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레스비의 기도 세계기독교고전 55
오 할레스비 지음, 박문재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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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레스비의 기도]는 노르웨이의 목회자 오 할레스비가 기도에 관하여 쓴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며 가장 생각이 났던 책은 E.M 바운즈가 썼던 [기도의 능력]이다. 할레스비와 바운즈는 언제나 목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역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기도 없이 진행되는 사역은 잘 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내용이 부실하다. 그러나 기도하며 진행되는 사역은 더딘 것처럼 보이지만 올바른 방향성을 가지고 나아간다. 목회자에게 기도는 언제나 최고의 우선순위가 되어야 한다.


이 기도 사역은 모든 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역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역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해야 하는 다른 모든 사역, 곧 말씀을 전하는 것과 목회 사역, 모임과 집회들, 사람들을 만나 교제하는 것,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것, 헌금을 모으는 일 같은 사역들을 하고자 할 때 가장 먼저 해야 하고 결코 빠드려서는 안되는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103p.

오늘날 목회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살아간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소식에 목회자들은 눈과 귀를 열고 살아간다. 그러나 때론 목회자들인 하늘의 소식을 듣는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을 때가 많다. 당장 눈에 보이는 사역이 너무나 중요하고, 급박하게 여겨지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주로 사용하는 '당신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라는 말과 직장인들이 주로 사용하는 '언젠가 술 한잔하자'라는 말이 실제로 얼마나 차이 날까? 기도가 삶으로 연결되지 않고, 인사치레로 끝나고 있는 우리의 삶과 성경 속에 나타나는 기도자들의 삶은 너무나 다르다. 바쁘고 복잡한 날들이 계속될수록 우리 모두에게 기도의 가치, 기도의 능력, 기도의 이유가 분명해져야 할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 긴 이번 추석 연휴 기간 동안 주님과의 친밀한 기도를 회복하여 E,M 바운즈와 할레스비가 경험하였던 기도의 능력을 동일하게 체험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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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와 강적들 - 나도 너만큼 알아
톰 니콜스 지음, 정혜윤 옮김 / 오르마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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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톰 니콜스는 대학교수로서 미국 대학의 무지와 미국 사회의 반지성 주의에 대해 한탄한다. 그리고 그의 한탄은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절정에 이르렀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유세 기간 내내 직접적으로 지식인들과 전문가를 조롱하며, 자신은 그들보다 훨씬 더 뛰어난 인물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대중들은 전문가의 말보다,  트럼프의 말을 더 신뢰했다. 트럼프의 당선은  미국 사회가 얼마나 지식인들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묵살하고 그들이 각자 믿고 싶은 것만 믿고 살아가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대학교육의 실패와 인터넷의 확산으로 인해 시민들의 지적 수준이 하향 평준화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지적 하향 평준화란 말은 자칫 고학력 인구가 많은 현대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말 같다. 그러나 실제로 모두가 대학생인 사회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된 대학생이 아니다. 그리고 모두가 지식인인 사회에서는, 아무도 제대로 된 지식인이 아니다. 대량생산 대량소비에 익숙한 자본주의 사회의 대학교육은 그저 졸업생 찍어내기식의 대량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문제는 대학생이 너무 많고 그들 중 상당수가 특별히 대학에 갈 필요가 없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오늘날의 미국에서는 모두가 반드시 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새로운 교육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악의 경우에 학위는 교육도 훈련도 아닌, 출석만을 보증해준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등록금을 제대로 냈다는 사실만을 입증해 줄 뿐이다. -140p.

대학생들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고도 자신이 지적으로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 이유는 인터넷 때문이다. 인터넷은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게 IQ가 100은 더 높아진 것 같은 기분을 선사한다. 왜냐하면 모든 정보를 검색을 통해서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인터넷에 있는 정보를 다 믿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

포머의 법칙은 인터넷이 누군가의 생각을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경우는 의견이 '없는' 상태의 사용자를 '잘못된' 의견을 가지도록 만드는 경우뿐이라고 설명한다. 또한 스킷의 법칙은 인터넷에서 남이 올린 글에 들어 있는 실수를 바로잡아 주는 글 역시, 적어도 한 가지 이상의 실수가 반드시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195p.

대학교육의 하향평준화와 인터넷의 과잉 의존 현상은 오늘날의 대학생들을 그 어느 시대보다 우매하게 만들었다. 비싼 학자금 대출과 여러 기회비용을 생각한다면 이러한 대학교와 대학원을 진학하는 것이 심각한 돈 낭비, 시간 낭비임에 틀림없건만 상급학교의 진학이 편의점을 가는 것처럼 당연시되는 이 세상에서 대학생다운 대학생으로 살아간다는 게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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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임병걸 지음 / 북레시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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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인은 가난하다. 물론 부유한 시인도 있겠지만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극소수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이 가난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가난한 시인들이 돈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 시를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돈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친구이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이방인이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지만 돈은 웬만해선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는 KBS 기자 출신인 임병걸 작가가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시인들의 시를 스무 개의 주제로 엮어서 쓴 책이다. 그 스무 개의 주제에는 돈뿐만 아니라, 라면, 커피, 소주, 전기, 기차, 영화와 같은 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책의 제목이 경제 이야기여서 '경제'를 잘 소개하는 '경제 입문서'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실제 책의 내용은 '문학평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 이상으로 책의 내용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저자가 전등의 발명으로 밤의 낭만이 사라진 이 시대에 대해 한탄하는 부분을 읽으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지금 이 시대는 밤을 잃어버린 시대, 잠을 잃어버린 시대, 심심함을 잃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4시간 전등이 켜지는 실내에서 나 자신을 착취하는 피로사회  프롤레타리아다. 

우리는 인공조명 시대에 살면서 빛 공해에 시달린다. 현대인은 그래서 진정한 어둠을 모른다. 우리가 잃은 것은 별만이 아니다. 우리는 전깃불로 밤을 몰아내고, 야간근무를 하면서 잠과 건강을 잃었다. 또 어둠과 고요는 단짝이라, 우리는 밤에 깨어나는 고요와 감각을, 멜랑꼴리의 시간을 잃었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257p.

피로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완행 기차를 타면서 창밖에 보이는 코스모스 한 송이를 음미할 시간마저도 철저히 자신을 착취하는데 사용한다. 무궁화호를 타는 대신 비싼 돈을 내며 KTX를 타는 것은 시간을 얻는 대신 추억을 잃는 것이다. 시간과 추억을 교환하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시간을 위해 추억을 포기하지 않고, 추억을 위해 시간을 포기한다. 

개인적으로 지방에 내려갈 때 나는 무궁화 열차를 즐겨 탑니다. 값도 싸지만 좌석도 KTX보다 넉넉합니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열차 중간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하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느린 열차가 출발하면서 내는 육중한 소리, 덜컹이는 바퀴 소리, 차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빠른 기차는 빠른 기차대로, 느린 기차는 느린 기차대로 나란히 달려가는 세상을 원합니다. 빠른 기차로는 효용을 높이고, 느린 기차로는 낭만과 삶의 여유를 되찾는 철도를 원합니다. -288p.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을 바라보며, 편의점이야말로 지금의 한국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물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밤에는 푹 쉬고, 느긋하게 식사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졸리면 자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일상이 아니라 이상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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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의 눈
미하엘 슈톨라이스 지음, 조동현 옮김 / 큰벗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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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당시 주조된 동전에 보면 '법의 눈'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그 동전엔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저자는 근대에서 '법의 눈'이라는 개념이 바로 세속화된 신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법의 눈'이 등장하기 전에 서양인들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였기 때문이다. 

서구 문화의 범주에서 눈과 관련된 은유와 금언은 주로 성경에서 유래한다. 종종 태양과 동일시되거나 그것에 의해 시각화되는 하나님의 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눈이 지켜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보며 미래를 예견한다(하나님의 섭리 Providentia Dei). 하나님은 양을 돌보는 목자처럼 그의 백성을 보호한다. -20p.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은 인간의 양심과 인간의 행동을 주관하는 절대자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그리스-로마, 이집트, 유대 그리스도교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신의 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신을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법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법은 신이 아니다. 신은 불변하지만 법은 변한다. 국회의원들이 법을 개정하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그러나 법과 신의 근본적인 차이는 법은 비인격적이지만, 신은 인격적이라는 것이다. 법은 처벌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신은 예방에 관심이 많다.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이는 단순히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인격적인 법으로는 청소년의 섬세한 인격을 터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신이 청소년의 섬세한 인격을 터치하고 그들을 마음을 보듬을 때 그들이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비양심적인 국회의원이 만든 비인격적인 법이 지극히 인격적인 청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법의 눈'을 넘어 다시 '신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Coram Deo'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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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분 시공 청소년 문학
최이랑 지음 / 시공사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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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반 강남의 삼풍백화점은 풍요와 사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1995년  6월 29일 오후에 삼풍백화점은 붕괴되어 수많은 사상자를 남기게 되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된 이유는 다름 아닌 부실공사와 무리한 건물 개조 때문이었다.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대부분 이 사건을 잘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삼풍백화점 붕괴는 세월호 침몰과 닮은 점이 많다.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은 모두 인간의 무한탐욕과 무책임성에서 비롯된 대재앙이기 때문이다.  

최은영 작가가 쓴 [1분]이란 장편소설은 삼풍백화점 붕괴라는 대재앙을 모티브로 쓴 청소년 소설이다. 소설에서는 써버라는 아이돌 그룹의 팬미팅을 서진타운에서 진행하는데 그 자리에 참석한 수백 명의 청소년들이 건물 붕괴로 죽는다. 이는 세월호 침몰을 연상시키는 스토리다. 수학여행이라는 가장 기쁜 순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단원고 학생들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스타를 만날 수 있는 팬미팅에서 건물의 붕괴를 경험한 청소년들은 천국에서 일 순간 지옥으로 추락한다. 과연 그들의 아픔과 슬픔 그리고 분노는 어떻게 치유할 수 있는 것인가?

[1분]은 청소년 소설이지만, 단지 청소년만을 위한 소설은 아니다. 왜냐하면, 청소년이든 기성 세대든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대한민국에 삼풍백화점 붕괴와 세월호 침몰과 같은 대재앙을 막아야 할 공동의 책임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대재앙을 막을 수 있는 첫걸음은 바로 이러한 대재앙을 기억하는 것이다. 이러한 대재앙이 발생하면 가장 연약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게 된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되고 나서 이 사건과 관련된 사람들이 법정에서 선고받은 형량이 7년형이라고 하였다. 건물 붕괴로 500명이 넘게 죽었는데, 의도성이 없다는 이유로 7년형이 선고되었다면 이는 과연 정의로운 판결인가?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대재앙을 막기 위해서는 언제나 그 사건을 기억하고, 그 재앙에 원인을 제공한 사람들을 정의와 공의로 심판하여 사람이 아니라 돈을 선택한 사람들이  그에 따른 대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안전의식과 사법정의가 온전히 확립되지 않고서는 대한민국에서 대재앙을 막을 수 있는 길은 여전히 멀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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