, 날 때부터 어린이의 세계에서 버림받은 아이, 악의 씨, 죄의 표상, 죄의 산물로 세례 받은 아이들 가운데 섞일 권리가 없어, 엄마 외에는 어느 누구와의 교류도 없다.

이웃들은 악마의 자식이라고, 어미의 죄로 말미암아 세상에 태어나 추하고 악한 목적을 달성하려는 것이라고 떠들어대는데, 엄격한 시대를 살던 사람들은 또 너무도 단순했기에 '펄'은, 형태를 달리한 주홍글씨 자체이지만, 풍요하고도 화사한 아름다움을 내뿜는다.

한편 엄마가 도덕적인 결함으로 자식을 키울 수 없다면서, 모녀 사이를 분리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 고비를 잘 넘겨서 둘은 계속 함께 살수 있었다.

그리고 7년의 세월이 흐른다.

마을에는 '딤즈 테일'이라는 젊고, 학자의 면모를 갖춘 담임 목사가 있었다. 그는 처형대에 아기와 올랐을 때와 모녀를 분리코자 장관 집에 모여있을 때 '헤스터 프린'에게 도움을 준 이로 묘사하다가

독자들로 하여금 그가 그 아이의 아버지 임을 눈치채게 한다.

그는 예민한 신경과 악화된 건강으로 골골 대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설교를 하고, 능력을 인정받고 존경받는다. 그의 옆에는 의사 '로즈 칠링 워드'가 붙어서 약을 처방하고 그의 상태를 체크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딤즈 테일'은 자신의 의사를 두려워하고 이상한 경계심에 사로잡히는 일이 흔히 일어난다.

'딤즈 테일'은 자신의 죄책감으로부터, 양심의 가책으로부터 시달리며 금식을 하고 자기 몸에 채찍을 가하면서 괴롭히고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가슴에 손을 얹고 다닌다.

'헤스터'는 주홍 글씨를 자신의 사명감으로 여기고, 타고난 부드러운 인간성과 다정하고 포근한 성품으로 모범적이고 선한 삶을 산다. 마을의 궂은일을마다 않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착한 영향력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녀의 주홍글씨 A를 Angel 내지, Able로 받아들이게 하고, 용서하는  마음까지 생겨나게 한다.

그들에게 '헤스터'의 주홍 글씨는 그녀가 한 번 저지른 죄가 아니라, 그녀가 행한 많은 선행의 표시, 수녀의 가슴에 걸려 있는 십자가나 마찬가지이며 가난한 자에게 친절하고 병든 자에 도움을 주고 고민하는 자에게 위로를 주는 여자로 여긴다.

'헤스터'는 '로즈 칠링워드'의, 단지 늙어서 그렇다고 보기에는 너무도 검고, 흉측해진 얼굴에서 악의 기운을 느끼고, 초췌해지고 병색이 완연한 '딤즈 테일' 목사의 얼굴을 보면서, 전 남편이었다는 비밀을 알려줘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숲에서 만난, '딤즈 테일' 목사는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몹시 괴로워했고, 차라리 그녀가 가슴팍에 달고 다닌 주홍 글씨가 오히려 부럽노라고 한다. 죗값을 치를 수 있는 기회가 되었지만, 자신의 주홍 글씨는 양심으로부터 그를 공격하는 고통을 호소한다.

그녀는 그에게 원래의 고국으로 돌아가자고 제안하지만,

그는 결심한다.

선거 축하 예배 시 설교를 맡기로 한 '딤즈 테일'은 그날, 처형대에 올라 '헤스터'와 '펄'을 부르고 자신의 죄를 고백하면서 죽어 간다.

이때 목사의 다리를 감싸고 있다가 죽어가는 아버지와 입맞춤하던 '펄'은, 이따금 꼬마 마녀라 불리던 이상성격의 징후가 사라지고 정신적인 성장을 하게 된다.

그로부터 1년 뒤 '로저 칠링워드'는 꽤 많은 재산을 '펄'에게 상속하고, '펄'은 평범하고 유복한 삶을 이어 갔던 것처럼, '헤스터'는 다시 오두막으로 돌아와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갔다는 암시를 한다.

윤리 소설이라고, 상징적인 윤리 소설이라는 평을 받는 이 소설은

감옥문 앞에 핀, 들장미를 비롯한 많은 상징들과 엄격한 청교도를 비꼬는 듯한 풍자와 꾸짖는 화법 등으로, 전설 같은 이야기를 전개한다.

주홍 글씨의 낙인은 이마에 새기는 문신쯤으로 여겼더랬는데, 다행히 옷감에 새겨 가슴팍에 달고 다니는 것이어서, 훗날, '헤스터'가 바다에 던져버릴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1600년대 아무리 엄격한 시대를 살던 청교도였다지만, 그런 전설 같은 이야기가 있었고..

대역 죄를 짓고 남은 삶을 선하게 살았던 낙인찍힌 '헤스터'와 스스로 가슴에 낙인을 새겼던 목사의 고통을 대조하면서, 더 나쁜 사람은 '로저 칠링워드'라고, 그 둘의 죄보다 그자의 죄가 더 악랄하다고 여기던 즈음, 자신의 유산을 '펄'에게 상속한 대목에서, 인간의 죄, 죄의 원천에 대해서 이러저러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모두 주어진 생동안, '헤스터'처럼 규칙도 안내도 없는 도덕적 황야에서 방황하면서 죄짓고, 또 짓고, 용서하고 용서받고 그런 운명을 사는 거겠지

 

https://blog.naver.com/su430/222319228590

정말로 기이한 일이다. 인간은 그녀의 죄를 주홍 글씨로 표시하여 그 강한 글씨의 힘과 처참한 영향력으로 어떠한 인간의 동정심도 죄로 물든 동정심이 아니라면 그녀에게 미치지 못하게 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처럼 범한 죄의 직접적인 결과로서 그녀에게 이 귀여운 아기를 주시고, 그 아이가 있을 곳을 치욕을 겪은 어머니의 가슴으로 정하고, 아기는 그 가슴에 안겨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인간들과 어머니를 연결하여 마침내는 하늘 나라에서 복받을 영혼이 되게 했으니 말이다. 59-60





그녀는 무슨 규칙도 안내도 없이 도덕의 황야를 방황했다. 그 도덕의 황야는 지금 그들이 앉아서 운명을 결정할 대화를 하고 있는 어두운 원시림처럼 넓고 복잡하고 그늘이 많았다. 그녀의 지성과 마음의 집은 사실상 황무지에 있고, 거기를 그녀는 인디언들이 숲속을 쏘다니듯이 쏘다녔다. 지나간 여러 해 동안 그녀는 이 소외당한 관점에서 인간 사회의 목사와 입법가들이 만들어 놓은 사회의 제도를 관찰했다. 그리고 목사의 허리 띠나, 법관의 옷이나, 처형 대나, 단두대나, 벽난로나, 교회에 대하여 인디언들이 별로 경의를 표하지 않듯이 그녀도 별로 경의를 표하지 않고 사회 제도 전반을 비판했다. 헤스터의 운명이 가는 방향을 그녀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주홍 글씨는 다른 여인들에게는 금지된 지역에 들어가는 통감(通鑑) 이었다. 부끄러움과, 실망과, 외로움, 이 세 가지는 엄하고도 난폭했으나, 그녀의 선생들이었다. 그것들이 그녀를 강하게도 만들고 많은 것을 잘못 가르치기도 했다. 203-204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