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벼운 나날
제임스 설터 지음, 박상미 옮김 / 마음산책 / 2013년 6월
평점 :
일시품절


혼 생활의 마모된 비석,, 하지만, 나는 인생 이야기로 읽었다.

그래서 더 힘 빠지고, 힘을 느끼고,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또 용기를 얻었다. 그냥 힘을 빼고 읽어야 했다.

이 책은 서른 후반 이후의 독자들과, (그리고 노년의 독자들에게는 권하고 싶지 않지만), 어쩌면 노년의 문턱에 있는 독자들에겐 추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초보의 독자들에게는, 다행히 도입 부분부터 장벽이 높지는 않지만, 스쳐가는 인물들, 그들의 수많은 대화들과 시점의 잦은 변화와 중요 사건들을 지나치는 문체가 적응이 안 될 수도 있다는 점..

나래이션 같은 전개 또한 지루해서 포기했다는 리뷰들이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조금은(아주조금) 독서 내공이 필요하다는 팁을 주고 싶다.

한 명의 독자라도 제대로 이 책을 읽고, 산다는 것과 영원한 소멸, 그리고 결혼에 대해서 진지한 사유가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다.

물론 내 블로그 대문 글처럼, 주파수가 다 달라서, 마음이 움직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일종의 의무감이 든다.

그냥 힘 빼고 문장 자체를 즐기면 된다.

문장들은 터질듯하다. 미국 작가의 소설들이 그러하듯, 긴 호흡의 문장은 없다. 헌데 짧지만 강렬해서, 또 주워 담고 주워 담느라, 페이지 넘김이 더뎠다.

표지 뒤에 어느 문학평론가는 그렇게 말했다.

'숨 쉴 틈 없이 페이지가 넘어가는 소설이 아니라 깊은숨을 내쉬느라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는 소설'이라고..

저지대의 작가 '줌파 라히리'는 '인생 절반 동안, 이 책을 되풀이해 읽으면서 작가로서 이 소설에 부끄러울 정도의 빚을 졌다'했고, 어떤 이들은 '너무 아름다워 눈부시고 감동적이며 진실로 가득하다'라고 했다.

책을 읽는 내내 리뷰를 어찌할까를 고민한 책은 처음인듯하다.

첫 페이지부터 뭔가 숨차게 내닫는 느낌을 받았음에도, 군데군데 심상찮은 문장들을 발견하면서도, 역시 내 취향은 미국 작가가 아닌가 의 의심하다가 사로잡혀버렸다.

 

 

축가 '비리'와 그의 아내 '네드라',

지적인 이들 부부는 허드슨 강가에 빅토리아식 주택을 짓고 도마뱀, 뱀, 거북이, 조랑말, 개를 키우면서 두 딸과 함께 살고 있다.

자신들의 집에서 부부동반 모임을 자주 열며 파티를 즐기고 서로에게 그리고 두 딸들에게 헌신한다.

각각 7세와 5세의 딸을 낳아 키우는, '네드라'는 아름답고 늘씬한 여자이다. 사치스럽고 충동구매를 좋아하는 그녀는 꿈이 아직 몸을 떠나지 않은, 몸을 장식해 줄 나이 스물여덟이라고, 작가는 표현한다.

이지적인 분위기의 '비리'는 유태계 사람으로 우아하고 로맨틱한 남자다.

화목한 가정을 이루어, 떨리는 사랑 대신, 함께 삶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끝없이 계속될 것 같은 날들이 펼쳐진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만족해 보이는 생활을 하며 '만기 없는 계약을 맺은 것처럼' 인생의 시간을 함께 보내지만 뭔가 위태하고 공허한 메아리 같은 문장들로 묘사된다.

들의 삶은 함께 꾸며졌다.

두 부부와 이 아이들이 함께..

그리고 과거, 그 부부의 부모들과 그들이 그랬고,

두 아이들과 미래의 아이들이 함께 그러할 것이다.

계절이 마구 흐른다.

삶이 그렇게 속절없이 흐르면서

아이들은 자라나고 두부부는 늙어간다.

삶의 순간마다 아이들 양육, 지원, 가정생활에 모든 것을 쏟아내지만, 둘은 자꾸만 무심함 속으로 빠져든다.

유명한 사람이 되고 싶지만 돈 버는 재주는 없는 '비리'에겐, 비밀의 사랑이 있다. 그 비밀로 비로소 완전해졌다고 느끼는 그에게 아내의 존재는, 가정의 신성함과 질서의 마지막 징표라 여겨진다.

'네드라'에게도 한 낮 사랑을 나누는 남자가 있다.

그 둘의 친구들은 모범적인 가정을 꾸린 사람들도 있지만, 비혼 주의자, 결혼에 실패 한 사람, 결혼은 않고 누군가와 연인으로 지내는 사람들이 있다.

옷과 먹는 것을 좋아하는 물질적인 '네드라'는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결혼의 익숙함은 좋다는 자신의 애인 '지반'에게

결혼이란 것을 이렇게 설명한다.

"마치 타투 같아. 어느 순간 너무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피부에 새겨져 있으니 없앨 수도 없고, 심지어 했는지조차 몰라."

그녀는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지만 결혼생활에는 흥미를 잃어간다.

자기가 사는 울타리를 벗어난 적도 없고, 유럽여행은커녕 여행자체를 못 해본 그녀는 프랑스 여행을 하고 싶다 한다.

 

(중간 생략)

절이 바뀌면 죽은 나뭇가지들이 잘려나가고 그 자리 새로운 가지가 돋는다.

그들은 시들고 아이들은 피어나고, '대니'의 두 아이가 피어나듯이, '대니' 또한 시들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 부모가 만들어주는 크리스마스카드도 달력도 필요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렇게 우리의 부모들을 보내고, 우리의 자녀들은 또 그렇게 우리를 보내고, 그들의 아이들은 또 그렇게..

함께 꾸려졌던 가정, 함께 꾸려졌던 삶들은 그렇게 흩어지는 것이다.

가루처럼, 먼지처럼 가벼웁게.. 인생은 하찮다.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것 같지만, 끝이 어디쯤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봤던 [흐르는 강물처럼]이란 영화가 계속 떠오르던 차, 시간이 흐르는 강물처럼 흘러갔다는 표현이 나온다.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는 듯, 이 책 읽기가 그러했다.

적요 속에서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있지만, 정작 흐르는 것은 나란 존재였다는 것..

의 공허와 늙어감의 초라함과, 체념이 문득 두렵고 막막하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강줄기처럼 거스를 수 없는 평범한 사람들의 흘러가는 인생을 바라보며, 영원할 것 같은 긴 오후를 어떻게 채울 것인지,,

하루에도 몇 번씩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아무리 강렬했던 것도, 언젠가는 지워진다. '네드라'가 그토록 사랑했던 '지반'에 대한 추억이 잊힌 것을 통탄해 하면서 바닷가 젊은 연인들을 바라보던 대목과

'비리'와 '리아'의 집에 오던 80세의 늙은 가정부가, 울먹이면서, '아픈 건 아니지만 죽기 싫다고.. 정말 무섭다'면서, "사모님, 죽은 후에도 뭐가 있을까요?" 하자, 젊은 '리아'가 말한다.

" 마치 너무너무 피곤해서 잠드는 것과 같아요. 그것은 아름다운 잠이고, 끝나지 않을 편안한 잠이 될 거예요."

그러자 끄덕이던 늙은 가정부, "그래도 아침에 일어나 신선한 커피를 마시는 게 얼마나 좋은데..." 하던 대목

'네드라' 가 자신의 인생에서 함께 삶을 꾸렸던 사람들의 질병과 죽음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늙음을 두려워하지만, 그리고 사색적인 남자 '비리'역시 자신의 이혼과 재혼, 그리고 딸의 결혼식에서 비통해하고 상실감을 느끼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오후를 준비했다.

- 아이는 순식간에 숨을 거두었다. 아이는 갑자기 가벼워졌다. 훨씬 가벼워진 채로, 무서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그 아이를 떠났다. 순진무구함, 울음, 아버지와의 의무적인 놀이, 한 번도 살아보지 못한 삶. 이 모든 것에 무게가 있었다. 그것들은 떠나가고 용해되어 먼지처럼 흩어졌다. 119

결핵균으로 인해 다리를 잘라냈던, 이웃소녀 '모니카'의 죽음,, 그것은 무서울 정도로 사소한 존재가 되는 것.. 그 소녀의 몸을 이루던, 그 소녀의 삶을 이루던, 모든 것들이 먼지처럼 흩어지고 사라지는 것.

진정, 삶은 이토록 가벼울 것인가?

늙음과 질병과 죽음의 무게가 가벼울 수 있는가 말이다.

그러하다면, 삶도 죽음도 먼지처럼 가벼워져야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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