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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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 사고의 전도사인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José Carlos Ruiz)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을 읽고 나는 바로 OTT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다. 이제까지 스크린에서 쉼과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하이퍼 모던 시대가 만들어 낸, 끊임없이 콘텐츠를 보게 만드는 장치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스크린의 노예로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보는 시간을 줄이자, 이상하게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미완성된 존재들(Incompletos) 정도로 번역되는 이 책의 원제처럼 우리는 원래 불완전한존재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 TV 등 수많은 화면(옴니 스크린)을 통해 완벽한 행복의 모습만 보여준다. 그 결과 우리는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연출되는 행복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게 되었다.


저자는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아함이라고 말한다. 우아함은 화려함이 아니라 의심하는 힘이다. 나는 이 책을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 vs 우아한 삶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화면이 쏟아내는 가짜 행복(포스트 행복)을 믿지 말고, 내 안의 진짜 가능성(뒤나미스)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

나는 멀티태스킹이 능력인 줄 알았고, 늘 휴대폰과 TV의 자극 속에서 살았다. 스트레스는 드라마 몰아보기로 풀었고, 다 보면 또 다른 재밌는 드라마를 찾았다. 의심하고 생각하기 보다 끊임없이 소비했다.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의 대표적인 단어는 하이퍼 모던, 옴니 스크린, 포스트 행복이다.


하이퍼 모던 (Hyper-modern, 초현대성)

현대는 하이퍼 모던 사회다. 현대(modern)보다 더 빠르고(Hyper) 극단적인 시대라는 뜻이다. 지금 주문하면 곧바로 배달음식이 온다.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면 바로 상품 구매 페이지로 연결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니, 그 속도에 뒤처지지 않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우리는 늘 스마트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알림과 메시지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자유를 잃는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비슷한 콘텐츠만 반복해 보여 주고, 결국 필터 버블(정보 편향)에 갇힌다.


옴니 스크린 (Omniscreen)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컴퓨터와 TV, 태블릿 등 여러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 일상은 이렇게 여러 화면에 둘러싸여 진짜 세상을 볼 틈이 없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 스크린이 존재하는 환경을 옴니(Omni, 모든, 어디에나 있는)스크린이라고 한다.


삶의 거의 모든 곳(Omni)에 화면(screen)이 있다. 우리는 현실보다 화면 속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믿게 된다. 스크린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자극을 주고, 우리 시선과 생각을 계속 붙잡아 둔다. 몸은 누워서 쉬고 있지만 뇌는 계속 자극을 처리해야 하니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옴니 스크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럴이다. 화면 속 콘텐츠는 공유와 추천을 통해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깊이 있는 내용보다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콘텐츠가 더 주목받는다. 사람들은 현실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스크린 속에 빠지고, 스크린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포스트 행복 (Post-happiness)

SNS나 블로그에 포스팅한다고 할 때 포스트(post)는 게시한다는 뜻이다. 포스트 행복은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행복을 말한다. SNS에는 보통 맛있는 음식, 즐거운 여행 등 행복한 모습만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프거나 힘들어도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은 진짜 감정이 아닌 포스트 행복이다.


사람들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고민하기 보다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신경을 쓴다. 행복은 더 이상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 남과 비교하고 소비되는 이미지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포스트 행복을 의심하고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우아한 삶>

지금 우리는 정신적 빈곤 상태에 있다. 물질은 넘쳐나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난 뭘 할 때 즐겁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나는 계속 심심하다. TV나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힘이 우아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을 보는 일이 당연한가? 주말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한 삶이었나? 나는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당연한 것을 의심할 때 비로소 내 삶에 대한 주권이 생긴다. 스크린에 빠져, 내 안의 진짜 가능성인 뒤나미스(Dynamis)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뒤나미스는 그리스어로 잠재력,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내면의 힘이다. 도토리 안에 커다란 참나무가 될 힘이 숨어 있듯, 우리 안에도 아직 꺼내지 못한 힘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OTT 구독을 해지한 것 역시 뒤나미스가 아닐까?


우아함의 반대는 촌스러움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삶이다. 우아한 삶은 많은 정보를 쌓아두지 않고 하나를 깊이 보며 자신의 잠재력인 뒤나미스를 깨운다. 우아한 사람은 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늘 열어두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새롭다. 지나치거나 과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니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우아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화면을 꺼야 한다. 스크린을 보는 동안 나는 생각하는 힘을 잃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너무 재밌어서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화면을 끄면 그 행복감은 금방 사라졌다. 내 안에서 나온 행복이 아니라 잠깐 소비되는 자극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스크린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천천히 깊게 하며 나 자신을 조금씩 바꾸고 싶다. 그렇게 천천히 생각하고 읽으며 나만의 우아한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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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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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어렵지만 천천히 읽음 이해가 돼요~ 저처럼 스크린과 멀어져 보세요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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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를 위한 원칙
리처드 템플러 지음, 이문희 옮김 / 서교책방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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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모는 어떤 말과 행동을 해야 할까? 이것이 『부모를 위한 원칙』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다. 아이를 보면 그 부모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책이 내가 아들 키울 때도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들은 게임에 빠져 있고, 나는 열받고, 사춘기 때 얼마나 힘들었나 모르겠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동안 몰랐던 실수와 나쁜 습관을 돌아보고, 더 나은 부모가 되기 위한 좋은 습관을 배우게 될 것이다.


책에서 소개하는 109가지 원칙은 저자가 많은 부모에게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들만 뽑은 것이다. 아무리 현명한 부모라도 실수는 한다. 하지만 좋은 부모는 자신이 언제, 어떻게 실수했는지 돌아보고 더 나은 방향으로 가기 위해 노력한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기에 이 책이 더 유용한 것 같다.


특히 기억에 남았던 원칙 중 나만의 <베스트 10>을 뽑아 봤다.


1. 느긋한 부모가 좋은 부모다

최악의 부모들은 다들 무언가에 늘 전전긍긍한다. 돈 걱정, 미래 걱정으로 항상 불안하고 초조하다. 그 불안은 고스란히 아이에게 전해진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세상을 배우기 때문이다. 부모가 불안하면 아이도 세상을 불안한 곳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부모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 스스로에게 만족하고 느긋하고 여유로운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그 모습을 보며 자연스럽게 만족할 줄 아는 아이로 자란다. 부모의 행복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다.


2. 당신만의 삶을 지켜라

나도 이 원칙은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아이가 내 인생의 전부가 되면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아이에게는 엄청난 부담이다. 그래서 아무리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고 바빠도 내가 좋아했던 일 중 일부만이라도 할 시간을 반드시 남겨두어야 한다. 그래야 자식이 성인이 되어 곁을 떠난 뒤에도 자신의 삶과 시간을 즐길 수 있다. 


나는 이걸 가장 못 했던 것 같다. 아이를 키우는 동안 내 취미도, 내 시간도 사라졌다. 내 취미와 내 시간이라는 게 있었나 싶다. 아이가 독립하고, 이제서야 내가 뭘 좋아하는지 독서를 통해 찾고 있다.


3. 함께하는 순간에 온전히 집중하라

아이가 이야기할 때 건성건성 대답하면 안 된다. 이건 모든 사람과도 마찬가지다. 나도 남편이 TV를 보며 대충 대답할 때마다 기분 나쁜데 아이라고 다를까. 하지만 아들은 어디서 배웠는지 내가 말을 꺼내면 핸드폰을 내려놓고 집중해 준다. 그 작은 행동이 얼마나 기분이 좋은지 모른다. 


저자는 아이와 함께 할 때는 다른 모든 것을 멈추고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하라고 한다. 집중은 쉽지 않다. 중간에 말을 끊거나 대충 듣게 되는 순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 집중하면,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서 생각보다 훨씬 큰 기쁨을 얻는다. 그리고 아이에게 진정으로 무언가를 배우기 시작할 것이다.


4. 감정적으로 협박하지 않는다

"네가 부족한 게 뭐 있니? 너한테 들인 돈이 얼마인데? 어떻게 네가 나에게 이럴 수 있니?" 이런 말들은 감정적 협박이다. 아이의 감정보다. 부모의 감정을 앞세우는 말로, 아이에게 죄책감만 심어주는 나쁜 말이다. 


주변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 중 하나가 "너한테 투자한 돈이 얼만데 공부를 안 하니"라는 말일 것이다. 그래서 나는 본전 생각날까 봐 영유도 안 보내고 사교육을 멀리했다. 그때는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가 자라면서 "왜 학원을 안 보내줬냐"라는 원망을 듣기도 했다. 부모의 선택이 늘 옳을 수는 없나 보다. 


투자한 만큼 돌려받으려는 마음을 내려놓자. 아이는 부모의 기대를 채워주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부모가 감당해야 할 감정을 아이에게 풀면 안 된다. 부모는 아이들에게 분풀이할 권리가 없다.


5. 실패를 인정하게 하라

아이들이 자기 성과에 만족하지 못할 때, 부모가 먼저 "왜 이것밖에 못 했니?"라고 다그치면 아이는 움츠러들기만 한다. 대신 "일이 어떻게 된 것 같니?"처럼 아이 스스로 생각해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그랬니? 내가 속상해서 못 살아 증말" 이런 말 쓰면 안 된다.


실수했을 때 "넌 그냥 운이 나빴던 거야"라고 말하는 것도 좋지 않다. 위로가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아이에게서 배울 기회를 빼앗는 말이다. 스스로 어떤 부분에서 실수했는지 다음에 그런 실망감을 맛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야 한다. 판단보다 질문으로 대화를 이끌어야 한다.


6. 잔소리꾼이 되지 마라

우리가 흔히 하는 잔소리 속에는 짜증이 배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반감을 사는 것이다. 게다가 잔소리가 심해지면 아이의 행동보다 아이 자체를 겨냥한 잔소리가 된다. 문을 안 닫았다는 사실에 "넌 도대체 문을 닫을 줄 모르는구나"라고 말하면 아이를 비난하는 잔소리가 된다. 그러면 아이의 행동은 나빠질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긴 시간을 거쳐야 어떤 과제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스스로 알아서 하지 못한다는 말이다. 아이가 햄스터에게 먹이 주는 것을 깜박하면, 햄스터에게 먹이를 주는 일은 아이의 몫이지만 아이가 그 일을 하도록 상기시키는 일은 당신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잔소리는 멈추자. 


7. 감정을 억압하지 마라

모든 아이에게는 강렬한 감정이 있으며, 그 감정은 표출되어야 한다.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화를 낸다고 아이들을 야단치는 부모들이 있다. 어떤 분노는 정당할 수 있으며. 아이들은 질책 받지 않고 자신의 정당한 분노를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익혀야 한다.


싸움을 해보지 않고 자란 사람들은 싸움을 하고도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른이든 아이든 울고 있는 사람에게는 '울지마'가 아니라 "그래 실컷 울어라, 후련해질 때까지 울어라"라고 말해주는 거다.


8. 믿고 내버려두어라

이건 아이뿐 아니라 부부 사이에서도 가장 어려운 일인 것 같다. 믿고 내버려두면 알아서 잘 할 텐데, 과한 걱정이 관계를 악화시킨다. 모든 십 대는 부모가 바라지 않는 일들에 노출된다. 이는 불가피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이 스스로 책임감 있는 결정을 내릴 거라고 믿는다면 그 믿음이 효력을 발휘할 가능성이 크다.


아이가 문제가 생겼을 때는 부모가 진지하게 받아들이되 고함을 지르지 않고 침착하게 반응해야 한다. 그러면 다음에 또 문제가 생겼을 때 부모가 바라는 쪽으로 문제가 풀릴 것이다. 십 대 아이는 모두 속 긁는 말을 하는데 도사다. 거기에 넘어가지 말자.


9. 아이를 언제나 최우선으로 하라

모든 의사결정에서 아이를 최우선으로 한다는 사실은 아이도 알게 해줘야 한다. 말로는 아이가 최우선이라고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거나 바쁠 때 아이가 뒷전이면, 아이는 본능적으로 그것을 느낀다.


물론 아이도 어려운 상황을 어느 정도는 이해한다. 때로는 예전처럼 해주지 않는다고 불평할지도 모르지만, 잘 알려주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자신이 여전히 부모에게는 최우선임을 알고 있다. 부모가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깨달은 아이는 자신감 있게 살아간다.


10. 조언을 구해올 때까지 기다려라

아이가 성인이 되면 부모는 뒤로 물러서야 한다. 물러섰으면 자꾸 끼어들면 안 된다. 성인이 된 자녀에게 조언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요청하지 않으면 절대 조언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요청한 문제에 대해서만 조언해야 한다. 왜냐하면 자녀는 이미 스스로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어른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잦은 개입은 도움이 아니라 간섭이 된다.


조언의 최고봉은 질문하기다. 자녀가 일자리를 제안받고 조언을 구한다면, 그 일이 좋다 나쁘다 판단하는 건 조언이 아니다. "그 일이 왜 좋아? 출퇴근 시간이 길어도 괜찮겠니?" 같은 질문을 통해 스스로 답을 찾고 결정하도록 질문을 통해 도와야 하는 것이다.


자녀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것을 믿고 지켜보는 것, 그리고 그 아이가 여전히 나를 사랑한다는 사실만으로도 부모에게 더 큰 기쁨은 없지 않을까?


p.397한번 부모는 영원한 부모다. 자녀는 영원히 부모를 사랑할 것이며, 부모도 그 사실을 한순간도 의심하지 않는다. 그 든든한 믿음은 삶에서 크나큰 기쁨을 선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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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의 소멸
한동일 지음 / 그린스트로우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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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청춘의 소멸』에 실린 세 편의 단편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엇을 포기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소설 속 인물들은 저항 대신, 조용히 자신을 소모하며 각자의 자리를 견딘다. 이 책은 그 소모의 시간을 기록한 소설집이다. 그래도 청춘이 있기에 소모가 가능하지 싶다. 노년에는 소모할 젊음이 없으니까.


나태주 시인은 이 책을 두고 "거짓 없는 내용과 삶에 대한 철저한 증언"이라고 평했다. 문학적인 표현이 많은데도 이상하게 술술 읽히고 이해가 되면서 공감이 가는 작품이었다. 게다가 포켓 사이즈라 손에 쏙 들어와서, 들고 다니며 읽기에도 참 좋다.


책에 있는 표현이 너무 좋아서 페이지를 따로 밝히지 않고 옮겨 적은 부분이 많다. 줄거리보다 표현을 따라가며 읽었다. 


1. 청춘의 소멸 

-도시의 청춘에게

도시에 사는 청춘은 도시를 떠날 수 없고, 끝까지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 도시는 성공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주인공 역시 도시에 자신을 맞추며 살아야 했다. 생존을 위해 나는 매일 나를 조금씩 떼어 도시에게 줘야 했다. 내가 나를 떼어내 바치지 않으면 금방 다른 누군가가 나를 대체해 버린다.


도시로 오기로 결정한 것을 제외하고 단 한 번도 능동적이지 못했다. 마음을 계속 눌러두면 행동이 엉킨다. 괜찮은 척하지만 속으로는 불안이 쌓인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내가 나를 조금씩 망치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어머니가 갑자기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어머니를 혼자 버려둔 시간만큼, 나도 도시에서 청춘을 소비하며 어머니의 외로움을 외면했다.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 살아본 적이 없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는 아버지를 위해, 내가 태어난 후에는 자신의 전부를 내게 헌신했다.


대부분 우리들의 삶이 이런 것 같다. 타인의 기대를 위해 나를 소모하는 삶. 나도 나 자신보다 늘 아이와 가족이 먼저였으니까. 그렇게 청춘이 소멸되어 가는 줄도 모르고 살았다. 


증권사에 다니던 친구 O는 자살했다. O와 억지로라도 웃으며 이야기했으면 어땠을까? 어머니가 두통을 호소했을 때 심각하게 생각했으면 어땠을까? 그녀가 회사를 옮긴다고 했을 때 그러라고 말해 주었다면 어땠을까? 차라리 도시에 오지 않았으면 어땠을까? 


능동적으로 변한 줄 알았던 나는 여전히 수동적이었다는 주인공의 고백을 통해 나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능동적으로 내가 선택한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사회의 관습과 예절, 주위의 기대, 그렇게 하는 게 당연하다는 말을 따라 살았던 수동적인 삶이었다. 


주인공은 어디로 가야 하며 어떤 것이 올바른지 모르겠다고, 길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말한다. 그래서 돌아간다. 내가 원래 있던 곳으로.


p.113죽음을 내 옆에 둔 순간부터 도시를 버리고 아버지의 죽음을 뒤에서 바라보기로 결정했다. 도시는 누군가로 대체되어 또 흘러갈 것이다. 돌아가야겠다. 이곳에서의 실패를 오롯이 청춘에게 돌리고 이제는 돌아가야겠다.



2. 구류 3일

유명한 화가 E 씨와 그의 아내, 그리고 이 화가에게 그림을 배우러 온 소녀가 있다. 세 사람은 하루에 몇 시간씩 거실에 앉아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각자 고립된 채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다. 


저자는 자화상을 즐겨 그렸던 실존 인물 에곤 실레(Egon Schiele)에게 강렬한 나르시시즘을 투영하여, 자신 외에 타인을 화폭에 담지 못하는 소설 속 화가 E를 만들어 냈다.


소녀는 자신을 받아주지 않는 화가에게 화가 나서 누명을 씌워 성범죄로 고발한다. 신문에는 유명 화가 E 씨가 미성년자 성범죄 혐의로 피소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사람들은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화가가 처벌받기를 원한다. 담당 형사는 운 나쁘게 걸려든 것뿐이라고, 소녀는 이 고발만으로 화가에게 충분한 치욕을 줄 수 있음을 알고 있다고 알려준다. 


재판에서 판사는 화가가 법정의 존엄을 훼손했다며 구류 3일에 처했다. 동네 사람들은 화가의 집에 몰려가 그동안 자신들에게 그려줬던 그림을 태워버린다. 화가도 모든 그림을 벽난로에 던져버리고 마을을 떠난다. 그 후 화가는 정말 죽었을까? 나는 어딘가 이런 사이코 소녀가 없는 편안하고 자유로운 곳에서, 마음 편하게 그림을 그리며 아내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옐로 저널리즘(Yellow Journalism), 즉 독자의 시선을 끌기 위해 자극적이고 비도덕적인 보도를 일삼는 언론의 모습을 보여준다. 거기에 쉽게 선동되는 대중, 대중에 의해 파괴되는 예술가의 비극. 


선을 악으로 갚아도 유분수지, 내 마음을 안 받아준다고 당신 인생 통째로 밟아버리겠다는 건 무슨 심보인지? 자기감정을 타인의 파멸로 해소한 소녀가 얄밉다. 화가의 무죄가 밝혀져, 소녀는 한 가정을 파괴한 괴물로 사회에서 매장을 당해야 한다. 옐로 저널리즘이 방향을 틀어 소녀에게 향하길 바랐다는. 



3. 책

주인공이 출판사에 원고를 맡겼다. 그 출판사는 작가의 요구를 들어 주지 않고 맘대로 출판을 해 버린다. 하지만 그가 깨달은 것은 타인이나 출판사가 아닌 자신의 책을 통제하지 못한 점이었다. 그에게 책은 자신의 완벽함을 증명하기 위한 도구였던 것이다. 


p.195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방에는 남자의 리듬만 남았다.


수백 수천만 명이 사는 대도시에서 나를 찾는 사람은 없다. 오직 고독만이 그의 곁에 머문다. 청춘들은 도시의 부속품이 되어 조용히 소모된다. 


우리의 비극은 청춘의 꿈에서 시작됐다. 부모님이 희망하는 삶이 정답이라 믿고 살았다. 자식이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길 바랐던 부모님의 마음은, 부모님의 기대를 이루기 위해 달려야 하는 청춘들의 굴레가 되어버렸다. 부모님이 바라는 대로 살려 애쓰며 청춘은 서서히 소멸해 갔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패배한다. 「청춘의 소멸」에서는 실패를 인정하고 발길을 돌리는 결심으로, 「구류 3일」은 자신의 그림을 소각하는 것으로, 「」에서는 강박 속에서 스스로를 더 몰아붙인다. 이 모든 패배는 타인과 사회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다시 묻는 순간이기도 하다.


책 말미의 작가 인터뷰를 보면 고독이 무서워 타인에게 의탁하는 것 역시 자신을 갉아먹을 수 있다고 한다. 나를 마주보기 위해 필요한 건 나다. 우리는 누구나 청춘을 지나 소멸의 길로 나아가지만, 작가는 그 과정을 두려움이 아닌 깊어짐으로 해석한다. 


내 삶은 어땠을까? 어디에서 실패했고, 상처받았으며 왜 이렇게 되었을까? 괜찮다고 하면서 왜 좌절할까? 이 책을 읽으며 각자의 삶을 돌아보고, 조금 더 단단한 자신이 자신이 되어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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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 인류의 기원부터 현대까지, 600가지 지도로 살아나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
크리스티앙 그라탈루 지음, 정미애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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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는 프랑스 지리학자 크리스티앙 그라탈루(Christian Grataloup)가 주도적으로 집필했지만, 워낙 방대한 데이터를 다루다 보니 르몽드 디플로마티크(Le Monde diplomatique)와 라 비(La Vie)라는 잡지의 전문 편집진들이 대거 참여해 만든 책이다. 


책을 받고 깜짝 놀랐던 건 엄청난 크기와 2리터 생수병 보다 무거운 무게였다. 반려 지도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평생 함께할 지도책이다. 선물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이제까지 인류의 역사를 선물받은 것 같아서 그저 가지고만 있어도 뿌듯할 듯?


이 책의 불어 제목은 Atlas(아틀라스, 지도) Historique(이스토리크, 역사의) Mondial(몽디알, 세계의, 지구전체의)이다. 세계 역사 지도라는 뜻. 책 제목도 한국어로 아주 잘 번역한 것 같다.


특히 오른쪽 페이지 맨 위에 있는 함께 보기는 하나의 맥락으로 깊이 있는 이해를 하는데 최고다. 인덱스도 앞뒤로 바로 찾아볼 수 있게 잘 되어 있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는 디지털 지도로도 볼 수 있다. 먼저 주소를 치거나 QR코드로 프랑스 웹사이트로 이동한다. 홈페이지가 전부 불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마우스 우클릭으로 번역을 선택해서 보면 된다. 


지도 코드 입력하는 곳에 지도 번호를 입력하면 책과 똑같은 지도가 나온다. 확실히 AI가 번역한 것보다 프랑스어 전문 번역가 정미애 님이 번역한 책에 있는 번역이 훨씬 이해가 잘 된다. 핸드폰으로 번역을 해서 보려면 본문을 꾹 눌러 모두 선택을 하고 번역을 누르면 된다.


나는 워낙 방대한 양이라 처음부터 순서대로 꼼꼼히 볼 수 없어서, 좀 다르게 접근해 봤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라는 책 제목을 보니 갑자기 나폴레옹이 떠오르길래 찾아보기로 나폴레옹을 찾아 나폴레옹 관련 이야기를 읽었다. 


지도를 보며 설명을 읽으면 나폴레옹이라는 인물이 지도 위에서 살아난다. 한 인물을 이렇게 입체적으로 지도를 통해 접해 볼 수 있다니!


역사가 사건의 기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지도 위에서 살아 숨 쉬는 것 같았다. 특히 1989년 이후의 세계 부분은 걸프전과 최근 팬데믹까지, 나도 기억나는 사건들이 많아서 정신없이 지도에 푹 빠졌었다. 


마치 월리를 찾아라의 역사 편을 읽는듯한 즐거움이었다. 마음이 심란하거나 스트레스받을 때 아무 생각 없이 지도에 푹 빠져버리기에 딱인 책이다. 


최근 옛날 어릴 때 살던 집을 지나간 적이 있었다. 지금은 빌라로 바뀌었다. 그 옆에 있던 주택들은 싹 없어지고 아파트 공사 중이다. 집 터는 그대로인데 건물만 달라졌다. 땅은 그대로인데 위에 있는 것들만 바뀐다.


이 지도책을 보면서 옛날 살던 집 생각이 났다. 지구에 있는 땅은 수천 년 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그 위에 제국이 생겼다 무너지고, 민족이 이동하고, 도시도 생겼다 사라진다. 그 긴 시간의 흐름이 지도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뉴스에서 낯선 분쟁 지역이 나올 때, 처음 가보는 나라로 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과 함께 역사 공부를 할 때, 소설책이나 드라마 보다가 거기서 나오는 지역의 역사가 궁금할 때 펼쳐보면 좋을 것 같다. 이 책은 한 번에 다 읽는 책이 아니라 곁에 두고 자주 찾아보는 책이다. 


『지도로 보는 세계의 역사』 속으로 나만의 특별한 역사 여행을 떠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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