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으로 본 조직 안의 인간
이남 지음 / 좋은땅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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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순간, 조직 안에서 인간은 존중받고 있는가. 사람과 조직은 어떻게 함께 성장할 수 있을까? 개인의 가치가 존중받는 조직문화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함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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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인이 조직에서 멀어질 때

2025년 10월, 국정감사장에서 현직 부장검사가 눈물을 흘렸다.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을 기소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위에서 사건을 무혐의 처리하라는 부당한 압력이 있었다는 것이다. 드라마에서 많이 보던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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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은 달라도 그 구조는 거의 비슷하지 않을까. 열심히 해도 인정은커녕 당연한 일이 되고, 부당한 명령에 이의를 제기하면 오히려 손해가 돌아온다. 그래서 입을 닫거나 조직을 떠난다. 주 80시간을 버티며 사람을 살리는 전공의도 마찬가지다.


노력이 인정받지 못하고, 부당함 앞에서 침묵해야 하며, 지쳐가는 나를 아무도 지켜주지 않을 때 개인은 조직에서 멀어진다.


2. 인간은 왜 인정받고 싶은가​

내가 쓸모가 없으면 남들에게 버림받아 혼자가 될까 봐 무섭기 때문이다. 그래서 쓸모 있다고 인정받지 못하면 내 존재 가치가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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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결정 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 SDT)이 있다. 사람은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할 때 가장 높은 성취감을 느낀다는 이론이다. 내가 스스로 정하고(자율성), 잘 해낼 수 있으며(유능감), 좋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관계성)고 느낄 때 우리는 신나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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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사람은 무엇으로 움직이는가

사람의 욕구는 생리, 안전, 소속, 인정, 자아실현 순으로 쌓여 있어서, 낮은 단계가 채워져야 비로소 높은 단계로 올라간다. 이를 매슬로의 욕구 5단계 이론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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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 채워지지 않은 가장 낮은 단계의 욕구다. 낮은 단계가 흔들리면 사람은 그것부터 지키려 하고, 그것이 채워져야 비로소 인정과 성장 같은 높은 단계를 향해 스스로 움직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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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많은 조직이 이 순서를 무시한다. 연봉(1단계)은 올려주면서 고용 안정성(2단계)을 위협한다. 팀워크(3단계)를 강조하면서 개인의 기여는 인정(4단계)하지 않는다. 비전(5단계)을 말하면서 야근을 강요해 기본적인 생활(1단계)을 무너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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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중견기업 대표가 연봉을 15% 올렸는데 핵심 인재가 3명이나 떠났다. 대표는 1단계인 급여만 강화했을 뿐, 4단계인 인정과 5단계인 성장은 채워주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조직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가 "어떻게 할지 네가 정하라"고 말하는 조직은 시키지 않아도 움직이고 성과가 난다. 반대로 통제가 강한 조직은 구성원의 눈빛이 꺼져 있다. 능력을 발휘할 기회가 주어질 때 우리는 일에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4. 어떻게 실천하는 리더가 될 것인가

먼저 경청해야 한다. 듣는 척이 아니라 진짜 들어야 한다. 이건 가족이나 지인에게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듣는 척만 했음을 알게 되었다. 상대가 말하는 동안 다음에 뭘 말하나 생각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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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다음은 질문이다. 답을 알려주는 대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우리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물어서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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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은 결과만 말해 주는 칭찬과는 다르다. 이 부분을 이렇게 생각한 점이 좋았다며, 그 결과를 만든 과정과 애씀을 알아주는 것이다. 행동을 넘어 그 행동이 만들어낸 가치를 말해 주는 게 인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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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는 경청, 질문, 인정에 관한 자기 체크리스트가 있다. 나도 해봤는데 방향은 맞고, 한 가지씩 의식적으로 실천하면 빠르게 올라가는 단계에 해당되었다. 결과보다 과정을 칭찬해 주는 연습부터 해야겠다.


5. AI 시대, 인간의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AI가 하는 일이 늘어도, 무엇을 맡길지, 결과가 맞는지에 관해 대화할 수 있는 분위기는 사람이 만들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는 AI보다 잘하는 게 아니라, AI를 올바르게 쓰도록 이끄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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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이 AI를 받아들이는 방식에는 세 가지 패턴이 있는데, 그중 가장 바람직한 것이 협업이다. AI에게 무엇을 맡길지 정기적으로 협의하고, AI의 결과물을 수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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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AI를 들여와도 어떤 조직은 협업으로 나아가고, 어떤 조직은 분화와 가속이라는 함정에 빠진다. 그 갈림길은, 조직이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그 방식을 결정하는 건 리더의 철학이다. 결국 개인과 조직은 함께 가야 한다.


6. 오늘 함께 시작한다

시작하려면, 먼저 우리 조직이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부터 진단하고, 무엇을 바꿀지 설계한 뒤, 내일 아침부터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조직과 개인이 함께, 오늘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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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알려주는 진단 방법을 따라가면, 현재 우리 조직의 위치를 알게 된다. 진단이 끝나면 그 결과를 바탕으로 무엇을 어떻게 바꿀지 설계하는 방법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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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조직과 개인이 함께 시작하는 여덟 가지 실천법을 제시한다. 개선 과제를 함께 찾고, 팀 차원에서 일상을 바꾸는 방법들이다. 조직과 개인이 함께 바꿀 것을 찾고, 팀이 그것을 습관으로 만들어, 그 습관이 쌓여 문화가 될 때, 두 세계가 하나로 만난다. 그 시작은 내일 아침의 작은 시도 하나면 충분하다.


이 책이 말하는 것은 조직의 목적과 개인의 존엄이 서로를 짓누르지 않고 함께 실현되는 상태다. 좋은 사람들이 잘못된 구조 안에서 서로를 소진시키는 일이 왜 반복되는지, 어떻게 고칠 수 있는지를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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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도 하나의 작은 조직이다. 집안일은 아무리 애써도 당연하게 여겨져, 힘들 때가 많았다. 그래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너무 공감됐다. 또한 나는 가족의 애씀을 얼마나 인정해 줬는지도 돌아보게 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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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는 리더가 온다 - 직원이 스스로 답을 찾게 만드는, 사장의 세 마디
한동빈 지음 / 휴앤스토리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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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30년 동안 가장 많이 한 실수는 답을 알려준 것이었고, 가장 잘한 일은 질문을 던진 것이라고 한다. 답을 주면 직원은 시키는 대로만 움직이지만, 질문을 던지면 스스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이 책은 그렇게 대표가 지시하는 자리에서 내려와 직원 곁에 서게 된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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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를 바꾼 것은 더 좋은 직원이 아니라, 위에서 지시하다가 곁에 서서 묻기 시작한 저자 자신이었다. "이거 해놔" 대신 "뭐가 막혔어"라고 묻자 회사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나를 설득해 봐", "그건 자네가 결정해", "자네는 어디까지 가고 싶나"라는 질문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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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장 단단한 리더는 가장 부드럽다

단단한 리더란, 강하게 밀어붙이는 리더가 아니라, 떠날 사람은 부드럽게 놓아주면서도 사람에 대한 믿음을 거두지 않는 리더다. 실수한 직원에게도 "시말서 써" 대신 "어쩌다 그렇게 됐을까"라고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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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믿는 일은 쉽지 않다. 좋은 사람을 뽑아 키워 놓으면 더 좋은 조건을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때 배신감과 서운함이 쌓이면 사람을 믿는 일이 두려워지고, 결국 직원을 못 믿는 회사가 된다. 직원은 그 불신을 귀신같이 알아챈다. 그래서 단단한 리더는 떠난 사람을 미워하지 않는다. 잘 키워 잘 보낸 사람은 회사 밖에서도 회사의 사람으로 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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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이것을 사람을 남기는 경영이라고 부른다. 사람을 키우며 몇 명을 떠나보냈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곁에 남았다. 사람을 키운다는 건 어쩌면 떠날 사람까지 안고 가는 일이다.


2. 나를 설득해 봐

"나를 설득해 봐"라는 말속에는 두 가지 뉘앙스가 있다. 어떤 마음으로 건네느냐에 따라 정반대의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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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은 정해 놓고 "어디 한번 설득해 봐" 하고 비꼬듯 던지면 그건 질문이 아니라 시험이다. 직원은 답이 정해져 있다는 걸 금방 알아채고 입을 닫는다. 반대로 나도 아직 답을 정하지 않았다는 마음으로 정말 들어볼 생각으로 말하면 초대가 된다. 네 생각을 들려달라는 초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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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나를 설득해 봐"는 직원이 충분히 검토하고 감정이 아닌 근거로 말하게 한다. 그래서 저자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대신 "나를 설득해 봐"라고 말한다.


3. 그건 자네가 결정해

"그건 자네가 결정해"는 신뢰를 넘기는 한마디다.

사람은 질문을 받으면 스스로 답을 찾기 시작하고, 끝까지 들어주면 그 사람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가 보인다. 그때 일을 그의 손에 쥐여주는 말이 바로 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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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말은 나 같아도 못할 것 같다. 그러다 회사가 망하면 어쩌지 하는 두려움이 앞서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결정이 대표를 거쳐야 하는 회사에서 직원은 영원히 손님으로 남는다고 한다. 손님은 집을 아끼지 않고, 주인만 집을 돌본다. 그래서 직원을 주인으로 만들고 싶다면 주인이 하는 일인 결정권을 넘겨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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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는 어디까지 가고 싶나"는 사람을 키우는 한마디다.

결정을 맡겨 직원이 자기 일의 주인이 되었다면, 이제는 그 사람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 특히 돈 이야기에서 막힌다. 더 크게 키우겠다는 말은 결국 더 많이 나누겠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4. 7초의 침묵을 견딜 수 있는가

경청을 연습해 본 사람이라면, 진심으로 들어주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것이다. 침묵 앞에서 리더의 태도는 둘로 갈린다. 침묵을 못 참고 답을 내놓으며 밀어붙이는 리더가 있고, 7초를 기다려 직원의 답과 성장을 끌어내는 리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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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초는 사람이 자기 안에서 답을 길어 올리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간이다. 기다린 뒤에는 지금 무엇이 막혀 있는지 묻고, 어떻게 풀면 좋을지 직원 스스로 답하게 한다. 마지막으로 내가 어떤 걸 도와주면 좋겠냐고 물어 실행을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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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직원이 스스로 답을 찾는 과정이 곧 성장이다. 자기가 낸 답이니 그 일은 자기 일이 되고, 그래서 시키지 않은 것까지 하게 된다.


5. 사람을 남기는 힘

마지막은 '묻는 리더의 대화 사전 50'이다. 같은 상황을 먼저 읽고 보스와 리더의 대화를 비교해 보면, 무엇이 달라졌는지가 보인다. 사람은 무시를 당하면 가시를 세우고, 쓸모를 인정받으면 품을 내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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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지각하는 직원이 있다고 해 보자. 보스는 기강이 빠졌다고 책망하지만, 곁에 서는 리더는 무슨 일 있냐고 묻는다. 그제야 직원은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오느라 아침이 빠듯하다고 털어놓는다. 그러면 리더는 출근 시간을 30분 늦추고 그만큼 저녁에 채우자고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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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하던 사람이 흐트러질 때는 감당하기 힘든 무언가가 생긴 경우가 많다. 그것을 함께 풀어 주면 지각은 잔소리 없이도 사라진다. 이런 리더, 너무 멋있다. 저자의 30년 곁의 경영은 말이 아니라 일로 증명된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정년이 없다는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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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록의 30일 워크북은 매일 따라 하며 내 것으로 만드는 연습이고, 질문 서랍은 직원과 마주 앉았는데 무슨 말부터 꺼낼지 막막할 때 한 문장 빌려 쓸 수 있게 구성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상대가 바뀌기를 기다리기 전에 내가 먼저 묻는 사람이 되면, 잔소리 없이도 사람이 스스로 움직이고 곁에 남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묻는 힘은 회사뿐 아니라 가정과 모든 관계로 넓혀 갈 수 있다. 그래서 오늘부터 가족에게 잔소리 대신 "어떻게 생각해?" 하고 먼저 물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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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
이병철 지음 / 좋은땅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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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니, 눈앞에 흐르는 강을 보며, 정작 건너야 할 강은 그럼 어디 있다는 걸까? 시집을 읽어 보니 그 강은 시인의 마음속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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켜켜이 쌓인 기억과 상처, 고단한 생의 찌꺼기가 바로 건너야 할 강이었던 것이다. 바이크로 달리던 시인이 속도 끝에서야 그걸 알았다고 한다. 내가 가장 마음에 와닿은 시를 한 편씩 골라 봤다.


1. 철마의 심장을 깨우다

나는 운전을 할 줄 모르지만 자전거는 탈 줄 알아서 외국에서 전기 자전거를 탄 적이 있다. 그 속도감이 얼마나 기분이 좋았던지. 철마인 바이크의 심장을 깨워 시동을 걸고 달릴 때, 시인의 가슴은 또 얼마나 후련하고 뻥 뚫리는 것 같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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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천과 봉양 충주를 지나 속도를 높이면, 가슴이 뚫리고 그제서야 건너야 할 강이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된다. 나까지 스트레스가 확 풀리는 느낌이다. 강원도에 있는 연대 미래캠퍼스 안에 있는 매지리 호숫가 교정은 정말 아름다웠다.


2. 기억과 고향

시인은 <왕과 사는 남자>촬영지 쇠목마을 선돌 위에 섰다. 영화와 함께 지나간 역사와 한 사람의 삶이 스크린처럼 펼쳐진다. 시인은 단종이 이 길을 소나기를 맞으며 며칠씩 걸어 넘었을 거라고 상상한다. 박지훈 배우의 그 슬픈 눈이 생각난다. 서러움의 눈물들이 모여 강이 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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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를 읽고 나서야 "건너야 할 강이 물 위에 있지 않다"는 말이 이해됐다. 어릴 적 시인에게 강은 돌을 던져 건너편까지 닿게 하던 놀이터였는데, 어른이 되어 돌아온 고향에는 어머니도, 옛 마을도 사라졌다. 시인이 건너야 할 강은 흘러가 버린 시간과 그리움 같다.


3. 수련과 성찰

내가 은근히 산만하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있질 못하고 자꾸 딴짓하며 일어나 왔다갔다 한다. 3부에 나오는 시들을 읽다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빙그레 웃다가 묘한 위로와 동질감을 느꼈다. 본능을 바라보는 시인의 성찰이 돋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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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날파리를 잡고, 에어컨 온도를 맞추고, 선풍기 코드를 뽑는 이런 평범한 일들이 인생이라는 무대를 묵묵히 버텨내는 수련 과정이 아닐까? 당신도 오늘하루 졸음을 참으며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참 잘 버텼다고 위로해 주는 듯 하다.



4. 사회와 일상

나는 대전역 대합실에서 열차를 기다리다 TV로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을 보게 되었다. 얼마나 기쁘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런데 시인은 같은 날, 같은 하늘 아래 두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아찔한 높이의 밧줄에 매달려 묵묵히 페인트를 칠하는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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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 작가는 상처 입고, 소외되고, 폭력과 고통 속에 놓인 사람들을 깊이 응시해 왔다. 시인은 한강의 문학이 가리키고 있는 삶을 본다. 하지만 그저 무심히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는다. 나 같아도 그렇게 했을 것 같다. 솔직한 표현에 가슴 한 곳이 아려왔다.


산만하고 부족한 내 모습을 탓하기보다 평범한 일상을 묵묵히 버텨 내는 것 자체가 수련이라고 받아들이니, 오늘 하루가 조금 더 행복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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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라는 기적 - 난치병 환자들의 기적을 함께 찾아온 의사의 기록
김운 지음 / 더로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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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익성이 낮고 환자 수가 적다는 이유로 관심에서 밀려난 사각지대의 환자들이 있다. 고위험 난치병 CRPS 환자들이다. 이 책은 그 환자들의 치료 과정을 담았다. 자신의 상태조차 정확히 알지 못한 채 불안 속에서 병원을 전전하는 환자들에게, 이 책은 난치라는 이름의 가짜 장벽을 허물어뜨리는 작은 망치가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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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CRPS란?

CRPS는 영어 Complex Regional Pain Syndrome의 약자로 ‘복합부위 통증 증후군’이라고 한다. 말 그대로 특정 신체 구역(Regional)에, 극심한 통증(Pain)과 함께 피부·혈관·감각 이상 등 여러 증상이 복합적으로(Complex) 얽혀서 나타나는 증후군(Syndrome)이다. 통증을 느끼는 신경 시스템의 센서가 고장 나서 사소한 자극에도 엄청난 고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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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병을 더 이상 난치병이 아니게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실제로 회복하는 사람들을 계속해서 보여주는 것이다. 이 책이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준다. 환자를 진정으로 낫게 하는 것은 환자의 몸 그 자체가 가진 자생력과 나을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의사의 관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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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7 치료는 몸에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환자가 자기 상태를 이해하고 다시 회복의 가능성을 붙잡는 과정이기도 하다.


2. 환자의 치료

의사는 환자가 치료를 끝까지 완주하도록 돕는 조력자이자 페이스메이커여야 한다. CRPS란 병명은 널리 알려졌지만, 실제 치료 과정이나 회복 사례를 말하는 사람은 드물고, 환우 커뮤니티에는 절망적인 글이 가득하다. CRPS는 통증만의 문제가 아니라 중추신경계가 변해 기능을 잃는 질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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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약이나 차단술 같은 통증 중심 치료에서 벗어나 통증 조절, 중추신경계 정상화, 기능 회복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2장부터는 환자들의 회복 이야기가 나온다. 이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었고, 회복됐는지 알 수 있어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3. 회복 과정

환자는 절대로 매일 좋아지지 않고, 롤러코스터 같은 회복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특히 호전과 악화가 반복되는 CRPS 고위험군 환자는 그 불안이 더 클 수밖에 없다. 사람은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야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열심히 하면 좋아진다"라는 말을 아무리 들어도 변화가 없으면 치료 동기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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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저자는 다른 환자들이 실제로 좋아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을 보여준 다음, 회복 과정을 알려 주고, 완쾌된 환자의 후기를 직접 듣게 한다. 비슷한 고통을 겪은 환자들끼리 나누는 경험은 어떤 의학적 설명 보다 강한 위로와 확신이 되는 것이다.


4. 수술은 언제 필요한가?

수술은 수술을 받는 환자의 몸 상태와 이후 재활 계획이 뒷받침될 때 필요하다. 세계 최고의 명의에게 수술을 받아도 환자가 이를 견뎌낼 몸과 재활 계획이 없다면 결과는 장담할 수 없다. CRPS 환자는 특히 더 그렇다. 급하게 수술하고 장기간 고정하면 재활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관절이 굳어 더 큰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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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조기 수술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합병증과 결과를 충분히 따져 보고 선택하느냐, 절박한 마음에 운에 맡기듯 결정하느냐의 차이다. 성급한 수술은 환자의 소중한 기회를 잃게 하는 악수가 되기도 한다.


5. 일상이라는 기적

이 책을 읽으면 평범한 일상이 기적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나도 최근 가족의 암 수술을 겪었는데, 모든 치료의 목표는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아프기 전에는 너무나 당연해서 미처 소중함을 몰랐던 평범한 하루로 돌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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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어떤 통증이든 어떤 길 위에 있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가능성은 결코 닫혀 있지 않다는 말을 가장 하고 싶었다고 한다. 그 가능성을 환자 스스로 너무 일찍 닫지 않도록 옆에서 한 번 더 손을 내미는 것이 이 책이 닳고 싶었던 자리라고.


환자의 고통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환자는 덜 외롭다. 다만 회복이 길어질수록 보호자도 자신의 일상을 미루고, 답답함과 죄책감을 함께 떠안으며 지쳐간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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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 보호자의 흔들림이 환자에게 그대로 전해지지 않도록 조심하고, 보호자 스스로를 먼저 챙기라는 조언이 와닿았다. 나 역시 간병을 하면서 너무 지치고 힘들기 때문이다. 환자보다 먼저 쓰러지지 않으려면 나부터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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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에게는 희망을, 보호자에게는 버틸 힘을 주는 책이었다. 나처럼 치료가 길어져 지쳐 가는 환우와 가족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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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이라는 기적 - 난치병 환자들의 기적을 함께 찾아온 의사의 기록
김운 지음 / 더로드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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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PS 100% 나은 사람이 있대요~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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