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로 읽는 경제이야기
임병걸 지음 / 북레시피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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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시인은 가난하다. 물론 부유한 시인도 있겠지만 그것은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이다. 극소수의 대형교회 목회자들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교회 목회자들이 가난하듯이 말이다. 따라서 가난한 시인들이 돈에 대해서 그리고 경제에 대해서 시를 쓰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게 돈은 언제나 함께하고 싶은 친구이지만 좀처럼 가까이 다가오지 않는 이방인이다. 돈은 돌고 돌아서 돈이라지만 돈은 웬만해선 그들에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시로 읽는 경제 이야기]는 KBS 기자 출신인 임병걸 작가가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정신적으로는 풍요로운 시인들의 시를 스무 개의 주제로 엮어서 쓴 책이다. 그 스무 개의 주제에는 돈뿐만 아니라, 라면, 커피, 소주, 전기, 기차, 영화와 같은 주제도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저자의 문학적 감수성과 깊은 통찰력에 큰 감동을 받았다. 나는 책의 제목이 경제 이야기여서 '경제'를 잘 소개하는 '경제 입문서'라고 생각하고 책을 펼쳤는데, 실제 책의 내용은 '문학평론'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대 이상으로 책의 내용이 만족스러웠다. 나는 저자가 전등의 발명으로 밤의 낭만이 사라진 이 시대에 대해 한탄하는 부분을 읽으며 그 말에 전적으로 공감했다. 지금 이 시대는 밤을 잃어버린 시대, 잠을 잃어버린 시대, 심심함을 잃어버린 시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24시간 전등이 켜지는 실내에서 나 자신을 착취하는 피로사회  프롤레타리아다. 

우리는 인공조명 시대에 살면서 빛 공해에 시달린다. 현대인은 그래서 진정한 어둠을 모른다. 우리가 잃은 것은 별만이 아니다. 우리는 전깃불로 밤을 몰아내고, 야간근무를 하면서 잠과 건강을 잃었다. 또 어둠과 고요는 단짝이라, 우리는 밤에 깨어나는 고요와 감각을, 멜랑꼴리의 시간을 잃었다. -황현산, [밤이 선생이다] 257p.

피로사회에서 프롤레타리아는 완행 기차를 타면서 창밖에 보이는 코스모스 한 송이를 음미할 시간마저도 철저히 자신을 착취하는데 사용한다. 무궁화호를 타는 대신 비싼 돈을 내며 KTX를 타는 것은 시간을 얻는 대신 추억을 잃는 것이다. 시간과 추억을 교환하고 결국 우리에게 남은 것은 과연 무엇일까? 저자는 시간을 위해 추억을 포기하지 않고, 추억을 위해 시간을 포기한다. 

개인적으로 지방에 내려갈 때 나는 무궁화 열차를 즐겨 탑니다. 값도 싸지만 좌석도 KTX보다 넉넉합니다. 천천히 달리는 기차 안에서 책도 보고, 음악도 듣고, 열차 중간에 있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잔하며 창밖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느린 열차가 출발하면서 내는 육중한 소리, 덜컹이는 바퀴 소리, 차창에 부딪히는 바람소리...빠른 기차는 빠른 기차대로, 느린 기차는 느린 기차대로 나란히 달려가는 세상을 원합니다. 빠른 기차로는 효용을 높이고, 느린 기차로는 낭만과 삶의 여유를 되찾는 철도를 원합니다. -288p.

 
24시간 불이 꺼지지 않는 편의점을 바라보며, 편의점이야말로 지금의 한국인을 가장 잘 나타내는 상징물이라 생각한 적이 있다. 밤에는 푹 쉬고, 느긋하게 식사도 하고, 책도 읽으면서, 졸리면 자는 그런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일상이 아니라 이상이 되어버린 한국 사회는 많은 것을 가졌지만 그만큼 많은 것을 잃어버린 사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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