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의 눈
미하엘 슈톨라이스 지음, 조동현 옮김 / 큰벗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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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당시 주조된 동전에 보면 '법의 눈'이 새겨져있다. 그리고 그 동전엔 '모든 인간은 법 앞에 평등하다'라고 적혀있다. 그런데 저자는 근대에서 '법의 눈'이라는 개념이 바로 세속화된 신의 개념이라고 주장한다. '법의 눈'이 등장하기 전에 서양인들은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였기 때문이다. 

서구 문화의 범주에서 눈과 관련된 은유와 금언은 주로 성경에서 유래한다. 종종 태양과 동일시되거나 그것에 의해 시각화되는 하나님의 눈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능력의 상징이다. 하나님의 눈이 지켜본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것을 보며 미래를 예견한다(하나님의 섭리 Providentia Dei). 하나님은 양을 돌보는 목자처럼 그의 백성을 보호한다. -20p.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머릿속에 신은 인간의 양심과 인간의 행동을 주관하는 절대자로서 굳건하게 자리를 지켰다. 1789년 프랑스 혁명 이전에는 그리스-로마, 이집트, 유대 그리스도교의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보는 신의 눈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사람들이 신을 의식하며 행동하지 않는다. 그들은 법을 의식하며 살아간다. 법은 신이 아니다. 신은 불변하지만 법은 변한다. 국회의원들이 법을 개정하면 새로운 세상이 시작된다. 

그러나 법과 신의 근본적인 차이는 법은 비인격적이지만, 신은 인격적이라는 것이다. 법은 처벌에 초점이 맞추어졌지만, 신은 예방에 관심이 많다. 지금 청소년들 사이에서 학교폭력의 문제가 매우 심각한데 이는 단순히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비인격적인 법으로는 청소년의 섬세한 인격을 터치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격적인 신이 청소년의 섬세한 인격을 터치하고 그들을 마음을 보듬을 때 그들이 온전한 인격체로 성장할 수 있다.  비양심적인 국회의원이 만든 비인격적인 법이 지극히 인격적인 청소년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대한민국에는 '법의 눈'을 넘어 다시 '신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Coram Deo'의 정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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