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방울의 탐험. 위스키 증류소와 나만의 술 이야기
고윤근.임오선 지음 / 좋은땅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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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는 단순한 술이 아닙니다. 자연과 시간, 사람의 정성이 한데 어우러진 예술이며, 각 지역의 독특한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증류소 투어는 한 잔의 위스키가 품은 이야기를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술도 좋지만 술에 관한 책을 읽는 것도 즐겁다는 사실을 이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술은 크게 발효주와 증류주가 있다. 곡물이나 과일을 발효시켜 만든 맥주, 막걸리, 와인 같은 게 발효주다. 증류시켜 만들면 증류주. 증류란 액체를 끓여서 증기화시킨 후, 이 증기를 냉각시켜 다시 액체로 만드는 과정이다.

소주가 증류주인데 우리가 일반적으로 마시는 소주는 주정을 물로 희석해서 만든 거라 저렴하다. 진짜 증류해서 만든 소주는 다 만 원이 넘는다. 그리고 원료에 따라 보리는 위스키, 포도는 브랜디, 사탕수수는, 곡물에 향료를 첨가하는 , 곡물이나 감자가 원료인데 향을 첨가하지 않는 보드카 등이 증류주다. 세계 증류소 여행을 꿈꾸고 있는 아들 생일에 위스키 한 병과 이 책을 선물해 줄 거다.

위스키 테이스팅

나도 처음 들어봤다. 위스키에도 무슨 맛이 있나? 먼저 어떤 맛들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씨리얼(Cereal)은 곡물에서 나오는 고소한 향이다. 플로럴은 꽃향기가 아니고 식물 향에 가깝다고 한다. 그냥 허브라고 하면 더 이해하기 쉬울 텐데. 프루티는 말 그대로 과일향이다. 피티(Peaty)는 피치가 복숭아니까 복숭아 향이 아닐까 했는데 약품 냄새나는 피트(Peat, 이탄)를 태운 향이라고 한다. 설퍼리(Sulphury)는 설퍼(Sulphur)가 유황이니까 폭죽이나 성냥 향이라는데 한 번 빠지면 잊을 수 없는 맛이라고. 페인티, 와이니, 우디와 같은 맛도 알려준다.

위스키 마시는 법

우리가 소주 원샷처럼 원액으로 먹는 것을 스트레이트라고 알았는데 니트(Neat)라고 한다. 양주 선물 세트에 들어 있는 와인 잔처럼 입구가 좁아지는 잔을 노징 글라스(Nosing Glass)라고 한다. 물 컵 같은 일반 잔은 버번 글라스다. 양주잔이라고 안 하네? 그러니까 위스키 마시는 법은 니트, 미즈와리, 온더락 3가지가 있는 것.

위스키 라벨

술을 숙성하는 오크 통을 캐스크(Cask)라고 한다. 여기에는 더블 캐스크 셰리 캐스크, 올로로소 셰리 캐스크, 셰리 피니시, 더블 캐스크 등이 있다. 그중 나는 간단히 피니싱더블 캐스크의 차이만 살펴봤다. 피니싱은 위스키가 첫 번째 캐스크에서 숙성된 후, 두 번째 캐스크로 옮겨 추가로 숙성되는 것이고, 더블 캐스크는 말 그대로 두 개의 오크 통에서 숙성한 원액을 섞은 것이다.

프루프(proof)는 증류주의 알코올 함량을 나타내는 단위다. 16세기 영국에서 사용되었는데, 당시 세금을 부과하려면 알코올 함량을 검사해야 했으므로 술에 불이 붙으면 그 술 도수가 57.15%이상 높다는 것이 증명되었다는 뜻에서 프루프라고 한 것이다. 이번에 쿠플 영화 중에서도 좀비를 양주로 태우는 장면이 있어서 금방 이해가 되어버렸다는.

위스키를 병에 담기 전, 즉 병입하기 전 마지막 공정에 따라 물 타지 않은 캐스크 스트렝스(Cask Strength), 단일 캐스크만 병입한 위스키인 싱글 캐스크(Single Cask), 차갑게 냉각시켜 필터로 유기물만 걸러낸 칠 필터링(Chill Filtering)등이 있다. 그 밖에 특별한 사연을 가진 캐스크, 특수하게 맛있게 숙성된 캐스크에 관한 내용도 재밌게 읽었다.

드라이

드라이당분이 적다는 뜻이다. 맥주 러버인 나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가 제일 먼저 생각난다. 맥주, 와인, 위스키 모두 이 드라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나는 뭐가 그렇게 건조한 건지 늘 궁금했다. 발효할 때 들어가는 당분이 다 건조된 것이다. 드라이의 반대말은 스위트(Sweet)다. 발효 과정에서 남은 당분이 입안에 얼마나 남는지를 Dry와 Sweet로 표 현한 것. 따라서 드라이가 들어간 주류는 단맛이 없고 깔끔하다.

바디(Body)

여기서 보디샴푸인가 바디샴푸인가? 보디가드인가 바디가드인가? 한 번 묻고 싶다. 저자는 바디라고 한다. 바디란 술을 마실 때 입 안에서 느껴지는 질감과 밀도다. 쉬운 말로 묵직함과 풍미의 깊이라고 할 수 있다. 알코올 도수가 높을수록 더 묵직하고, 당도가 아주 높으면 풀 바디라고 표현한다. 같은 술이라도 오래 숙성되면 보통 바디가 강해진다. 나는 풍미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위스키 종류

스코틀랜드의 스카치 위스키, 미국의 버번 위스키와 일본의 야마자키 위스키 및 파생제품도 알려준다. 최근에 조니워커 블랙라벨의 셰리 피니시라고 써진 것을 샀는데 스페인의 셰리 와인을 숙성한 오크 통에 숙성한 위스키였다. 몰트 위스키는 많이 들어봤는데 몰트(malt)는 엿기름이다. 보리 싹(맥아麥芽)으로 만든 위스키란 뜻이었던 것! 위스키 생산공정, 캐스크 이야기, 다양한 종류의 위스키 역사와 소개가 나온다.

헤네시, 레미 마틴, 까뮤는 나도 아는 양주인데 코냑 브랜드였던 것! 헤네시의 XO 많이 봤다. 그리고 데킬라는 칵테일 이름인 줄 알고 있었는데 멕시코의 전통적인 증류주다. 페루와 칠레의 브랜디는 피스코라고 한다. 사탕수수를 원료로 만드는(Rum)은 종주국이 없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여기까지 위스키에 대한 내용이고 그다음은 다양한 증류 기술과 세계적으로 유명한 증류소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부분을 읽고 가장 마음에 드는 증류소 테마 여행을 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작가님 두 분 다 위스키에 대한 지식도 해박하시고 글에서 위스키에 대한 사랑이 느껴졌다.

우리나라에도 증류소가 있다! 남양주에 있는 기원 증류소. 여기 투어 신청해서 조만간 아들과 한 번 다녀올 것 같다. 그리고 가까운 일본에 있는 증류소도 3군데나 소개해 준다. 이렇게 다양하고 많은 종류의 위스키가 있을 줄이야! 내가 모르는 신세계였다.

증류주와 관련된 주요 사건들로 술이 단순한 소비재를 넘어 인류의 역사 속에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살펴본다. 독일 맥주가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중세 바이에른 공국의 맥주 순수령 때문이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전통을 지켜오는 모습이 멋있었다.

끝 부분에는 한의사이신 에디터 K 님의 다양한 개인 연구들이 실려있다. 특히 한약을 칵테일에 접목하는 것은 나도 뭔가 약술을 먹는 것 같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향시체산, 오미자탕, 쌍화탕의 아로마화와 콩 맛나는 소주, 지금도 개량 중인 오매 모과탕 이야기를 읽으니 저자님의 술에 대한 진심이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에필로그에 있는 한 마디를 가져와 본다.

"책을 덮는 이 순간, 여러분의 잔 속에 또 다른 이야기가 채워지길 바랍니다."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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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의 자유 - WILD LIBERTY
김혜로 지음 / 보민출판사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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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결코 믿음의 대상이 될 수가 없다네. 인간을 사랑하되 믿지는 말게." -브리검

이 책은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국전쟁까지를 다룬 우화 소설이다. 울프랜드는 우리나라이고 인디언은 일본, 바다사람은 미국을 비유한 것 같다. 울프랜드에는 알파계급베타계급이 있는데 양반과 상놈을 비유한 것이 아닐까. 늑대와 개와 사람이 모두 다 소통을 한다는 것이 특이하고 재밌었다.

일제강점기를 상상하지 못하는 학생들이나 나처럼 역사를 모르는 분들도 <야생의 자유>를 통해서 그 시대를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우화로 읽으니 그 시대의 상황이 이랬겠구나 하며 조금 더 넓은 시각으로, 보다 더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나도 우리 강아지가 무지개다리를 건넜을 때 동물도 죽으면 천국에 가는지 궁금했는데 그 문제에 대한 답도 끝부분에 나온다. 나도 저자의 의견에 한 표!

예전에 <싯다르타>를 읽으면서 사람 이름이 헷갈려 가지고 누가 정리해 놓은 게 없나 싶었는데, 어떤 출판사에서 맨 앞에 등장인물을 정리해 놓은 책이 있었다. 이걸 보면서 읽으면 너무 편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도 사람 이름을 정리해 보았다. 빠진 이름은 잠깐 등장하기 때문에 굳이 기억 안 해도 된다.

처음에는 읽는 속도가 무지하게 느렸다. 등장인물들 이름이 헷갈려서 자꾸 다시 앞으로 가서 찾았기 때문이다. 먼저 등장인물 이름을 알고 읽어야 빨리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누가 누구 편인지도 헷갈려서 일본은 빨간색 우리나라는 파란색 미국은 녹색으로 표시를 해봤다.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 참고만 하시길.

울프랜드에는 풍요롭고 광활한 대지에서 숲과 강을 지배하며 인간에 못지않은 강한 세력을 갖춘 늑대들이 살고 있었다. 이 늑대들은 다른 지역의 늑대들보다 지혜롭고 용맹했다. 어떤 인간 집단들도 이 세력을 얕잡아 보지 못했다. 이 늑대들은 인간과도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신비로운 능력이 있었다.

가우추 : 대족장. 푸른 털빛의 늑대. 늙고, 어리석고 유약함.

이오누 : 대 족장의 측근이지만 그를 배신하고 니야우 부족 편이 된다.

메누비 : 대 족장인 가우추의 아내. 하얀 빛의 털을 가진 현명하고 강인함.

아칸 : 울프랜드에서 가장 용맹하고 사냥 실력이 뛰어난 알파계급의 검은 늑대.

시모리 : 아칸의 친구. 푸른 털빛을 가진, 대족장 가우추의 방계 혈족.

킬턴 : 용맹하고 호전적이고 잔인함.

제타 : 커피색 털빛을 가진 그녀는 아칸을 좋아하는 알파 계급.

록시 : 제타의 언니. 나중에 베타계급 토토와 강제 결혼한 것을 끝내 받아들이지 못한다.

니야우 부족의 인디언은 이 울프랜드의 늑대들만큼은 같은 인디언 부족으로 대해 주면서 일종의 동맹 관계로 지내왔다. 이들은 바다인간(백인 개척자 집단)처럼 살기를 꿈꿨다. 하지만 속셈은 울프랜드를 빼앗고, 원래 땅 주인이었던 늑대들을 가축으로 길들이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백인들처럼 살기 위한 과정 중 첫 번째 단계일 뿐이었다. 그리고 가급적 강탈이 아닌 자진 양도의 방식으로 하고 싶었다.

호로미크 : 니야우 부족의 족장, 육중한 체격에 비교적 온화한 인상.

포타움 : 늑대들의 땅을 빼앗고 늑대들을 길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로미크가 죽자 새로운 족장이 된다.

브리검 목사 : 니야우 부족과 이웃해 살던 백인 사회의 선교사로 오래전부터 인디언과 교류하고 있었다. 암컷 헝가리언 쿠바 헤이즐을 키우고 있다. 헤이즐은 시모리와 결혼해 브리검 목사와 함께 오두막에서 산다.

이눅크 부족 : 극지방에 살면서 자연 친화적인 삶을 지속하고 있다. 가끔 등장하다가 맨 끝에 또 등장한다.

여기까지가 등장인물 소개이다. 결국 울프랜드니야우 부족에게 자유를 뺏긴다. 그 파란만장한 과정은 책에서 확인하길 바란다. 그 다음 이야기는 현재와 오버랩 되면서 누구를 비유한 것인지 맞춰보는 재미도 있다.

니야우 부족의 인디언 못지않게 바다인간에 대해서도 상당한 반감을 가지고 있었던 킬턴은 오직 힘으로 대항하는 것만이 진정한 자유의 실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킬턴은 울프랜드를 떠나 북쪽 황무지에 정착해서 빼앗긴 땅을 되찾기 위한 투쟁을 시작한다. 하지만 시모리바다인간과 손잡고 싶어 한다.

점점 인디언들에게 길들여져 가는 늑대의 무리들 중 제타는 현실을 받아들인다. 가족들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하기로 결심하고 인디언들을 위해 열심히 사냥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울프랜드를 찾아온 시모리를 만난다. 나는 비록 이렇게 살지만 내 자식들에게도 이런 환경을 물려주겠냐는 시모리의 말에 제타도 독립을 해야 한다고 마음먹는다.

시모리제타를 통해 바다인간들이 니야우 족에게서 산 땅에서 금광을 발견해 채굴하고 있다고 족장 포타움에게 알린다. 억울한 족장은 목사를 찾아가 세바스찬 부총독을 만나게 해달라고 한다. 부총독은 30년 전에 산 우리 땅에서 금광이 발견됐으니 우리 것이라며 무시하자 포타움은 열받아서 그 땅에서 기르고 있는 소와 양을 다 죽이라고 늑대들에게 명한다.

나는 토토의 죽음 장면이 제일 감동적이고 마음이 아팠다. 그렇게까지 아내에게 무시당하면서도 단 한 번도 화를 내지 않고 미안해했던 토토. 끝까지 목숨을 걸고 아내를 지켜냈다. 평생 토토를 나약한 겁쟁이라고 생각했던 록시는 남편의 용감한 모습에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토토는 마지막 숨을 거두면며 눈물을 흘리는 록시의 모습을 본다. 이때 토토는 가장 행복하지 않았을까.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록시포타움의 마지막 장면도 속이 후련했다. 결국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고향 울프랜드에 돌아온 시모리는 제타와 록시 자매를 비롯한 옛 동료들과 재회했고, 그들에게 자신의 아내 헤이즐을 소개한다. 붉은 늑대 킬턴과 그의 부하들도 오랫동안 독립에 기여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내일은 새로운 지도자를 뽑는 날이다.

치밀한 외교 전략으로 바다인간을 움직여 인디언을 토벌해서 독립을 하게 만든 시모리와 비록 독립에 큰 기여는 못 했지만 수많은 위험을 무릅쓰고 인디언에게 저항하며 독립을 위해 고생했던 킬턴, 과연 누가 대 족장이 될까?

마지막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이어지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우화를 통해 이해하고 나니, 다시 우리나라 근현대사를 공부하고 싶어졌다. 이 소설의 이야기와 대조해서 보면 훨씬 더 쉽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저자는 주인에게 버림받은 애완동물들이 보호소에서 쓸쓸하게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 책을 통해 인간을 위해 개량되어 야성이 거세된 동물은 인간이 끝까지 책임지고 보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2025년 광복 80주년을 맞아 자유를 위해 투쟁했던 수많은 국가유공자분들께 이 작품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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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스 게임 - 회사가 원하는 건 너가 망하는 거야
초맹 지음 / 아이생각(디지털북스)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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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영업을 하면 90%가 3년 안에 망한다. 그래서 퇴사 준비 기간은 최소 3~4년 이상이 필요하다. 오피스 게임을 하고 말고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삶은 내 스스로 끌고 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김대리가 아닌 너 자신이 되어라. 스스로를 믿고 천천히 나아가라.

<오피스 게임>은 회사 생활을 게임에 비유한 책이다. 오늘 할 일인 퀘스트를 완성하면 미션 클리어다. 그리고 오피스 게임에서 통하는 치트키와 피해야 할 빌런 유형, 좋소에 관한 꿀팁도 대방출한다. 좋소란 건강한 중소기업, 강소기업과 같은 곳이 아닌 절대로 가면 안 되는, 월급도 제때 안 주는 중소라서 발음 나는 대로 적으면 욕이 되니 순화해서 좋게 적은 말이다.

이 오피스 게임은 인생을 고도로 소비하며 갈아 넣는다. 이 게임은 밥줄이 걸려 있어 더욱 난이도가 높고 어렵다. 아무도 말해주지 않는 차갑고 치밀하게 짜인 게임의 설정 원리와 자본주의의 욕망을 철저히 파헤친다. 숨겨진 회사의 비밀을 알고 나면, 오피스 게임의 난이도가 조금은 쉬워질 것이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모두 깨몽하고 내가 꿈꾸는 미래는 스스로 만들어 가기를 바란다.

"무슨 일하세요?"

"노비예요..."

공기업은 공노비, 사기업은 사노비라 한다. 종놈에게 미래를 맡길 오너는 없다. 희망고문이 계속되는 건 그 미래가 나의 미래라 착각하기 때문이다. 여러분이 바로 회사의 미래가 아니라 회사의 미래는 회사의 오너다. 아주 적나라한 팩폭이다. 왜 이렇게 뻔한 진실을 몰랐을까? 생각해 본 적도 없었다. 이 사실만 알았어도 내가 이 회사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겠단 생각은 하지 않았을 텐데...

자진해서 을이 되어가는 과정, 시작부터 노비 마인드로 전락하는 과정, 시작하기도 전에 '노비'로 전락되는 것이 오피스 게임의 원리다. 그래도 튜토리얼은 존재한다. 뉴비가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즉 뉴비가 노비로 진화하는 과정이다. 이것을 회사는 수습 기간이라고 한다. 튜토리얼 수습 기간은 서서히 게임에 중독시켜 가는 시간인 셈이다. 튜토리얼의 유효기간 종료란 본 게임의 시작이다.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왜 회사에 다니는가? 먹고살기 위해서가 근본적인 이유겠지? 그다음은 행복하게 살기 위해 돈을 벌고 승진하는 것이 성공이라 믿는다. 다 거짓말이다. 회사가 원하는 건 내가 깨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내가 망하는 것이다. 회사는 끊임없이 나를 삭제하려 한다. 회사의 명함은 잠시 빌려준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다. 처음부터 아니었다. 그것이 나라고 착각해선 곤란하다.

조직을 위해 내가 있는 것인가? 아니다. 그건 회사 사정이고 무조건 내가 먼저다. 나 죽고 회사 잘 돌아가면 뭐 하냐? 아무것도 모른 채 회사에 게임 오버 당하기보다는 지금이라도 잠들어 있던 자아를 각성시켜 나를 찾아가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게임 속에서 원래 하루는 이런 것인가 보다 하며 산다. 게임의 설정에 따라 맵에서 자동 사냥을 도는 그 일상... 이게 리얼리티 현실판 게임이다.

좋소와 중소 구별

52페이지 '좋소는 무조건 제끼는 것이다'에서는 좋소를 왜 가면 안 되는지 낚이지 않는 법을 알려준다면, 292페이지의 '좋소와 괜찮은 중소의 판별법'에서는 10가지 체크 포인트를 알려준다. 적어도 어리숙한 사회 초년생들이 당하는 일이 없도록. 여기저기서 인터넷 주소 클릭하면 개인 정보 털린다고 자꾸 알려주니 사기 피해를 당하지 않듯 이 책에서 알려주는 팁으로 무료로 일해주며 인생 낭비하는 일은 하지 말자.

300페이지 사진 설명에 "내가 드러워서 나간다!" 다음에 영어로 Tlqkf toRldi가 있길래 뭔가 해서 한글로 타이핑해 보니 아주 속이 후련했다. 부록에 있는 '너네 회사 좋소 지수'는 읽어보기만 해도 어떤 기업이 좋소 기업인지 금방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계약직 하지 않기

계약직이면 아무나 와서 사냥시켜도 된다. 하물며 신입도 계약직이면 하대한다. 회의에도 참석할 수 없고, 한 팀이 아니란 것이다. 노비를 위한 노비다. 그래서 백수라 놀기 그래서 대충 계약직을 하면 시작부터 망하는 것이다. 선임에게 잘 보여 어쩌다 정규직 전환이 가능한 경우도 있지만 나 같으면 안 할 것 같다. 이렇게 무시당하다간 멀쩡한 멘탈도 나갈 것 같다. 그렇게 무시할 거면 계약직을 왜 뽑나 봤더니 싸니까 뽑는 것이었다.

다가오는 사람 거르기

게임 초에는 보통 친해져야 할 사람을 찾기 마련이다. 하나라도 더 물어보고 배우기 위해서다. 그러나 순서가 틀렸다. 걸러야 할 사람을 찾는 것이 먼저라고 한다. 그래야 캐릭터 설정을 유리하게 할 수 있다. 먼저 말 많은 광대, 뒤통수치는 온화한 상냥이, 강자에게 약하고 약자에게 강한 라떼들이다. 그리고 무조건 다가가야 할 잡아야 할 3가지 유형도 알려준다. 정말 이렇게 알고 회사 생활하면 너무 편할 것 같다.

스스로 생존하기

선임들이 신입에게 제대로 된 업무를 주지 않는 이유를 들어보니 정말 이해가 된다. 신입을 가르칠 시간에 자기 업무를 하는 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신입의 성장은 우선순위가 아니다. 회사는 배려가 없다. 일단 울타리 안에 던져지면 스스로 알아서 레벨을 높여가야 한다. 이것이 오피스 게임 초기의 룰이다!

텍스트가 아닌 컨텍스트를 읽어라

컨텍스트는 문맥, 맥락, 연관관계 즉 텍스트와 연관되는 모든 주변 상황을 말한다. 이 안건, 제 의견은 이런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것은 텍스트를 읽으면 내 의견을 묻는 것이다. 그러나 컨텍스트는 너도 동의하란 말이다. 이런 사안이 있는데 의견을 참고하고 싶다는 말은 좀 알려달란 뜻이다. 이런 예들을 알려준다. 왜 모두 의견을 냈는데도 반영되지 않는지 나도 컨텍스트를 이해하니 알게 되었다. 회사 생활에 이런 면이 있을 줄이야.

적임자나 전문가가 되지 말라

적임자 찍힘 공식을 보면 일을 잘하면 떠밀기 좋아서 앞으로도 계속 적임자로 찍히고, 못하면 일 못하는 바보로 찍힌다. 잘하든 못하든 얻는 게 없다. 고로 누가 적임자 스킬을 사용한다 싶을 때는 당황하지 말고 해주고 싶은데 다른 누군가 같이 해야 한다거나 더 긴급한 걸 하고 있다는 회피 스킬로 모면한다. 정 안되면 어디 급하게 회의라도 가는 척하며 워프를 사용한다.

전문가 소릴 듣고 헤벌레 하지 마라. 누가 내게 전문가라고 말하면 그건 날 호구로 찍었다는 소리다. 적임자라는 말은 지금 이거 떠넘길 캐릭터라는 의미다.

김춘수의 <꽃>을 작가가 다시 쓴 <전문가와 적임자>라는 시가 재밌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내가 그를 전문가라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내가 그를 전문가로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누가 나의 적임자가 되어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그에게로 가서 나도 꿀 좀 빨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많이들 되어다오. 나는 되고 싶지 않다).

인수인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것. 당신은 선생님이 아니다. 학생의 성적을 올려줘야 할 의무가 없다. 모든 후임자는 전임자를 부정하고 시작한다. 인수인계를 아무리 잘해줘도 후임자는 실수를 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자기 실수를 덮으려 인수인계 당시 제대로 안 알려줬다고 한다. 알려 줬는데 지가 까먹어도 전임자를 탓하게 되어 있다. 그러니 인수인계를 할 때는 최대한 힘 빼고 시간을 아끼자.

이런 사실을 몰랐다. 정말 꼼꼼하게 인수인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내가 잘 모르면 인수인계 못 받았다고 전임자를 탓하며 잡아뗀 적이 꽤 있었다. 나만 남 탓하는 게 아니어서 위안됐다. 내 실수를 인정하기 싫거나 모르는 걸 들키고 싶지 않거나 할 땐 남 탓이다. 아니 폴더블폰 힌지 나간 게 내가 폰 사라고 꼬드겨서 그렇단 게 맞는 말인지?

MBTI를 물어보는 이유

나는 ENFP인데 적극적이고 공감 잘해서 젤 좋다고 하니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MBTI를 물으면 무조건 이력서에 쓰면 광탈이라는 INFP라고 해야 한다. 오피스 게임은 상대의 기대치를 최대한 낮춰놓고 시작해야 유리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이 나를 지키면 기지를 발휘했다고 한다. 기대치를 낮춰놓으면 실속을 고스란히 챙길 수 있다. 맨날 밥 사주던 사람이 한 번 안 사주면 섭섭하고, 한 번도 밥 안 사던 사람이 한 번 사면 고맙다고 하는 것과 같은 원리다.

그 밖에 신경 써야 할 것

재택근무 싫어하는 회사의 속내, 살생부는 존재한다, 월급이 적게 오르는 이유, 승진이 공평하지 않은 이유, 급한 일과 중요한 일 뭐부터 해야 할까? 아무거나 천천히 하면 된다. 업무 데드라인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회식은 업무의 연장이므로 술은 집에서 편하게 혼자 먹는 것이다. 난파선을 탈출해야 하는 이유와 징조들, 사내에서 내 입지가 줄어들고 있다는 징조들, 해고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와 퇴사할 때 주의할 점까지 알려준다.

회사가 청년들을 좋아하는 이유는 회사의 미래여서가 아니라 값이 싸기 때문이다. 부려먹기 쉽고, 가스라이팅이 수월하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고 퍼스널 브랜딩이나 100만 너튜버에 도전도 한다. 부의 파이프라인은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야 하니 책도 써 본다. 너튜브 성공팔이들에게 낚여 주식, 코인, 부동산 등에 쓴 강의료만 500만 원도 넘는다.

미라클 모닝도 해보지만 낮에 잠만 더 잔다. 만나던 사람도 다 끊긴다. 퇴사 후 6개월~1년 지나면 이제 마음이 초조해진다. 불안해진다. 망한다. 이런 시나리오로 가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책을 통해 이제부터는 회사에 목줄 잡혀 끌려다니지 말고 내가 설정한 방향대로 주도해 나가는 법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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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
민은선 지음 / 라온북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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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패션은 아름다워 지고 싶은 인간의 욕망에서 시작됐다. 지금은 '우리'에서 '나'로 변한 썸원(someone)의 시대다. 달라진 인간의 욕망을 읽어내려면 사회와 사람들의 라이프 스타일의 변화를 읽어내야 한다.

이제는 소비자와 소통하는 시대다. 옛날에 디자이너는 디자인만 하면 됐는데 이제 디자이너에게는 마케터적인 소양, 인문학적인 시선이 필요해졌다. 패션업 종사자들은 모두 마켓 크리에이터가 돼야 한다. 소비자들의 욕망을 캐치하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판매의 대상이 아닌 친구로 여겨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소비자는 스스로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하는 찐 권력자이기 때문이다.

<패션 3.0 내일을 위한 어제와의 대화>는 패션업의 어제를 통해 그 본질을 알아보고 패션업의 오늘과 내일을 전망하는 책이다. 왜 대화라고 했을까? 대화란 연결이다. 앞으로는 패션에도 소비자와의 대화가 필요해지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며 미래를 예측하자는 취지가 아닐까. 그래서 이 책의 부록에는 한국 패션 50년의 연대기가 실려 있다.

패션 3.0

3.0이라는 용어는 웹 3.0에서 유래했다. 웹 3.0은 인터넷의 발전 단계를 구분하는 용어다. 데이터를 읽기만 하는 건 웹 1.0, 데이터를 읽고 쓸 수 있는 것이 웹 2.0, 그리고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자가 데이터와 디지털 자산에 대한 소유권을 갖는 것이 웹 3.0이다.

패션 3.0의 특징은 디자이너와 생산자가 직접 고객과 소통하고 거래하는 탈 중앙화다. 자신이 원하는 스타일의 옷을 디자인하거나 제작하는데 소비자가 참여할 수 있게 된다. 또한 NFT 기술로 디지털 패션 아이템에 대한 소유권을 증명하고 거래하며, AI 기술로 소비자에게 개인 맞춤형 패션 추천 및 스타일링을 제안한다. 소비자가 패션 브랜드와 상호 작용하며 개인 맞춤형 패션 경험을 하는 것이 패션 3.0이다.

패션(Fashion)이란?

나는 나만의 개성이자 스타일이라고 본다. 저자는 여기에 철학과 콘셉트를 추가한다. 청바지와 흰 티 하나를 고집한다면 그 역시 나만의 패션이 될 수 있다. 가방 지갑 벨트 모자 장갑 시계 등은 패션 아이템이다. 요새는 텀블러까지 패션 아이템으로 등장한다.

패션=패션(passion)이다?

과거에는 이 말이 맞았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한 시즌에 100개가 넘는 브랜드가 론칭될 정도로 열정과 에너지가 넘쳤다. 하지만 열정이 패션이라면 지금까지 존재해야 한다.

패션=비즈니스(Business)다?

이 등식이 성립했던 시기도 있었다. 2000년대 중반 이후 패션 업은 자본과 조직을 가진 대기업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감성을 계수화하겠다던 삼성과 LF(LG 패션)는 글로벌은커녕 여전히 해외 브랜드 수입에 골몰하고 있다. 현재 패션 업은 정체 단계다.

결국 패션 업은 열정과 비즈니스가 공존할 때 성공할 수 있고, 이를 연결하는 것은 사람이다. 그래서 저자는 패션과 사랑에 빠진 열정적인 인재들이 연결돼 비즈니스를 할 때 비로소 유기체가 된다. 적어도 민감한 더듬이를 가지고 일과 일상의 구분 없이 일을 즐기며, 휴식 할 때도 이 민감함을 유지하는 그런 사람이 게임 체인저가 될 것이다.

자기다움

이제는 나 하고 싶은 대로,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만의 색깔로 한다. 세계 패션 바이어들이 트레이드쇼에서 바잉 하는 대신 인스타그램에서 발굴하는 비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누구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자신만의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

파리와 밀라노의 패션 매장들이 한국인 출입 금지 팻말을 매장 앞에 붙여 놓은 시대가 있었다고 한다. 그만큼 우리가 안목과 베끼는 손재주가 뛰어났다는 것이다. 지금도 짝퉁을 들고 다니는 사람이 있나 모르겠지만 옛날에는 짝퉁 많이 들고 다녔다. 즉 우리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 선발주자)의 그림자를 보며 달려온 패스트 팔로워(Fast follower, 빠른 추격자)였던 것이다. 이제는 우리가 퍼스트 무버가 될 차례다.

이제는 나의 취향이 더 중요한 시대다. 1000명이 있다면 1000가지의 라이프스타일이 존재한다. 미니멀 라이프가 아닌 아예 무소유의 삶을 지향하는 사람도 있고, 유니클로 같은 가성비를 추구하거나 좋은 물건 하나를 구매하는 스타일을 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제는 고객을 더 많이 더 깊이 이해해야 한다. 이제 가격도 비싼 게 좋다는 이분법 시대는 끝났다.

나는 모든 물건은 퀄리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명품인데도 얼마 못 쓰고 테두리가 닳아버리는 가방도 있고, 중저가 브랜드인데도 오래오래 쓰는 가방도 있다. 10년 넘게 입어도 유행 타지 않는 디자인에 품질도 그대로인 명품 옷이 있는 반면, 금방 후줄근해지는 명품 옷도 있다. 그래서 나는 비싸고 퀄리티가 좋거나 싸고 퀄리티가 좋거나 늘 질리지 않고 오래가는 것을 선호한다.

브랜드 철학

철학이란 콘셉트의 정신적인 토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브랜드 철학 하면 등장하는 파타고니아의 철학은 자연사랑, 자연보호다. 심지어 우리 제품을 사지 말라고까지 외친다. 시작도 끝도 자연이다. 지속 가능한 원단 사용, 내구성 높은 제품, 소비 절제, 그린마케팅 등 직원들의 행동 양식까지 그 개념 아래 풀어간다. 이런 것을 브랜드 철학이라고 한다. 그럼 '시크한 감성을 바탕으로 시대를 앞서가는 여성의 라이프스타일'은 철학인가? 아니다. 그냥 설명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바탕으로 한 스텔라 매카트니, 스위스의 프라이탁, 어나더 투모로우, 못생겼지만 편한 신발이라는 뚝심 있는 철학으로 사랑받는 크록스, 비어있어 무엇이든 담아낼 수 있는 철학에 기반을 둔 무인양품, 해피 피플, 해피 플래닛을 모토로 한 오일릴리, 뮤지션과 패션 디자이너가 만나 음악과 패션을 결합한다는 의미로 탄생한 메종키츠네, 세상을 놀라게 하라는 철학을 지닌 젠틀몬스터 등 행동이 따르는 철학이 있어야 브랜드가 오래갈 수 있다.

패션 유통

옛날에는 옷을 롯데, 신세계, 현대백화점이나 아울렛, 또는 시장에서 샀다. 나는 엄마랑 남대문 시장이나 터미널 지하상가를 많이 갔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제 백화점에서 해온 역할을 온라인 플랫폼에서 대신한다. 나도 옷감과 사이즈를 확인하러 매장에 들리는 것 외에는 모두 온라인으로 구입한다. 해외 직구도 가능한 지금 세상은 모든 브랜드와 유통이 전 세계 소비자를 향해 일시에 경쟁하는 평평한 무한 경쟁의 세상으로 향하고 있다.

이랜드와, 베이직하우스, 코오롱 스포츠의 중국 진출 이야기, 도쿄 도라노몬 힐스, 베이크루즈, 스페인의 경험형 공간 망고틴, 키스(KITH), 10코르소코모 카페, 뉴욕 첼시의 편집숍 스토리, 온라인 럭셔리 패션 쇼핑몰 네타포르테의 남성판인 미스터 포터 등을 통한 콘텐츠와 브랜드 이야기도 재밌었다.

그중에서 어른들의 서점 다이칸야마의 츠타야(T-site)와 도쿄의 긴자식스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국내 백화점들은 MZ세대에게 어필하는 데 성공했지만 막상 매출에 훨씬 더 영향력이 있는 시니어 고객을 위한 혁신이 없다. 이제는 실버 마켓, 시니어 마켓, 그레이 마켓, 골드 마켓이 아니라 Ageless의 A-마켓으로 새로운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따른 거대 시장을 노려야 한다.

패션 = 빌런 산업

패션이 지구를 가장 더럽히고 생명주기를 단축시키는 빌런 산업이라고 비판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가? 염료는 한 해 4300만 톤의 화학물질이 발생하고,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천억 벌 이상의 의류 중 73%가 브랜드 가치 유지를 위해 소각, 매립된다. 패션 기업은 항공이나 해운 산업보다 온실가스 배출에 더 큰 책임이 있다고 한다.

이런 비판을 방어하기 위해 '지속 가능함'이라는 단어를 넣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간 지구상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지속 가능성(sustainability)일 것이다. 각종 산업에서 이 단어만큼 자주 등장하는 단어도 없다. 패션산업에서도 이 지속 가능성이라는 단어는 거의 트라우마에 가깝다고 한다.

그래서 최근에는 헌 옷을 가져오면 새 옷으로 교체해 주는 기업들도 늘어났다. 자사 재고 의류 소재를 활용해 리디자인 하고 다양한 패치 작업으로 새로운 작품이 나오기도 한다. 중고 패션 플랫폼 기업들은 지속 가능성을 위한 가장 현명한 선택이며 환경오염을 대체할 대안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저자는 재활용 소재로 만든 제품과 중고의류 리셀 시장이 과연 얼마나 지속 가능성에 기여했고 탄소 배출량을 줄였는지 그저 마음만 편한 것은 아닌지 묻는다.

K 패션

K 팝, K 드라마와 영화 등 컬처 콘텐츠에서 시작한 K 붐이 뷰티에서 패션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본 한큐백화점 우메다 본점에서 열린 마땡킴의 오사카 팝업스토어의 성공, 커다란 플라워 프린트로 히트친 마르디 메크르디, 널디, 무신사 등 모두 우리나라 브랜드다.

화장품과 패션 시장 중 어떤 시장이 더 규모가 클까? 둘 다 비슷하지 않을까? 아니었다. 패션 시장 규모는 부티 시장의 6배나 된다고 한다. 그래서 저자는 K 뷰티와 K 패션 두 시장이 서로 트렌드를 공유하며 공동 마케팅으로 소비자에게 통합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시너지를 만들어 보자고 제안한다. 세대 간의 단절이 아닌 연결, ODM 기업과 스몰 브랜드들을 이어 줄 AI 테크 기업과의 연계, 무대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선배들과의 협력 등을 제안한다.

이제는 과거를 소화하고 더 발전시켜 축적과 연결의 역사를 새로 씀으로써 패션이 산업 경쟁력에서 국가 경쟁력이 되도록 나답게, 대한민국답게를 지향하며 힘을 합쳐 함께 가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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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 이와 같이 하라
김원균.우순애 지음 / 좋은땅 / 202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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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불량 청소년이 아니라 불행을 겪은 청소년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우선돼야 한다.

비행 청소년이나 범죄소년들은 대부분 불우한 가정환경에서 성장했거나 가정이 해체되어 부모로부터 1차 방임된 상태가 대부분이다. 정서적이나 경제적으로 보살핌을 받지 못하고, 냉대에 익숙하며 방치와 학대에 놓여 있다. 편견에 몰린 아이들은 반발심과 반항심만 키운다. 어린 고양이가 여린 발톱을 세우듯 세상을 향해 날을 세우는 것이다.

부모가 양육할 의지가 없거나 알콜 중독 등으로 양육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방치된 아이들은 결국 국가가 양육하는 교정 시설에 보내진다. 바로 소년원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하다. 왜 비행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실상을 듣다 보면 혐오보다는 연민이 앞선다. 부모 잘 만난 주동자는 변호사를 선임한 덕에 집으로 돌아가고, 돈 없는 아이들은 소년원으로 간다. 불공평한 세상을 원망하지만 도와줄 사람은 없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풍경이다. 소년원을 여러 번 들락거리며 청소년기를 다 보내는 아이들도 있다. 자신들을 냉대하는 사회에 분노와 원망을 가질 수밖에 없는 소년들의 문제는 우리 기성세대들이 풀어내야 할 또 다른 숙제다.

이 책은 김원균 목사님이 전국의 소년원을 다니면서 소년원 안에 교회를 개척하고 선교사를 보내고, 소년원생들과의 만남을 기록한 글이다. 소년원을 나왔으나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의 공동체인 겨자씨 마을과 사명자의 길을 걸어온 목사님 부부 그리고 함께 일한 여러 교회와 동역자들 이야기다.

<너도 이와 같이 하라>는 '소년원 선교 이야기'와 우순애 사모님의 '겨자씨 마을 이야기'의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두 분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사회에서 소외된 소년원 아이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이분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사모님의 이야기는 내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사회의 이면을 알 수 있게 해주었다. 티슈도 많이 썼다. 드라마가 그래도 현실보다 낫다는 이야기가 왜 나왔는지 알 수 있었다.

목사님의 어머님은 남의 집 살이를 해서라도 공부시키겠다고 결심하고 홀로 서울로 올라왔다. 형은 입주 교사가 되고, 평생 금광을 쫓아다니시던 아버지는 목사님이 16살 때 위암으로 돌아가셨다. 목사님을 소년원 아이들을 위한 선교 사역자로 쓰시려고 하나님께서 일찍부터 가난과 서러움과 멸시를 경험하게 한 것 같다고 한다.

사역(事役)이란 믿음을 표현하고 전파하는 일이다. 종교에 관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목사님은 한국 독립교회 선교 단체 연합회의 제1회 목사 안수식에서 1998년 49세 때 목사 임직을 받았다. 소년원 아이들을 떠나지 않기 위해 선교사 직분으로 20년 동안 사역했던 것이다. 목사님이 양육한 고봉소망교회 아이들에게 직접 세례를 베풀 수 있는 점이 가장 좋으셨다고 한다.

겨자씨 선교회

1978년 거자씨 선교회를 창립하고 잃은 양 찾기 프로젝트 시행에 들어갔다. 불광동 소년원에서 처음 예배를 드리던 날 5백여 명의 베이지색 작업복을 입고 가슴에 명찰을 달고 있는 소년원생들을 보며 목이 메어 한동안 침묵하며 서 계셨던... 다윗 왕이 시편에서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길 잃은 이 아들들의 영혼을 구원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는데 종교가 없는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리고 그 좋은 조건을 마다하고 전국의 각 소년원에서 문제아로 찍힌 원생들을 보내는 특별한 곳인 충주 소년원에서 모든 원생들이 예배에 참여하게 되는 기적을 만든다. 용현이라는 아이의 중병을 중보기도로 고치는 기적 같은 이야기도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갑자기 이유도 모른 채 예배가 중단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춘천소년원에서 선교하게 된다. 그때 연대 의대 수련의였던 박진수 형제가 소년원생 집회를 돕기 위해 휴가를 냈다.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것을 본 소년원생들은 키득거리며 장난치고 비웃었다. 그러다가 서너 명이 그 형제 옆에 무릎을 꿇더니 거의 모든 아이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찬양을 드리는 부흥이 일어났다.

그 후 청주소년원 소망교회 사역을 하게 되었다. 골수염이 낫고 원생들의 식중독도 기도로 다 나아버린다. 정말 신기했다. 그리고 서울 불광동에서 경기도 의왕시로 이전한 서울소년원에서 사역하게 된다. 화재경보기가 울릴 정도로 뜨겁게 기도하는 경험까지 했다고 한다. 여기에 세운 교회가 어느덧 46년이 된 고봉소망교회다.

간절한 기도만으로 병이 낫는다?

금식 기도로 암이 낫는 등 신비한 체험을 통해 불치병이 나았다는 말은 나도 많이 들어봤다. 원인 모를 북통에서 해방되는 목사님의 이야기 역시 그중 하나. 복통 때문에 계단을 오를 때는 두 번씩이나 쉬며 올라가야 했는데 기도를 마치니 다 나아서 계단을 뛰어서 내려왔다. 주님께서 원인 모를 병을 치료해 주신 것을 깨달았고 그 병은 한 번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증(干證)이란 자신의 초자연적인 경험을 들려주면서 하나님의 존재를 증언하는 것이다. 목사님은 물론 소년들의 간증도, 죽기 전에 복음을 전하고 싶어 소년원 신앙수련회 선교사로 일했던 이영자 권사님의 간증도 신기했다. 인후암으로 희망이 없었던 권사님을 위해 함께했던 모든 선교사가 마음을 모아 중보기도를 했다.

중보기도(仲保祈禱)란 다른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인데, 모두 한마음으로 기도 한 결과 권사님이 새벽에 입과 코가 갑갑해 잠에서 깼는데, 입안과 콧속에 이물질이 가득했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서 뱉어 보니 핏덩어리였고, 병원에 가서 검사하니 의사가 암세포가 떨어져 나갔다고 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지만 예배에 참여하는 소년들은 바뀐다. 인내하며 믿음으로 살면서 재범하지 않고 인생이 바뀐 소년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겨자씨마을

1988년에 설립된 신앙공동체 생활관의 이름이다. 의지할 곳이 없는 무의탁 퇴원생들이 머물 수 있는 보금자리다. 교육을 받으면 잘 자랄 수 있는 아이들인데, 그들에겐 작은 환경조차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의왕시 학의동에서 처음 문을 열었다. 그리고 2011년에 문을 닫았다. 국가에서 쉼터를 만들고 아이들이 공부하고 직장을 다닐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서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4년간 장학금을 받으며 신학대학이 생긴 이래 최고의 점수를 받은 광호, 19세인데도 한글을 몰랐던 경완이, 골방에 감금되어 살았던 성훈이 구출 이야기, 친구를 구하고 익사한 해성이 이야기, 지금도 거제에서 소식을 전하는 형오 이야기, 술 담배를 기도로 끊은 이야기, 김원균 목사님의 뇌출혈 완치 이야기 등 사모님은 좀 더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신다.

그리고 치과 기공소 때문에 빚더미에 앉게 되었던 이야기는 어리숙한 내 생각이 나서 너무 가슴 아팠다. 씨앗을 뿌리고 싹이 트기까지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듯, 흔들리는 인생을 바로 세우는 데도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말에서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의 보금자리였던 겨자씨 마을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어쩌면 진정한 사랑이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믿어주는 마음이 아닐까?

이 아이들은 목적도 없고 하고 싶은 일도 없고 무엇을 잘하는지도 모르고 스스로에 대해 생각해 볼 기회조차도 없이 사회에 방치되어 왔다. 하지만 스스로 삶의 목적을 찾고, 좋아하는 것이 생기고, 하고싶은 일도 생기고 변화되어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도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사회는 갈수록 각박해져 간다지만 이런 분들이 계셔서 이 사회가 점점 더 따듯하고 아름다워져 가는 것이 아닐까? 마지막은 사모님의 말씀으로 대신한다.

자아를 찾고 싶은 소년에게 멘토가 되어 주는 사람, 지속적인 지지와 돌봄으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사회적 부모 역할을 감당하는 진정한 어른이 아닐까. 한 아이의 결핍을 채워 주고 그들의 말에 귀 기울여 줄 어른들이 이 사회에 많아졌으면 좋겠다. "가난한 자와 옥에 갇힌 자를 돌봐 주는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이 우리의 심령을 두드려 주시기를. (p.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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