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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략자들
루크 라인하트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1년 5월
평점 :
절판
★★스포 있습니다★★
작년 11월에 작고한 루크 라인하트의 마지막 소설이다.
굉장히 재미있는 설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은회색 털이 촘촘히 박힌 비치볼 같은 생명체의 등장으로 시작되는 이야기가 유머러스한 문체로 전개된다.
인간에게 딱히 거부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외형, 신기하고 재미난 변신 능력, 굉장히 높은 지능, 그리고 악의 없이 재미를 추구하는 외계 생명체는 귀엽고 매력적이고 친근감 넘친다.
70살이 넘은 괴짜 노인 ‘빌리 모턴‘ 가족에게 찾아온 ‘루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적으로 등장하는 FF(프로테스인)들의 재미 추구 활동으로 세계가 변화하기 시작한다. 물론 미국 정부를 필두로 이를 적대적으로 바라보는 기득권 층이 방해하지만...
이야기의 초반이 굉장히 흡입력 있고 재미있다. 정체불명의 외계 생명체가 어떤 행동을 할지 기대됨과 동시에, FF들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웃긴 상황과 이를 더 웃기게 표현하는 빌리의 글을 낄낄거리며 읽었다.
특히 티비쇼에 출연한 루이가 통통 튀면서 이리저리 변하면서 하는 인터뷰는 정말 재미있었다.
FF들이 지구에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는 당연히 공존의 가능성을 재는 상황이 펼쳐진다.
재미를 추구하며 기존의 (불합리한) 시스템을 망가뜨리는 FF들을 ‘테러리스트‘라고 규정한 미국 정부는 점점 늘어가는 FF들의 행동을 규제하려고 하고, FF는 뜻을 같이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며 미국 정부를 상대로 재미를 추구한다. 모턴 가家는 당연히(?) FF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서, 정부의 감시 리스트에 오르게 된다.
이때부터 이야기가 빌리의 모험담처럼 변하면서 스케일이 점점 커진다. 빌리는 정부의 감시와 위협에서 벗어나기 위해 변장하기도 하고 죽은 척하기도 하고 법원에 서기도 한다. FF들도 전 세계의 군사력을 약화시키고 부의 분배를 실천하고 오직 재미를 위한 이벤트를 기획하면서, 정부의 상대가 되어준다.
글 자체에 유머가 베이스로 깔려있어서 글을 읽는 재미는 있지만, 책의 중반 즈음부터 이야기가 다소 루즈해진다.
미국 정부와 FF들의 대결(갈등)으로 미국 정부가 인명 피해를 직접적으로 유발하고 FF들도 대규모로 캠페인을 이끌면서 과연 이 이야기를 어떻게 수습할지 궁금했는데... 읽다가 끊긴 느낌이다. 큰 스케일의 ‘재미 마라톤‘을 벌여놓은 상태에서 이야기가 끝났다!
책의 말미에 ‘2권 <털북숭이 공과 문명의 끝> 곧 발매. 동네 주점에서 이 책을 찾아보세요.‘라는 글을 보면, 작가가 2권을 염두에 두고 있었나 싶다. (후속작을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와 동시에 작가는 FF들의 입을 빌려 군사력 유지와 강화에 막대한 돈을 퍼부으며 전 세계를 쥐락펴락하면서, 자국의 취약계층과 복지에는 무심한 미국을 비판한다. 자주 언급되는 공화당에 대한 풍자는 미국 정치를 잘 모르는 나에게 그다지 와닿지는 않았다.
FF들 중 하나인 ‘횡설수설‘의 연설은 꽤 인상 깊었다.
현재 많은 국가들에서 쓰이는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나 역시 현대의 민주주의에 큰 한계가 있다고 느끼고 있던 중에, 고대 그리스를 언급하며 임의적으로 뽑는 공직자를 뽑자는 발상은 꽤 참신했다.
솔직히 임의로 공직자를 선출하는 방식이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현대의 국회보다 낫지 않을까?
이외에 작가가 직접적으로 본인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정치적 견해를 드러내는데, 나와 생각이 다른 부분이 있어서 딱히 동의는 못했다. (인종 비율과 성별 비율, 미국의 군사 조치 등에 대해서 주로 그렇다. 미국의 군사 조치 축소 및 중지는 FF들이 북한의 핵무기도 무력화하고 있다는 가정하에서는 찬성할 수도...)
하지만 작중의 말마따나 whatever! 내 의견이 옳은 건 아니니까 상관없다. ㅎㅎ
내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배운 사실은 이것이다. 우리 인간들에게 있어서 자신이 옳다는 주장을 고수하는 것은 패배하는 전략이라는 것. 내가 옳다는 확신이 강할수록 나 자신과 다른 사람들이 불행해진다. 내가 헛소리를 잘 늘어놓는 것은, 헛소리를 하는 동안에는 내가 옳다는 생각을 할 위험이 없다는 점 때문인 것 같다.
나름 재미있게 읽었다. 작가의 유머러스한 문체가 특히 마음에 든다.
중후반부의 늘어지는 상황에 대해 아쉬움은 있지만, 짧은 호흡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쓴 글로 재미와 속도감을 어느 정도 커버했다.
재미... FF들이 끊임없이 추구하는 재미.
언제 어디서든 진지하거나 심각해지지 않고 재미를 느끼려는 프로테스인들.
내 인생의, 나의 재미는 무엇일까, 그리고 지금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에 재미를 잃어버리고 사는 건 아닐까.
‘재미‘와 ‘놀이‘에 대해서도 생각해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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