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스크린에 나타난 전자 신문의 기사 제목들을 훑어보다가 자주 하게 되는 생각이 또 하나 있었다. 통신 수단이 근사해질수록 거기에 실리는 내용은 더 사소하거나, 겉만 번지르르하거나, 더 우울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 사고, 범죄, 자연재해와 인간이 초래한 재난, 전쟁 위험, 우울한 사설들, 이런 것들이 지금도 허공에 뿌려진 수백만 단어들의 주된 내용인 것 같았다. 그러나 이것이 과연 전적으로 나쁘기만 한 일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플로이드는 이미 오래전에 유토피아의 신문은 지독하게 지루할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었다. p. 97-98
마르틴 베크는 몸을 곧추세웠다. ‘경찰관에게 필요한 세 가지 중요한 덕목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그는 속다짐을 했다. ‘나는 끈질기고, 논리적이고, 완벽하게 냉정하다. 평정을 잃지 않으며, 어떤 사건에서든 전문가답게 행동한다. 역겹다, 끔찍하다, 야만적이다, 이런 단어들은 신문기사에나 쓰일 뿐 내 머릿속에는 없다. 살인범도 인간이다. 남들보다 좀더 불운하고 좀더 부적응적인 인간일 뿐이다.’ p. 88
따지고 보면 점술이란 결국 덕담과 크게 다르지 않다. 비록 일회용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해주고, 어려운 순간을 넘길 자신감을 주고, 간단하지 않은 갈등을 바라보도록 돕는다는 면에서.어쩌면 점술자의 적중 능력이라는 것도 이러한 덕담적 가능성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한 부차적인 알리바이일 뿐, 그 자체가 핵심은 아닐지도 모른다. p. 237
사실이다. 비비언은 무엇을 택하든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될 사람이었지만, 그녀는 정부 각료가 되는 것에도, 경찰 국장, 칙선 변호사(영국 최고 등급의 법정 변호사./ 옮긴이)에도 관심 없었다. 그녀는 엄마와 할머니로 불리면 족하다고 내게 말한 적이 있다. “직업을 가진 여자는 운이 좋으면 일주일에 닷새를 자기를 칭찬해 주고 존경해 주는 사람들과 함께 지낼 수 있지. 하지만 가족을 평생 직업으로 삼은 여자는 자기를 칭찬해 주고 존경해 주고 또 사랑해 주는 사람들과 평생을 보낼 수 있단다. 그 무엇과도 비교가 안 돼. 내 어머니는 평생 직업을 가져 본 적이 없으셨다. 만약 어머니에게 직업이 있었다면 나는 결코 좋아하지 않았을 거야.” 그녀는 말했다. p. 1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