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일의 유리 1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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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그리스 신화부터 비극와 희극, 플라톤의 대화편들까지 천병희 선생의 원전 번역 읽기에 푹 빠져 지냈고, 이곳에 상당한 리뷰, 페이퍼 등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2년 반 가까이 훌쩍 지나갔다. 가끔 책을 사려고 이곳에 들렀을 뿐(지방의 오프 서점에서 원하는 책 구하기란 너무너무 어려웠어요). 그러다 최근에 『이솝우화』(천병희 옮김) 관련 리뷰 등을 읽게 되었고, 공감하는 바 있어 한 작가의 작품을 소환한다. 


일본 작가가 쓴 소설. 그러나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독특한 구성 그렇다고 우화로 분류하기엔 좀 애매, 딱 이 정도였다. 책 표지를 보면 알겠는데 작가도 떠오르지 않고 작품 이름도 떠오르지 않았다. 최근에야 3년 만에 겨우 공간을 확보하여 박스에 담겨 여기저기에 피로감을 준 애물단지 책 짐들을 겨우 푼 상태였기에, 두 권으로 엮인 이 책들을 직접 찾아보기 시작했다. 한나절을 할애했지만 실패. 


막고 푼다고 이곳에서 ‘국내도서> 소설/시/희곡> 세계의 문학> 일본문학’이라는 분류에 따라 정확히는 번역 출간된 ‘일본소설’을 하나하나 검색하기 시작했다. 25권의 책이 한 묶음으로 모니터에 나타나는 검색을 얼마나 했을까? 국내도서로 번역 출간된 일본소설이 과연 몇 권이나 될까? 지루하고 단순한 작업을 진행하는 동안 문득 ‘유희’라는 단어가 그 책과 관련하여 떠올랐다, 유희(遊戲). 헤르만 헤세의 『유리알 유희』와 뭔 상관? 뭔가 연관이 있는 듯하기는 하지만 그간 검색에 할애한 시간이 아까워서 계속 막고 푸는 검색을 계속했다. 


그렇게 다시 만난 책이 『천일의 유리1』과 『천일의 유리2』다. 원제 ‘千日の瑠璃’(1992년). 마루야마 겐지 지음, 김난주 옮김. 문학동네(2007-04-04) 펴냄. 자주 나가는 책은 아닌 모양이다. 며칠 기다려야 함에도 이 작품을 구매하여 입수했다. 


지난해 봄, 난데없는 부음(訃音)을 수신했다. 서울 출장에서 돌아오는 KTX 안이었다. 약간의 ‘불법’을 감행하며 목적지를 광주로 변경했다. 해남에서 누군가를 만나 그이의 집에도 갔는데, 문득 그대가 생각이 나더라, 종가(宗家)의 후손이면서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친구가 확인차 전화했을 정도로 나와 닮은꼴이 많았던 형이었다. 


그해 여름, 그 형과 나는 그 형의 집(문화재)에서 특이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길이 5m 최대지름 3m인 계란(유선형) 모양 조형물을 대나무로 엮어 닭장을 만드는 일이었다. ‘장태’, 인근 동학혁명기념전시관에 전시될 소품을 만드는 일을 둘이서 하기로 한 것이었다. '장태'란 '닭장'인데 대나무로 엮은, 천적들로부터 닭들 보호하려고 왕대를 쪼개고 얇게 다듬어 타원형으로 엮은 일종의 닭 사육장이다. 


동학농민혁명 때 우리는 칼과 화살로 원군인 왜군들의 조총 방사에 맞서야 했다. 그 장태 안에 솜이불을 넣어 이것을 엄폐물로 삼아 굴리면서 전투를 했다. 그런 동학혁명전쟁의 상징인 장태를 재현하는 프로젝트를 그 형과 진행한 것이다. 


그렇게 전시품을 재현하는 며칠 동안 윤 형(‘윤’이라고 하자)과 나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취중진담을 위한 퍼포먼스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많은, 그리 길지 않은 동안 에피소드는 적지 않았다. 그렇게 거기 머무는 동안 내가 그의 서재에서 간택하여 읽은 책이 『천일의 유리1』과 『천일의 유리2』다. 


문득 생각하자니 윤의 책장에서 읽는 책의 주인공이 어쩌면 윤과 비슷한지, 그렇게 읽던 책에 메모를 해버렸다. 그래서 결국 그 집을 떠나면서 이 두 권을 책을 양해 없이 가져왔다. 그런데, 숱한 책 짐에도 없는 것을 보니, 누군가에게 그의 책을 빌려준 모양이다. 


1,000개의 시선 혹은 관점. 우화적인 너무나 우화적인 발상의 소설, 우화적이든 우회든 우의이든.. 그것은 지금 생각하면 기술적으로는 시발점은 영화 <감시자들>도 있지만, 상당 부분은 소년의 시선이고 관점이지만 1,000일의 1,000가지 관점이 에피소드인데 연결이 되어 한 편의 작품(소설)이 된다. 


빨간 우체통/윤재철


누구에게도

아직 부치지 못한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 (2연 생략) 


그래도 누구에게나

아직 받고 싶은

편지 한 통쯤은 있어

빨간 우체통 거기 서 있다. 


돌려줄 수도 돌려받을 수도 없게 된 이 책들, 그 주인공에게 조금 미안하고 화가 난다. 

지난해 봄 그 주인공이 떠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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