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폰을 개통하시겠습니까? - 제22회 창비 좋은 어린이책 고학년 부문 대상 수상작 창비아동문고 292
박하익 지음, 손지희 그림 / 창비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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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와 스마트폰.

이미 제목에서부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

한쪽으로는 오컬트 세계가 있고, 다른 쪽으로는 모바일 인터넷과 가상현실 세계가 있다.
이 이질적인 두 소재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결합된다.

처음에는 도깨비를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구실 정도로만 소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도깨비의 특성이나 기원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들 뿐만 아니라 최신 과학 기술 등과 자연스럽게 엮어 내서 참신한 재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 경계를 오가는 것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이거 진짜야?”
“당연히 허깨비지.”
“허깨비?”
“진짜랑 똑같아 보이게 만드는 눈속임 말이야. 매일아, 허깨비를 뭐라고 하면 되지?”
케빈이 묻자 피부색이 까만 여자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컴퓨터 그래픽.”
“컴퓨터 그……. 그래, 그거야. 음.” p. 41

물론 그 이질적인 결합의 궁극적인 목적은 ‘스마트폰에 빠지지 말고 적당히 쓰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다. 그렇긴 해도 소재적인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이토록 ‘이과’적인 도깨비는 처음 접해본다.

폐인.
요즘의 지우를 완벽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였다. 눈을 감으면 게임 화면이 아른거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도깨비폰을 들고 있었다. 도깨비 소굴에서 도깨비폰을 가지고 노는 꿈을 꿀 정도였다. p. 161

단지 긍정적인 목표나 문제 해결을 위한 도전 같은 ‘당근’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쪽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겁주기나 위기 빠뜨리기로 전달하는 식이라 약간 읽으면서 피곤했다. 가뜩이나 소재가 ‘기를 뺐는’ 거라서 그런지 유쾌하게 읽기는 힘들었다.

“홀린다고? 홀리면 어떻게 되는데?”
“우리한테 빠져서 벗어나지 못해.”
홍각시가 말했다.
지우도 비슷한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요괴나 도깨비한테 홀려 기를 빨려 죽는 사람들 이야기는 흔했다.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계속 우리랑 놀려고만 하지. 우리는 사람이랑 노는 걸 좋아해. 인간 중에는 재미있는 애들이 많거든. 그런데 같이 놀던 아이들이 죽어 버리면 아주 골치 아파. 어른들한테 혼나고 스마트폰을 빼앗기기도 해. 가끔은 감옥에 가는 도깨비들도 있고. 으으으으.” p. 115-116

인간들을 기에 따라 분류하는 부분은 가장 불쾌한 부분이었다. 일종의 건강 상태로 사람의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경악스러운 부분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생활이나 운동을 권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작품 안에서 말하는 ‘기’나 ‘대’ 같은 것은 타고난 영역이 커서 자칫 아이들에게 괜한 열등감이나 우월의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더불어서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으면 괜찮다는 결말은 최신 도구에 대한 양면성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필요한 부분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마치 어떤 ‘상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같아서 개운하지는 않았다.

마치 뭐든 ‘산업’으로 치환시키는 어른들(혹은 어르신들)의 논리라고 느껴졌다. ‘영화 <쥬라기 공원>이 국산차 몇 대를 판 이익을 얻었다’고 하면서 ‘영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던 그 옛날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뭐든 돈이 된다면 괜찮다는 논리. 역시 뭐니뭐니 해도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 사실 과학기술은 언제나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 어떤 ‘문과’ 못지않게 순수한 것이 사실 ‘이과’ 아니던가.

그 밖으로는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윤 진사에 대한 부분이 서둘러 봉합된 느낌이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윤 진사 캐릭터만이 아니라 윤 진사를 대하는 지우의 반응도 굉장히 편의적이다. 직관적으로 윤 진사의 말을 척척 알아들으면서도, 갑자기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구는 지우를 보면 전체적인 완성도를 해치는 것 같아 아쉽다.

그럼에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고, 전통 소재를 자연스럽게 최신 기술과 함께 엮어냈다는 점에서 확실한 장점이 느껴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너무 당연하게 돼 버린 요즘 아이들에게 충분히 자기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좋은 이야기다.

지우는 아주 중요한 걸 깨달은 기분이었다. 도깨비폰을 사용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깨비 아이들과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을 차분하게 다잡는 것이었다. p. 1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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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좀비스 스토리콜렉터 35
스티븐 킹 외 33인 지음, 존 조지프 애덤스 엮음, 최필원 옮김 / 북로드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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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저항은 어리석은 일이다. 오직 산 자들만이 저항한다. 저항은 의지의 표현이다. 시체들에게 없는 게 하나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의지일 것이다. 그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라. 당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에 무뎌지면 당신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 p. 264, 애덤-트로이 캐스트로 <나처럼 죽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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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함께 사전 아홉 살 사전
박성우 지음, 김효은 그림 / 창비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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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책이 너무 이쁘다. 색깔, 삽화, 글씨체, 종이 제질 모두 예쁘고 깔끔해서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 눈에도 이뻐 보일 것 같다. 사이즈도 적당하다.
구성도 직관적이고 깔끔하고, 중간부터 펼쳐봐도 상관없는 형식이라 보기 편하다.

책을 읽는 내내 최근에 본 <플로리다 프로젝트>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주인공 ‘무니’가 친구들과 아이스크림을 나눠먹는 모습(‘나눠’ p. 22)이라거나, 엄마와 함께 향수를 팔러 다니는 모습(‘따라다녀’ p. 42), 사고를 치고 모른 척 하는 모습(‘잡아떼’ p. 138), 그리고 끝내 관객과 주인공을 모두 울리는 장면(‘울려’ p.120)까지.
미국 플로리다의 애들이나 우리나라 애들이나 애들은 어디서나 똑같구나 싶었다. 그만큼 아이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표현들이란 말이기도 하다.

의사소통 할 때의 ‘센스’랄까, ‘유연한 상황대처’랄까 그런 말들이 떠오르는 교육적인 내용들로 이뤄져있다.
우리는 모두 우리말을 알고 능숙하게 사용하지만, 막상 아이들이나 외국인에게 우리말을 가르치려고 하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할 때가 많다. 감정이나 행동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설명할 필요 조차 없어보이는 표현들을 쉽고 재밌게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그것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좋은 시작이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도움이 얼마나 필요한지는 잘 알고 있다. 어렸을 적에 혼자서 처음으로 지하철을 타러 갔던 기억이 있다. 조금이라도 준비가 된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을 것 같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먼저고 그것을 설명하는 말이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어쩌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오스카 와일드는 말했다.

“시인이 런던의 안개를 노래하기 전까지 그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아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말을 모르면 그런 감정이 존재하는지도 모른다.

다시 영화 얘기를 해보자면, <플로리다 프로젝트>의 주인공 무니는 친구에게 이별에 대해 말하려다 포기하고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고 울음을 터뜨린다.

오스카 와일드도 말했듯이 그 표현의 영역이 문학의 기능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이 창비라는 출판사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건지...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지만 ㅎㅎ

일상적으로 아이들이 접하는 표현들 외에도 달래(p.30)나 대접해(p.34)같은 어른스러운 표현들도 있고,
혹은 사과해(p.84), 이해해(p.130), 인정해(p.134)처럼 어른들도 힘들어 하는 표현들도 존재한다. 오늘도 이렇게 아이들에게서 배운다. (배워 p.68)

어른들이 표현에 힘든만큼 아이들도 그것에 힘들어 한다. 나중에 더 표현력 풍부한 어른이 되기 위해서라도 아이들이 이 책을 보고 많이많이 익혔으면 좋겠다. 모두모두 응원해!!(‘응원해’ p. 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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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해드립니다 엘릭시르 미스터리 책장
로런스 블록 지음, 이수현 옮김 / 엘릭시르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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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아마추어를 대하고 있었고, 아마추어를 대할 때는 두 가지 원칙이 있었다. 첫째는 평소의 몇 배는 더 전문가다워야 한다는 것. 둘째는 안타깝게도 절대 아마추어를 상대하지 말라는 것이다. p. 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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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
최민호 지음 / 황금가지 / 201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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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백한 말』은 황금가지의 ZA(좀비 아포칼립스) 공모전에서 장편으로는 처음으로 대상을 탄 작품이다. 장단편 가리지 않고 공모하는 줄은 몰랐었다. 그만큼 장편 좀비 소설은 드문 모양이다.

일단 빠르고 잘 읽힌다. 마음만 먹으면 단숨에 읽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세계관도 제법 정교한 편이다. 의아한 부분이 없는 건 아니지만 장르 팬으로서 그냥 무시할 수 있을 정도다. 그만큼 장르 클리셰를 잘 가져와 썼다고 볼 수도 있겠다.
확연하게 새로운 부분은 없지만 아주 판에 박히지도 않다.
왜 대상으로 뽑혔는지 납득이 갔다. 적당히 큰 스케일에, 적당히 정교한 설정, 복잡한 인물관계가 적당하게 얽히면서 스릴러로서의 모양새도 잘 갖췄다.

(이하 스포일러)






처음 읽으면서는 오랜만에 좀비가 노동문제로 돌아오는구나 싶어 반가웠다. 지금은 의미가 없어졌지만, 좀비의 기원은 ‘대신 일을 해줄 존재’로서의 시체였다. 때문에 초기 좀비는 흑인 노예로 등장하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죽고 나서도 노동에서 벗어날 수 없는 가련한 존재.
그런데 계속 읽다보니 단순한 노동문제라기보다는 계급 문제, 더 정확하게는 계급투쟁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 보유자는 약을 먹어야 하는데, 그 최소한의 보호막을 위해 분투하는 모습이 최저임금을 사수하려는 현재 모습과 겹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계급투쟁의 양상은 우리사회가 민주화를 통해 경험했던 것과 비슷하다. 비밀지하조직, 그 조직은 점조직으로 되어 있고, 조직 내의 목소리도 제각각이다. 거대한 적에 맞서기 위해 노력하다보니 지하조직은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그 모습은 적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렇듯 다소 관습적으로 느껴져서 아쉬웠다. 대적하는 대상들도 제약회사라거나, 군부대, 상류층 같은 관습적인 존재들이다.

다른 면에서 관습적으로 느껴진 건 지하조직과 제약회사의 남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기싸움들이 조폭 영화를 떠올린다는 것이다. 아주 살벌하고, 능글능글하며, 허세에 가득 찬 말투들.

남자는 조용히 다가와 도마뱀의 뒷머리에 총구를 댔다.
“두 분 중에 어느 분이 가셔도 좋은데, 아무튼 우리도 그 물건 좀 구경해 보십시다. 한 분은 여기 남으시고. 다 좋은 게 좋은 거라.” p. 199-200

그밖에도 뒷조사 과정이라거나, 해결사들이 난무하는 것도 조폭 영화의 그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사실 소설 자체가 남자들의 세상을 그리고 있다. 나는 초반에 박력 있게 돌진하는 수진이라는 캐릭터를 보며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의 자리는 남자인 세영에게로 넘어간다. 물론 세영에게도 강한 동기가 있지만, 수진을 중심에서 끌어내릴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지하조직이 세영에게 과도한 임무를 부여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의아했다. 훌륭한 연구원이기 때문에 조직을 나가겠다는 세영을 붙든다는 것까지는 그렇다 치자. 새로운 바이러스를 맡는 중차대한 임무까지 억지로 맡긴다. 이야기의 시작과 끝은 수진이 열고 닫지만, 사실 이야기 내내 여자들은 무기력한 존재들로 그려진다. 거칠고 똑똑하고 권력 있는 남자들끼리의 싸움에 여자들은 들러리만 설 뿐이다. 체셔캣 정도만이 유능한 여자 캐릭터지만 표면적으로만 그려지고 구색 맞추기 같기도 하다.

이야기가 그리는 남자들의 모습이란 것도 형편없다. 남자들은 바람을 피우고, (면역자들이 흔히 그렇듯, 경위는 바람을 피우고 있었다. 아내에게 알리겠다고 했더니 기겁을 했다. p. 167) 퇴폐업소를 약속장소로 정하고, 여자를 강간하고 죽이는 존재들이다. 여자들은 주로 끔찍한 일을 당한다. 성폭행을 당하고, 총에 맞고, 두들겨 맞고... 여자들은 남자에게 위안이 되어 주거나 동기가 되어 주는 존재다.
최 이사와 사장인 석호의 연대, 석호와 아들 상우의 연대, 사실상 주인공인 세영과 명철의 연대, 혹은 세영과 도마뱀의 관계. 중심 이야기는 이 남자들의 관계에서 나온다. 여자들은 그 핵심에서 철저하게 소외당한다. 석호의 부인은 한 마디의 대사도 없다. 자고 있는 모습이 한 번 나온다.

생각해보면 남자들이 집착하는 계급투쟁의 문제도 이상해 보인다. 돈 가진 자는 무조건 끔찍한 존재로 등장한다. 최 이사나 석호 모두 점잖은 얼굴 뒤에 노골적인 천박함을 숨기고 있다. 규혁은 대놓고 쌍놈이다. 마치 영화 <배테랑>의 조태오처럼 보인다. 성적으로 문란하고, 이기적이며 폭력적인 존재.
이런 식의 인물 배치는 상위 계급에 대한 하층 계급 (여자가 아닌) 남성의 분노를 느끼게 한다. 작가의 자아는 바로 이런 하층 계급 남성들에게 투영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분노에는 언제나 여자들이 중요한 요소로 끼어든다.

“(…) 씨발, 좋겠네. 어떤 년들은 면역자랑 아는 사이라 검문도 바로바로 뚫고 위로 올라가고.” 남자가 주변의 동료들을 둘러보며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 같은 떨거지 보유자 새끼들은 여기 남아서 뒈져라 이거지? 어이, 아저씨. 나도 좆나게 불쌍한 놈인데 어디 한 자리 없나? 내가 저년들같이 몸은 못 대줘도 뭐든 시키면 잘 할 자신은 있는데 말이야.”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동요했다. p. 235

미영은 규혁의 ‘작업’을 거부했다가 철저하게 성적으로 유린당한다. 규혁이 마지막에 명철을 자극한 건 명철의 여자인 희원에 대한 성적인 위협이었다. 결국 하층계급 남자의 분노는 ‘돈 많은 놈들이 여자를 독차지 한다’ 뿐인 걸까?
물론 장르 소설 특성상 단순한 대결 구도가 필요하다는 건 안다. 거칠더라도 단순화 시켜서 밀어붙일 때 쾌감은 발생한다. 하지만 요즘 같은 혐오의 시대에 작가들은 조금이라도 더 조심해서 써야 하는 건 아닐까. 심지어 쾌감을 반감하는 한이 있어도 말이다. 장르 소설이기 때문에 넘어갈 수 있는 문제는 아닌 것 같다.

더 나아가서는 이건 남자 작가의 한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보통 계급 문제를 다루는 작가들은 남자 작가들이 많은 것 같다. 나는 그 이유가 그들에게 절실한 유일한 문제가 바로 그것뿐이기 때문이 아닐까 예측해봤다. 계급투쟁이라고는 하지만 상류층에 대한 분노는 결과적으로 ‘나를 껴주지 않는다’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결국 돈을 많이 벌어서 ‘섬’에 들어가고 싶은 것 아닐까.
여자도 물론 계급 문제를 다룰 수 있다. 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대단한 사치일 수도 있겠다. 유리 천장이 견고한 현실 속에서, 임금 격차가 엄청난 현실 속에서, 남자에게 맞아죽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현실 속에서 계급 투쟁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 계급 투쟁이란 미명 아래 무시당했던 수많은 다른 문제들은 어쩌고?

그는 갑자기 도마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었다. 자아가 사라진다. 이것은 여타의 모든 문제들을 무화시켜 버린다. 어린애 장난으로 만든다. 불안과 동요를 잠재운다. 이 추상적인 바이러스에 비하면 각 개인의 구체적인 문제는 가소롭기 짝이 없는 것이다. p. 206

작가는 최 이사의 오만함을 묘사하며 그를 신적인 존재로 만들고 있다. 하지만 이래서는 작가가 신적인 태도로 계급 문제 이외의 문제를 철저하게 하찮게 만들게 된다.

나는 마지막으로 이 소설의 최고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한 장면을 소개하려고 한다.
명철은 위기 속에서 희원을 구하고 무인 모텔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한숨을 쉬며 다시 담배를 물었다. 그때 욕실 문이 열리며 머리에 수건을 두른 속옷 차림의 희원이 나왔다. 그녀는 몇 걸음 다가와 침대에 앉아 있는 명철 앞에 섰다. 명철은 희원의 매끈한 배를 보다가 천천히 시선을 위로 올렸다. p. 268

상황 자체도 그렇고 시선도 성적으로 탐욕적이다. 희원은 그저 벗은 몸을 전시하는 대상으로 그려진다. 뒤이어 70~80년대 한국 호스티스 영화 같은 장면이 이어진다.

희원의 무뚝뚝한 눈동자와 눈을 맞췄다. 이 아이는 언제부터 이런 눈을 하게 됐을까? 부모가 죽었을 때? 홀로 세상에 내팽개쳐졌을 때? 열여덟 살, 세상이 정상이었다면 한참 학교를 다니고 있을 나이다.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미래를 상상하는 대신 좁은 모텔 방에서 중년 남자에게 알몸이나 보이고 있다니. 이게 다 미래가 죽어 버렸기 때문인가. p. 268

처음으로 희원의 나이가 밝혀지는 부분이다. 그 전에 업소에서 일하는 장면에서 계속해서 성인여성으로 생각했던 터라 적잖게 충격적이었다. 이어지는 부분들이 걸작이다.

명철은 어쩐지 희원과 자기 자신 모두 우습게 느껴졌다. 잠시 그렇게 있던 희원이 가볍게 한숨을 쉬고 탁자의 수첩을 집었다.
‘구해 준 값으로 나 안을래요?’
“왜 그래야 하지?”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까. 나도 빚지기는 싫고.’
전부 기브 앤 테이크. 조금 전 경박한 녀석의 말이 떠올랐다. 아이들은 유행과 규칙에 민감하다. 세상은 원래 그렇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나 지금의 세상은. p. 268

남자의 숭고한 정신을 드러내기 위한 희원의 노골적인 제안이 이어진다. 왜 항상 소녀의 성적 타락은 소년의 그것보다 심각한 것으로 그려질까.

그래도…… 그래도 선의란 게 어딘가에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세상을 구할 수는 없더라도, 말 못 하는 여자애를 대가 없이 도와줄 수는 있지 않을까? 그렇지 않나?
명철은 고개를 저었다.
“가끔은 공짜가 있어도 되잖아.” p. 268

남자의 도덕성을 성적 유혹에 대한 단호한 거절로 그리는 것은 너무나도 진부하다. 이런 게 클리셰라면 사라져야할 클리셰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거기다 남자의 마지막 대사는 자신이 공짜로 여자를 구했듯이 여자도 공짜로 남자에게 섹스를 제공해야 할 때를 암시하는 것 같아 소름이 끼친다. 이 문단 자체가 이 소설의 가치관을 함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작가는 기독교인으로 추정된다. 단순히 요한계시록의 말씀 한 구절을 인용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여러 대사나 지문에서도 파편적으로 그런 흔적들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런 고결한 말씀을 이야기로 승화시켰다고 해서 작품마저 고결해질 수는 없다. 말씀은 부분이고 독자는 이야기란 전체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부분은 부분을 설명해줄 뿐이다. 나머지 부분을 신경 쓰지 못하면 작가가 의도한 고결함마저 손상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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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02-08 00: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Bookbuff 2018-02-08 13:16   좋아요 0 | URL
다음 작품 기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