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스러운 새끼.” 군발드 라르손이 별안간 내뱉었다.“뭐?”“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 나는 일하면서 만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껴. 대개는 자기 자신도 차라리 세상에 안 태어났으면 좋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부스러기 인생들이지. 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세상사가 뜻대로 돌아가지 않을까 고민하겠지만, 사실은 그들 잘못이 아니야. 그 사람들의 인생을 망가뜨리는 건 바로 포르스베리 같은 작자들이야. 자기 돈, 자기집, 자기 가족, 그 잘난 사회적 지위 외에 다른 건 염두에도 없는 천박하고 비열한 놈들. 어쩌다 보니 떵떵거리고 살게 되었다고 해서 남들을 마구 부려도 된다고 생각하지. 그런 놈들이 수없이 많지만, 대개는 포르투갈 창녀를 목 졸라 죽일 만큼 멍청하진 않아. 그래서 우리는 그런 놈들을 절대로 잡아들이지 못하는 거야. 그런 놈들의 희생양을 만날 뿐이지. 이 새끼는 예외지만.”“흠,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p. 407-408
“왜 하필 당신이었을까요?”핼러스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네?”“이 악마…… 당신은 그 아이를 악마로 생각하는 것 같은데, 그 악마가 당신을 선택한 이유가 뭐였을까요?”핼러스는 미소를 지었지만 입 꼬리를 양옆으로 늘린 것에 불과한 미소였다.“다소 순진한 질문을 하시네요, 변호사님. 차라리 로니 깁슨처럼 어떤 아이는 각막 기형으로 태어나고 똑같은 병원에서 그 뒤로 50명은 멀쩡하게 태어나는 이유는 뭐냐고 묻는 쪽이 낫지 않을까요. 아니면 착하게 산 사람은 서른 살에 뇌종양에 걸리고 다하우 가스실 감독관을 거든 괴물은 백 살까지 사는 이유는 뭐냐고 묻든지요. 착한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물으시는 거라면 번지수를 잘못 찾으셨네요.”p. 224-225
하도 재미있어서 지난 몇 년 동안 공개석상에서 꾸준히 소개했던 일화가 하나 있다. 우리 집에서는 아내가 주로 장을 보지만(그렇지 않으면 집 안에서 채소가 끊길 거라고 한다.) 급하면 가끔 나를 내보내기도 한다. 그래서 건전지와 코팅 프라이팬 사오기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어느 날 오후 동네 슈퍼마켓을 찾은 적이 있었다. 몇 가지 생필품(시나몬 번과 감자칩)을 장만하고 주방용품 코너를 어슬렁어슬렁 걸어가고 있었을 때 저쪽 끝에서 누군가가 전동 카트를 타고 등장했다. 완벽한 펌과 코도반 가죽처럼 까무잡잡하게 태운 피부를 자랑하는, 전형적인 플로리다 피한객 스타일의 80대 여성이었다. 그녀는 나를 쳐다보았다가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며 나를 다시 쳐다보았다.“나 당신 알아요. 스티븐 킹이죠? 그 무서운 소설들 쓰는. 뭐, 그래도 괜찮아요, 그런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하지만 나는 아니에요. 나는 『쇼생크 탈출』처럼 희망을 느낄 수 있는 이야기가 좋아요.” “그 작품도 제가 쓴 건데요.”“설마 그럴 리가요.”그녀는 이 말을 남기고 총총히 사라졌다. p. 313-314
지쳤어.
서점에서 책을 샀다.집에 와 종이봉투를 열어보니 사은품인지 원고지가 한 팩 들어 있다.묻지도 않고 함께 넣어줬나 보다.어릴 적에는 새 물건이 (공짜로) 늘어나면 무조건 기뻤다.하지만 오늘 밤은 내가 과연 이걸 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집 정리를 좋아하는 어린애가 자라서쓰임이 불분명한 물건을 집에 쌓아두는 일이 마음에 걸리는 어른이 됐다.지금의 나에게는‘좋아하는 물건만 두기에도 부족한 나의 공간’이라는 말이‘사랑만 하고 살기에도 부족한 인생’이라는 말과 닮게 쓰인다. p. 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