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와 스마트폰.이미 제목에서부터 정체성을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다.한쪽으로는 오컬트 세계가 있고, 다른 쪽으로는 모바일 인터넷과 가상현실 세계가 있다.이 이질적인 두 소재가 자연스럽게 하나로 결합된다.처음에는 도깨비를 판타지 세계로 들어가는 구실 정도로만 소비할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읽다 보니 도깨비의 특성이나 기원에 대해서도 깊이 파고들 뿐만 아니라 최신 과학 기술 등과 자연스럽게 엮어 내서 참신한 재해석을 하고 있었다. 그 경계를 오가는 것은 즐거운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이거 진짜야?”“당연히 허깨비지.”“허깨비?”“진짜랑 똑같아 보이게 만드는 눈속임 말이야. 매일아, 허깨비를 뭐라고 하면 되지?”케빈이 묻자 피부색이 까만 여자아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컴퓨터 그래픽.”“컴퓨터 그……. 그래, 그거야. 음.” p. 41물론 그 이질적인 결합의 궁극적인 목적은 ‘스마트폰에 빠지지 말고 적당히 쓰라’는 교훈을 주기 위함이다. 그렇긴 해도 소재적인 매력이 반감되지는 않는다. 이토록 ‘이과’적인 도깨비는 처음 접해본다.폐인.요즘의 지우를 완벽하게 표현해 주는 단어였다. 눈을 감으면 게임 화면이 아른거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도깨비폰을 들고 있었다. 도깨비 소굴에서 도깨비폰을 가지고 노는 꿈을 꿀 정도였다. p. 161단지 긍정적인 목표나 문제 해결을 위한 도전 같은 ‘당근’으로 교훈을 전달하는 쪽이라기보다는 부정적인 겁주기나 위기 빠뜨리기로 전달하는 식이라 약간 읽으면서 피곤했다. 가뜩이나 소재가 ‘기를 뺐는’ 거라서 그런지 유쾌하게 읽기는 힘들었다. “홀린다고? 홀리면 어떻게 되는데?”“우리한테 빠져서 벗어나지 못해.” 홍각시가 말했다.지우도 비슷한 옛날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요괴나 도깨비한테 홀려 기를 빨려 죽는 사람들 이야기는 흔했다.“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 계속 우리랑 놀려고만 하지. 우리는 사람이랑 노는 걸 좋아해. 인간 중에는 재미있는 애들이 많거든. 그런데 같이 놀던 아이들이 죽어 버리면 아주 골치 아파. 어른들한테 혼나고 스마트폰을 빼앗기기도 해. 가끔은 감옥에 가는 도깨비들도 있고. 으으으으.” p. 115-116인간들을 기에 따라 분류하는 부분은 가장 불쾌한 부분이었다. 일종의 건강 상태로 사람의 행, 불행이 결정되는 것처럼 여기는 것 같아서 경악스러운 부분이었다. 물론 아이들에게 규칙적인 생활이나 운동을 권할 수 있기는 하겠지만, 작품 안에서 말하는 ‘기’나 ‘대’ 같은 것은 타고난 영역이 커서 자칫 아이들에게 괜한 열등감이나 우월의식을 심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더불어서 스마트폰이라는 도구를 생산적으로 활용할 수만 있으면 괜찮다는 결말은 최신 도구에 대한 양면성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필요한 부분이라는 건 알겠다. 하지만 마치 어떤 ‘상품’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 같아서 개운하지는 않았다. 마치 뭐든 ‘산업’으로 치환시키는 어른들(혹은 어르신들)의 논리라고 느껴졌다. ‘영화 <쥬라기 공원>이 국산차 몇 대를 판 이익을 얻었다’고 하면서 ‘영화 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던 그 옛날의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것 같다. 뭐든 돈이 된다면 괜찮다는 논리. 역시 뭐니뭐니 해도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논리. 사실 과학기술은 언제나 수익으로 연결되지는 않고 그럴 필요도 없지 않은가. 그 어떤 ‘문과’ 못지않게 순수한 것이 사실 ‘이과’ 아니던가.그 밖으로는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인 윤 진사에 대한 부분이 서둘러 봉합된 느낌이 있어서 아쉽기도 했다. 윤 진사 캐릭터만이 아니라 윤 진사를 대하는 지우의 반응도 굉장히 편의적이다. 직관적으로 윤 진사의 말을 척척 알아들으면서도, 갑자기 순진무구한 아이처럼 구는 지우를 보면 전체적인 완성도를 해치는 것 같아 아쉽다.그럼에도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야기였고, 전통 소재를 자연스럽게 최신 기술과 함께 엮어냈다는 점에서 확실한 장점이 느껴졌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스마트폰이 너무 당연하게 돼 버린 요즘 아이들에게 충분히 자기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줄 수 있을 좋은 이야기다. 지우는 아주 중요한 걸 깨달은 기분이었다. 도깨비폰을 사용하든 안 하든,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도깨비 아이들과 놀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다. 중요한 건 마음을 지키고 영혼을 차분하게 다잡는 것이었다. p. 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