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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유학자, 조식
허권수 지음 / 뜻있는도서출판 / 2022년 4월
평점 :
임진왜란시 의병장 출신의 대부분이 조식의 제자일정도로 義氣를 가졌던 유학자였다.
퇴계 이황과는 1501년 동갑이며, 주리론적 이기이원론이라는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으나,
조식은 보다 직설적이고 행동파적 신념을 가진듯 하다.
같은 동인으로 분류되고 있으나 조식은 북인으로,
퇴계는 남인으로 분파된다.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을
시작한 퇴계는 당쟁과 사화를 피해 사직을 거듭했던
것과는 달리 조식은 벼슬에 나가는 것 자체를 義가
아니다라는 고집으로 평생을 재야에서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며 나름 자신의 생각을 부르짓는다.
그의 부친은 청렴 하였으나, 사화로 삭탈관직되고 목숨을
잃게됨에 따라 생활이 궁핍했던 조식은 유력한 가문에
장가 들면서 처가 유산으로 공부에 매진한다.
세상에 대한 義는 있었으나, 모친의 꿈인 입신양명을
포기함으로써 대못을 박은 불효는 용서 받을 수 있을까?
생계를 위한 방편으로 처가동네에 기거 하다가, 조강지처를 버려두고(정실부인이 따라가기를 거부) 후실을 얻은 후, 당시 상황으로 이해한다 하더라도, 이십년 동안이나 만나지도 않고, 후에 정실이 죽었을때 조차 찾지도 않고
후실에게서 얻은 아들을 보내 장사지낸 것을 과연
군자로서 義로운 행동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평생 자신만을 위해서는 치열하게는 살았으나 가족을 위한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않았음은 이해 받기
어려워 보인다.
간신배들이나 아전들의 부정에 대하여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현실정치에 뛰어들어 작은 것이라고 고쳐지도록 행동 하는게 親民을 실천하는게 아니었을까?
敬과 義를 지킨다면서 임금의 부름에 한번도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음식을 하사하는 것 마져도 거부
했던 것은 만백성의 어버이라는 군주에 대한 유학자의
禮라고는 할 수 없는거다.
휴정이 유불선 3교의 교리를 해설하기 위해 지은 책자에
유교를 설명한 것이 맨뒤에 배치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사찰에 난입하여 사천왕의 목을 자르고 목판을 불태운
無道한 제자에게는 좀 심했다고 말을 하면서도 반갑게
맞이했던 조식의 내로남불은 광신적 근본주의자와
다르지 않다. * 진영논리에 빠진....
조식은 타협하지 않음을 義라 하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我是他非하는 꼰데의 아집을 가지고 있다
퇴계와 쌍벽을 이루었던 조식에 대한 소개가 많지 않다.
그당시 시대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시점으로 보더라도
훌륭함 못지 않게 이해하기 어려운 점이 많아 보인다
이책에서 제대로 집어내지 못한 더 많은 훌륭한 점이
많이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흠모하고 존경하는 문하생이 많았고 평생지기도 많았음이 그러 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위인이라 하더라도 장점만이 있지는 않다. 이책은 위인전이 아닌 일생과 학문을 소개하는 것이라
장점 만큼이나 많은 단점이 있었던 점이 범부인 내게는 오히려 용기를 준다