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 - 저항의 문장가 윌리엄 해즐릿 에세이의 정수
윌리엄 해즐릿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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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헤즐릿의 10살 위인 형 존 해즐릿이 자주 하던 말이 "청춘은 죽음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었다고 한다. 청춘에는 고난을 이겨낼 힘이 있고, 기회 또한 무궁무진할 것 같다. 방황과 고통은 있지만, 지쳐 있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청춘이 영원히 지속될 것이라 생각한다.

p.178 삶의 시작은 마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는 순간과 같다. 세상이 나를 위해 열려있다.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풍경에 마음을 빼앗기고 그 너머의 또 다른 풍경이 이어지리라 믿는다. 청춘은 자연처럼 자신도 영원하리라 착각한다.

8편의 에세이 중 7번째 실린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는 젊을 때는 자신의 죽음을 상상할 수 없으며, 마치 나는 불멸의 존재인 것 같이 살아가는 젊음과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청춘도 아닌데 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이 들까? 책 제목에 끌려 이 책에서 이유를 찾아보고 싶어 읽게 되었다. 나이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에,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혀 산다.

p.179 그들은 모른다. 언젠가 경쟁에서 뒤처지고, 노쇠해지며, 결국 무덤에 던져질 날이 온다는 것을. 청춘은 미래를 상상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은 죽음을 드라마 속이나 다른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부정한다. 장례식장에 다녀왔어도 나는 안 죽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죽음을 상상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다. 드라마를 하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다. 천년만년 살 것 같으니까 늘 나중에, 다음에로 미룬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다가 시한부 선고를 받거나, 막상 죽음이 코앞에 닥쳤을 때 당황하는 것은, 죽음이 현실이 되니 충격이라서 그럴 것이다. 죽음을 기억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을 그대로 인정하고, 현재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가장 좋은 땅은 지금 밟고 있는 땅이고, 가장 좋은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하지 않는가.

메멘토 모리(Memento Mori)는 라틴어로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이다. 내가 언젠가는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다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으로 살기 때문에 죽음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이 내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아낌없이 사랑하고,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며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메멘토 모리는, 현재를 즐기라는 카르페디엠(Carpe Diem)을 실천하는 가장 강력한 동기가 된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기에 나부터 사랑하고 내 안에 넘치는 사랑을 나누어 주며, 내가 먼저 더 많이 사랑하자. 이 책을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대한 특효약은 메멘토 모리라는 것이다. 의식적으로 반복해서 메멘토 모리를 생각해야 현재에 충실하게 된다.

나는 고전이나 어려운 책을 읽을 때는 늘 해설이나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는다. 작가와 작품에 대한 세계를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도 옮긴이의 말을 먼저 읽었더니 윌리엄 해즐릿을 처음 접하는 나에게 친절한 가이드 역할을 톡톡히 해주었다. 트와이스와 BTS 가사를 예로 들고, 『호밀밭의 파수꾼』과 『데미안』의 비유를 해주셔서 더 잘 이해가 되었다.

해즐릿은 독자를 흔들고 깨우기 위해 글을 쓴다고 옮긴이는 말한다. 인간 본성을 비판하며, 독자에게 깊이 있는 사고를 요구한다. 후대의 에세이스트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영어 수필의 거장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지적 명성과는 달리 개인사는 고난으로 점철되었다.

해즐릿은 1778년 영국 메이드스톤에서 목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젊었을 때는 초상화 화가로 활동하다가 문필 활동으로 전향해서 철학서와 문학 평론을 썼다. 1812년 런던으로 가서 형과 함께 살면서 언론인 및 평론가로 명성을 얻었다. 말년에 재정난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런던 소호 지역의 허름한 하숙집에서 위암으로 사망했다.

탁월한 에세이스트이자 비평가인 그는 보수적인 영국 사회에서, 급진적 공화주의자로서 반체제 운동을 하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옹호한다. 또한 나폴레옹과 프랑스 혁명의 핵심 가치인 자유와 평등을 지지했다. 그의 에세이는 저항의 무기였는데 그것이 나중에 조지 오웰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수록된 8편의 에세이 중 표제작인 <영원히 살 것 같은 느낌에 관하여>를 빼고, 나머지 7편의 간략한 내용을 살펴보자.

<진부한 비평가에 관하여>는 유행하는 의견에 따라 자신의 독창적인 생각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들을 비판한다. 진부한 비평가는 말할 시간은 많지만 생각할 의무는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표현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뻔하고 무의미한 말만 반복한다는 말에 찔렸다. 그게 실력인 것 같다. 내 머릿속에 입력된 게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뻔한 말을 하거나 저자의 말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게다가 귀가 얇아서 남이 말하면 다 진실인 줄 안다. 생각할 의무를 느끼지 않는... 해즐릿을 만나면 지식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귀엽게 봐달라고 하고 싶다.

<온화한 사람의 두 얼굴>은 온화한 성품이 위선일 수 있음을 새로운 시각으로 파헤친다. 온화한 왕이 폭군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여기서 해즐릿이 말하는 온화한 사람이란 이기적이고 가식적인 성품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성인군자의 온화함은 아닌 것 같다.

그들을 버린 대상에 대한 증오는 한때 그 대상에 품었던 애정의 크기만큼 깊고 격렬하다. 그들의 신념이 배신당했을 때 그 분노는 광란에 가깝다고 표현한다. 그래서 바람난 배우자를 사랑했던 깊이만큼 증오하나 보다.

<종교의 가면>은 형식적이고 위선적인 종교에 관해 이야기한다. 나는 기독교를 믿으면 제사를 안 지내고, 성당과 절에 다니면 제사를 지내는 것이 떠올랐다. 종교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안 지낸다면 어떤 종교가 옳은 것일까? 난 제사 지내기 싫어서 교회를 다녔는데, 교회는 교회고 제사는 지내야 했었다는.

<인격을 안다는 것>은 사람의 진짜 모습을 어떻게 읽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통찰이다. 해즐릿은 상대방의 진짜 속마음을 알고 싶다면 얼굴을 보라고 한다. 말은 바꿀 수 있지만 표정은 쉽게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는데, 그러고 보면 사람의 표정과 얼굴은 그의 모든 것을 말해 주는 것 같다.

<돈 없이 살아간다는 것>은 가난이 배고픔뿐만 아니라, 굴욕감도 준다는 것,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위선까지 드러낸다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 한 집 걸러 외제차인 이유도 물론 돈이 많아서 타는 사람도 있겠지만, 아무리 셋 방 살아도 돈 있어 보여야 무시당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가 도움을 청할지도 모른다는 기척만으로도 마치 쓰러지는 말을 피하듯 도망간다는 표현은 지금도 그대로다. 곤경에 처한 말을 돕다 깔려 죽느니 피하고 봐야 한다. 사람도 도움을 청할 기척만 보여도 귀찮고, 부담스러워서 피하고 본다. 세일즈 관련 일을 하면, 혹시 나보고 보험이든 구독이든 해 달라고 할까 봐 친구들이 다 도망가지 않는가? 물론 나는 거절을 못 해서 보험을 들어주고 해약하고를 반복했지만 말이다.

<인도인 곡예사>는 기계적인 숙련된 기술이 주는 감동을 성찰한다. 그는 몸으로 표현되는 예술도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인종 차별, 직업 차별이 생각나는 이야기였다. 나도 신혼 때 부부 싸움을 하다가 내가 파출부냐고 스스로를 비하했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면서 나 스스로 파출부라는 직업을 무시한 것이다. 하지만 이 에세이 통해 이 세상에 귀하지 않은 일이 없다는 것을 느꼈다.

곡예사 이야기를 하다가 한 시대에만 위대한 사람은 진정으로 위대한 사람이 아니라는 말을 한다. 위대함의 진정한 시험대는 역사의 기록이라도 말했던 그는, 이렇게 200년이 지나서도 모두에게 사랑받는 에세이를 써서 스스로를 증명해 냈다.

마지막 <병상의 풍경>은 병원에 누워 세상과 격리되었을 때 비로소 찾아오는 조용한 통찰을 담았다. 병상에서의 회복은 독서를 통해 완성된다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병에 집중하기보다 독서를 통한 삶에 집중하는 게 병을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독서는 치유의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 이 에세이를 끝으로 해즐릿은 병에게 삶을 내어주게 된다.

버지니아 울프 해즐릿을 훌륭한 벗이라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잘 알고 그것을 힘차게, 게다가 눈부시게 말한다고 표현했다.

신랄한 비판으로 유명한 에세이의 대가 작품을 읽고 나니, 강함보다는 현실을 그대로 아름답게 묘사한 점이 돋보였다. 그래서 나도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해즐릿의 표현이 눈부시게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에세이는, 마치 시를 읽는 느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의 글을 시적이면서도 날카롭고, 지적이면서도 따듯하다고 정의하고 싶다. 지성의 향기 속에 흠뻑 젖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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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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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시집은 말 그대로 책에서 향기가 나는 시집이다. 향기가 나는 책갈피와 부채는 옛날에도 있었지만 향기가 나는 책은 생각도 못 해봤다. 나도 태국의 카르마카멧 아로마틱 북마크를 가지고 있다. 오래돼서 향은 거의 다 날아갔지만 북마크를 선물한 아들의 예쁜 마음의 향기는 아직도 그대로다. 향기가 있으면 평범한 물건도 더 특별해지는 것 같다.


책갈피도 이렇게 특별한데 책이라니! 그래서 가장 먼저 이 책의 대표 향기인 유향에 대해 알아봤다. 저자는 상처에서 피어난 맑은 향기가 윤동주의 시와 닮았다고 느껴 이 향을 택했다고 한다. 


머지않아 크리스마스다.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드린 예물은 유향, 황금, 몰약이었는데, 왕에게 바친 예물에 유향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귀한 향료였던 것 같다. 


유향(乳香) 나무는 사막에서 자란다. 이 나무의 상처 난 자리에 맺히는 금빛 나뭇진은 고귀해서 신이 흘린 땀방울이라 불린다. 유향은 몸과 마음을 정화하는 치유의 향으로 수천 년 동안 사랑받아 왔다. 제사 때도 사용하는 향료로 황금보다 귀하게 여겨졌으며, 가장 영적이고 시적인 향이다. 


신성한 빛을 머금은 유향을 중심으로, 시트러스, 사이프러스, 재스민 등 다양한 향을 쓰다가, 마지막은 우리 땅의 편백으로 마무리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다양한 향이 나서 어떻게 만들었는지 너무 신기하다. 


책은 눈으로 보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책에서 향기가 난다. "와아~ 냄새 좋다!" 숲속에서 시를 읽다가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오는 이름 모를 향기에 행복에 젖어드는 느낌이다. 


눈으로 읽고, 코로 냄새 맡고, 소리 내어 낭독하고, 손으로 페이지를 넘긴다. 시각, 후각, 청각, 촉각을 느낄 수 있다. 그럼 오감 중 미각은 어떻게 느끼나? 책을 뜯어 먹을 수는 없으니 커피 한 잔과 함께하면 어떨까?


향기 다음은 이다. 동방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리는 징조인 을 따라 수천 리 길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갔다. 왕을 찾아가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는 것을 자신들의 사명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윤동주는 을 헤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고난의 시대 속에서 희망을 꿈꾸었다. 그래서 이 된 시인 윤동주에 대해서도 알아보았다.


윤동주는 이육사와 더불어 1940년대를 대표하는 민족 시인이다. 숭실학당, 연희전문학교(現 연세대학교) 문과를 졸업했고, 일본의 릿쿄대학(立教大学) 영문과에 입학했다가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学) 영문과로 전학했다. 이 도시샤대학에 재학 중이던 1943년 조선인 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에 연루되어 일본 경찰에 체포된 것이다.  


나는 윤동주의 시만 알았지 윤동주가 27살에 일본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광복을 6개월 앞두고 사망한 사실은 몰랐다. 윤동주의 생일은 1917년 12월 30일이고 사망일은 1945년 2월 16일이라 만 나이로는 27살이다. 단순히 사망 연도에서 출생연도를 뺀 법적 나이는 28세다. 태어난 해를 한 살로 치는 한국식 나이는 29세다. 하지만 우리나라도 2023년부터 만 나이를 사용하므로 27세가 맞다. 


윤동주의 부모님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윤동주는 문익환 목사와 동갑내기 친구다. 둘 다 만주 북간도의 명동촌(明東村)에서 태어났다. 현재 이곳은 중국 길림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룽징시(龍井市)라고 한다. 누나들은 어릴 때 요절했고, 3명의 남동생과 1명의 여동생이 있었다. 


윤동주에게 형제와 다름없이 가까웠던 특별한 인물이 있는데, 사촌 형인 송몽규(宋夢奎)다. 두 사람은 함께 북간도에서 자랐고, 일본 유학은 물론, 후쿠오카 형무소에서도 함께 순국한 것으로 유명하다. 


아버지가 반대하던 창씨개명까지 해 가면서 더 공부하고 싶어 유학까지 갔는데, 죽음이라니... 그냥 공부하지 말고 한국에 있었으면 적어도 그렇게 빨리 죽지 않아도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20대의 건강한 청년이 갑자기 옥 중 사망한다. 윤동주 부모님이 시신을 거두러 후쿠오카 형무소에 갔다가 송몽규를 면회했는데, 그때 그가 증언하길 조선인 죄수들을 대상으로 매일 이상한 주사를 맞게 하고, 암산 테스트를 시켰다는 것이다. 송몽규도 윤동주 사후 약 3주 만에 사망했다. 아무런 증거도 남아있지 않기에 윤동주의 죽음은 미스터리로 남았다. 사람들은 윤동주의 죽음이 생체 실험과 연관이 있다고 보았다. 


윤동주 하면 <서시>와 <별 헤는 밤>이 생각난다. 두 시 모두 별이 중심 소재라 별을 노래한 시인이라고 하는 것 같다. 내가 지금까지 외우는 단  2개의 시도 윤동주의 <서시>와 <할아버지>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인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는 꼭 <별 헤는 밤>에 나오는 시구일 것 같지만 <서시>의 마지막 행이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시집은 중학생 때 선물을 받아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내가 제일 좋아하던 시는 <할아버지>라는 시였다. 이 책 84페이지에 실려있다. "왜 떡이 쓴 데도 자꾸 달다고 하오"가 끝이다. 시가 한 줄인데 가슴이 뭉클하다. 내가 기억하는 이 시는 "왜 떡이 씁은데도 자고 달다고 하오"인데 요즘 말로 바꾼 것 같다. 

이 시집은 워낙 유명하고, 내가 기억하는 시들이 많아서 도대체 어떻게 서평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서 이 책이 향기 시집인 것과 이제까지 시만 읽었지 윤동주라는 시인에 대해 알아본 적이 없다는 점에 착안해서 향기와 윤동주가 살아왔던 삶을 알아보기로 했다. 


이렇게 그가 살아왔던 배경을 조금이라도 알고 다시 읽으니, 윤동주의 삶을 좀 더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어서 어릴 때와는 조금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달을 쏘다>라는 윤동주의 수필이 있다. 주인공은 바다를 건너온 H 군의에게 절교 편지를 받고 연못에 비친 달을 향해 돌을 던진다. 화내서 씩씩거리는 귀엽고 순수한 소년의 마음이 느껴진다.


p.116 못 속에도 역시 가을이 있고, 삼경이 있고, 나무가 있고, 달이 있다. (달이 있고...) 그 찰나 가을이 원망스럽고 달이 미워진다. 더듬어 돌을 찾아 달을 향하여 죽어라고 팔매질을 하였다. 통쾌!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더니 딱 그런 모습이다. 그런데 달은 산산이 부서지는가 하더니 연못의 파문이 가라앉자 도로 살아났다. 하늘을 보니 얄미운 달이 머리 위에서 빈정대는 것 같아 활을 만들어 무사의 마음을 먹고 달을 향해 화살을 쏜다.


나는 진짜 나뭇가지와 갈대로 활과 화살을 비슷하게 만들어 쏘는 시늉을 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본인만이 아는 사실이다. 검색해 보니 활을 쏘는 행위는 저항하는 청년의 끓어오르는 의지의 상징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런 해석을 떠나서라도, 저항과 울분을 이렇게 글로 풀어낸 것이 너무 멋지지 않은가?


<둘 다>라는 시에서도 "바다에 돌 던지고 하늘에 침 뱉고 바다는 벙글 하늘은 잠잠"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해 생각해 보자. 윤동주는 자기 힘으로 할 수 있는 활과 화살을 만들어 달을 쏘거나, 사용이 금지된 한글로 시를 써서 남겼다.


아무리 화가 나고 억울해도 지나간 일과 어쩔 수 없는 일은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다만 살아 있는 순간순간을 윤동주는 최선을 다해 일제에 저항하며 시를 썼기에 지금까지 글로 남아, 우리에게 별처럼 반짝이는 잔잔한 감동을 전해줄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거기에 향기까지 더하니 금상첨화다! 


시향에 취하다는 말이 있다. 이 시집은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마다, 시의 운치와 진짜 향기 모두에 취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 시를 읽다 보면 어디선가 은은하게 향기가 난다. 처음 느껴보는 향기들과 시를 함께 감상해 보자. 


아기 예수님께 선물한 유향을 위주로 구성한 한서형의 윤동주 향기시집과 함께, 시향이 가득한 특별한 2025년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해 보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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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 윤동주 한서형 향기시집
윤동주 외 지음 / 존경과행복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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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나는 부채나 책갈피도 아닌 책이라니! 시향에 듬뿍 취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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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REEN 숨쉼 여행 - 무조건 지금 떠나는 개인 취향 여행 Rainbow Series
김기쁨.김정흠.박은하 지음 / 여가로운삶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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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the GREEN 숨쉼 여행>은 전국의 유명한 맛집이나 명소를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책 표지의 색깔 그대로 theGREEN,싱그러운 초록으로의 초대이다.김기쁨, 김정흠, 박은하여행 작가님이 각각 11곳의 여행지와 대표적인 나무 하나를 소개한다.


the GREEN은 심호흡을 하며 숨쉬기 좋은 여행지 33곳을,deep GREEN은 각 여행지의 대표 나무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from GREEN은 함께 가면 좋은 숨쉼 여행지 안내다. QR코드는 숨쉼 여행지 홈페이지 링크인데 없는 경우는 네이버 지도로 연결된다.


나는 대표적인 나무를 더 딥하게 소개해 주는deep GREEN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숨 쉼 여행지인the GREEN과 함께deep GREEN나무도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동궁원 하면보리수나무가 생각나고 세종 수목원 하면 어린 왕자에 나오는 그 유명한바오밥나무가 생각이 난다. 마치 파리하면 에펠탑, 뉴욕 하면 자유의 여신상이 기억나듯 여행지를 생각하면 나무가 먼저 떠올라서 더 의미 있는 숨쉼 여행이 될 것이다.


이 책은무지개 여행 시리즈의 4번째 책이다.빨강은 예쁜 장소,오렌지는 머무는 사유의 공간,노랑은 신나는 일상탈출 여행지를 소개한다. 색깔이 상징하는 의미와 연관 지어 여행지를 소개해 주는 게 독특하다. 색깔 별로 구비해 놓으면,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유난히 끌리는 색깔을 택해서 여행 장소를 정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the GREEN초록은 숨쉼 여행이다. 사진으로만 봐도 마음도 눈도 편안해진다. 전주 한국도로공사 전주 수목원의계수나무잎도 하트 모양이라 잊히지 않는다. 반달이라는 동요로 달나라에 산다는 전설 속의 계수나무. 이름은 들어봤는데 잎사귀 모양이 하트인 것은 이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이 계수나무는 토끼가 불사약을 만드는 달나라에 있다. 달을 보면 정말 토끼가 방아 찧는 모습이 보인다. 게다가 계수나무 잎이 하트 모양이라니! 외로운 달 토끼에게 따뜻한 마음을 전해주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보름달을 볼 때면 불사약을 만들고 있는 토끼와 하트 모양 계수나무의 따뜻한 마음을 느껴보기 바란다.


김기쁨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11곳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경주 동궁원의보리수(菩提樹)나무다. 마주 보는 곳에 수령 250년이 넘은 붉은 원종 고무나무도 있다. 부처님이 이 나무 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해서 왠지 더 평안하게 느껴진다.

작가님은 보리수에 대해서는 더 딥 하게 설명해 준다. 대표 나무 GREEN을 더 deep 하게 알아보는 시간이라deep GREEN이라고 한 게 아닐까? 보리수는 깨달음을 상징하며 이 나무 앞에는 평평한 바위가 놓여 있다고 한다. 부처님이 앉은 자리를 상징하는 포토존이다.


정확히 말하면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나무는 인도보리수 나무라고 하지만, 그냥 보리수라는 이름 자체가 깨달음을 상징해서인지 이 나무를 보면 맑고 평화로운 기운을 받아 올 듯하다.


보리수의 가장 큰 특징은 공기뿌리인 기근(氣根). 뿌리가 줄기나 가지에서 나와 땅 밑으로 다시 뿌리를 내리기 시작해서 그곳에서 또 새로운 줄기가 자라나고 이 과정이 반복되면서 한 그루의 나무가 여러 그루처럼 보인다고 한다. 하나의 나무가 점차 숲을 이루는 모양새다. 수행과 깨달음이 반복되면, 점점 더 크고 단단해진다는 깨달음을 주는듯하다.


그 옆에는 the GREEN 여행지로부터(from) 찾아갈 수 있는from GREEN이 나온다. 근처 여행지인 경주 엑스포 대공원, 보문정, 신라왕경숲의 3곳을 추천한다.


3명의 여행 작가님들은 이 기본 틀에 맞추어, 각자 고유한 시선으로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는 숨쉼 여행지를 소개한다. 직접 방문한 것도 아닌데 마치 내가 다녀온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 장소가 생각나면서 나무도 함께 생각이 난다. 주변 관광지도 덤으로 알게 된다. 어떤 곳은 여행지보다 주변 관광지가 더 끌리기도 한다.


김정흠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경남 산청의 전통 마을 남사 예담촌의 300살이 넘은회화나무다. 어떻게 나무줄기가 서로 교차하듯 자랄 수 있는지 정말 신비롭기까지 하다. 그래서 별명이 부부 회화나무다. 연인이 손을 잡고 이 골목길을 지나면, 백년해로한다. 남사 예담촌은 경주 양동 마을, 안동 하회 마을처럼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마을이라고 한다. 돌담길을 산책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 것 같다.


박은하작가님의 숨쉼 여행지 중 내가 가보고 싶은 곳 1위는 서울 안산 자락길의메타세콰이아다. 전라도 광주(光州)도 있고, 경기도 광주(廣州)도 있듯, 경기도 안산(安山)도 있지만 서울에도 안산(鞍山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나는 이 책을 통해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에 있는 산의 이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산은 무악(毋岳)이라고도 하는데, 산의 모양이 말안장(鞍)과 닮았다고 하여 '안산(鞍山)'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서울 안산 초등학교는 들어 본 것 같은데, 이 산의 이름을 딴 것이었나 보다.


3호선 독립문역 5번 출구에서 10분 정도 걸으면메타세콰이아숲을 볼 수 있다. 와~ 이거 영화 같은 데서 나 보는 숲이다. 정말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었어?" 하며 놀랄만하다. 마포구 하늘공원이나 강동구 길동 생태공원처럼 널리 알려진 곳이 아니라 더 조용하고, 깊은 숲의 숨결을 느낄 수 있다.


내가 깜짝 놀란 것은 이 책에서 소개해 준 숨쉼 여행지 33곳 중,단 한곳도 가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서울타워는 가봤지만 남산 소나무 숲 탐방로는 금시초문이다. 이 책을 계기로 한 군데라도 가서 숨쉼 여행을 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너무 바쁜 분들에게 숨쉼 여행을 선물해 주자.


계절을 받아들이고, 뿌리를 내리며, 시간의 흐름을 견뎌 내는 나무의 모습에서 인생을 배운다는박은하작가님. 나무를 바라보면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머물 수 있었다고 한다.


나무는 세찬 비바람과 폭설, 혹은 매서운 가뭄에도 불평하지 않고 묵묵히 인내한다. 깊게 땅속으로 뿌리를 내리고 동요 없이 우리에게 산소를 내어준다. 오랜 세월을 견뎌온 흔들리지 않는 나무의 모습은 그 자체로 자연이 만든 웅장한 건축물 같다.


결국 삶이란, 나이를 먹고 뿌리가 깊어지는 만큼 어떤 고통과 비바람에도 많이 아파하지 않는 일일지도 모르겠다. 내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숨 쉬는 일, 그러다 진정 자연으로 돌아가 쉬는 일, 그래서 숨쉼 여행에서 마주하는 나무들과 숲은 마치 우리의 인생을 담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211 이제 책을 덮고 밖으로 나가 보자. 발걸음이 닿는 가장 가까운 나무 한 그루를 찾기 위해서. 그곳에서 당신만의 온온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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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을 잃은 너에게
진분홍 지음, 송하나.김민 그림 / 휴앤스토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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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 책은 푸른별 이야기다. 


파랗게 반짝이던 

푸른 별이 있었다.


다른 별들은 다 노란색인데

푸른색이라 특별해서

모두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다.


푸른 별은 생각했다.

나는 존재만으로도 기쁨이 되는 

특별한 별이라고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게 

분명하다고.


하지만 노란 별들은 

푸른별 옆에서 너무 초라해 지자

하나둘씩 떠나기 시작했다.


모두의 관심이 사라지자

푸른 별은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빛을 잃은 너에게> 인가 보다.


희망도 꿈도 미래도

모두 다 잃은 너에게 푸른별은

자기 자신으로의 길을

안내한다.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푸른 별은

점점 더 빛을 잃어갔다.


그러나 

사라진 빛보다 더 슬픈 건 

자신을 사랑해 주는 

별들이 없다는 것이었다.


푸른별은 자신이 가진 

특별함 때문에

많은 친구를 잃었다.


그런데 이렇게 떠난 

노란 별들은

친구가 맞을까?


그러다 푸른별의 마음을 느끼는 

소년을 만났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을 먼저 사랑하지 않으면

영원히 빛날 수 없다는


외부로부터의 사랑은 

감사하지만

내 안에서 넘치는 사랑은

빛나지 않아도 아름답고 단단하다


p.81

푸른별은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어.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으니까.


어떻게 하면 사랑을 받을지 

어떻게 해야 다른 별들이 떠나지 않을지

늘 이런 걱정뿐이었는데


어쩌면 푸른 별을 괴롭혔던 외로움은 

자신에게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보잘것없는 희미한 빛이라도

내가 나를 사랑하면


그 자체로 충분히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고

아름답다는 것을


나는 왜 화려한 빛을 내려고 했을까?


눈부시게 반짝여야 훌륭한 별일까?


p.105

푸른별은 지금 이대로의 빛도 

충분히 사랑받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생겼어. 


그제야 멀리 반짝이던 

별 무더기와 은하수만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의 주위로 옮겨왔지


푸른 별은 

자신만의 빛을 찾았을까?


당연히 찾지 않았을까?

밖으로 향하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했으니까.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이 궁금증은 책에서~


별하늘 그림만 봐도 힐링이 되는 책

크리스마스 선물로도 

딱일 것 같다.


빛을 잃은 모두에게

혹은 길을 잃은 모두에게


자기 자신과 제일 먼저 

친구가 되어야 하고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푸른별 동화로 들려주는

별처럼 아름다운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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