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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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활보호법이 기초법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주민들은(과거처럼) ‘노력‘을 해서 결과를 바꿔낼 여지가 거의 사라졌다는 데 당혹해했다. 기존의 생활보호법과 비교해서, 기초법은 일선 공무원의 관료-기계로서의 성격을 한층 강화했다. 레비 R.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관료기계는 일정한 양식에만 열려 있다. 양식은 그 자체로 입력물(질병, 장애, 집, 가족, 일, 빚 등)에 조작을 가하여 "어떤 조직적인 소통 매체로 변환하는 기계다. 사전에 규정된 특정 기준에 따라 양식에 적시된 것만 전달 가능하므로 "우리의 사람됨, 우리의 처지, 우리의 삶은 양식에 의해 사전에 규정된 범주에 따라 분쇄되고 걸러진다. (브라이언트 202093) 신청자의 구구절절한 말과 망가진 몸은 각종 서류 ‘양식‘을 통해 인증을 받고, ‘기계‘를 통과해야 심사 자격을 얻는다. - P45

"사회적 빈곤의 이미지는, 빈곤의 특정한 단계라기보다는,
그것이 가진 유동성과 무한성의 느낌들, 즉 이 모든 위협적 특징을 야기하는 도시 군중의 거대하고 모호한 인상을 강조한다." (프로카치2014: 237) 프로카치는 이 담론의 공격 대상이 (산업사회에서 자연적이고, 반박 불가능한 사실로 인정된) 불평등의 제거가 아닌 "차이의 제거"임을 역설한다. ‘차이‘라는 표현을 통해 그가 강조했던 바는, 사회적 빈곤이 일련의 품행-즉사회화 기획에 고분고분하지 않은 태도를 겨냥하면서 극빈을 "신체적·도덕적 습성들의 집합"으로 간주했다는 점이다.(2014 240) 술에 절어 방탕하게 사는 사람, 장래에 대비하지 않는 사람, 구호금을 탕진하는 사람 등 자본주의 체제 노동자 기준에 미달하거나 노동자이기를 거부하는 모든 사람이 품행이 의심스러운 빈민으로 내몰렸다. 경제적 의존을 도덕적·심리적 의존과 자의적으로 연결하면서 "가난한 사람들은 가난 그 이상의잘못된 무언가가 있다"라는 암묵지를 만든 것이다.(Dean 1999: 62)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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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과정 - 빈곤의 배치와 취약한 삶들의 인류학
조문영 지음 / 글항아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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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계에선 누구도 빈곤의 천태만상을 멀찍이서 바라만 보는 위치에 있을 수 없다. …… 정부는 선별적 포섭, 보호, 배제를 제도화하면서 공공부조 수급자에서 난민·이주자에 이르기까지 빈자를 식별하고 등급화한다. 지구상의 공유부commons를 상품화하고, 인간생명을 인적 자본으로 취급하며 경쟁을 독려해온 기업은 고도로 산업화·전문화된 반빈곤네트워크의 젖줄이 됐다. 이들은 사회공헌, 윤리적 자본주의, 임팩트 투자, 환경·사회·거버넌스ESG 등 시기별로 다양한 구호를 변주해가면서 빈곤산업의 언어와 문법을 ‘혁신‘하고, 다수의 빈곤을 초래한 대가로 축적한 자본의 극히 일부를 정부, 대학, 비영리재단, 시민단체에 세련된 퍼포먼스와 함께 재분배한다. 나를 포함한 시민 대중도 빈곤의 연결망에 깊숙이 연루되어 있다. 알아서 살아남기를 강요하던 국가 통치의 피해자인 동시에, 가족 바깥의 삶에 대한 무심함을 내면화한 채 ‘쓸모없는’ 생명의 축출을 직간접적으로 돕는 공조자다. 주가와 부동산이 오를 수만 있다면 해고, 철거, 산업재해, 환경 파괴를 적당히 눈감고, 쓰레기 소각장, 축사, 심지어 복지 기관까지 ‘혐오 시설‘이라 부르며 빈곤과의 물리적 거리 두기에 안간힘을 쓴다. 아프리카 아동이 후원의 보답으로 보낸 손편지에 감동하면서도, 자녀가 임대아파트에 사는 친구와 어울리는 것엔 신경이 쓰인다. - P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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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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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관료주의, 시장화 및 테크놀로지의 유독한 조합이 돌봄의 인간화에 꼭 필요한 진정성, 자발성, 창조성을 질식시키고 있다. 어떤 규제나 검사도 웨스트컨트리의 한 일반의가 묘사한 다음과 같은 가치를 포착할 수 없다. "지난 금요일 오후에 정신건강, 자해, 트라우마에 초잠을 두는 진료소에서 일했습니다. 많은 환자가 형사 사건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한 여성이 육체적, 정신적 고통에 빠져 있었는데 삶에서 여러 번 정신적 충격을 겪어 발생한 ‘의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증상의 극단적인 형태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고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지 당사자에게 설명할 수조차 없었습니다. 환자는 감정적으로 너무 혼란스러워서 제대로 생각을 하지 못했거든요. 나는 다른 의자로 가서 환자를 향해 앉아 눈을 마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당신과 함께 있어요. 우리가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거절하거나 도울 수 없다고 말하지 않을 것입니다.‘라고요.
옳은 일을 한 것 같았습니다. 정신과 몸의 연결을 우리가 다 알지 못하고 의학이 줄 수 있는 답이 동이 났을 때, 우리가 가진것은 돌봄을 보여주는 것밖에 없습니다. 매우 고통스럽지만 나는 그런 상황을 다룹니다. 그러한 순간이 되면 나의 역할을 재설정합니다. 답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그 환자가 살면서 너무나 자주 경험했을 실망과 낙담을 여기에서는 겪게 하지 않도록 헌신하는 사람으로 말입니다. 그 환자는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것 같았습니다." - P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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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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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어떻게 끝나는지, 또 어떻게 끝나야 마땅하며 어떻게 끝날 수 있는지 아는 것은 삶에서 필수적인 기술이다. 어떻게 시작하는지 아는 것보다 훨씬 중요할지도 모른다. - P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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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노동 - 가정, 병원, 시설, 임종의 침상 곁에서, 돌봄과 관계와 몸의 이야기
매들린 번팅 지음, 김승진 옮김 / 반비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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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이자 인류학자인 아네마리 몰Annemarie Mol은 "선택의 논리"와 "돌봄의 논리"는 정반대이며 전자가 후자를 훼손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네덜란드의 당뇨병 전문 진료소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몰은 이 두 논리 사이의 긴장을 탐구했다. "좋은 돌봄은 개개인이 정보를 잘 따져보고 선택을 내리는 것의 문제가 아니다. 좋은 돌봄은 아픈 신체와 복잡한 삶에 지식과 기술을 세심하게 적용하고자 하는 지속적이고 협업적인 시도에서 나오는 것이다." 몰은 "좋은 돌봄의 이상은 소리 높여 주창되지 않고 진료 행위에 조용히 통합되어 있지만"(애절리 힐에서도 볼 수 있었듯이 말이다.) 현재는 "이것이 위협에 처해 있으니만큼 분명하게 소리 높여 표현해야 할 때"라고 촉구했다.
아네마리 몰은 선택이란 근본적으로 정치적인 개념이라고 본다. 서구 문화에서는 막대한 상업적, 개인적 자원이 선택의 열망을 독려하는 데 투자되어서 그런 선택을 판매하고 우리가 그런 선택을 내리도록 설득한다. 아네마리 몰은 이것이 "규율의 기술"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이 자기 운명은 다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기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수많은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의료의 문제에서는 어떤 선택도 명확할 수 없다. 선택의 논리와 돌봄의 논리는 각각 필요할 때가 있지만, 선택의 논리 쪽에 특전이 놓이면 돌봄의 논리가 무시되는 문제가 생기며 그때는 둘이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몰은 이렇게 언급했다. "돌봄이란 과정이다. 여기에는 명확한 경계가 없다. 즉 돌봄은 열린 과정이고 시간의 문제다. 돌봄은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깔끔하게 전달되는 사물이 아니라 모종의 결과를 향해 시간을 두고 함께 협업하는 여러 사람의 손을 통해 작동되는 결과다." - P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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